한국 드라마 이야기/넝쿨째 굴러온 당신

넝쿨째굴러온당신, 너무 익숙해서 짜증나는 아들 차별 눈길가네

Shain 2012. 3. 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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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동생이 태어났던 다섯살 때 쯤 길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산후조리 중이라 저를 돌보지 못했고 저 혼자서 대문 앞에서 놀다 논길을 따라갔습니다. 꽃을 꺾으려고 정신없이 걷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을 넘어버린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되돌아가기 보단 앞으로만 달려가는 습성이 있다던가 저 역시 앞으로만 계속 걷다 집에서 멀어진 것입니다. 운좋게도 도착한 마을의 동네 이장님이 거둬 하룻밤 재워주기까지 하셨고. 그 다음 날 파출소에 연락이 되어 쉽게 가족을 찾았습니다. 잘못했으면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주인공처럼 길잃은 아이가 될 뻔했죠.

사실 당시 길을 잃을 줄도 모르고 집밖에 놀러나온 저는 상당히 토라진 상태였습니다. 셋째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할머니는 어머니를 두고 훵하니 가버리셨고 어머니를 혼자 둘 수 없던 외할머니가 급하게 오시긴 했지만 일주일 만에 돌아가야 했습니다. 어머니 혼자 아이 셋은 무리라며 제 아랫 동생만 데려가셨고 그것 때문에 제가 시무룩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파서 꼼짝하기 힘든 상태, 돌봐줄 할머니도 없고 놀아줄 동생도 없이 혼자 있어야하는구나 싶어 나름 멀리 나간 것이 '가출'이 되고 말았습니다.

차윤희와 엄청애의 달라도 너무 다른 라이프 스타일.

10대나 20대는 외동딸, 외동아들이 많아 그런 현상을 보기 힘들겠지만 30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아들낳지 못했다고 눈총 받았다는 며느리 이야기를 종종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70년대 초반의 가족 계획 구호는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였다는데 80년대 초반에는 '한 자녀 낳기'로 변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시대가 변했는데도 80년대 후반까지 아들 낳기 위해 무리하는 며느리 이야기를 없잖아 접할 수 있었습니다. DB를 뒤져 보면 90년대까지도 그런 내용의 기사가 실려 있습니다.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산후 조리도 해주지 않고 가버리는 시어머니, 손녀가 여럿임에도 아들 낳으라고 압력을 넣던 풍경, 아들 이름은 한자로 근사하게 지어주면서도 딸아이는 말숙이 종말이 말년이란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어주던 그 때, 이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주인공이 서른 여섯이란 설정이니 그 또래들에게는 반갑지는 않아도 한번쯤 보았던 풍경일 것입니다. 시집살이가 싫어 능력있는 고아에게 시집갔다는 여주인공처럼 지긋지긋한 그 풍경을 다시 보고 싶지 않은데 눈길이 가는 건 역시 습관인가요.



달라도 너무 다른 라이프 스타일의 충돌

주인공 차윤희(김남주)는 잘 나가는 드라마 제작사 PD로 시집살이하는 결혼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너무 깍쟁이같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지만 그녀의 직업 자체가 배우에 감독에 작가에 치이는 일의 연속이다 보니 제 한몸 챙기는 성격이 아니고서는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시집살이시키는 배우자와 결혼했다간 PD는 커녕 쫓겨나기 딱 알맞겠지요. 그렇다고 남에게 피해를 끼쳐서라도 이익을 얻자는 생각이라기 보다 남에게 신세지거나 민폐를 끼치기도 싫고 내가 손해보기도 싫다고 생각하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젊은 주부입니다.

반면 그녀가 새로 이사간 빵집 안사람 엄청애(윤여정)는 시어머니 전막례(강부자)를 모시고 사는 전형적인 주부로 집안의 모든 질서는 목소리 큰 막례에 의해 좌지우지됩니다. 새로 이사온 새댁에게 저녁 같이 먹자고 제안하고 이것저것 간섭하는 모습이 다 관심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인데 불편하다며 그런 호의를 거절하는 차윤희가 마음 한쪽으로 괘씸합니다. 남편 방장수(장용)는 어머니에게만 효자일 뿐 아내에겐 무뚝뚝하고 딸들이 잃어버린 손주만 애지중지하는 할머니 때문에 피해를 입어도 큰소리내지 못하고 삽니다.

부침개 가져다 주는 엄청애를 부담스러워하는 차윤희.

딸 셋에 시동생 둘, 동서 둘까지 있는 대가족의 큰며느리가 차윤희처럼 깍쟁이같아서야 그 큰 살림을 건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은근슬쩍 밥상에 올라온 갈비까지 집어가는 윗집 방정배(김상호)도 못본 척하고 가끔씩 성질긁는 아랫 동서 장양실(나영희)까지 봐주려면 마음이 태평양같아야합니다. 이게 손해니 저게 손해니 따지다간 집안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습니다. 애초에 차윤희는 그런 집 큰며느리로는 어울리지 않는 아내이지만 약간은 얌체같은 차윤희의 라이프스타일이 현대사회를 살자면 꼭 필요하다 보니 나무랄 수만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차윤희는 자신의 엄마 한만희(김영란)가 지독한 시집살이를 겪는 걸 몸소 보고 자란 딸입니다. 오죽 하면 한만희가 올케 민지영(진경)을 닥달하는 모습을 보고 꼭 할머니 같다며 엄마를 말릴 정도입니다. 나는 시집살이같은 거 안하고 내 꿈을 이루겠다는 차윤희의 처세를 욕할 수만은 없는 상황. 때마침 남편 테리강(유준상)이 그런 아내를 몹시 사랑하니 자기 운이 좋은 걸 남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런 차윤희의 행운이 남편 이름이 '방귀남'이 되면서 산산조각나는 이야기. 생각만 해도 후덜덜합니다.

귀남을 잃어버리는데 둘째 며느리가 큰 역할을 했다?

일숙(양정아), 이숙(조윤희), 말숙(오연서)라는 이름의 딸 셋. 그 또래들은 아들낳을 때까지 딸을 줄줄이 낳고 이름도 대충 지어주는 풍경이 흔했죠. 자기 오빠를 잃어버린 날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생일도 못 찾아먹는 이숙의 인생이 불쌍하고 자기 몰래 이숙의 생일상을 차렸다며 울고불고 난리치는 할머니 막례의 억지도 황당하고 그렇지만 귀한 손주에게 비싼 고기를 준다며 반찬 그릇 뺏어가던 할머니들은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아직도 그런 집이 있겠더라구요.

어린 시절에 사촌동생들끼리 싸움을 하면 누가 '우리 아들' 때리냐면서 손주부터 챙기던 할머니의 모습을 기억하는 저로서는 달라도 너무 다른 이 삶의 방식이 충돌하는 모습은 익숙해서 짜증나고 그러면서도 또 눈길이 가는 삶의 한단면입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바쁘게 살아야하는 현대인의 모델 차윤희를 응원하고 싶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샌드위치 세대 엄청애의 허전한 심정이 이해가 가고 그렇단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가족을 이루고 산다면 빵가게 건물이 남아나지 않겠네요.

자 이왕 테리강의 본명이 방귀남인 건 시청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고 '귀하신 아들'이라는 '귀남'의 앞날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친부모를 찾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DNA 검사만 하면 생각 보다 빨리 빵집 주인이 부모라는 걸 알게될 것입니다. 만나서 반가운 것도 잠시 곧 차윤희의 층층 시집살이가 시작되는 건가요. 윤희의 큰시누이 일숙은 본래 친구였던 것같은데 원래 친구가 시누이로 들어오면 훨씬 무섭게 군다고 합니다. 시집살이같은 건 안한다고 자랑까지 했으니 큰코 닥쳤네요.

드라마 자체의 시놉시스는 그럭저럭 재미있는데 배우 김남주의 캐릭터는 전작 '내조의 여왕'같은 드라마에서 본 모습을 재생산하는 듯해 큰 기대를 하는 편이 아닙니다. 여동생들과 노래교실 다니는 윤여정의 아기자기하고 뚱한 캐릭터에 거는 기대가 큰 편입니다. 어머니 세대는 아들을 자기 남자로 생각한다고 하는데 '본처'가 그 꼴을 두고 볼 리 없지요. 앞으로 두 여배우가 아웅다웅 경쟁하는 모습이 흥미로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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