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해를 품은 달

해를품은달, 연기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은 배우는 누구?

Shain 2012. 3. 1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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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여기저기에서 댓글을 읽다 보면 재미있는 일이 많습니다. '해를 품은 달' 관련 기사에는 시청자들의 감상이 적히기 마련인데 사람들 보는 눈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감가는 글도 있고 이건 심하다 싶은 악플도 많습니다. 요즘은 연기력 논란을 겪는 특정 배우 옹호 기사가 뜨면 백프로 악플이 달리는 것도 같습니다. 반면 특정 연기자가 연기를 정말 못한다는 단순한 글에도 '너는 XXX이랑 웬수진 일 있냐'는 반박 댓글이 따르는 것도 흔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글쎄, 연기자에게 연기를 못한다고 하는 말이 악플일까요 아닐까요. 워낙 여론이 폭발적이라 폭력처럼 보이기는 한데 반박 역시 지나치다는 생각도 듭니다.

돌이켜보면 주연 배우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성인연기자들이 등장 초반에 연기력 논란을 겪었습니다. 대왕대비 윤씨(김영애)를 비롯한 중견연기자들은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던 반면 주연급 연기자들 대부분이 어설픈 표현으로 '발연기'란 지적을 받았습니다. 마지막회를 앞둔 지금, 그들 중 일부는 끝까지 시청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거나 캐릭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으며 또다른 일부는 초반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내고 감동을 선사해주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무게있는 드라마에만 출연하기로 유명한 배우 김영애의 명연기가 어린 배우들의 연기 수업에 묻혔다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김영애 양미경 정은표 전미선

드라마 성공의 밑거름이 된 중견연기자들의 열연.

중견연기자들은 각자 제 몫을 다해 삐걱거리던 드라마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최고의 악역으로 이훤(김수현)과 허연우(한가인)의 사랑을 방해한 윤대형(김응수)이나 절절하고 따뜻한 모성애를 보여준 신씨 부인(양미경), 세자빈으로 간택된 딸의 명예를 위해 손수 숨을 끊는 탕약을 끓여 먹인 아버지 허영재(선우재덕), 아버지처럼 친구처럼 이훤을 보필한 내관 형선(정은표), 연우를 살리기 위해 무녀로 만든 국무 장녹영(전미선) 등 배우들은 한결같이 시청률을 보장하는 명연기를 선보였습니다. 후반부 출연이 사라져 아쉬운 대비 한씨(김선경)도 인자하고 음전한 왕의 어머니 역에 어울렸습니다.

독살되는 순간까지 권력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한 대왕대비 윤씨는 어머니와 할머니란 이름으로 자신이 괴롭힌 핏줄의 얼굴을 떠올립니다. 독약이 퍼져나가는 고통, 몸이 찢기는 듯한 괴로움 보다 그녀를 휘감은 것은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식들의 슬픔일 것입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대왕대비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영애의 연기는 대사 없이도 그런 감정을 떠올리게 할 만큼 훌륭합니다. 무시무시한 빙의로 중전 윤보경(김민서)를 공포에 질리게 만든 녹영 전미선과 더불어 최고라 해도 아깝지 않은 연기자입니다. 그렇다면 신인급 연기자들 중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사람은 누구일까요.



가장 많이 성장한 배우는 누구

처음 아역 진지희의 바톤을 이어받은 민화공주 남보라가 등장했을 때 시트콤이 연상되는 발랄한 연기가 적잖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더군다나 그녀의 상대역인 허염(송재희)이 잘 생기긴 했으나 '미소년' 형은 아닌지라 허염에게 집착하는 민화공주의 애교가 겉도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송재희 타입의 '미남'에게 홀딱 빠진 역을 하자면 '스타'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해맑은 사생팬 연기도 좋지만 약간의 존경을 담은 눈빛을 연기했으면 어떨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귀여움을 받고 자라 자기 밖에 모르는 철없는 공주 역으론 괜찮았죠.

냉정히 뿌리치는 허염 때문에 통곡하는 민화공주.

그런데 어느 순간 남보라는 그런 공주의 마음 한켠에 자신을 사랑으로 대해주는 시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숨겨져 있고 남편이 모든 걸 알게 될까 두려워 시름하는 고민이 담겨 있음을 표현합니다. 특히 모든 걸 알게 된 오빠가 죄를 추궁하자 '후회는 없다'며 눈물을 쏟아냅니다. 그동안은 누가 알까봐 표현하지 못했던 무서운 마음이 한꺼번에 폭발하고 맙니다. 어제는 허염까지 진실을 알게 되고 민화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자신의 죄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됩니다. 끝없이 울며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통곡하는 남보라의 연기가 많이 성장했다는 걸 알겠더군요.

누군가는 연기 수업을 할 때 제일 먼저 연습시키는 것이 우는 연기라며 어쩌면 '눈물 연기'가 가장 쉽지 않냐고 하지만 몇몇 배우들의 경우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같습니다.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사람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도록 연기했다면 그 눈물연기는 성공한 것입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역할을 맡을 지 모르겠지만 일단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에서 눈도장을 찍었으니 캐릭터를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죽음 보다 슬펐던 무녀 잔실의 눈물

극중 잔실(배누리)은 등장장면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국무 녹영의 진짜 신딸이자 어릴 때부터 신기 때문에 고생했던 잔실은 무슨 일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알아냅니다. 신기를 감당할 수 없어 자신도 모르는새 실언을 하기도 합니다. 또 양명(정일우)의 마음에 빙의되어 양명의 진심을 쏟아낼 땐 정말 신들린듯 눈빛이 불안해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등장시간은 짧지만 등장했다 하면 제 역할은 하고 사라지는 배역이었습니다. 입이 무거운 녹영에 비해 자신을 제어할 수 없다는 단점 때문에 많은 비밀을 폭로하기도 하는 역할입니다. 설(윤승아)이 허염을 지키다 목숨을 잃자 국무가 잠에서 깨어나고 잔실도 홀로 울고 있습니다.

양명군에게 빙의된 잔실, 설의 죽음을 알고 울부짖는 잔실.

국무는 아픈 가슴을 짓누르며 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깨닫습니다. '설이 언니야가 죽었나봐'라며 우는 잔실은 정말이지 설의 죽음 보다 더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영혼을 볼 수 있는 무녀 잔실이 어쩌면 그리 서럽게 우는지 그녀의 신기 때문에 눈이 내리는 건지 설의 영혼이 그녀들 옆으로 다가온 것인 알 수 없는 장면이 연출되었죠. 한 캐릭터의 죽음은 슬프지만 그 자체로는 큰 감동을 연출하기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 주변 인물들의 눈물이나 서글픈 반응이 더욱 짠한 마음이 들게 만들기도 합니다. 잔실은 그 역할을 해냈고 어제 방영분에서 가장 슬픈 장면을 연기해낸 듯합니다.



중전, 그 무서운 처녀귀신의 원한

원래 궁에서는 왕족이 아닌 이상 죽을 수가 없습니다. 원작 '해품달'에서 무생물처럼 없는 사람 취급을 당했던 중전 보경이 아버지의 반란과 함께 자결한 것은 중전의 마지막 품위를 지킨 셈입니다. 민간의 이야기로 보면 왕의 아내로 죽긴 했으나 처녀귀신인 셈입니다. 사람 마다 의견이 좀 다르지만 무속신앙에서는 '잡신'이라 불릴 수 있는 처녀귀신, 몽달귀신, 동자귀신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왕신 즉 처녀귀랍니다. 윤보경이 허연우를 저주하기 위해 예전 국무 권씨를 불러들여 스스로 제물로 나서는 모습은 '처녀귀신의 원한'이 떠오르게 하더군요.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여자의 원한을 표현하면서도 하늘이 두려워 벌벌 떠는 김민서의 연기는 아주 적절했습니다.

허연우에게 흑주술을 시도했으나 겁을 먹고 공포에 시달리는 윤보경.

윤대형도 자신을 버리고 남편 이훤은 요지부동이니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허연우를 죽이겠다는 그녀의 집착은 불타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흑주술이 국무 장녹영에게 저지되고 녹영에게 빙의된 권씨가 오히려 자신의 죄를 열거하자 공포에 질려 벌벌 떨기만 합니다. 몸이 떨려 어쩔 줄 모르는 보경이 오히려 불쌍해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이훤을 너무나 사랑해 자신의 자리가 아닌 줄 알면서 탐을 내고 허연우의 죽음까지 방조한 그녀의 악행이 스스로를 옥죄게 한 것입니다. 한에 사무쳤던 마음과 연우를 죽이고 싶었던 마음이 오히려 비수가 되어 보경에게 되돌아왔습니다.

김민서의 연기는 끝까지 이훤의 아내로서 죽고 싶은 보경의 '자결'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줍니다. 혹은 공포에 질려 그대로 미쳐버릴 수도 있겠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며 이훤을 위해 마지막 희생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이 캐릭터는 납득이 갑니다. 등장한 인물들 중에는 가장 심리 표현이 잘되고 자연스러운 캐릭터 중 하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왕대비와 대비 앞에서는 착하게 이훤 앞에서는 부드럽고 온화하게, 그 누구 보다 모질고 독한 마음으로 훤을 차지하고자 했던 보경. 김민서는 이번 드라마로 가장 덕을 본 배우가 될 것같습니다.



무리한 언론플레이는 판정패의 지름길

마지막회를 앞둔 해품달은 여러모로 관심의 중심에 있습니다. MBC 파업으로 한주간 결방했던 까닭에 연출이 부자연스러워진 것 아니냔 지적도 있었고 여전히 몇몇 연기자는 연기력 논란에 시달립니다. 집중해서 TV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TV를 그냥 켜놓기만 하는 시청자들도 많기에 '어색하다'는 지적을 무시할 수만은 없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TV를 켰다가 연기 때문에 시선이 간다는 건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반대로 무심히 보다가 연기 때문에 인상이 찌푸려진다면 연기자의 문제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몇몇 기자들이 '연기 극찬'이라던가 '신들린 연기'같은 칭찬 기사를 쏟아내면 시청자는 반발합니다.

연기력 논란이 언론 보도로 덮어질 수 있을까? 소속 기획사에서는 그런 칭찬 기사가 연기자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닐까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어차피 연기자 생활은 장기전이고 연기 수업도 장기전인데 시청자의 질타를 받은 지금이야 말로 진정한 성장의 기회가 아닐까요. 아역연기자들이 너무 훌륭해 그 뒤를 이은 신인 연기자들이 고생했다는 의견에는 동감하지만 화려한 시작에도 불구하고 '건진' 배우는 몇 없다는 점은 아깝습니다. 인기에 비하면 혹평을 받은 배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중견연기자들의 연기가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이 정도 성공은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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