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무신(武神)

무신(武神), 항복이냐 옥쇄냐 추하지 않은 무인의 최후를 위해

Shain 2012. 4. 23.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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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에는 정노군이란 쇠뇌 부대가 있었습니다. 고려의 군대 조직 중 별무반은 승려 출신의 항마군, 노예로 구성된 연호군, 그리고 기병으로 구성된 신기군, 보병부대인 신보군, 일종의 돌격 부대인 도탕군, 활을 쏘는 경궁군, 화공을 이용하는 발화군, 쇠뇌 부대인 정노군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쇠뇌는 흔히 알고 있는 '석궁'과 모양이 유사한 활로 평범한 활 보다 멀리 날아가는데다 빠르고 정확하고 살상력이 강한 무기였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삼국 시대부터 사용한 기록이 있으며 이 쇠뇌를 개량한 고구려의 '포차'나 '노포' 또는 신라의 '천보노'같은 것들이 전쟁에 이용되곤 했다고 합니다.

옥쇄(玉碎)는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뜻으로 크고 올바른 일을 위해 명예를 지켜 목숨을 바친다는 말입니다. 드라마 '무신(武神)'의 주인공 김준(김주혁)이 목격한 철주성의 죽음을 그들은 '옥쇄'라고 표현합니다. 고려를 위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항전한 장수들. 이원정(김주영)과 이희적(최덕문)을 비롯한 부장들은 단 하루라도 더 버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그들의 가족들과 이희적의 아내(최수린)는 이리 죽는 것도 영광이라며 스스로 사지로 걸어들어갑니다. 원망스런 마음 한번 비치지 못하고 타죽어가는 가족을 보며 자신의 최후까지 예감하는 슬픈 장수의 운명. 이런 것이 옥쇄인가 봅니다.

김준이 목격한 철주성 전투. 그들은 모두 옥쇄한다.

드라마의 주인공 김준이 '1차 여몽전쟁(1231)'에서 맡은 역할은 전쟁의 참상을 목격하고 전하는 것입니다. 고려 최고의 권력자 최우(정보석)에게 미움받아 멀리 북방으로 떠나온 중군장 김준은 몽고에 대한 정보를 박송비(김영필) 장군에게 전달해주고 있었습니다. 몽고 대원수 살리타이(撒禮塔, 배우 이동신), 부원수 탕꾸(唐古, 윤동환), 푸타우(蒲桃, 조상구)가 이끄는 몽고군은 조숙창(여호민)이 지키던 함신진과 이원정, 이희적이 방어하던 철주를 차례로 함락시키고 박서(문태원)과 김경손(김철기)이 있는 귀주를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막강한 몽고 부대로 단숨에 개경까지 밀고 내려가리라 생각했던 살리타이는 완강하고 거센 고려인들의 저항에 당황하고 맙니다. 무기까지 바닥이 나고 던질 수 있는 돌도 없어 항복하고 만 조숙창의 함신진. 죽어가면서까지 절대 항복하지 말라 소리치던 문대(전노민)의 애원. 몽고가 밤낮으로 공격해도 쇠뇌와 불화살을 난사하며 포기하지 않던 철주성의 백성들 때문에 그들은 고려가 절대 쉽지 않은 나라임을 알게 됩니다. 비록 최우의 무신 정권이 많은 면에서 비난받는 이익집단이었더라도 고려를 위해 희생하는 그들이 있기에 외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숙창과 문대, 추하지 않은 무신의 최후란?

최우의 눈에는 김약선(이주현)이 문신 출신의 한계가 보이는 인물로 묘사됩니다. 집권자라면 모자란 아랫 사람을 독하게 재촉하고 일을 성사시키는 면모가 있어야 하는데 우유부단하다 싶을 정도로 이해심이 많은 약선이 최우는 불만인 듯합니다. 사서에서도 그리 긍정적으로 묘사되지 않는 상장군 대집성(노영국)은 자신의 사위를 군조직에 끌어들이고 어영부영 군내 총지휘권을 두고 불만이나 터트리며 북방으로 지원군을 꾸려갈 자신의 책임은 등한시하고 있습니다. 철주와 귀주의 백성들이 성을 사수하느냐 죽어가는데 쓸데없이 여유로운 그로 인해 최우는 속이 타들어갑니다.

물론 김약선이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무신정권의 단점을 정확히 보고 있습니다. 최대한 전쟁을 피하자는 민희(정규수)와 정안(이경영), 이규보(천호진) 같은 문신들의 의견을 무신들은 무조건 배제하고 있습니다. 몇년동안 흉년이 들어 굶주리고 허약해진 백성이 기세등등한 몽고군과 맞서 승리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철주성과 귀주성 싸움에서 대패하리란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왕을 대신해 권력을 장악한 무신들은 고종(이승효)을 대신해 권력을 장악한 것까진 좋으나 백성들의 원망을 알지 못합니다. 권력에 대한 균형감각 보다 의욕이 앞서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고종과 최우는 몽고의 침략으로 전전긍긍하지만 지원군은 계속 늦는다.

왕을 압박하는 주숙(정선일)같은 신하들로 인해 고종은 자신이 여몽전쟁에 그 어떤 의견도 피력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굶주리고 방황하는 백성들이 안타까워 무언가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흥왕사에 가서 불사를 드리는 일 뿐입니다. 무력한 왕의 심정이야 말로 근본부터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는 김약선이나 이장용(이석준)의 심정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저 드센 몽고에 맞서려면 어느 만큼의 저항이 필요하며 어느 만큼의 굴욕을 감당해야할 것인가. 몽고가 쳐들어왔는데도 한달동안 지원군을 보내지 못하는 고려는 심각할 만큼 피폐해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런 무신들이 몽고군들에 고려의 저력을 보여준 당사자들이란 점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40여년이 넘는 여몽전쟁 동안 많은 영웅들이 몽고에 대항하며 무신으로서의 기개를 선보였습니다. 다음주에 묘사될 박서 장군의 귀주성 전투와 김경손의 12인 결사대는 소수의 병력으로 몽고에 저항한 대표적인 예로 무려 4개월 동안 즉 고려와 몽고가 강화를 맺을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함신진, 철주, 귀주 순으로 개경에 진입하려던 몽고군은 귀주성은 결국 함락시키지 못했고 강화 조약 이후에야 박서를 만나게 됩니다. 자주성의 최춘명(극중 임종윤) 역시 강화를 거부합니다.

대조적인 선택을 한 낭장 문대와 장군 주숙창.

반면 함신진에서 패전하고 몽고군의 앞잡이로 각 성에 항복을 권유하던 주숙창같은 인물도 있었습니다. 문대가 죽어갈 때 철주성 부장들에게 항복하라 권하던 주숙창은 1차 여몽전쟁 이후 대장군까지 승진하여 대표적인 친몽고군 인물로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많은 장군들과 대조적인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목숨을 잃는다는 공포 앞에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무신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옥쇄한 장수들과 달리 변절자로 최후를 맞는(주숙창은 1234년 반란에 연루되어 참수당함) 모습은 보는 사람들을 씁쓸하게 만듭니다.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처럼 굴욕을 참고 사는 것이 낫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이원정과 이희적은 가족이 몽고군의 노리개가 되는 것 보다 차라리 내 손으로 죽이는 것이 낫다고 했고 이원정은 무인이란 마지막을 추하지 않게 해야한다는 말로 의연하게 최후의 결전을 준비합니다. 식량도 떨어지고 무기도 떨어진 그들을 마지막까지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일까요. 그들의 신념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보는 사람들을 뭉클하게 합니다. 여몽전쟁 동안 조숙창같은 무장도 다수 등장했지만 이원정같은 영웅도 다수 있었던게 사실이지요.

마지막이 추하지 않아야 한다는 무장 이원정과 이희적. 그들의 웃음.

김준은 처연한 문대의 죽음과 식솔들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몽고군의 남하를 막아내는 이원정과 이희적을 보며 진정한 무신이란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됩니다. 아름다운 최후를 위해 살리타이 앞으로 말을 달리는 이원정의 모습. 진정한 무신이란 지켜야할 것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존재가 아닐까요. 훌륭하고 존경할 만한 무인들이 있기에 고려에 희망을 걸 수 있다는 김준의 대사가 인상적입니다. 요즘같은 시대에 '목숨을 건다'는 비장함이 쉽게 느껴지지는 않겠지만 죽음을 앞두고 호탕하게 웃는 장수의 너털 웃음이야 말로 '남성 사극'의 진정한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주 방영분에서는 쇠뇌 부대를 비롯한 전투방식을 사서대로 자세히 묘사한 것에 꽤 놀랐습니다. 몽고군의 공격 무기도 참고자료를 잘 재현했더군요. 그리고 전노민, 최수린, 김주영, 최덕문 같은 명품 조연들의 연기도 너무나 인상적이었구요. 역시 이환경 작가의 사극은 조연 활용이 환상적입니다. 특이한 것은 탕꾸 역이 지난번 살리타이가 등장할 때는 배우 정은찬이었는데 이번에 윤동환으로 바뀐 것 같더군요. 살리타이가 죽고 몽고 대원수가 되어 다시 고려를 침략하는 인물이 탕꾸입니다. 참고로 최씨가문의 정예병들은 이 시기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게 정설이랍니다.

몽고군의 장수인 살리타이, 탕꾸, 푸타우. 철주성 방어에 이용된 쇠뇌.

* 몽고는 본래 중국에서 몽골(Mongol)을 몽고(蒙古)라고 한자 표기한 것에서 기원한 명칭으로 현대어로는 '몽골'내지는 '몽골리아'가 바른 명칭일 것입니다. 극중에서는 고려시대니 당연히 '몽고'라고 쓴 것이지만 공식적으론 비하적인 뜻을 담은 '몽고'보다는 '몽골'이 낫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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