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넝쿨째 굴러온 당신

넝쿨째굴러온당신, 털털한 소녀 방이숙과 엉성한 마초 천재용의 매력

Shain 2012. 4. 2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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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와 다른 한국 드라마의 재미는 살다 보면 겪을 수 있는 익숙한 장면들을 종종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등장인물이나 드라마 속 상황이 과장되어 있고 또 일정한 주제에 맞춰 편집되어 있긴 해도 한편으론 시청자들에게도 친숙한 삶의 단편들이죠. 주말극 '넝쿨째 굴러온 당신'이 인기를 끄는 건 그 시간대에 경쟁작이 없어서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론 누구에게나 익숙한 '시집살이'란 주제를 코믹하게 잘 버무린 까닭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시월드'라는 극단적인 용어까지 써가며 시집살이에 치를 떠는 며느리들도 있는가 하면 되려 내가 '며느리살이'를 한다며 불만을 가진 시어머니들이 공존하고 있죠.

드라마는 며느리나 시어머니 둘 중 한쪽을 '선(善)'으로 그리지도 않고 또 '악(惡)'으로 묘사하지도 않습니다. 세대차이, 입장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하며 선의로 시작된 일일지라도 어느 한쪽이 서운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잘 표현되고 있다고 봅니다. 싸워서라도 얻어낼 건 얻어내고 아부할 땐 간도 다 빼주고 그렇게 치이다 보니 결혼도 늦고 손해보고 살기 싫어하는 성격이 된 열혈 PD 차윤희(김남주)와 시어머니 중심으로 살며 조금 손해 보더라도 둥글게 살라고 배운 대가족 중심의 엄청애(윤여정)는 처음부터 못된 사람들은 아닙니다.

비싼 화장품 주고 한소리 듣고 걱정되는 마음에 잔소리하다 서운해지고.

반면 어린 시절 미아가 되어 미국으로 입양된 방귀남(유준상)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긴 자신 만의 가족, 아내를 몹시 사랑하고 뒤늦게 찾게된 부모와 가족들을 사랑하지만 자신들의 독립적인 삶을 깨트리려 하진 않습니다. 매너좋고 사람좋으면서도 옳고 그른 것을 딱딱 구분해내는 방귀남은 많은 여성들의 호감을 받고 있다고 하죠. 극중에 등장하는 다른 타입의 남자들 즉 조강지처 보기를 돌같이 하는 방정훈(송금식)이나 형님네 사무실 가리지 않고 주변 살림은 다 집어가는 방정배(김상호), 진상 중의 진상 남남구(김형범)에 비해 방귀남은 '완벽한 남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외에도 약간은 맹한 첫째딸 일숙(양정아)이 좋아하는 허세남 윤빈(김원준)이나 자기 밖에 모르는 못된 말숙(오연서)에게 친구의 복수를 해주겠다며 접근하는 차세광(강민혁), 그리고 하는 사업마다 말아먹으면서 동생의 전세금까지 빼가는 차세중(김용희) 등 드라마 속에는 꽤 많은 '부족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방귀남이 워낙 완벽한 남편 역할을 해서 그렇지 이렇게 서로서로 못났으면서도 아웅다웅 부부가 되는 것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삶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알고 보면 여성적인 방이숙, 알고 보면 배려하는 남자 천재용

이 드라마를 처음 봤을 때 가장 눈여겨보았던 배역 중 하나가 방이숙(조윤희)입니다. 영악스럽게 자기 이익을 찾아먹다 못해 못된 짓까지 서슴치 않는 막내딸이나 순한 한 집안의 장녀로 남자 보는 눈이 없어 이혼까지 하는 큰딸 일숙과도 달리 이숙은 결혼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는 딸로 남자같은 짧은 머리에 터프한 목소리 그리고 외모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털털함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자매끼리 자라다 보면 예쁜 것을 공유하고 복장에 신경쓰는 경향이 생기기 마련인데 방이숙은 그런 것과 전혀 거리가 멀었죠,

둘째 이숙에게는 할머니 전막례(강부자)로 인해 생긴 남모를 상처가 하나 있습니다. 자신이 태어났기 때문에 오빠 방귀남을 잃어버렸다는 사실 말입니다. 아들 아들 하며 귀남 밖에 모르는 막례가 대놓고 이숙을 구박하는 건 아니라도 생일상 한번 차리지 못하게 유난을 떠니 내심 마음이 불편할 수 밖에 없으리란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숙은 결혼하지 않고 엄마랑 같이 살겠다며 여자의 삶을 포기한 듯 이야기합니다. 딸만 낳은 집에서 흔히 하나씩 있는 그런 딸의 모습이라 어쩐지 그냥 보아넘길 수가 없더군요.

여자들끼리 자랐는데도 전혀 여성스럽지 않은 방이숙.

여자는 무조건 '여자다운' 성격을 가져야하는 것도 아니고 또 소위 '남성적인' 특징을 갖고 태어나는 여자들도 있겠지만 이숙같이 '아들'을 귀히 여기는 환경에서 남성적으로 행동하는 건 일종의 방어 행동입니다. 나 때문에 오빠를 잃었으니 내가 아들 노릇을 해야한다는 마음, 내가 아들이었으면 좋았을 걸 싶은 마음에 여성스러움을 거부하기도 합니다. 원래 털털한 성격일 수도 있겠지만 딸만 있는 집에서 그렇게 행동하는 딸은 보통 남성의 특징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 모델을 언니나 여동생, 엄마가 아닌 아빠나 남자로 삼았다는 건 유별난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반면 첫눈에 보면 재수없는 남자 천재용(이희준)은 딱 보기에도 '마초'입니다. 남자다움을 과시하다 못해 아무대나 간섭을 해대니 이건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할 지경입니다. 혼자 찜질방에 가서 노닥노닥거리다 반바지 입고 찜질방에서 자는 여자가 보기 싫다며 깨워서 집에 가라 할 정도면 이건 재수없는 정도가 아니라 '진상'입니다. '어디 여자가'라는 말을 한마디씩 툭툭 던질 땐 한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얄밉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과외 선생이었던 연상의 누나에게도 능글능글 '첫사랑'이라고 하는게 딱 까까머리 남학생 같습니다.

이숙의 입사 조건으로 '절대복종'을 내세운 이 엉성한 남자.

그런데 그런 천재용에게도 숨겨진 부드러움이 있습니다. 시청률 때문에 스폰서를 잡지 못해 애걸복걸하는 차윤희를 놀려먹다가도 은근슬쩍 광고를 떼어주는가 하면 전화온 어머니한테 아버지를 '남편분'이라고 부르며 '사랑해'라고 이야기하는 귀여운 아들이기도 합니다. 이숙 때문에 차가 망가져 수리비를 달라고 압박하다가도 이숙의 회사가 부도나 월급도 못받는 처지라는 걸 알게 되곤 이숙이 만든 테이블을 돈대신 가져가기도 합니다. 하이힐을 처음 신는 이숙에게 밴드를 붙여주고 신지 말라 잔소리까지 하는 그는 알고 보면 꽤 괜찮은 구석이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귀여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누가 들어도 '경상도' 출신임을 한귀에 알아볼 수 있는 천재용의 말투, 원래 어릴 때부터 대구나 부산 쪽에서 말을 배운 사람들은 말씨가 거의 바뀌지 않습니다. 서울사투리를 아무리 흉내내도 특유의 억양 때문에 경상도 출신임을 알아볼 수 있다는 거죠. 때로는 그런 말투 때문에 놀림을 당하거나 인상에 좋지 않다고 일부러 교정하려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면접을 보러온 이숙에게 천재용은 자신이 완벽한 서울말을 쓴다고 우길 땐 웃기다 못해 귀여움이 뚝뚝 떨어지더군요.

자주 충돌하지만 아무리 봐도 귀여운 이 커플.

방이숙은 남자를 사귀어 본적이 없습니다. 천재용 역시 어린 시절 과외선생에게 '첫사랑' 운운하는 걸 보니 제대로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 타입입니다. 겉보기에는 선머슴 여자와 마초 남자가 터프하게 부딪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둘 모두 남성스럽냐 여성스럽냐를 떠나 아직까지 자신의 껍질을 벗지 못한 사람들이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어떤 매력을 가졌는지 잘 모르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구요. 아직은 소녀같은 속내를 벗지 못해 올케 언니의 불륜을 의심하는 이숙이나 청순가련 이상형을 찾는 소년같은 재용이나 똑같이 '초짜'들이란 말이죠.

솔직히 첫째딸 일숙이 허술한 남자들에게 끌리는 모습도 별로고 어리석은 셋째딸이 헛똑똑이처럼 구는 것도 보기 싫어서 그런지 순진한 둘째딸 커플에게 눈길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이숙이 술마시는 모습을 보며 귀엽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혼자 택시 태워 보내기가 불안하니 핸드폰으로 택시까지 촬영하는 이 남자. 결국엔 그걸로도 안심이 안되어 출근 9시까지 하라며 잘 도착했는지 확인하는 재용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제일 유쾌하고 흥미로운 커플이 될 것같은 생각에 보기만 해도 흐뭇하네요. 두 사람은 어떤 부부가 될지 그것도 궁금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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