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무신(武神)

무신(武神), 아내에게 죽은 김약선 충렬왕의 외조부가 되다

Shain 2012. 6. 2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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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처럼 부계의 성(姓)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풍습이 있으면 사위가 한 집안의 후계자가 되긴 힘듭니다. 권력자들은 장남에게 자신의 지위와 사람들을 상속하고 평범한 집안에서도 대개 장남에게 제사와 재산을 물려준 뒤 집안일에 대한 전권을 위임하곤 합니다. 외국에서는 데릴사위가 들어와 자녀를 낳으면 그 자녀가 어머니와 아버지의 성을 각각 물려받기도 하고 또 아예 사위의 성까지 바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사위를 통한 '대잇기'가 가능한 것이죠. 우리 나라의 경우도 최근 법이 바뀌어 모계 계승이 가능해지긴 했으나 아직까지 흔한 경우는 아닌 듯합니다.

고려시대까지는 자녀가 어머니의 성을 물려받기도 하고 사위양자(婿養子) 제도를 통해 대를 잇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드라마 '천추태후(2009)'에 등장한 황보수 자매들은 왕건의 후손들임에도 외가쪽 성인 '황보'씨를 물려받습니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솔서(率壻)제도로 데릴사위를 들이는 경우는 있어도 딸은 성을 상속할 수 없게 됩니다. 드라마 '무신(武神)'에서는 무신정권의 최장기 집권자인 최우(정보석)가 시원찮은 서자들 만전(백도빈)과 만종(김혁)을 멀리 보내고 점잖고 똑똑한 사위 김약선(이주현)에게 교정별감 자리를 주며 후계를 도모하는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송이의 고로 죽는 김약선 경주 김씨 집안과 최우의 결속은 그렇게 깨어진다.


아무리 고려 시대가 딸의 상속권을 인정하던 시대였다지만 자신의 양자로 들이지도 않은 사위 김약선(이주현)에게 권력을 물려준다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이라 최우에게 또다른 속셈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보게 합니다. 최우의 딸로 등장하는 극중 송이(김규리)의 외가쪽 가족이 정숙첨(정욱), 정안(이경영)입니다. 최우의 권력은 절대권력인듯 하지만 아무리 그의 권력이 막강하다 해도 고려는 '황제'가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최우는 왕실을 지지하는 세력과 기득권들 모두의 비위를 맞춰줄 필요가 있습니다. 극중 이장용(이석준)같은 사람들이 왕권 부활을 꿈꾸는 무리들로 등장합니다.

김약선은 대표적 문신으로 최우와는 성향이 다른 인물임을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김약선은 왕의 사돈이 될만큼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고 그의 동생 김경손(김철기)은 덕망있는 고려의 장수입니다. 사위면서도 경계해야할 세력인 것입니다. 또 최우가 민희(정규수), 이규보(천호진)를 비롯한 많은 문신들을 등용한 정치적인 인물이라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의 피를 이은 만전을 더욱 아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두 사람이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사이였다는 것은 아마도 맞는 듯 합니다. 최우는 권력 문제를 고려해 데릴사위를 들이고 짐짓 김약선을 받아들이는 듯 했지만 바람을 피웠다는 사소한 핑계로 제거해버린 것은 아닐까요.



최항이 끝까지 제거할 수 없었던 김약선의 세력

최우가 만전을 내심 후계자로 생각하면서도 권력관계의 눈치를 보느냐 김약선을 사위로 들인 것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망나니'로 기록된 아들에게 갑작스럽게 권력을 주었다니 그만큼 후계 문제로 다급했다는 뜻같기도 하고 왕의 사돈인 김약선을 죽여야할 만큼 분노가 치밀었다는 뜻인 것도 같습니다. 아무리 딸의 무고 때문이라지만 최우 본인도 여러 명의 처첩을 거느린 권력자인데 사위가 종들과 바람을 피웠다고 죽였다는 건 분명 의심쩍은 부분이 있습니다. 아니면 바람기 있는 좋은 집안 출신의 사위와 망나니 아들 중에 아들에게 더 정이 마음이 쏠렸다는 뜻이겠죠.

극중 김약선이 경주 김씨임을 내세우며 친분을 도모하고 술자리를 갖는 장면을 보셨을 것입니다. 신라의 왕족 출신인 경주 김씨는 고려시대에도 그 세력이 강했습니다. 고려의 왕실은 경주 김씨들과 자주 혼사를 맺었으며 우리가 잘 아는 '삼국사기'의 김부식이나 또 김경손과 비슷한 시기에 활약한 장수 김방경도 경주 김씨입니다(김부식은 무신정권과 원한이 깊은 사이였죠). 극중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김약선에게는 평장사까지 지낸 김기손이라는 동생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약선, 기손, 경손 이 삼형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최우의 딸과 김약선의 혼인은 다분히 정략적이지 않나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최우는 손자 김미에게 권력을 주고 싶었던 것 같지 않다.


이 드라마는 고려 중기 무신들의 야망과 여몽항쟁의 치열함을 그린 남성적인 드라마이지만 홍일점 송이가 유일하게 여성 권력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남성들 간의 권력싸움에 끼어들다 보니 모든 것을 다 가진 송이의 역할은 사랑을 위해 남편을 희생시키는 '악녀'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주김씨와 최씨 무신정권의 정략적 결합은 그녀의 욕심 때문에 깨어졌고 그로 인해 승려 출신 서자 만전이 권력을 얻습니다. 극중에서 송이의 김준(김주혁)에 대한 사랑은 단순히 불륜이 아니라 권력층들 간의 결속을 깬 파격적인 사건인 셈입니다.

하루 아침에 권력자가 된 최항이 최우의 아내인 대씨부인(김유미)을 내치고 김경손, 정안, 주숙(정선일), 박훤, 오승적(배진섭) 등을 모두 살해한 이유는 자신을 밀어내려했던 그들에 대한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기도 합니다만 그들을 숙청하지 않고서는 아버지 만큼 강한 권력을 가진 권력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최항이 죽인 그들이 바로 최우와 정략적으로 혼사를 맺었던 그들이고 김약선의 아들인 김미를 지지하며 최항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은 인물들이니 한편이 되지 못한다면 제거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충렬왕의 아버지 원종은 원나라에 의지해 무신정권을 제거한다.


그러나 아무리 최항이 안하무인이라도 왕의 위엄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김약선의 아들이고, 고종(이승효)의 사돈이자 태자의 처남인 김미는 그를 견제하려는 최우로 인해 여러 차례 귀양을 갔고 그 측근 세력들이 몰살당하긴 했으나 최항에게 죽임을 당한 것같진 않습니다. 권력을 움켜쥐려고 해도 날개를 꺾인 채 유배지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나 싶습니다. 아무리 걸림돌을 모두 제거하려 해도 최항이 김약선 세력의 뿌리를 뽑는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김약선의 딸이 낳은 아들은 고려 원종의 장자로 후에 충렬왕이 됩니다. 원종은 최우 정권의 눈치만 보던 아버지 고종과는 달리 다소 적극적으로 무신 정권의 퇴출을 주도한 인물이고 임연을 부추켜 김준을 살해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극중에서 김약선을 죽이지 말아달라 최우에게 무릎꿇고 애원하며 또 복수를 다짐해 이를 바득바득갈던 원종 부부의 한 때문인지 최우, 최항, 최의로 이어진 최씨 무신정권은 그렇게 끝을 맺었지만 원종은 결국 원나라에 의지해 왕권을 되찾게 됩니다. 김약선의 손자인 충렬왕은 덕분에 몽고 왕실의 사위가 되지요.

드라마 속에서 김약선은 김준 때문에 죽었지만 결국 왕의 외조부로 남은 것은 김약선.


지난주 방영분에서 탕꾸(윤동환)와 푸타우(조상구)가 본국으로 물러갔고 드디어 제 3차 여몽전쟁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총 아홉 차례에 걸쳐 몽고군이 고려를 침입하는 동안 백성들은 고통받았지만 무신정권의 권력 싸움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권력 문제에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대몽항쟁에만 관심을 쏟았으면 좋으련만 왕실과 무신정권 그리고 기존 문신 권력들은 끝없이 갈등하고 그들의 치부를 드러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김약선이 죽고 김경손같은 국민 영웅이 희생되는 비극이 일어난 것이구요. 충렬왕은 왕위에 등극하고 나서 김경손 장군의 아들 즉 자신의 외가쪽 당숙이 되는 김혼을 상당히 대접했다고 합니다.

극중 최항이 천한 기생의 아들로 권력자들에게 무시받는 것을 보셨을텐데요. 최항의 권력을 이어받은 최의 역시 최항이 승려로 있던 시절 기생에게서 얻은 아들로 김약선이나 김미같은 인물 보다 당연히 지지 세력이 미미했던 듯합니다. 무신정권의 최후를 마무리한 김준과 임연 역시 마찬가지였던 것같구요. 피가 튀는 권력싸움 과정에서 김약선의 사위 원종이 왕권을 얻고 모함으로 죽은 김약선은 충렬왕의 외조부로 기록된 반면 최항, 최의, 김준과 같은 인물들은 후계 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채 죽었으니 어찌 보면 최후의 승자는 김약선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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