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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탈, 아버지의 친일로 자살한 이해석 실존인물일까?

Shain 2012. 8. 24.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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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에 누군가 댓글로 달아주신 것처럼 드라마 '각시탈'의 인물 고증은 정말 '깨알'같습니다. 김구 선생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드라마 캐릭터의 이름을 백범의 호와 백산 안희제의 호를 따 '양백'이라 작명하는가 하면 보림재님의 글대로 여운형 선생의 이름은 '동진'으로 작명하는 등 '각시탈'의 유현미 작가는 자료 조사에 꽤 많은 공을 기울인 것같습니다. 덕분에 실제 역사 속 백범과 몽양의 만남은 남북 분단과 함께 엇갈림을 거듭했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가상의 수퍼히어로 '각시탈'과 함께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거사를 도모할 수 있었던 것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이강토(주원)가 변장한 각시탈은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강토를 증오의 눈빛으로 노려보게 된 일본인 기무라 슌지(박기웅)도 창작된 인물입니다. 그들이 가던 엔젤 클럽이나 여러 환경은 시대고증이 맞지 않죠. 그러나 그들의 주변 사람들이나 각시탈과 담사리(전노민) 등이 함께 하는 여러 항일운동엔 모티브가 된 실존인물들이 있습니다. 실존 인물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유사한 일이 과거에 있었다는 말이죠. 그 대표적인 캐릭터가 우에노 리에(한채아)입니다.

백범과 몽양이 함께 하는 모습은 드라마 속이라도 기쁜 일이다.


각시탈의 연인 목단(진세연)이 민폐캐릭터란 이유로 시청자들에게 눈총받으면서 상대적으로 우에노 리에 즉 채홍주의 캐릭터는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그녀의 모델이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이자 스파이 노릇을 했던 희대의 악녀 배정자 즉 다야마 사다코라는 사실이 잘 와닿지 않는 모양입니다. 아전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민씨 정권에 처형당하자 관기가 되었지만 후에 일본으로 도망쳐 이토 히로부미의 양녀가 되고 특수경찰에게 각종 스파이 훈련을 받습니다.

조선에 돌아온 후에는 통역 명목으로 고종에게 접근하여 각종 고급 정보를 빼내고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 초대 통감부 통감으로 되자 동생과 오빠까지 동원해 '흑치마'라는 별명의 권력자 행세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기 위해 파견되기도 하고 조선총독부 경무국 공무원으로 일하는 등 영원한 일본의 충견 노릇을 합니다. 1927년 은퇴하고 난 후에도 총독부의 월급을 받았다고 하죠. 허나 배정자의 악행 중 최고는 누가 뭐래도 태평양 전쟁에 위안부를 조직해 직접 끌고간 일입니다.

채홍주의 실존모델 배정자는 가엽지도 않고 용서받을 수도 없는 일본의 충견이다.


일본 민간업자의 부탁을 받고 많은 돈을 받은 일흔살의 배정자가 '군인위문대'라는 정신대 조직을 직접 주도한 사실은 아직까지도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아무 책임이 없다는 발뺌에 이용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배정자는 일말의 동정이 필요치 않은 친일파입니다. 학교 정식허가를 조건으로 제자들을 정신대로 보낸 박순천이나 황신덕, 김활란같은 교육자들이나 학도병 모집을 위한 연설을 마다하지 않았던 각종 문인들은 시대의 부끄러움이자 수치입니다. 같은 시대에 윤봉길 의사를 내가 죽음으로 내몰았다며 사죄하던 김구 선생의 눈물과 대조되는 인물들이기도 하죠.

'각시탈'에 등장하는 이시용 백작(안석환)은 1928년 사망한 이지용 백작을 드라마 속으로 옮긴 인물입니다. 고종과는 오촌 사이이며 을사오적 중 하나입니다. 일제로부터 엄청난 '은사금'을 받고 조선인들 중 최고 부자라는 소리까지 들었지만 불행한 최후를 맞은 친일파입니다. 그에게는 극중에 등장한 이화경(김정난)같은 화려한 아내가 하나 있었는데 그 이름이 이홍경(이옥경)이었습니다. 아들은 이해석(최대훈)과 이름이 비슷한 이해충이란 외동 아들도 하나 있었지만 1923년 아버지 이지용 보다 먼저 죽고 말았습니다.



유학생들에게 입학을 거부당한 이해충

극중에 등장한 '은사공채' 또는 '은사금'이란 단어를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시 조선은 경제적으로 상황이 열악해 부유하게 사는 조선인들은 대부분 친일파라고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은사공채'란 일본이 조선인들을 회유할 목적으로 작위와 함께 지급한 일종의 공채로 극중 이시용의 모델이 된 이지용은 꽤 많은 금액의 은사공채를 받고 떵떵거리며 살던 백작이었습니다. '은사금'은 같은 목적으로 지급된 돈을 말합니다.

이 '은사공채' 또는 '은사금'은 강제합병 이후에 가장 많이 지급되었고 꽤 많은 양반들이 이 은사금과 작위를 거부하며 자결하거나 협박에 옥고를 치르다 죽었습니다. 친일관료들에게 지급된 은사금의 액수가 현대의 돈으로 몇천억쯤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죠. 드라마 속 이해석은 그런 아버지의 친일을 내심 부끄러워하며 엔젤 클럽에서 술이나 마시는 고등 룸펜입니다. 마음으로는 독립운동을 해야한다는 걸 아는데 아버지를 배신할 용기도 없고 그런 안락한 생활을 놓을 수도 없습니다.

이시용, 이화경의 실존모델인 이지용, 이홍경 부부(윗줄 세번째가 이지용, 아래 세번째가 이홍경)


극중 이해석의 새어머니로 묘사되는 이화경의 실존모델인 이홍경의 나이는 알 수 없습니다. 이홍경이 이지용의 아들인 이해충의 친어머니인지 여부도 알 수 없으나 뛰어난 미모의 이홍경은 일본어와 영어와 능했고 양장을 하고 백작 이지용과 팔짱을 끼고 돌아다닐 정도로 파격적인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드라마 속에서 묘사된 것과 거의 유사한 행적을 보여 친일단체인 한일부인회를 조직회해서 일제에 아부하기도 하고 황실에 아첨해 지탄받는 자신의 남편 이지용 백작의 지위를 복구해주기도 합니다.

드라마 초반에 이화경이 최명섭(권태원) 판사와 노닥거리다 조선총독부 부설병원장 우병준(김규철)과 어울리는 장면을 보셨을 겁니다. 그래도 명색이 '황족'의 아내인데 상당히 타락한 설정이라는 말들도 있었는데 실존인물 이홍경 역시 일본인들과 그런식으로 놀아나다 한때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합니다. 극중에서는 그래도 '조선인'들과 내연의 관계였지만 이홍경은 꽤 여러 일본인과 내연의 관계였다고 하는군요. 배우 김정난이 워낙 연기를 잘해 이화경이 혹시 첩보원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역할 자체는 뼈속까지 친일파였던 셈입니다.

'을사오적'이라 불리며 같은 조선백성들에게 비난받는 부모를 둔 심정?


이지용 백작과 백작부인 이홍경은 왕실의 종친으로 황실의 장례와 혼례같은 여러 행사에 참석합니다. 한때는 최고 부자였지만 칠가살에 해당되는 인물로 조선인들의 미움을 받았던 그들은 말년에는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습니다. 매달 일정액의 돈을 조선총독부로부터 지급받았지만 그 돈으로도 이지용 백작의 도박은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망가지다 못해 오죽하면 한때 백작 작위를 내놓는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각종 협박이나 모욕에 겁을 먹은 것인지 사람이 달라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말년에는 친일행적이 거의 없다고 하죠.

극중에서 은사공채 10만원을 독립자금으로 내어놓고 권총 자살하는 이해충은 보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합니다. 아버지의 친일 때문에 양심있는 아들이 죽음을 맞다니 비참한 심경이 듭니다. 타샤(지서윤)가 자기를 사랑하는 척 몰래 백작의 정보와 스케쥴을 빼간다는 걸 알면서도 도와준 그는 친일도 독립운동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지식인이었습니다. 차라리 그대로 살아서 독립운동에 투신하면 안되겠냐고 하지만 슌지에게는 조센진이라 불리고 조선인들에게는 왜놈앞잡이라 불리는 그의 처지는 고통 그 자체입니다.

때로는 치통 보다 아픈 그의 고통. 술이 물처럼 느껴진다.


이해석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 이해충의 삶은 그리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1923년 죽을 때까지 아들이 없었고 이지용이 양손자를 들여 대를 이었던 듯합니다. 다만 그가 일본과 조선 사이에서 방황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에피소드는 한가지 알려져 있는데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려던 이해충은 '타국에 있지만 역적의 아들과는 함께 학교에 다닐 수 없다'는 유학생들의 반발로 입학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지용이 직접 일본에 가 돈을 주며 유학생들을 달래려 했지만 '우리들은 비록 역적의 재물을 쓰지 않아도 이제까지 죽지 않았다'며 거부했다고 합니다.

극중 이시용 백작이 살해 위협에 시달리고 겁을 먹은 것처럼 여러 암살단이 이지용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 아들이 그런 아버지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대부분의 친일파들이 후대까지 떵떵거리고 살았던 것에 비해 일본에서 입학을 거부당한 이해충의 삶은 조금은 달랐을 거 같기도 합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그 사이에서 죽어간 것은 아닐까요. 아들이 죽고 난 후 떵떵거리며 살던 이지용의 삶도 그대로 무너져버렸습니다.

맞설 수 없는 고통에 죽음을 선택하는 이해석.


대부분의 친일파 후손들은 아직까지도 잘 산다고 합니다. 극중에서도 경성일보 사장의 아들 박성모(방중현)같은 친일파 후손이 우리가 흔히 아는 친일파의 모습입니다. 어찌 보면 타샤에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며 무시당하는 그의 슬픔은 정의 앞에서 나서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무거운 짐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친일도 하기 싫고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하기도 무서운 그런 사람들의 마음 말입니다.

그 시대에는 배울 만큼 배운, 조국의 현실에 부담감을 안고 가는 지식인들이 많았다고 하지요. 그들의 용기없음을 나무라기엔 총칼이 무서웠던 시대라 그 우유부단함에 공감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각시탈이나 동진결사대와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에 그의 자실이 더 안타까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반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파 99인1' 중 서영희의 '나라를 판 돈으로 도박에 미친 백작' 부분을 참고합니다.
* 각 이미지 위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해당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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