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아랑사또전

아랑사또전, 매력을 잃으면 정체불명의 요괴 이야기가 된다

Shain 2012. 9. 8.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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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드라마의 인기가 제작자 입장에서는 PPL을 비롯한 각종 수입의 원천이 되다 보니 '팬심은 민심'이라고 합니다. 덕분에 드라마 팬들이 비판하는 설정이나 복장을 바꿔버리는 경우도 있고 시청자들의 구미에 맞춰 결말을 수정하거나 캐릭터를 변형시키는 경우도 흔합니다. 때로 '우리 오빠'가 다른 배우 보다 뒤떨어져 보인다는 이유로 '작가를 때려잡자'며 항의하는 무작정 팬심도 있지만  팬들이 한 연기자의 연기 경력이나 미래를 따져 출연 작품을 골라주고 배우의 부족한 점을 소속사 보다 더 잘 짚어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최근 '아랑사또전'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습니다. 배우 이준기를 좋아해서 혹은 드라마 자체에 흥미를 가지고 자발적 팬이 된 분들 사이에 '아랑사또전'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해보면 첫회에서 보여준 가능성과 장점을 십분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물론 점점 더 다른 이야기로 변질되고 극중 캐릭터가 그 매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평입니다. 팬들 중에는 1회 2회 작가와 현재 방영중인 분량의 작가가 전혀 다른 사람이 아니냐 아니면 연출자가 바뀐 것이 아니냐는 의견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아랑사또전' 최근 방영분에 대한 팬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죽어야했던 이유를 알고 싶다며 옥황상제(유승호), 염라대왕(박준규)과 담판을 벌인 아랑(신민아)은 왜 그렇게 필사적으로 알고 싶어한 것인지 설명해주지 않고 최근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모습을 봐서는 자기가 죽지 않는 몸으로 부활한 까닭 조차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본래 음전하고 똑똑하고 착한 양가집 규수 이서림이 무자귀로 떠돌다 왈가닥 귀신이 된 것은 이해를 하겠는데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니 더 머리가 나빠진 것 같습니다. 남의 머리에서 비녀 뽑았다는 것 말고는 더 이상 기억을 찾은 것도 없구요.

김대감의 '얼자'인 은오(이준기) 역시 왜 엄마에 집착하는 모모동자가 된 것인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엄마같은 거 처음부터 없으면 좋았다고 소리를 질러 서씨(강문영)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기에 미안해서 그러는 걸까요. 그렇지 않으면 외가가 역적가문이 된 것이 아버지 김대감 때문이라서? 무엇 보다 아랑이 사람이 되고 난 후엔 까칠하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매력있던 성격 즉 특유의 냉정함과 이성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깊어지려면 갈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은 이해하겠는데 두 사람은 설득력있는 사랑싸움을 하기 보단 진짜 싸우는 것처럼 보여 당황스럽기도 하구요.



물론 요물 서씨의 정체가 궁금하긴 하지만

최주왈(연우진)이란 캐릭터는 첫등장부터 심상치 않더니 제대로 이중인격자같은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먹을 걸 구해야하는 거지아이로 자라 자기 밖에 모르고 동정없는 성격이 된 것도 또 홍련(강문영)에게 거둬져 정체불명의 요물 홍련의 양분이자 허물이 될 사람을 구해다 주는 살인마 역할을 하게 된 것도 알게 되었는데 그런 나름 대담하고 사이코패스같은 인물이 홍련 앞에서는 여전히 무서움에 벌벌떠는 거지아이처럼 보여서 의아스럽기도 합니다. 최대감(김용건)도 홍련을 무서워 합니다만 나름대로 자기 공을 내세우며 거래 비슷한 걸 하려 하는데 주왈에겐 그런면이 없습니다.

은오 엄마 서씨의 외모를 가진 홍련의 정체는 등장 초반부터 사람들을 사로잡은 이야기였습니다. 400년 이상 살았고 뱀이나 지네가 허물을 벗듯 사람의 몸으로 껍데기를 바꾸며 자신이 먹거나 해친 영혼들을 골무덤 봉인 안에 숨겨두었던 요물 중의 요물입니다. 지금은 이미 괴물로 변해 원래의 모습을 잃었기 때문에 정체를 알 수 없으나 저승사자 무영(한정수)이 말하는 무련이라는 존재와 관계가 있는 듯도 합니다. 무련(무현)은 과연 누구일까요 확실한건 지금은 멸혼부적을 쓰고 악귀를 부릴 만큼 강력한 존재라는 겁니다.

이 둘에 얽힌 미스터리가 흥미롭고 궁금한 건 사실이지만.

지금의 아랑은 죽은 심장에 산 몸이라는, 불사의 몸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의 육신을 취해 외모를 바꾸는 홍련이 제일 탐낼 만한 육신이라 홍련은 주왈에게 아랑을 정인으로 만들라 명을 내렸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이런 섬뜩한 이야기에 재미있다는 생각 보다 당황스러움을 느꼈는데 아랑과 은오 사또가 동굴에서 만난 악귀도 그렇고 악귀를 부리는 홍련도 그렇고 정말 익숙치 않은 '요물'입니다. 아니 요물이라기 보다 이 정도면 서양의 악귀나 일본의 요괴를 훨씬 더 닮았네요. 우리 나라엔 산 사람의 간을 취하는 요물은 구미호 뿐인 걸로 압니다.

'구미호 여우누이뎐(2010)'은 박수무당 만신(천호진)이 본디 사람이었는데 죽은 사람의 간을 꺼내먹다 보니 죽지 못하는 괴물이 되어버렸다는 설정을 이용하긴 했습니다만 이건 우리가 아는 민담이나 설화와는 거리가 먼 내용입니다. 무섭고 칙칙하던 기존의 귀신 컨셉을 깬 발칙한 귀신 아랑. 발랄하고 경쾌했던 귀신이야기가 한순간에 음침하고 음울한 괴물 이야기로 변해버렸습니다. 이 드라마를 정체불명의 '요괴'가 등장하는 미스터리 호러물로 만들게 아니라면 이건 좀 과도한 선택이 아닌가 싶습니다. 은오엄마의 얼굴을 가진 홍련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버렸거든요.

경쾌하고 발랄한 귀신 아랑은 어딜가고 정체불명의 요괴가 중심이 되었다.

방영 초기 긴머리 산발하고 낡은 옷입고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귀신 아랑이 워낙 매력적인 캐릭터라 그녀와 어리버리 무당 방울(황보라)의 궁합에 꽤 많은 기대를 걸었습니다. 마을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는 귀신들의 사연도 제각각일테니 은오와 아랑이 그 귀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나라의 전통귀신인 장독 귀신, 우물 귀신을 만나다 보면 흥겨운 이야기도 많을 것이고 또 두 사람의 사랑도 뭉개뭉개 피어오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 소박한 기대가 탁 하고 깨진 느낌이기도 합니다. '최종보스'를 상대할 때는 두억시니같은 전통귀신이 나타나 은오의 편을 드는 내용도 좋을 법했는데 말입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우리 나라엔 아랑같은 원귀 이야기만 전해오는게 아니라 각종 희한한 '귀신'들이 많습니다. 일본 귀신처럼 피뚝뚝 흘리는 공포물의 주인공이 될만한 존재들이 아니라서 가볍게 드라마에서 다루긴 딱인 존재들입니다. '두억시니'는 때로는 온갖 잡귀와 귀신을 몰아내는 수호신으로 때로는 사람을 괴롭히는 귀신으로 활약하니 은오와 아랑이 맞설 적인 동시에 조화를 부릴 동료로 딱 알맞은 귀신입니다. 어찌 보면 인간 세상에 관여치 않는 저승사자나 귀신에게 수작부리는 옥황상제 보다 나은 등장인물일 수 있죠.

드라마 초반의 아기자기하고 경쾌한 귀신이 이야기가 그립다.

적당한 짜릿함과 오싹함 그리고 무서움은 이런 류 귀신 드라마의 특별한 재미이고 보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입니다. 그러나 자칫 그 포인트를 놓치면 흥미롭기 보다는 눈쌀을 찌푸리고 불쾌함을 유발하는 호러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은오엄마와 아랑 그리고 홍련에 얽힌 미스터리가 아무리 중요하다 한들 지금은 너무 많은 미스터리가 남발되서 이야기가 혼란스러워지기도 했구요. '자기를 잃으면 누구든 무엇이든 악귀가 된다'는 무영의 말처럼 이 드라마 본래의 매력을 잃으면 그냥 흔한 요괴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과연 과거 홍련의 진짜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옥황상제는 계속 홍련을 두고 '그놈'이라 지칭하고 무영은 '무련'인지를 의심합니다. 무영의 여동생 이름이 무련이었을까요. 혹은 영혼을 수거하러 다니는 저승사자 중 한명이 자신의 임무를 이탈해 먹어서는 안되는 영혼을 흡수하고 저승으로 데려가야할 영혼을 빨아들이는 악귀가 되버린 것일까요. 어쨌든 그 결과는 당분간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단은 상큼발랄한 은오와 아랑의 러브라인이 중요한 시점이니까요. 그 아기자기한 재미를 잘 살려야 홍련의 정체가 어느날 '팡'하고 터질 결정적인 비밀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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