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아랑사또전

아랑사또전, 병주고 약준다더니 의뭉스런 능구렁이 옥황상제

Shain 2012. 10. 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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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아랑사또전'의 시놉시스를 읽었을 땐 처녀귀신과 총각 사또의 사랑이라니 이거 마지막엔 눈물바람이겠구나 지레짐작했습니다. 첫방영 때는 무시무시한 밀양 '아랑전설'을 코믹하게 옮겨놓은 부분에 꽤 많은 점수를 주었고 이 드라마 가능성이 정말 많구나 하는 기대를 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요물이나 귀신 중에 드라마로 만들기 좋은 것이 한두가지가 아닌데 이제서야 하나둘 컨텐츠로 옮겨지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작가는 이 드라마의 세계관을 시청자들에게 설명하는데 많은 부분 실패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이 드라마는 장면 하나하나에 공을 들여 장점이 참 많습니다. 방울(황보라)이 언급한 지옥은 불교에서 설명하는 내용이고 각종 부적이나 정보를 찾을 때 이용하는 '무죄자지옥아귀축생수라문전당당투석서'같은 책은 실존하는 책이라 들었습니다. 가끔 옥에티가 지적되긴 해도 소품에도 꽤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데도 선녀가 인간의 몸을 차지하고 사백년을 살았다거나 친혈육 만 악귀를 죽일 수 있다같은 규칙은 생소한 부분입니다. 즉 지옥, 이승, 저승에 대한 보편적 지식을 가진 시청자는 많아도 작가가 창조한 세계는 낯설고 이상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산자와 죽은자의 사랑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둘 다 죽은 사람.

그리고 이 드라마의 핵심 멜로 즉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넘고 애절한 사랑을 나눌 것처럼 보였던 아랑(신민아)와 은오(이준기)의 로맨스가 지금은 솔직히 '허무'해진 감도 없잖아 있습니다. 이미 은오는 명부에 한번 올랐던 '죽은 자'였고 귀신이 보이고 귀신을 상대할 능력을 가진 건 옥황상제(유승호)가 그를 살려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한번 죽었지만 불사의 몸을 가지고 돌아온 아랑이나 이미 죽었는데 삶을 연장시킨 은오가 이승과 저승의 간극 때문에 괴로워할 이유는 없어진 것입니다. 물론 본인들은 모르고 있지만요.

무엇 보다 허탈한 것은 이 모든 게 드라마 초반부터 선녀(노희지)와 말장난을 하던 옥황상제의 '계략'이란 점인데 그는 인간 세상에서 아둥바둥 악행을 저지르는 홍련(강문영)을 잡기 위해 오래전부터 각본을 준비했습니다. 마지막엔 은오는 엄마의 얼굴을 한 홍련을 살려둘 것이냐 아니면 죽이고 모든 비극의 원인인 악귀 무연을 죽이기 위해 서씨를 죽일 것이냐 선택해야 합니다. 시청자가 아무리 미스터리를 풀어보고 극중 인물이 아무리 바둥바둥해도 '부처님 손바닥 안'이었던 것입니다. 역시 작가는 그 어떤 세계라도 창작해낼 수 있는 신입니다.

옥황상제가 직접 처리했으면 될 것을 '각본'을 짜둔 음흉한 옥황상제.

오빠 무영(한정수)과 함께 천상에 살던 무연은 애초에 탐욕스럽고 집요한 성격의 선녀였나 봅니다. 옥황상제는 무연을 지옥으로 보내면 될 것을 지상으로 쫓아내 애꿎은 사람들을 죽게 했습니다. 사백년 동안 결계를 치고 하늘의 눈을 피해 살았으니 사라진 영혼과 육신이 상당수이고 무연이 결계를 치고 잠적한 밀양과 그 폐가가 있는 산은 공포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무너진 것입니다. 김은오의 외가가 최대감(김용건)에게 망한 것도 이서림이 죽은 것도 은오엄마가 미친 것도 다 그탓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린 은오도 죽었구요.

그래 놓고 이서림의 영혼이 무영에게 잡혀 저승으로 잡혀갈 때 포승줄을 풀어주고 또 어린 은오를 살려주며 '이건 빚'이라고 하다니 아니 이게 '모든 질문의 시작은 너로부터 온다' 또 '세상 어디에도 가치없는 죽음이 없다'고 해서 원한(?)이 풀어질 일인가요. 죽었다 살아나 귀신을 볼 수 있게 된 은오는 안 그래도 양반댁 얼자라 눈치보는 삶이 귀신보는 일 때문에 더 고생했을 것입니다. 그런 은오에게 귀신 물리치는 무술을 가르치고 멸혼진이 그려진 부채와 모심잠(母心簪)이 쓰인 비녀를 주는 옥황상제 정말 여우같습니다.

병주고 약준다더니. 옥황상제 각본의 일부였던 은오의 능력.

거기다 늘 염라대왕(박준규)와 비교되는 어린 외모로 돌아다니면서 '도사'같이 보이려고 은오를 가르칠 때는 특별히 중년 남성의 외모(정보석)로 변신을 했더군요. 은오 보다 젊어 보이는 얼굴로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을 알았던게지요. 어릴 때부터 '불의를 보면 참는다'고 말해온 까칠한 은오가 웬만한 사람을 믿을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은오를 살려주고 무술을 가르쳐준 것도 아랑을 풀어주며 원귀로 살게한 것도 알고 보면 사백년 동안 계획된 '홍련퇴치계획'의 일부였을 뿐이니 이 얼마나 엉큼하고 교활하단 말입니까?!

어제 방영분에서 그동안 짐작만 했던 여러가지 비밀들이 풀렸습니다. 아랑은 이제 이서림을 자신이 아닌 아예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며 주왈의 마음을 거절합니다. 달빛 아래 주왈을 연모하던 이서림이었다면 절대 주왈을 거절할 수 없었겠지만 이제는 전혀 다른 '아랑'이니 은오에게 더욱 끌리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예고편을 보니 아랑을 죽인 것은 주왈이었고 여러 사람을 죽여 그 혼을 홍련에게 바친 것도 주왈이었지만 홍련은 살인마가 된 주왈의 기억을 지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경악스런 사실입니다.

최대감이 전임부사의 환심을 얻으려 주왈과 이서림의 혼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홍련이 이서림과 주왈의 결혼을 격하게 반대하고 파혼을 당할 처지에 놓인 이서림은 주왈에 대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달을 쫓아 산책을 나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왈과 서씨가 함께 어디론가 가는 걸 보게된 아랑이 그 뒤를 쫓습니다. 드디어 내일이면 이서림과 홍련, 서씨, 주왈 사이의 비밀이 풀립니다. 어떻게 이서림의 혼만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을까요. 홍련의 주왈에 대한 집착은 뭔가 모르게 비정상적인데 홍련이 주왈의 청을 들어준 것일까요.

이 세 사람의 숨겨진 비밀과 옥황상제의 각본이 마지막엔 드러난다.

그러고 보면 아랑은 왜 옥황상제더러 영감탱이라고 하는 걸까요. 능구렁이 옥황상제가 아랑, 은오, 주왈, 홍련에 대한 각본을 짤 때 한번쯤 아랑의 영혼을 만난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이서림의 기억을 잃게 만든 것도 옥황상제의 짓인지 그게 아니면 주왈과의 약속에 따라 저승으로 이서림을 보내주기 위한 홍련의 짓인지. 마지막회가 될 때까지 한동안 또 휘둘려야할 것이고 이 모든 것이 '작가의 뜻'대로 풀려나가겠지만 확실한 건 약간의 비밀이 풀리고 나니 지지부진하던 중반부 이야기 보단 한결 보기가 낫다는 것입니다. 방울이도 드디어 꿈을 꾸더니 귀신을 보게 되었구요.

시청자는 어차피 작가가 써주는 대본대로 드라마를 봐야합니다. 우리는 감히 알 수 없는 '아랑사또전'의 대본 즉 옥황상제가 꾸민 '각본'은 아직 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아랑과 은오의 사랑은 분명 이 '각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텐데 주왈을 마음에 담은 아랑이 은오를 사랑할 수 없을까봐 기억을 지운 것은 아닌지 궁금해집니다. 무영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속을 알 수 없는 옥황상제니 이제는 옥황상제가 과거에 무연과 사귀던 사이였다고 해도 믿을 것같습니다. 회가 거듭될수록 내리는 결론, 꽃미남 옥황상제는 '능구렁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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