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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 홍길동의 시대에서 전우치의 시대로

Shain 2012. 12. 13.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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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은 과거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이야기인 동시에 현시대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입니다. 그동안 꽤 많은 사극들이 인기를 끌었고 사람들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대를 돌이켜보곤 했습니다. 개혁을 원하는 시대엔 개혁적인 주인공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민생이 어려운 시기엔 희망적인 주인공들이 호응을 얻었습니다. 시청자들 역시 '사극'하면 멜로나 코믹함외에도 뭔가 묵직한 시대관이나 세계관을 담았으려니 기대하기 마련입니다. 굳이 사랑이야기나 팔자 사나운 주인공 이야기를 다루려면 현대극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방영된 몇편의 퓨전사극은 그런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은 '사극'이라기 보다 사극 포맷을 빌린 현대극에 가깝습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마의'같은 이병훈 PD의 민중사극은 좀 다르지만 '아랑사또전'은 일종의 요괴판타지로 아랑전설을 엮어 드라마로 만든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올초에 큰 인기를 끌었던 '해를 품은 달'은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드라마였습니다. 다만 흥미로운 것이 있다면 처음부터 주인공이 개혁적인 인물이라기 보다 운명적으로 휘말린 싸움에서 악을 이겨내는 인물들이란 점입니다.

실존인물 전우치는 홍길동과 다르게 도술을 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랑사또전'의 김은오(이준기)와 아랑(신민아)는 천상에서 쫓겨난 선녀 무연(임주은) 그리고 부패한 권력자 최대감(김용건)과 대립하며 가난하고 힘든 밀양 백성들을 구해냅니다. 그들의 극적인 사랑도 사랑이지만 김은오가 백성을 위하는 사또로 변신하고 차기 사또의 임무를 투표를 통해 최적임자인 돌쇠(권오중)에게 넘겨준다는 부분도 재미있습니다. 이렇듯 기존의 사극들이 뭔가 큼직하고 웅장하게 사회에 대한 철학을 드러냈다면 최근의 사극은 다소 간접적이고 은근하게 사회에 대한 비판과 개혁을 이야기합니다.

조선시대의 판타지 영웅 '홍길동'과 '전우치'도 이와 비슷하게 성격이 다른 영웅입니다. '홍길동전'과 '전우치전'의 주인공인 홍길동과 전우치의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소설의 모델이 된 실존인물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허균의 '홍길동전'은 우리 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로 그가 도술을 부린다거나 하는 내용은 모두 창작된 내용이지만 서자로 태어난 실제 홍길동이 의적활동을 하다 유구국(현재 일본의 오키나오)의 왕이 되었다고 추리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허균은 전해오는 이야기를 토대로 '홍길동전'을 지은 것이 아니냔 것이죠.

홍무연의 할아버지로 설정된 홍길동은 제도 개혁을 원하는 인물이었다.

'전우치전'의 전우치는 실록 속의 홍길동과는 달리 '어우야담'같은 야사에 전하는 인물로 도술을 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실존인물 홍길동이 그냥 의적에서 백성들의 희망이 되는 소설 속 주인공으로 변모했듯 야사 속 기인이었던 전우치는 손오공처럼 웃음을 주는 민중들의 영웅이 되어갑니다. 전우치는 적서차별 제도 자체를 바꾸려했던 홍길동의 영웅성과는 좀 다른 면모를 보이며 단순히 '의롭다'고 생각할 수만은 없는 행동패턴을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엔 악동에 가깝습니다.

의적을 끌고 다니며 백성들을 도와주고 활빈당을 데리고 율도국을 건설한 홍길동이 사회적인 인물이었다면 전우치는 전국을 떠도는 개구장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호부호형을 하지 못하는 설움에, 서자는 아무리 잘나도 출세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던 홍길동. 그런 조선에 반기를 들고 의적이 된 홍길동이 율도국을 세워야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영웅이었으나 전우치는 타고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그런 적극적인 가치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짓궂은 장난을 치다 강림도령이란 저승사자에게 호되게 혼이 나기도 합니다.

홍길동과 율도국을 세웠다는 마숙장군과 전우치를 혼내주던 강림도령이 이렇게 변하다니.

대신 '전우치전' 속의 전우치는 홍길동과는 달리 사람들 사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상사병이 난 친구에게 과부를 납치해주고 술자리에 탐관오리를 불러 기생 대신 그 아내를 옆에 앉힙니다. 사람을 구미호로 변신시키기도 하고 잡혀간다면서 호리병으로 들어가는 등 장난기 넘치면서 극성스러운 그의 행동은 '개혁'이나 '사회비판'과는 거리가 멀고 약올리기나 장난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런 익살스런 행동으로 사람들은 홍길동에게서 느꼈던 통쾌한 감정과는 다른 또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방영중인 '전우치'의 주인공 전우치(차태현)의 관심사는 율도국을 통한 이상실현도 아니고 부패한 조선사회의 정의 구현도 아닙니다. 전우치의 생각은 온통 연인 홍무연(유이)에게 쏠려 있습니다. 홍무연의 할아버지와 그들의 조상 그리고 지금은 악당으로 변해버린 마숙이 힘을 합쳐 세운 율도국은 전우치와 동떨어져 있습니다. 홍길동의 설움이 전우치의 것이 아니듯 율도국도 전우치가 세운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전우치에게는 부패한 관리들을 혼내주는 모습 보다 무연을 구출하려 애쓰는 모습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전우치라도 민중의 영웅이 될 것이라 기대해본다.

홍길동과 전우치의 차이는 현시대의 풍경과도 일치합니다. 산업화를 거치고 민주화를 겪은 세대에게는 무언가 개혁하고 새로 만들 의무가 있었고 꼭 이루고야 말겠다는 억울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국가가 있었고 태어날 때부터 권리가 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민생은 여전히 어렵고 부패한 권력층은 여전히 부패했으며 바꿔야할 것도 많지만 등록금 문제부터 주택문제, 취업문제까지 닥친 어려움이 많은 지금 시대의 사람들에게 개혁이나 새로운 이상의 실현은 딴나라 사람들 이야기같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이야기 보다는 짓궂은 장난이 좋고 덤덤한 해학 보다는 사랑이 좋은 요즘 사람들이 정의나 개혁에 대한 염원을 모두 접은 것은 아닙니다. 장난기있는 전설 속 영웅 전우치가 언젠가는 민초들의 희망이 되고 부패한 세력들을 혼내주리란 기대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어쩐지 봉구(성동일)에게 더 눈길이 가고 이야기가 우후죽순 산만한 것 같아도 전우치의 다양한 분신술 만큼이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곧 쏟아져 나오리라 기대해도 되겠죠? 전우치의 도술이 아니라도 기별서리 이치의 조보가 필요한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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