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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들의 책임 중 하나는 기우제를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전국에 가뭄으로 흉년이 들면 백성이 굶고 백성이 고통받으면 군왕의 부덕이라 여겨 기우제 지내는 일에 꽤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조선 중종만 해도 실록에 백여차례가 넘게 기우제에 대해 논의한 기록이 적혀 있는데 의외로 이게 꽤 힘든 일이었나 봅니다. 일종의 연중행사 성격이 있었던 이 기우제는 비가 내릴 때까지 계속 됩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곳에서 장소를 바꾸어가며 제를 올리려니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던거죠. 때로는 세자나 신료들을 기우제에 대신 보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신앙적인 행위 이외에도 가뭄이 들면 조세를 낮추고 곡물을 푸는 등 여러 보조적인 조치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폐한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거칠(이원종)의 산채에 기거하는 사람들은 랑이(김유빈)와 객식구들이 미음먹는 걸 탐탁치 않게 여깁니다. 제대로 못 먹어서 화장실도 못가는데 누굴 먹이냐는 것이죠.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의 유래는 이런 가뭄과 흉년을 오랫동안 겪었던 백성들이 소나무 껍질같은, 먹어서는 안될 것을 먹어 변비에 걸렸을 때 쓰던 표현입니다.
온순했던 인종은 파평 윤씨들의 횡포가 극악하던 그 시절 백성들의 희망이었다고 합니다. '천명'에서도 갖바치 천봉(이재용)과 심곡지사 선비들은 세자 이호(임슬옹)를 믿고 지지합니다. 누가 정권을 잡든 조광조를 배신한 중종(최일화)이나 권력을 농단하는 문정왕후(박지영), 윤원형(김정균) 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경원대군(서동현)은 이복형을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착한 왕자이지만 어머니를 무서워하기 때문에 훈구파에 밀려 조광조를 죽인 중종처럼 힘을 펴지 못할 것입니다.
허나 세자 이호는 냉철한 왕자가 아닌 한명의 인간으로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세자 이호에게 어머니는 문정왕후 단 한사람 뿐이었습니다. 문정왕후는 친모인 장경왕후가 죽고 바로 계비로 들어왔기에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같은 건 생각할 수도 없던 세자입니다. 자신을 위해 기우제에 따라나서겠다는 동생 경원대군은 호시탐탐 세자를 노리는 문정왕후와 달리 어쨌든 피를 나눈 형제입니다. 문정왕후를 죽인다는 것은 아버지의 아내이자 피를 나눈 형제들의 어머니를 죽인다는 뜻이 됩니다.
드라마 '천명'에서는 그런 세자 이호의 복잡한 심정을 '의심'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자 이호는 그 누구도 쉽게 믿지 않는 예민한 성격입니다. 친구 최원(이동욱)의 딸이 문정왕후의 표식인 모란꽃 그림을 갖고 있는 걸 알고 최원이 덕팔(조달환)을 죽였노라 생각합니다. 그런 최원을 살리려는 홍다인(송지효) 조차 믿을 수 없다며 거부하는 세자입니다. 가까이에서 자신을 보필하던 내관까지 배신하는 마당에 누구에게 쉽게 마음을 줄 수 있겠습니까. 세자는 쉽게 곁을 주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극중 문정왕후는 그런 세자를 간파하고 있습니다. 믿고 싶었던 어머니도 버리고 친구에게 배신 당하고 여색을 탐하며 그 허한 마음을 달랠 인사도 못되는게 세자라면서 그래도 믿고 싶어서 계속 탐색하는 홍다인이 세자의 여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 세자 이호 즉 인종에게는 후궁이 없었을까요. 세자 이호에게는 중전 인성왕후 이외에도 선원록에 오르지 않은 네 명의 후궁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세자 시절에 양제(세자의 후궁을 부르는 말)로 들인 여성들이 말입니다.
후궁들 네 명 모두 자식이 없어 기록에 남지 않았으나 후궁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것을 알게 됩니다. 후궁 넷 중에는 파평 윤씨가 무려 둘이나 됩니다. 숙빈 윤씨는 문정왕후의 둘째 오빠인 윤원량의 딸로 윤원형이나 문정왕후에게 조카입니다. 양제 윤씨는 역시 또다른 파평 윤씨인 윤개의 딸로 윤개는 인종이 죽은 후 영의정까지 오른 소윤파입니다. 혜빈 정씨는 정온이란 인물의 딸로 혜빈이라는 직첩까지 받은 것을 보면 총애를 받은 것은 분명한데 딱히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정유침의 딸인 귀인 정씨인데 그 유명한 송강 정철의 누이로 알려진 사람이 바로 이 후궁입니다. 야사에 의하면 1543년 동궁전 화재 사건이 발생했을 때 세자는 문정왕후가 자신을 죽이려는걸 알고 불속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야사에는 유난히 자식들을 사랑했던 중종이 자신의 큰아들이 죽을까봐 '백돌아 백돌아'하며 애타게 불러 동궁이 뛰어나왔다고 하고 또다른 야사는 모두 불길이 무서워 동궁전으로 못들어가는데 귀인 정씨가 겁도 없이 뛰어들어 세자를 구했다고 합니다.
이 귀인 정씨에 대한 또다른 야사가 한가지 더 있습니다. 하루는 날씨가 몹시 음산하고 궁궐내에 요기가 있는데다 천둥 번개가 치고 창문에 빗물이 빗발치자 세자는 창문을 닫고 싶었으나 겁을 먹고 움직이지 못했다고 합니다. 거기다 어떤 궁녀도 움직이려 하지않아 명을 내리지도 못했는데 정귀인이 일어나 창문을 닫았다고 합니다. 인종이 그 때문에 정귀인을 상당히 총애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슨 야사가 이렇게 으시시한지 모르겠으나 인종이 믿을 사람 하나 없는 궁안에서 후궁 하나를 믿고 의지했다는 뜻도 되겠지요.
기록으로만 살펴봐도 인종의 처지는 딱하기 그지 없습니다. 아내인 인성왕후는 다소 정략적인 혼인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후궁 중 하나는 계모의 친조카딸이고 또다른 하나는 쟁쟁한 파평 윤씨 집안의 딸이니 행여나 문정왕후가 실패하더라도 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면 윤씨 집안은 훗날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보통 대범한 사람이 아닌 이상 그런 후궁들 사이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거나 긴장을 풀 여유를 찾긴 힘들었을 것입니다. 죽을 때 스트레스를 받을 만도 했던 상황이었죠.
양아버지 장홍달(이희도)와의 인연 때문에 최원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없는 홍다인과 세자 이호의 인연이 어떻게 풀릴지는 행여라도 이대로 후궁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역사적으로도 드라마 속에서도 믿을 사람 하나없는 세자에게 숨통을 틔워줄 인물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경원대군이 자청해서 산채로 간 덕분에 세자 이호는 살렸지만 민도생(최필립)의 처방전을 빼앗긴 지금 누가 최원을 구해주러 올 수 있을까 궁금하네요.
물론 이런 신앙적인 행위 이외에도 가뭄이 들면 조세를 낮추고 곡물을 푸는 등 여러 보조적인 조치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폐한 백성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거칠(이원종)의 산채에 기거하는 사람들은 랑이(김유빈)와 객식구들이 미음먹는 걸 탐탁치 않게 여깁니다. 제대로 못 먹어서 화장실도 못가는데 누굴 먹이냐는 것이죠.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의 유래는 이런 가뭄과 흉년을 오랫동안 겪었던 백성들이 소나무 껍질같은, 먹어서는 안될 것을 먹어 변비에 걸렸을 때 쓰던 표현입니다.
궁안에 있는 그 누구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세자 이호. 그에게 후궁이 있었을까?
허나 세자 이호는 냉철한 왕자가 아닌 한명의 인간으로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세자 이호에게 어머니는 문정왕후 단 한사람 뿐이었습니다. 문정왕후는 친모인 장경왕후가 죽고 바로 계비로 들어왔기에 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같은 건 생각할 수도 없던 세자입니다. 자신을 위해 기우제에 따라나서겠다는 동생 경원대군은 호시탐탐 세자를 노리는 문정왕후와 달리 어쨌든 피를 나눈 형제입니다. 문정왕후를 죽인다는 것은 아버지의 아내이자 피를 나눈 형제들의 어머니를 죽인다는 뜻이 됩니다.
드라마 '천명'에서는 그런 세자 이호의 복잡한 심정을 '의심'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자 이호는 그 누구도 쉽게 믿지 않는 예민한 성격입니다. 친구 최원(이동욱)의 딸이 문정왕후의 표식인 모란꽃 그림을 갖고 있는 걸 알고 최원이 덕팔(조달환)을 죽였노라 생각합니다. 그런 최원을 살리려는 홍다인(송지효) 조차 믿을 수 없다며 거부하는 세자입니다. 가까이에서 자신을 보필하던 내관까지 배신하는 마당에 누구에게 쉽게 마음을 줄 수 있겠습니까. 세자는 쉽게 곁을 주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여인천하(2003)'에서 묘사된 귀인 정씨. 세자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한 후궁으로 추정된다.
후궁들 네 명 모두 자식이 없어 기록에 남지 않았으나 후궁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것을 알게 됩니다. 후궁 넷 중에는 파평 윤씨가 무려 둘이나 됩니다. 숙빈 윤씨는 문정왕후의 둘째 오빠인 윤원량의 딸로 윤원형이나 문정왕후에게 조카입니다. 양제 윤씨는 역시 또다른 파평 윤씨인 윤개의 딸로 윤개는 인종이 죽은 후 영의정까지 오른 소윤파입니다. 혜빈 정씨는 정온이란 인물의 딸로 혜빈이라는 직첩까지 받은 것을 보면 총애를 받은 것은 분명한데 딱히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정유침의 딸인 귀인 정씨인데 그 유명한 송강 정철의 누이로 알려진 사람이 바로 이 후궁입니다. 야사에 의하면 1543년 동궁전 화재 사건이 발생했을 때 세자는 문정왕후가 자신을 죽이려는걸 알고 불속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야사에는 유난히 자식들을 사랑했던 중종이 자신의 큰아들이 죽을까봐 '백돌아 백돌아'하며 애타게 불러 동궁이 뛰어나왔다고 하고 또다른 야사는 모두 불길이 무서워 동궁전으로 못들어가는데 귀인 정씨가 겁도 없이 뛰어들어 세자를 구했다고 합니다.
세자 한 사람만을 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왕실에서 세자는 누굴 믿어야 하나.
기록으로만 살펴봐도 인종의 처지는 딱하기 그지 없습니다. 아내인 인성왕후는 다소 정략적인 혼인이었을 가능성이 높고 후궁 중 하나는 계모의 친조카딸이고 또다른 하나는 쟁쟁한 파평 윤씨 집안의 딸이니 행여나 문정왕후가 실패하더라도 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면 윤씨 집안은 훗날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보통 대범한 사람이 아닌 이상 그런 후궁들 사이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거나 긴장을 풀 여유를 찾긴 힘들었을 것입니다. 죽을 때 스트레스를 받을 만도 했던 상황이었죠.
양아버지 장홍달(이희도)와의 인연 때문에 최원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없는 홍다인과 세자 이호의 인연이 어떻게 풀릴지는 행여라도 이대로 후궁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역사적으로도 드라마 속에서도 믿을 사람 하나없는 세자에게 숨통을 틔워줄 인물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경원대군이 자청해서 산채로 간 덕분에 세자 이호는 살렸지만 민도생(최필립)의 처방전을 빼앗긴 지금 누가 최원을 구해주러 올 수 있을까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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