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천명

천명, 임꺽정의 연인 소백 경원대군을 쥐어박은 이유는?

Shain 2013. 6. 7.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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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사극 속 캐릭터 중에는 실제 기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게 아니라 기존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를 그대로 옮겨온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임꺽정과 갖바치같은 사람들입니다. 전에도 한번 적었지만 '여인천하(2001)'나 '조선왕조오백년 풍란(1985)'의 갖바치는 조광조와 친분을 나누고 스승 대접을 받은 지식인처럼 묘사되었으나 실제 갖바치의 기록은 매우 짧습니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사서에 조선의 '민중'을 대표할 인물이 없어 때로는 범상한 조광조의 인품을 강조하기 위해 때로는 백성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등장시킬 뿐이죠.

특히 임꺽정은 실록 속 기록이 반란과 체포에 대한 것 뿐이라 임꺽정의 어린 시절이나 산채 생활은 대부분 홍명희의 소설 '임꺽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천명'에 등장하는 임꺽정(권현상)과 그의 아내가 될 소백(윤진이)은 반쯤은 실존인물이고 반쯤은 가상인물인 그런 묘한 캐릭터들이죠. 실록 속에는 임꺽정의 아내를 체포했다는 기록과 전옥서에 갇힌 아내를 구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다 발각당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임꺽정의 아내는 후에 형조의 노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실존인물이지만 반 이상 창작된 캐릭터인 임꺽정과 그 아내. 소백은 창작된 이름이다.


드라마 '천명'에는 실제 역사를 읽고 보면 감탄할 수 밖에 없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갖바치 천봉(이재용)이 심곡지사의 수장이 되어 조광조의 뜻을 잇겠다고 나선것도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임꺽정의 스승이었다는 갖바치와 동일인물인지도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실존인물 세자 이호(임슬옹)가 추구하는 기본 정치관과 학문적 방향을 천봉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어리석은 동생 윤원형(김정균)까지 동원해 악랄한 짓을 서슴치 않는 문정왕후(박지영)의 행동은 권력을 탐하며 인종과 대립했던 그녀의 본질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를 무서워하는 경원대군(서동현)의 회초리를 치며 '너같은 아들을 둔 적이 없다'고 무섭게 구는 장면은 실제 역사의 한장면인듯 생생합니다. 경원대군은 명색이 왕의 적자였고 지존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때문에 그 자존심에 상처를 입곤 했습니다. 문정왕후가 죽자 외삼촌 윤원형부터 사사한 명종을 보면 얼마나 외가쪽 사람들에게 치를 떨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윤원형의 건방짐은 점입가경이었습니다. 궁에서 몰래 기구와 재료를 가지고와 오직 임금만 먹는 타락죽을 첩과 배불리 나눠먹었다는 기록이 전합니다.


드라마 속 세자 이호는 어쩐지 약하고 정치에 밝지 않은 순진한 인물처럼 보입니다. 학문과 인성, 모든 면에서 탁월한 왕재였으나 더러운 정치적 모략을 견딜 만큼 튼튼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경원대군도 형을 위해 대신 죽겠다고 마음먹을 정도로 인정많고 왕위를 이을 충분한 자질을 갖추고 있으나 어머니에 눌려 그 기량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아이입니다. 그런 경원대군이 랑이(김유빈)와 함께 소백을 만나 산채에 다녀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봐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연출입니다.

임꺽정이 반란을 일으키고 백성들에게 호응을 얻은 것은 문정왕후와 소윤파 무리들의 실정 때문입니다. 전국에서 백성들이 죽어나가고 흉년과 가뭄이 계속되는데 권력에 취한 조정신료들은 백성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혼란은 혼란대로 수습해야 하지만 왕실은 일단 반란을 진압해야했기에 명종은 임꺽정을 잡기 위해 전국에 방을 붙이고 관리들은 가짜 임꺽정을 잡아서라도 공을 세우기 위해 혈안이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경원대군은 훗날 자신이 마주칠 최고의 적이 될 임꺽정의 산채를 직접 다녀온 것입니다.

명종은 어머니 때문에 울고 임꺽정은 왕의 명으로 모든 가족을 잃는다. 이 꼬마가 임꺽정 일가를 죽인다고?


임꺽정의 아내가 될 소백이 훗날 자신의 원수가 될 경원대군의 머리를 쥐어박은게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일이죠. 조금 건방지기는 해도 귀엽게만 생긴 그 꼬마 경원대군을 왜 그렇게 얄미워할까 싶지만 역사적으로 명종은 소백을 잡아들여 노비로 만든 그 임금이니까요. 더군다나 임꺽정의 일가는 명종의 명으로 소탕되어 사형을 받고 죽게 됩니다. 비록 자신의 뜻이 아닌 어머니 탓이었다고는 하나 명종이 백성들을 위해 좋은 정치를 펼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왕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산채에서 맛없는 풀뿌리죽을 먹고 백성들이 이런 것을 먹느냐며 깜짝 놀란 명종. 사람이 배가 고프면 그 어떤 것도 먹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풀뿌리죽을 배불리 먹고 잠이 든 귀여운 경원대군. 물론 실제 역사 속 경원대군은 산채에서 낡은 옷을 입은 랑이를 만날 일도 소백에게 구박받을 일도 없었겠지요. 그러나 실제 명종이 백성들의 비참한 현실을 알고 있었더라도 어머니의 농단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더욱 인상적인 장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역사를 생각한다면 제가 소백이라도 쥐어박을 수 밖에 없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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