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왜 월요일엔 '굿 닥터' 말고는 볼게 없을까

Shain 2013. 10. 1. 12:21
728x90
반응형

주원을 좋아하고 평소에 호감을 가진 배우입니다만 이번에 출연한 '굿 닥터'는 드라마 자체가 제 취향이 아닙니다. 물론 '서번트 증후군'이 뭔가 불분명하긴 해도 주원이 연기하는 박시온의 자폐증 연기는 훌륭합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영리병원과 아동학대를 드라마에 끌어들인 주제의식도 충분히 인정합니다만 개인적으로 다른 장르는 몰라도 멜로와 결합시킨 의학 판타지를 좋아하지 않는 취향탓이 크지요. 거기다 응급의학과의 긴박한 상황을 묘사한 '골든타임(2012)'같은 드라마가 의학 드라마에 대한 기준을 높인 까닭에 현실을 이상적으로 다루는 방식의 드라마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고충만과 우일규도 줏어오고 날마다 새로운 걸 배우는 박시온이 귀엽지만 이 드라마는 내 취향이 아니다.

그 덕분에 주원의 귀여운 닥터(?) 연기와 믿음직한 주상욱의 스승 역할도 고충만(조희봉)과 박시온의 코믹한 콤비도 집중해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 성원대학교의 영리병원화를 추진하는 강현태(곽도원)와 진짜 좋은 의사의 조건은 뛰어난 명성과 실력인지 그것도 아니면 환자를 위하고 노력하는 마음인지 질문하는 그 따뜻한 장면에도 눈길이 가지 않더라구요. 어쩌면 의학 드라마는 복합장르 드라마와 조금 달라야한다는 그런 편견이 드라마에 몰입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다른 방송사의 월화드라마가 아닌 '굿 닥터'를 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실존인물 백파선의 이야기를 꾸몄다는 MBC '불의 여신 정이'도 보고 경제사범들의 전쟁을 묘사한 SBS '황금의 제국'도 열심히 시청했습니다만 '불의 여신 정이'를 다운로드(구매)하지 않은지 벌써 3주가 되어갑니다. 지난주부터 방송되기 시작한 SBS '수상한 가정부'는 첫회를 보자 마자 흥미를 잃어 여태 1회도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랍니다. 무표정한 최지우의 연기나 미스터리한 전개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궁금하지 않더군요.

'불의 여신 정이' 최대 단점은 어디선가 봤던 사극 포맷을 너무 뻔뻔하게 재탕한다는 것이다.

원래 세 방송국에서 방송하는 드라마들이 재미있으면 어떤 걸 먼저 다운받을지 고민도 잠깐씩 하고 그러는데 월화드라마는 '굿 닥터' 말고는 선택할게 없는 상황이 되버렸습니다. 사극과 현대극 중 사극을 먼저 보고 약간 지겨워진 드라마 보다는 새로운 드라마를 골라보곤 했었는데 '불의 여신 정이'나 '수상한 가정부'는 전혀 그런 감흥이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두 드라마는 공통적인 문제점을 갖고 있습니다. 연기를 잘 하는 연기자나 생방송에 맞춰 피말려가며 대본쓰고 촬영하는 제작진 자체의 문제라기 보단 한국 드라마 제작 시장의 문제라고 볼 수 있죠.

한국 드라마는 어떤 장르와 어떤 포맷을 선택하든 종합 드라마가 되버리는 고질병이 있습니다. 한편당 70분 씩이나 되는 러닝타임을 어떻게 때울지 고민하느냐 그런지 수사극 한편을 찍어도 가족극, 멜로극, 추리극, 시트콤까지 모든 장르를 망라해야지만 속이 시원한 것처럼 보입니다. 어차피 45분씩 방송되는 미국 드라마도 아니고 이제는 나름대로 그런 복합(?) 장르도 자리잡아가는 것같으니 그 부분은 어떻게 참아볼 수 있습니다. 허나 어떤 아이템이 한번 인기를 끌면 단물 쓴물 다 빠질 때까지 끝장을 보고 마는 재탕정신에는 정말 질릴 거 같습니다.

시청자들은 2013년 상반기에 무표정한 얼굴의 여자 캐릭터를 이미 둘이나 보았다. 왜 다시 그녀인가?

전에도 한번 적이 있습니다만 우리 나라는 저자본으로 드라마를 제작하기 시작한 나라라 연기자들의 연기는 어느 나라 보다 뛰어나고 다른 어떤 장르 보다 멜로에 강한 편입니다. 90년대까지도 변변한 사극 한편 찍기가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어떤 방송극이든 사극 비슷한 거라도 한편씩 꼭 제작하는게 원칙처럼 되어 있죠. 그러다 보니 사극들이 모두 퓨전을 핑계로 역사와는 동떨어진 소재를 선택하는데다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구성으로 제작됩니다. 잘 나가는 주연 배우들만 바뀌고 나머지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고 봐도 될 정도 입니다.

각 방송국에서 사극을 열심히 만드는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사극은 예전부터 20퍼센트 이상의 기본 시청률을 보장해왔습니다. 거기다 이병훈 PD가 만들어낸 권선징악적인 성격의 자수성가형 사극은 편하게 볼 수 있으면서도 감동적이라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포맷입니다. '허준(1999)'과 '대장금(2003)'의 성공 이후 얼마나 많은 유사한 사극들이 만들어졌는지 셀 수 없을 정도죠. 어떻게 보면 '불의 여신 정이'는 문근영과 이상윤이라는 참신한 연기자들에도 불구하고 10년이 넘게 보아온 똑같은 포맷이란 점에서 이미 실패가능성을 안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일드 '가정부 미타'를 각색한 '수상한 가정부' 역시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라는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직장의 신' 원작인 '만능사원 오오마에'는 2007년 작품이고 '여왕의 교실'은 2005년에 일본에서 방송된 드라마입니다. '가정부 미타'는 2011년에 제작, 방송된 작품이죠. 말하자면 일본 시청자들은 무표정하고 냉정하고 카리스마있는 여성 캐릭터를 몇년에 한번씩 보는 셈인데 한국의 시청자들은 그 세 캐릭터를 2013년 한해에 몰아서 보고 있습니다. 하나가 인기 끌었다고 해서 또 같은 선택을 하다니 생각만해도 질릴 것같습니다.

아이들 모두가 울부짖는 감동적인 장면임에도 일본과 우리의 정서가 다르다는 점만 부각되던 1회.

드라마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은 드라마를 보는 편입니다만 그런 저도 못 보는 드라마가 더 많습니다. 그만큼 많은 드라마가 제작되는데도 신선하다는 느낌을 주는 드라마는 드물더군요.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가 화제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한국 드라마에서 다루지 않던 소재와 신선한 캐릭터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상한 가정부'는 이미 두 편이나 방송된 일본 드라마 리메이크 덕분에 신선함은 애초에 기대하기 힘들었고 무표정한 캐릭터가 유발하는 감동적인 장면에도 식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수상한 가정부'의 박복녀(최지우)가 '직장의 신' 김점순(김혜수)과 '여왕의 교실' 마여진(고현정)과 차별화된 캐릭터라 강조해도 세 드라마를 연달아 본 시청자들에겐 그게 그거 일 수 밖에요. 메인캐릭터에 질릴수록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본의 정서와 이해가 가지 않는 자극적인 설정만 더 도드라질 뿐 입니다. 박복녀를 폭행하는 은두결(채상우)나 유치원생과 같이 죽으러 가는 박복녀, 자식들에게 관심없는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 은상철(이성재)의 모습은 호기심을 자극하기 보단 짜증이 나더군요.

늘 똑같은 선택으로 높은 시청률을 바라는 것은 지나치게 구시대적인 발상 아닐까?

 

드라마 제작 시장의 속사정을 알고 보면 어떻게든 기본 수입을 뽑아야 적자가 나지 않는 형편도 또 방송국이 어떤어떤 형식으로 제작하라 간섭하는 입김도 PPL 업체나 협찬 업체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다는 거 시청자들도 알만큼 알고 있습니다. 그 묘한 담합 덕분에 드라마의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도 충분히 학습하고 있구요. 소위 말하는 '인기 아이템'만 우려먹는 이런 제작방식에 시청자도 질리고 있다는 건 언제쯤 알게 되려나요. 시청률이 떨어지면 피해를 입는 건 큰 맘먹고 드라마에 출연한 스타급 배우 보다는 황금시간대를 놓치는 시청자들인지도모릅니다,

'수상한 가정부' 어제 3회 시청률이 6퍼센트 대로 곧 '불의 여신 정이'와 꼴지를 겨루게 될 것같다고 합니다. 정이(문근영)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매력을 잃어가는 '불의 여신 정이'도 문제지만 '수상한 가정부' 쪽은 리메이크할 일드도 많은데 하필 2013년도 상반기 히트작과 비슷한 캐릭터를 왜 골랐는지 의문이네요. 아무리 한가지 상품이 큰 인기를 끌면 복제품과 유사품이 잔뜩 만들어지는 현상은 전세계 어느 곳이나 비슷하게 일어나는 일이라곤 합니다만 시청률로 먹고 사는 드라마 제작 전략치고는 지나치게 구시대적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