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2013 MBC 연기대상, 누구를 위한 잔치였을까

Shain 2013. 12. 31.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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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상을 받지 못하는 배우가 시상식에 나오지 않는 경우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현실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열애설이 터진 여배우라면 시상식 보다 스캔들에 훨씬 더 많은 질문이 몰릴테고 낮은 시청률을 기록한 배우라면 잔치에 함께 하기 민망한 감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 보다 배우 한 사람이 레드카펫을 밟는다는 것은 단순히 예쁜 옷을 입는다는 뜻만은 아닙니다. 배우 한명에게 필요한 매니저와 스탭, 부대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단순히 귀찮은 수준은 아니라는 이야기죠.

'기황후' 하지원의 대상 수상으로 마무리된 2013 MBC 연기대상. 올해는 어떤 논란이?




각 방송사에서 배우들에게 나눠주기를 남발하는 것도 이해하려 합니다. 시청률에 목매는 방송사에서 시청률을 올려주고 기꺼이 출연한 배우들에게 상을 주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봐줄 수 있죠. 마찬가지로 기획사 파워에 따라 배우들 시상하는 것까지도 억지로 이해한다고 칩시다. 시청자들은 잘 모르지만 2013년 연기상 수상경력에 따라 배우들의 출연 등급이 달라집니다. 올해 대상, 최우수상을 받은 배우들은 내년에 최고 등급으로 출연료 협상을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아무리 방송사의 속사정을 납득한다고 쳐도 전체적으로 시상 내역에 공감이 가지 않으면 당연히 반응이 좋지 않습니다. 2013년 SBS 연예대상에서 유재석은 대상을 받지 못했지만 김병만은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알기에 모두가 축하해줍니다. 김병만이 프로그램 하나를 찍기 위해 어떤 어려움을 감수하는지 시청자들도 보았고 느꼈기 때문이죠. 시청률 대박난 프로그램이 없더라도 김병만의 경력이라면 대상을 받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어제 방송된 2013년 MBC 연기대상을 어떻게 보셨나요. 2013년 한해 MBC 드라마 흥행성적은 처참했죠. 시청률 20퍼센트가 넘는 드라마도 흔치 않았고 대작이라 평가할 작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비난을 받은 문제의 작품들이 시청률을 차지했던 방송국이 바로 MBC였습니다. 작품성이 괜찮다 싶으면 시청률이 바닥이었죠. 그런 MBC에서 시상식을 하면 당연히 잡음이 많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전반적으로 답이 없는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연륜있는 연기자는 공동수상, 신인급은 최우수상

어제 시상식을 보고 제가 느낀 점은 첫번째, 베테랑 연기자가 신인급에 밀려났다는 것, 두번째는 시청자들이 혹평한 드라마를 전면에 내세워 시상식을 꾸몄다는 것, 세번째는 2013년을 마무리하는 연기대상이 아니라 연기자들에게 아부하는 아부상같았다는 점입니다. 1부에서 아역상을 후보 전원이 수상하는 모습부터 이건 좀 아니다 싶더니 별다른 시상 기준도 없어 보이는 시상 내역에는 더욱 더 기가 막히더군요.

MBC 공로도 면에서는 대상급이지만 공로상을 수상한 박원숙과 한진희.


위에서 출연료 등급 이야길 잠깐 했듯이 한국의 연기자들은 아역부터 신인급까지 꽤 여러 단계로 등급이 나뉘어 있습니다. 최우수상이나 대상감이다 싶은 몇몇 배우들이 높은 시청률과 탁월한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우수상에서 머무르는 것도 일종의 등급 기준에 못 미치기 때문이겠죠. 대상, 최우수상 후보로 선정되는 연기자들은 명실공히 연기 경력이 오래된 베테랑 배우들임을 보증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2013년 연기대상 수상이 연기경력을 기준으로 선정된 것같던가요? 오히려 인기상 선정기준과 비슷했죠.

2013년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던 MBC 드라마가 그나마 20퍼센트가 넘는 몇몇 작품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은 신인급 유명연기자들의 힘도 힘이지만 어디까지나 중견연기자들이 뒷받침을 해주었던 덕분입니다. 악역 전문 조민기를 비롯해 박원숙, 김소연, 이준기, 전인화, 정보석같은 여러 중견배우들이 많은 드라마를 이끌어 주었지만 그들은 최고상 수상 배우들의 들러리 노릇을 하거나 공동수상을 했고 심한 경우 아무 상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이례적으로 시청자들 사이에서 시청거부 운동이 있었던 '오로라 공주'를 올해의 드라마 후보로 넣는가 하면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임성한 작가에게 약속이나 한듯이 감사의 말을 쏟아내는 모습은 MBC가 시청자 의견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는 충분한 증거였습니다. 고생하며 드라마를 촬영한 연기자 본인에게는 작가들이 고맙고 감사하겠지만 시청자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나 있는 건지 아니면 무시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충분히 불쾌한 상황이었죠.

논란의 드라마 '오로라공주'로 수상한 배우들. 배우에겐 작가지만 시청자에겐 불편한 사람이랍니다.


특히 2012년부터 이어진 이상한 시상 기준은 보는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습니다. 2013년 연기대상은 2013년 한해를 결산하는 자리인데 작년에도 방송이 반도 진행되지 않은 '마의'의 연기자에게 대상을 주더니 올해도 마찬가지로 '기황후'의 하지원, 주진모, 지창욱, 장영철 작가에게 상을 퍼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짜증나는 역사왜곡 논란은 보란듯이 모른척했고 대부분의 시상식이 방송 종영된 드라마를 기준으로 하는데 비해 '기황후'는 상부터 퍼받고 시작하는 셈이 된 것입니다.

거기다 시상식 자체도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시상을 맡은 이덕화, 사회를 맡은 이승기는 대본에 씌인대로 '금나와라 뚝딱'의 이혜숙을 '백년의 유산'의 이혜숙으로 호명했고 '기황후'는 작품 소개를 할 때 왕유(주진모)를 고려의 마지막왕으로 소개하기도 했습니다(자막 맞춤법도 틀렸더군요). 잘못된 대본을 시상 당일까지 알아채지 못한 사람들도 문제지만 진행을 맡은 사람들끼리 리허설 한번 해보지 않은 것인지 너무 기본적인 실수를 반복하니 황당하더군요.

역사왜곡으로 논란을 빚은 '기황후' 가상인물 왕유가 고려의 마지막 왕이라고? 약올리십니까?


사람들을 백프로 만족시키는 시상식은 원래 없습니다. 그러나 이례적인 수상이라 하더라도 납득이 갈만한 수상은 있습니다. 기획사 '빽'도 없고 주연도 아닌 중견연기자 박원숙이 대상을 탔다면 진심으로 박수쳐주지 않을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조민기나 이준기, 김소연이 최우수상을 탔을 때 환영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2013년 MBC 연기대상의 시상기준은 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시청률, 공로도가 큰 기준인 것같긴 한데 자세히 보면 그것만은 아니고 더 깊이 따지고 들면 연기나 작품성은 더더욱 아닌 것같습니다(이성재같은 분은 아예 후보에도 못 들어갔군요).

어떤 연기자에게는 우수상, 최우수상, 대상이 평생에 한번 밖에 없는 최고의 영광입니다. 단역급 신인 연기자로 출발해서 최고 등급의 배우가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조연, 주연으로 발탁되는 기회를 유명 연예인에게 박탈당한 것으로 모자라 배우로서의 노련함, 경력 보다 인기로 모든 걸 평가받게 된다면 앞으로 MBC 드라마는 더욱 더 전망이 어두워질 수 밖에 없습니다. 혼란스러웠던 어제의 시상식은 그만큼 2013년 한해, MBC가 좋은 드라마를 만들지 못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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