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더 지니어스' 홍진호 탈락 패거리 문화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다

Shain 2014. 1. 19.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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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더 지니어스' 논란을 케이블 예능 프로그램인데 사람들이 왜 이렇게 반발하나 그 이유가 궁금하단 눈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은지원, 노홍철, 이상민같은 한번쯤 얼굴을 본 연예인들도 출연하고 게임계의 스타인 임요환, 홍진호, 해커로 유명했던 이두희까지. 저 사람들의 조합으로 뭘 하겠단 건지 궁금하기도 했고 어떤 게임이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분통터진단 반응을 보이는건지 신기하기도 하더군요. 개인적으론 유명세있는 연예인 보다 홍진호, 임요환의 플레이가 궁금했습니다. 스타 크래프트 해본 사람치고 홍진호 또는 임요환이란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니 말입니다.




어차피 예능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선입견이 있는 만큼 이번 논란이 시청률을 올리기 위한 노이즈 마케팅은 아닐까 생각해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비난하는 내용과 방송 내용을 찬찬히 보니 아 정말 이게 예능이고 게임인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더군요. 출연자 중 한명이 오랫동안 울었다고 하던데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 모자라서 노력이 부족해서 실패했을 때는 그렇게까지 오래 억울해하지 않습니다. 자기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벽을 만났을 때 억울하단 느낌을 받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지난주 출연자 이두희의 탈락으로 불거졌던 흥분은 이번주 홍진호의 탈락과 함께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시즌1의 우승자이기도 한 홍진호는 진짜 게이머라는 평가에 알맞을 정도로 많은 호응을 얻은 참가자 중 하나입니다. 어떻게 보면 '게임'이라는 테마에 가장 알맞은 인물이 홍진호였는데 그의 탈락과 함께 '더 지니어스'를 더 이상 볼 이유가 사라졌다고 평가하는 사람도 있는 한편 '더 지니어스'에서 진짜 지니어스가 탈락했노라 비꼬는 사람도 있습니다. 임요환까지 탈락하면 나머진 연예인쇼라는 반응까지 나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예능 프로그램의 장난에 관대한 반응을 보입니다. 가끔 지나치게 가학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예능도 있습니다만 대개 비판만 하고 프로그램 폐지를 언급할 정도로 크게 생각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렇다면 '더 지니어스'가 시청자를 분노하게 한 핵심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사회에서 쉽게볼 수 있는 추악한 거짓말과 담합이 승리하고 신뢰나 윤리같은 덕목을 짓밟고 비웃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에서 억울한 일을 당한 개인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도덕적 잣대를 무시한 것이죠.

많은 시청자들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 집단에 소속이 되고 무리지어 사는 삶의 장점을 배웁니다. 크게는 국가라는 집단부터 작게는 가족까지 우정을 맺고 패를 이룬다는 건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고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좋은 현상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동시에 소수 집단에게 혹은 한 개인에게 폭력과 비리를 저지르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거대집단의 횡포와 왕따를 수없이 많이 보고 겪었기 때문에 패거리에 대한 반감 역시 함께 품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봐도 그들이 시청자들에게 보여준 것은 재능과 두뇌를 겨루는 게임이라기 보단 일종의 패거리 문화였습니다. '연예인 연합'이 '비연예인'을 상대로 한 사람을 속이기 위해 신분증을 훔치고, 훔치지 않은 척 눙치고 나중에는 복수까지 불가능하게 거짓말로 속인 일련의 행동들은 한 집단에서 특정 한 사람을 왕따시킬 때 쉽게 볼 수 있는 행동들이죠. 보통 그런 경우에 집단 가해자들의 변명은 하나같이 유사합니다. 왕따당할 빌미를 준 사람이나 믿은 사람이 잘못한 거란 반응 말이죠.

특히 각종 인터뷰에서 보여준대로 이상민이 탈락자 이두희에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고 훈계하는 장면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또 프로그램 담당 PD의 옹호 인터뷰나  이상민이 탈락자 홍진호에게 '이두희 탈락은 홍진호, 임요환 책임이 더 크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던 것 등 논란이 된 방송 이후에도 자신들의 팀플레이가 문제가 없다는 반응은 더욱 시청자들을 화나게 하고 있습니다. 특히 은지원의 신분증 '절도'가 룰 위반이 아니라는 식의 반응은 더욱 분노에 불을 지폈죠.

'더 지니어스'에 등장한 일반인들은 대부분 남들 보다 잘하는 것이 많은 유명인들입니다. 그들 개개인의 능력은 결코 연예인에 비해 뒤쳐지지 않습니다. '폭풍저그'이라는 홍진호나 '황제 테란' 임요환도 '게임' 만큼은 그 누구 보다 탁월한 재능을 보인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천재들은 보통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로 비판받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러나 그 '사회성'이라는 게 거짓말과 담합과 절도를 저지르는 게임 능력을 의미하는 거라면 범죄형 소시오패스 말고는 어떤 천재도 성공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더군요.

물론 이 말은 지난주 탈락자인 홍진호나 이두희가 절대 선이고 이상민이나 은지원 등이 절대악이란 이분법이 아닙니다. 그들이 시청자들에게 보여준 '게임'의 룰이 여러모로 불쾌했고 잘못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스타 게이머 임요환의 SVC 벙커 러시는 당시에는 고정관념을 깨는 획기적인 공격으로 유명했습니다. 생산 유닛이 초반 공격을 해서 이기는 걸 보고 모두 열광했죠. 마찬가지로 순발력좋은 홍진호의 게임방식도 사람들이 열광시켰습니다. 꼼꼼한 작전과 아이디어로 이기는 것이야 말로 진짜 게임입니다.

임요환의 벙커 러시는 게임 규정 위반도 아니고 속임수도 아닙니다. 다만 생산유닛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관념을 깼기 때문에 신선한 것이죠. '더 지니어스'가 보여준 게임의 룰을 스타로 비유하자면 '절도'는 작전이라기 보다 게임을 보다 편하게 할 수 있는 불법 프로그램을 쓴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제작진은 이 모든 것을 '룰브레이커'라는 변명으로 넘어가려는 것같은데 '룰 브레이커'가 기본적으로 당연히 해서는 안되는 일까지 허락한다는게 뜻인가요?  그런 식이라면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묶어놓고 신분증을 빼앗는 패싸움도 가능해집니다.

지난주 탈락자인 이두희와 이번주 탈락자인 홍진호가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한번 더 배워야할 것이 있다면 다음에 참가할 땐 조유영처럼 '더 지니어스'에서 제일 잘나가는 멤버와 한팀이 되어야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이고 절도를 하든 폭행을 하든 무조건 상대방을 눌러야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두희에 대한 이상민의 욕과 씁쓸한 훈계처럼 어쩌면 세상이 그렇게 험한게 제작진과 출연자들에게는 당연할 수도 있겠죠. 그들이 의미한 '지니어스'의 뜻에 동의할 수도 없거니와 그런 꼼수도 못되는 삶의 방식을 직접 훈수두고 가르치는 '예능'은 절대 보고싶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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