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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에서 온 그대' 표절 논란, 강경옥 작가의 주장 어떻게 봐야할까?

Shain 2014. 1. 2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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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글을 쓰기전 일종의 경고를 적어야할 것같군요. 짧게 말하면 입장 차이가 무슨 뜻인지 모르는 사람은 이 논쟁에 끼어들지 말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길게 말하면 저작권법과 표절 판정이 작가냐 만화가냐 만화팬이냐 드라마팬이냐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충분히 생각하고 아류작, 모방, 리메이크, 표절, 모티브 차용 등을 따져보시고 진지하게 생각해달란 뜻입니다. 학술적으로 따지자는게 아니라 오마쥬와 패러디, 아류작과 표절이 잘 구분가지 않는 것처럼 이 문제가 소송 대상이 된 것은 드라마나 만화의 한 장면을 토씨 하나 안 틀리게 그대로 카피한 것이 아닌 이상 정확히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입장차이와 생각 차이가 중요한 문제라는 거죠.

강경옥 작가는 1월 28일 '별에서 온 그대' 표절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최종 입장을 발표했다.




그 다음은 우리 나라의 저작권법이 컨텐츠 저작자를 위한 것이지만 완벽하지 않다는 걸 파악하셨으면 합니다. 전에도 한번 글(링크 : '별에서 온 그대' 표절 논란, 강경옥 작가 입장차이 근거는 무엇인가)을 적었지만 드라마 작가와 SF 만화가 쪽은 첨예하게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입장 차이가 있습니다. 드라마 쪽은 같은 소재에 비슷한 전개방식을 가진 드라마가 동시에 제작되도 장면이 똑같지 않은 이상 '표절'로 소송하기 힘든 경향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닥터진(2012)'과 '신의(2012)'입니다.

두 드라마 모두 한 의사가 타임슬립으로 과거에 가서 활약한다는 구성으로 누가 봐도 아이디어 표절을 의심할 수 있는 사례였고, '닥터진'의 원작자 역시 표절 소송 의사를 밝혔으나 SBS 측에서 내용이 다르다며 법적으로 전혀 문제 없다는 견해를 밝혔고 드라마 방송시기가 약간 달라 소송 역시 불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도 SBS는 '닥터진'과 '신의'는 타임슬립과 의사, 로맨스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정도로는 표절이 아니라며 반박했던 걸로 기억합니다(자세한 기사는 링크 참조).

핵심 설정이 거의 같지만 내용이 달라 표절이 아니라고했던 '닥터진'과 '신의'.


우리 나라는 기본적으로 아이디어 도용을 표절로 보지 않는 사례가 많습니다. '신의'가 정당하게 '닥터진'의 판권을 사서 제작한 타 제작자의 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데도 저작권법은 그 부분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물론 법적 해석에 근거해 '신의'는 표절이 아니라며 옹호할 분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기본 설정이 같은 경우 원 아이디어 제공자는 손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이런 비슷한 사례는 공중파 방송의 케이블 예능 베끼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외국의 예능 포맷을 로열티를 주고 사오는 방송국에서 케이블은 아무렇지 않게 베끼곤 하죠.

애초부터 강경옥 작가의 표절 주장은 이렇듯 자신의 의혹이 저작권법 상 불리하다는 걸 알고 제기된 것입니다. 만화작가가 창작한 아이템에 대한 권리를 침해당했다는 부분은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다른 작품의 핵심 소재를 도용하거나 모티브 차용한 경우 보호받을 수 없는, 저작권법상의 맹점이 있다는 것이죠. 우연이든 의도적이든 사실관계는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지은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해 '광해군일기'가 같을 뿐이라는 입장과 '설희를 보지 않았다'는 쪽으로 답변하고 있습니다.










강경옥 작가는 왜 표절이라 생각하는가

우리 나라 저작권법이 강화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입니다. 불과 80, 90년대만 해도 우리 나라는 복제와 표절 천국이었습니다. 중국에서 한국 제품 '짝퉁'이 인기를 끈다며 유머란에 올라오는 경우가 많은데 80년대 우리 나라가 그랬습니다. 부끄럽게도 80년대 인기 만화는 일본 만화를 그대로 복제해 출판되는 경우가 많았죠. 1세대 창작 작가들은 자신의 창작품을 출간하려면 일본만화를 그대로 베껴오라는 만화출판사의 요구를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강경옥 작가는 1세대와 다르게 순수 창작으로 만화를 발표합니다. 그게 29년전입니다.

드라마 쪽도 일본 만화 표절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았는데 당시 꽤 유명한 인기 드라마가 국민들 사이에서 표절로 거론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80, 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사랑과 진실(1984)'과 '느낌(1994)'입니다. '사랑과 진실'은 한국과 영국이라는 배경만 다를 뿐 일본 만화 와타나베 마사코의 '유리의 성(1969)'과 기본 줄거리가 거의 같습니다. 이외에도 이 작가는 '사랑과 야망(1986)'도 '야망의 계절' 표절 의혹이 있었지만 일단 넘어가더라도 '사랑과 진실'은 보는 사람들 조차 찜찜했죠.

일드를 그대로 베껴 조기종영되었던 드라마 '청춘' 이 시기를 기점으로 통채로 베끼기는 사라졌다.


그리고 큰 인기를 끈 '느낌'의 경우 쇼지 요코(庄司陽子)의 '오빠는 누구(にいさまどなた, 1977)'를 완전히 베낀 드라마였는데 드라마 출연 배우들과 상의해 줄거리를 결정했다는 언론 홍보까지 해서 문제가 되었죠. 만화와 내용이 똑같은 완벽한 표절작이었습니다. 나중에 저작권을 샀느니 어쨌느니 뒷수습을 하긴 했던 모양입니다만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과 문화개방이 되지 않아 일본 만화나 컨텐츠는 쉽게 베껴도 뒤탈이 나지 않는 컨텐츠로 인식되곤 했습니다. 또 표절이 들켜 망신을 당하자 나중에 판권을 산 영화(산전수전, 1999)도 있습니다.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표절, 1999년에는 장동건 주연의 '청춘'이 일드 '러브 제너레이션'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조기종영했습니다. 일본문화 개방 이후였기 때문일텐데 이때부터 표절이 교묘해졌죠. 원작을 가져와 PD나 제작사 쪽에서 비슷하게 만들라는 요구를 하기도 하고 인기 아이템과 설정을 짜깁기하는 건 흔해졌습니다. 유사한 한두가지 부분 만으로 저작권을 샀다는 외국 사례와는 반대였던거죠. 법적으로 '표절'을 인정받은 케이스는 손에 꼽습니다. '여우와 솜사탕(2001)'처럼 아예 같은 장면이 있지 않는 한 소송 자체가 불리합니다.

SF 장르는 환생, 불로불사, 우주여행, 초능력같은 기본 코드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기본 코드가 많은 부분 유사한 작품을 '아류작'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불로불사와 환생이란 코드가 함께 사용되면 '진용(1989)'이나 '하이랜더(1986)'의 아류작이라거나 모티브가 같다고 볼 수 있죠. 이럴 때는 똑같은 코드의 작품이라도 어떤 소재를 이용했느냐 어떤 설정을 썼느냐 어디에 포인트를 뒀느냐가 작품의 차이를 만듭니다. 그 소재와 설정이 일정 부분 겹치면 작가는 당연히 표절 의혹을 제기할 권리가 있죠.

설정이 거의 같은 '배틀스타 갈락티카'와 '테라에'. 최초의 설정은 작품을 구분짓는 중요한 부분중 하나.


예를 들어 '스타워즈(1997)'와 '배틀스타 갈락티카(1978)' 경우 당시 유행하던 우주 여행과 외계 전쟁 등 많은 부분이 유사한 아류작이지만 두 작품의 결정적인 차이는 '배틀스타 갈락티카'는 인류의 고향인 지구(테라)로 돌아가는 여행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입니다. 이 핵심 포인트를 베끼면 당연히 의심을 받습니다. 덕분에 '배틀스타 갈락티카'와  타케미야 게이코의 '테라에(地球へ…, 1977)'는 한때 표절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자신들을 공격하는 인간과 싸우며 초능력자들이 지구로 돌아가는 내용이 '배틀스타 갈락티카'와 유사했습니다.

일단 두 작품 모두 워낙 오래된 컨텐츠이고 시기상 1977, 1978년으로 거의 동시에 발표되었고 요즘처럼 인터넷이나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시기라 고의는 없다는 쪽으로 팬들 사이에서 결론이 났습니다만 지금도 인간이 지구를 향해 여행한다는 SF 컨텐츠의 원조는 '테라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강경옥 작가는 광해군일기, 400년의 고독, 환생, 로맨스, UFO라는 소재와 설정을 자신이 최초로 결합시켰다는 것입니다. '광해군일기' 자체를 컨텐츠화 시킨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죠. 이 부분은 무단 도용이 일상화된 드라마판에 대한 반발이기도 합니다.






저작권법에 대한 인식과 만화가에 대한 무례

알게 모르게 한장면씩 여기저기에서 짜깁기 해서 베낀다는 의혹은 받지만 표절 판결은 받지 않는 이상한 현상. 이 현상의 기저에는 방송국의 권력과 시청률에 좌우되는 의식이 반영됩니다. 저작권법 판결 자체가 경제 논리로 흐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문에 표절에 대한 방송국의 도덕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고 상대적으로 만화작가가 약자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있는 것입니다. 시청자들 역시 베꼈던 아니던 재미있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런 논란을 지켜보는 경우가 많죠.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별에서 온 그대' 표절 논란을 보면서 제가 놀란 것은 핵심을 잘 모르는 분이 생각 보다 많다는 것, 그리고 기본적인 작가에 대한 존중을 갖추지 못한 댓글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강경옥 작가의 블로그는 엄청난 테러를 당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댓글 중 하나는 '다운로드 받아서 보던 강경옥 작가의 만화 파일을 지우겠다'는 내용이었는데 만화는 온라인으로 볼 수는 있어도 다운로드되지 않습니다. 그 네티즌은 스캔받아 불법으로 배포된 파일을 보고 '표절' 논란에 끼어든 것이죠. 이게 저작권에 대한 단적인 인식 수준입니다.

내용은 달랐지만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판타지를 빼앗겼다는 점에서 타격이 컸던 '바람의 나라'


콘텐츠 창작자가 몇가지 중요한 아이디어를 카피당하는 경우 그 가치가 저하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표절 시비에 휘말렸던 '태왕사신기(2007)'의 제작으로 인해 '바람의 나라(2008)'는 정작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판타지 설정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한번 제작되어 방송되었기 때문이죠. '태왕사신기'와 '바람의 나라'는 내용이 다르지만 영향을 끼쳤습니다. '설희' 역시 다른 컨텐츠로 제작될 경우 외계인과 광해군일기 하나 만으로도 비슷한 처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이디어, 소재 도용은 이런 식으로 실질적인 피해가 있지만 보호받지 못합니다.

박찬욱 감독이 '올드보이(2003)'와 '미녀는 괴로워(2006)'가 만화와 내용은 다르지만 기본 설정 때문에 판권을 샀다던가 하는 사례처럼 한국에서도 설정 하나 만으로 판권을 구매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때로는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의 내용대로 우연히 멋진 장면이 떠올라 연출했더니 그게 옛날에 영화에서 봤던 장면이더라 하는 그런 식의 우연한 겹치기(영화는 물론 표절 인생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도 있습니다만 그럴 때도 사과하는 것이 정착되는 추세입니다. 사소해 보여도 누가 오리지널이냐 하는 문제는 중요하다는 것이죠.

강경옥 작가의 블로그글대로 이 논란으로 책이 조금 더 팔린다고 해서 소송 비용 보다 더 큰 이익을 얻는 건 아닙니다(다운로드받는 사람이 저리 당당할 정도면 진짜 수입이 늘기나 할까요). 애초에 유명세를 위해 소송을 벌였다는 논란 자체가 무의미한 유명작가입니다. 이미 영화 컨텐츠 원작자로 순수 컨텐츠 제작자로서는 남부럽지 않은 유명세입니다. 의혹 제기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무시하지는 않아야 한단 뜻입니다. 아류작과 비교하고 역으로 표절 의혹을 제기한다거나 작가를 모욕하는 행동은 기본적으로 이 논란의 핵심을 모르는 것입니다.

불법 다운로드로 만화를 봤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당한 저작권법 토론이 가능할까?


이 논란과 관계되어 제가 SBS를 불신하는 이유는 전에도 말했지만 워낙 많은 드라마가 표절시비에 휘말렸다는 점이고 '따뜻한 말한마디'를 비롯한 인기 드라마를 제작, 방송중인 'HB엔터테인먼트' 역시 한때 '49일(2011)' 표절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논란의 중심이 된 '49일간의 유예'가 신화 팬카페에서 공유되던 팬픽이고 사람이 죽으면 49일 후 저승으로 간다는 민간의 이야기 때문에 오해한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49일'의 성공과 재미와는 별개로 완전히 같다고 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SBS와 HB엔터테인먼트 양쪽 모두 강경대응으로 반응이 똑같습니다. 자세히 따져보기 보다 힘가진 쪽임을 과시하는 이 태도가 만화작가에 대한 무례 만큼이나 강압적이죠. 이 문제는 결론적으로 한국의 컨텐츠 이용자들에게 법적 판단과는 별개로 저작권의 영역과 표절의 영역을 어디까지 보느냐는 질문을 던진 셈입니다. 아이디어, 소재 도용으로 인한 저작권 침해가 법적으로 문제 없으면 다 괜찮은 것일까요? 의혹을 제기할 자격도 없는 것일까요? 불법 다운로드로 만화가를 평가하는 저작권 인식 수준, 무조건 만화가를 무시하는 댓글 수준을 봐서는 앞으로도 비슷할 것같단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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