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스포츠에 대한 당연한 상식 '김연아는 김연아다'

Shain 2014. 2. 1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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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4년 마다 한번씩 열리는 올림픽을 볼 때 마다 궁금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올림픽은 특정 국가를 그것도 소련과 미국 단 두 나라의 나눠먹기 행사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80년에는 소련이 한번 84년에는 미국이 한번 올림픽을 따로 개최했던 만큼 두 나라는 마치 이데올로기를 겨루듯 메달 획득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80년에는 소련이 금메달 80개로 1위를 차지했고 84년에는 미국이 금메달 83개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88년 서울 올림픽에서는 소련이 다시 금메달 획득 1위를 차지하며 스포츠 강국임을 자랑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이후론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중국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같은 홈 어드밴티지 게임) 미국이 1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스포츠에 대한 당연한 상식 - 당신은 김연아입니다(출처 : 유투브 Olive Oh)

'특정 강대국에서 메달을 나눠먹으려면 뭐하러 올림픽을 하지?'

이 당연한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 스타 육성을 희망했습니다. 배고픈 운동선수들이 마음놓고 운동에 몰입해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지원하고 메달을 따면 연금과 군대 면제를 비롯한 각종 혜택을 주기 시작합니다. 예브게니 플루센코에게 피겨 개인전 출전을 강요하고 안현수 선수를 귀화시켜 역사상 처음으로 쇼트트랙 금메달을 딴 푸틴과 러시아처럼 적극적이고 강력하진 않았지만 최소한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확신히 생기기 시작합니다.

80년대 칼라 TV의 보급과 함께 불기 시작한 드라마 붐과 스포츠 중계 붐은 어쨌든 국가대표 선수를 육성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있고 이제는 한국도 메달을 딸고 올림픽

메달 획득 순위권에 오를 수 있는 경쟁력이 생겼지만 한때 스포츠 분야에 대한 '국가주의'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스포츠 게임을 게임으로 즐기기 보다 애국심을 강요해 특정 선수에게 부담감을 주는가 하면 성적이 나쁘면 대한민국 망신을 시킨다며 '공공의 적'이 되어 국가적 비난을 받는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박찬호와 박세리는 국가대표도 아닌 프로선수들이었습니다.

대중은 스포츠 스타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할 때는 환호하며 영웅 대접을 했

정치인은 그 이미지에 기대 덕을 보려고 앞다투어 그들과 악수를 나눴지만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하거나 부진한 성적을 보인 선수 혹은 현지 언론의 조롱을 받고 있는 선수에겐 '한국에 돌아오지 말라'같은 악담을 퍼붓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 현상은 비단 스포츠계에 한정된 것은 아니고 유명감독의 국제영화제 수상에 한국의 명예를 거론하고 여러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아들, 딸'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건 쉽게 볼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국적'이란 일종의 '팀' 개념과 점점 비슷해져 가고 있습니다. 연방 붕괴 이후 힘들어진 러시아는 국가주의를 고취해 단합을 강조할 필요가 있겠지만 우리 나라처럼 귀화와 국적 포기가 존재하는 나라에서 지나친 국가주의는 불합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논란이 된 E1의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라는 광고처럼

특정선수에 대한 응원을 넘어서 선수가 곧 국가라는 개념의 광고를 제작하는 것도 어떤 면에선 오버스럽습니다. 네티즌들이 지적하는대로 우리 나라는 김연아에게

빙상경기장 조차 지어주지 않은 나라인데 금메달 유망주가 되니 앞다투어 숟가락을 얹고

싶어합니다.

스포츠의 본질은 선수와 관객이 함께 즐기는 것에 있습니다. 때로 모두의 환호를 받으며 금메달을 딸 수도 있고 때로는 아쉽게 승부에 질 수도 있습니다. 한때는 스포츠 스타를 희망삼아 어려운 시기를 버텨오기도 했습니다만 메달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선수를 부담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같은 나라 선수를 응원하는 건 좋은데 그들에게 국가의 대표라는 걸 지나치게 강조하는 건 스포츠의 본질을 벗어난 행위가 아닌가 합니다. 적절한 국가주의는 스포츠에 힘을 주지만 본질을 넘어서면 독이 됩니다. 메달을 따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건 절대 당연하지 않습니다.


쇼트트랙 3000미터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여자선수들의 눈물. 그들의 부담감이 연상되어 안쓰러웠다.

덧붙여 김연아에게 금메달을 강요할 자격이 우리 나라에 있는가 하는 문제도 동시에 거론되고 있죠.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다 못해 개 이름을 딴 빙상장과 전용 경기장까지 갖춘 아사다 마오와 낡은 스케이트를 테이프로 칭칭 감아 써야했던 김연아의 처지는 우리 나라의 열악한 환경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국가의 책임은 메달을 딸만한 선수가 차려놓은 밥상을 덥썩 먹는게 아니라 빙상장이나 코치스탭, 대회참가를 비롯

한 기본적 지원을 확실하게 책임지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가 해준게 뭐가 있냐는 네티즌들의 지적은 전혀 틀리지 않았습니다.

어제 새벽 여자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딴 여자팀의 승리는 어쩐지 모르게 짠하더군요. 같은 민족, 같은 나라 사람이 고생해서 딴 메달이라서 그런것도 있지만 여자 선수 다섯명이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빙상연맹의 부조리로 안현수가 러시아 귀화를 선택할 수 밖에 없던 과거. 그 비난이 빙상연맹에 쏠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에게까지 비난이 쏟아진 건 확실히 과했습

니다. 그들이 엄청난 부담감에 경기 때 마다 속이 바싹바싹 타들어갔을 걸 생각하니 안쓰럽더란 말이죠.

국가주의는 분명 선수들의 승부욕에 큰 기여를 합니다. 그들이 이겨낸 힘든 시간에 축하를 보내는 건 인정입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지나쳐서

스포츠 자체를 즐기기 보다 금메달에 대한 강요가 되고

개인 보다는 국민의 열망을 먼저 생각하는 수준이 된다면 80년대 스포츠 경기를 빙자한 이데올로기 전쟁과 비슷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김연아는 대한민국'이라는 광고에 불편해하는 이유는 그것입니다.

'당신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김연아다'라는 패러디 광고는

어줍잖은 애국심에 호소하는 광고 보다 훨씬 공감이 가고 마음을 울립니다. 자신에게 최선을 다한 김연아가 진심으로 이 올림픽을 즐길 수 있도록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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