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문화 읽기

우리가 '김연아 논란'에서 잘못 알고 있는 세가지

Shain 2014. 3.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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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이냐 은메달이냐와 상관없이 김연아는 대한 민국의 수퍼스타입니다. 많은 스타들과 언론이 김연아의 은메달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했고 지금도 여러 네티즌들이 금메달을 되찾기 위한 재심사 서명을 진행중입니다. 어제 마지막회가 방송된 '별에서 온 그대'에는 '연아야 고마워'를 패러디한 '천송이 미안해'라는 검색어가 포탈 검색어 1위을 차지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고 하죠.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이 한국인들에게 서서히 잊혀지더라도 김연아는 피겨 스케이팅의 여왕으로, 방송인으로 대한 민국을 영원히 감동시킬 스타입니다. 러시아에서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팬싸인회와 CF 촬영을 비롯한 여러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군요.

해단식을 마지막으로 선수로서의 공식일정을 마무리한 김연아. 영원한 피겨의 스타다.




세계 피겨팬들이 김연아의 금메달을 되찾기 위한 서명운동에 동참했고 벌써 참여자가 이백만명이 넘었지만 ( https://www.change.org/ ) 안타깝게도 금메달은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여자 피겨 세계신기록을 달성하고 올포디움을 기록한 김연아라도 ISU 규정에 의거한 메달 수여는 뒤집기가 꽤 힘듭니다. 이번 소치올림픽으로 비난의 대상이 된 대한체육회와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 직접 전화했다는 일부 팬들의 글을 읽어보면 우리 나라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는 답변을 했으나 희망적이진 않은 듯합니다.

스포츠에서 심판의 판정은 절대적이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기에 축구, 야구를 비롯한 대부분의 스포츠는 심판이 오심했다고 판단될 경우 바로 이의 제기 절차를 밟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이의제기를 해도 규정에 따라 잘못된 심판의 판정을 채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스포츠에서 말하는 대부분의 이의 제기는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리듬체조, 피겨 스케이팅처럼 예술적 점수를 주관적으로 채점하는 스포츠의 경우 계산 착오가 아닌 이상 '이의 제기' 대상이 될 수 없고 훨씬 복잡한 싸움이 되고 말죠.

지금 대한 민국 TV와 신문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대한체육회와 빙상연맹이 왜 고심하고 있는지를 파헤치고 앞으로의 대책을 연구해야 했는데 언론은 아쉽게도 그 부분을 놓쳤습니다. KBS를 비롯한 공중파 방송이 아델리나 소트니코바 조롱에 열을 올릴게 아니라 피겨계의 편파판정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을 파헤쳐도 모자랄 판에 'PD 수첩'이나 '그것이 알고싶다' 같은 프로그램이 모두 침묵하고 있습니다. 김연아 금메달 논란에서 우리가 꼭 알아야하지만 잘 모르고 있는 세가지를 짚어 봤습니다.









첫번째, 금메달 다시 가져올 확률은 거의 없다.

김연아의 은메달이 이후 많은 피겨팬들이 제소를 외치며 서명운동 링크를 퍼날랐고 일부는 ISU에 직접 신청해야 이의 제기를 할 수 있다며 ISU 링크를 SNS로 퍼트렸습니다만 제소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집단도 연맹 뿐이고 서명운동이나 이의 제기, 제소가 공식적으로 큰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 사례로 금메달을 되찾을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한 언론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심판 양심선언'이란 사상 초유의 사태가 있었던 덕분이지 다른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 한마디로 딱 떨어지는 방법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거죠.

ISU에는 심판을 비롯한 빙상 경기 전반에 대한 규정이 영문으로 올려져 있습니다(링크 참조 : http://www.isu.org ). 김연아의 경기 이후 언론에서 24시간 안에 이의 제기를 해야하니 어쩌니 했던 것은 기술 점수 합계가 잘못 나왔다던가 뭐 그런 식의 오류를 정정해 달라고 항의할 때만 가능한 것으로 피겨 편파 판정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대한체육회가 추진하고 있다는 절차는 판정이 편파적이었다는 내용(윤리적 부당함)의 컴플레인이나 어필(제소, 항소) 절차죠. 이 어필 절차를 경기 이후 60일 이내에 추진할 수 있습니다.

ISU 회장 친콴타와 러시아는 규정에 따라 심판을 선발했다. 편파판정을 증명할 증거는?

한국이 어필(제소)을 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ISU 규정은 이 부분. 사례도 거의 없고 매우 어렵다.


우리는 편파 판정이란 확신을 갖고 이 일을 보고 있지만 ISU는 규정에 맞춰 올림픽 심판을 임명했기 때문에 증거없이 절차를 밟으면 일이 틀어집니다. ISU 규정은 올림픽 국제심판의 자격 조건 및 선발 조건 등을 자세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판 선발에는 개최국에게 추천권도 일부 인정됩니다. 러시아가 일년전부터 물밑작업을 했든 어쨌든 원칙에 맞으면 할말이 없게 됩니다. 콴친타가 발언한 것도 아마 그 내용일텐데 자격 조건에 맞는 사람을 추천해서 절차에 따라 선발했다면 그 부분은 고유 권한이란 이야기죠.

다만 계속 언급되는 심판의 '양심선언' 즉 부정을 고백하는 자백이나 ISU 규정에서 동시에 기재하고 있는 심판의 중립성 의무 즉 심사받는 선수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람이었냐 아니냐는 항소 이유가 될 수는 있습니다. 즉 '증거'를 가져가야한다는 뜻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한빙상경기연맹이 난감해했던 상황도 따지고 보면 이해가 가죠. 운이 좋아서 누군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자백을 하면 모를까 그럴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그래도 '한국 입장'에서 이의제기를 해야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능성이 낮아도 해야하는 상황이죠.




두번째, 언론의 소트코니바 조롱은 아무 도움이 안된다

최근에 언론에서 김연아 관련 외국 기사가 올라왔다고 하면 일단 원문부터 검색해보는게 일이 됐습니다. 한국 언론이 소설쓰기에 유난히 능숙하다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특히 '김연아 논란'에 대해서는 더욱 이성을 잃는 것같습니다. 아무래도 검색어 유입이 잘 되기 때문이겠죠.이전에 지적했던 '양심선언' 오역 문제는 외국에 알려질까 두려운 해프닝 중 하나였습니다. 영어할 줄 아는 사람이 몇인데 외국 뉴스 속 제보자가 김연아를 직접 심판한 심판인지 고위관계자인지 구분을 못하는 건지 생각할수록 부끄러운 언론도보였습니다.

며칠째 나방으로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소트니코바의 갈라쇼.


이틀전에는 미국 유명 칼럼니스트가 '피겨 편파판정, 1년 전부터 준비된 거대한 사기극'이란 기사를 올렸다는 내용이 대서 특필되었는데 자세한 내용을 읽어보니 이건 조작이 거의 사기 수준입니다. '야후 스포츠'에 컬럼을 올렸다는 AP통신 컬럼니스트 제시 헴즈(Jesse Helms, 원문보기)는 '야후 보이스'에 글을 올렸고 'AP통신'이 아닌 'AC'라는 뉴스 사이트에 글을 올리던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미국 피겨 전문 블로거로 보면 되겠죠. 소위 유명일간지라는 한국 신문이 기사의 출처를 위조한 것입니다.

소트니코바를 조롱하는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그닥 칭찬할 현상은 아닙니다. 피겨팬들이 소트니코바를 싫다고 하는 것과 언론이 그런 현상을 선동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입니다. 또한 김연아가 당한 편파 판정에 분노하는 네티즌 입맛에 맞춰 외국 기사를 각색하고 골라서 올리는 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피겨 약소국 김연아에 관심가진 사람들은 김연아 선수의 팬이거나 진짜 피겨팬들일 것입니다. 쉽게 생각해봐도 전세계인이 이 편파 판정에 분노하는건 아니란 걸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언론의 책임을 망각하다. 기분을 맞추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논란에 대한 분석 아닐까?


스포츠팬들이라면 선수를 테러하는 행위를 누구나 증오합니다. 편파판정으로 피겨가 스포츠가 아니라며 분노해도 소트니코바에 대한 테러에 관대한 세계 피겨팬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언론의 선동은 세계 여론을 적으로 돌리는 행위인 셈이죠. 한국이 김연아 재심사 서명운동과 대한체육회의 어필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이며 세계팬들은 이 일련의 사건을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 언론이 제시했어야할 해답은 소트니코바 조롱이 아니라 진실을 파헤치는 부분에 있다고 봅니다.

스포츠 선수들은 심사 결과에 승복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고 심판들은 당사자라 이 문제에 최대한 신중한 경우가 많습니다. 각 나라별로 입장이 다르겠지만 피겨 전문 저널리스트들은 선수들 보다는 자유로운 편이죠. 기본 미국의 유서깊은 언론사인 애틀랜틱(The Atlantic) 자회사인 'The Wire'에서 얼마전부터 'Figure Skating Problems'라는 항목을 신설했다고 하죠. 그 코너에는 편파 판정 의혹을 파헤친 분석기사들이 몇편 올라오고 있습니다. 저는 국내에서는 이런 분석기사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뭔가 방향이 한참 잘못되었단 생각이 들지 않나요?




세번째, 서명운동과 제소의 목적은 금메달이 아니다

김연아의 재심사를 청원하는 서명운동은 빙상연맹도 선수도 아닌 국민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책이었습니다. 외국팬들이나 한국팬들이 재심사 서명이 실질적으로 ISU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리란 걸 알면서도 추진한 건 그만큼 피겨 스케이트의 공정한 심판을 원한다는 뜻입니다. 일부 국가와 심판을 중심으로 좌우되는 피겨는 더 이상 스포츠도 아니고 공정한 올림픽 경기가 될 수 없습니다. 재팬머니에 휘둘려 룰을 바꾸고 국가의 압력에 휘둘려 심판을 조종하는 건 스포츠에선 있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김연아가 챔피언으로 있는 동안에도 이런 억울한 편파 판정 의혹은 있었고 앞으로도 이런식이라면 편파 판정은 늘 있을 것입니다. 김연아 뿐만 아니라 김연아의 후배들이 그 편파판정의 피해자가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피겨 스케이팅이 돈과 권력에 휘둘려도 별다른 대응을 못했지만 '김연아의 은메달'은 피겨계에 따끔한 일침이 필요할 때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전혀 변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평창동계올림픽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말란 법이 없죠.

김연아는 할 일을 다 했다 - 팬들이 줄 수 있는 선물은 무엇?


한국인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은 오역 기사 - 비록 양심선언은 없었지만 심판이 편향되어 있었음을 지적하는 USAtoday Christine Brennan의 글대로 피겨 스케이팅에서 채택한 익명의 심사 방식은 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의 제소가 비록 금메달은 되찾지 못하더라도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또 그로 인해 김연아가 편파판정에 희생되었음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면 그 역시 금메달 못지 않은 소득이라 봅니다. 금메달을 뛰어넘는 은메달이었음이 기록으로 남는 셈이니까요.

일부에서는 이 일로도 피겨계가 바뀌지 않고 여전히 채점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없다면 피겨를 동계올림픽에서 퇴출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저 역시 스포츠가 아닌 편파 판정은 올림픽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부분에 동감합니다. 결국 '김연아 재심사 서명운동'과 대한체육회의 제소는 김연아를 우리의 챔피언으로 아름답게 보내기 위한 마지막 매너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더불어 피겨를 동계 올림픽의 꽃으로 남게 하기 위해서도 제소 과정은 꼭 필요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금메달 되찾기를 목적으로 하는 것 보다 훨씬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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