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영화 이야기

'M.버터플라이'의 나비는 바로 이 사람

Shain 2010. 11. 17. 06:44
728x90
반응형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M. Butterfly(1993)'의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 지 모르겠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으로 대변되는 서양인들의 환상을 꼬집어야할 지 그것도 아니면 영화를 찍을 당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Jeremy Irons)의 아름다움을 말해야할 지. 어쨌든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개봉 당시 공개된 시놉시스를 두고 친구들이 떠들던 내용이 생각난다. 그들은 한눈에 봐도 남자임을 알아볼 수 있는 남자를 어떻게 여자로 착각할 수 있느냐 의심했고 동성애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던 시절이라 두 사람이 무슨 수로 연인 관계를 이어갔냐는 등 원색적인 잡담들도 주고 받았다.

영화의 내용은 글을 읽는 대부분의 분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 워낙 유명하니 영화의 내용이 같음을 알고 있다면 색다를게 없다. 중요한 건 화면이 끝날 때까지 이어지는 '사랑'에 대한 의문이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여주인공은 '가짜 사랑'에 버림받아 목숨을 놓아버린 여성이 아니던가.




M.버터플라이의 기본 줄거리

1964년 북경, 프랑스 대사관에서 회계사로 일하던 르네 갈리마드는 나비부인을 열창하는 경극 배우 송릴링에게 반한다. 기혼자로 아내가 있었던 르네는 점점 더 송릴링에게 빠져들어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지만 동양적인 가치관을 가진 송릴링은 연인임에도 르네 앞에서 옷을 벗지 않는 등 특이한 면을 보인다. 프랑스 대사관의 부영사관으로 승진한 르네는 자신의 아이를 낳았다던 송릴링과 헤어져 1968년 프랑스로 돌아간다. 중국은 문화혁명을 비롯한 격변기로 혼란한 시기였지만 송릴링은 르네를 찾아 프랑스로 온다. 어느날 갑자기 정보부에 체포된 르네는 자신이 사랑한 송릴링이 사실은 남자였으며 둘 사이의 결실이라고 믿었던 아이 역시 남남임을 알게 되고 송릴링에게 넘겨준 정보 때문에 스파이 죄로 법정에 선다.

이 영화의 실제 모델이 된 남자 프랑스인 버나드 부르시코(Bernard Boursicot)는 당시 상당한 놀림거리가 되었던 모양이다. 영화에서도 법정에 선 르네 갈리마드를 비웃는 검사와 법관이 등장하는데 아직까지 법정에서 촬영된 사진이 돌아다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사연이 기가 막히다고 생각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나 보다. 동양인이었다면 경극 배우의 여성 역은 남자가 맡는다는 걸 몰랐을 리 없을텐데 한국인 시각에서도 별스럽긴 하다.


법정에 선 버나드 부르시코와 스페이푸


영화 M. Butterfly에서 법정에 선 송릴링



20살에 미혼으로 북경에 가서 26살의 스페이푸를 만난 그는 1983년 체포될 때에야 그가 남자임을 알았고 충격에 자살을 시도한다. 스페이푸는 아들을 원한 아버지 때문에 남장을 하고 있지만 자신은 여자라고 했었고 버나드는 그 말을 믿었다고 한다. 스페이푸가 중국 정부의 위협을 받는다는 말을 듣게 된 후엔 스파이 활동에 협조하기도 한다.

극중 송릴링의 실제 모델이 된 경극 배우 스페이푸(时佩璞, Shi Pei Pu)는 2009년 6월 30일에 70세의 나이로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다. 1986년 스파이죄로 두 사람 모두 6년형을 선고받았지만 1년 뒤에 대통령명으로 특별사면된다. 사건이 심각하다기 보단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인 듯하다. 상대적으로 냉랭한 버나드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두 사람 모두 프랑스에서 살았고 스페이푸는 버나드 부르시코의 아이라 주장했던 입양아 스두두(Shi Do Do, 위구르인에게 돈을 주고 샀던 아기라 한다)와 여생을 보냈다. 죽기전에 버나드 부르시코를 만나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자신을 속인 남자에게 동정을 보이기도 싫고 용서하고 싶지도 않다는 버나드는 이제서야 짐을 벗은 기분이라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스파이로 활약한 경극 배우(时佩璞, Shi Pei Pu)



영화 주인공 르네 갈리마드가 보여준 사랑은 현실처럼 우스꽝스럽다기 보단 몹시도 절망스러웠다. 운명인듯 사랑에 빠졌고 지적이며 날카로운 예술인 송릴링의 동양적이면서 조심스러운, 그리고 수줍은 사랑법을 존중해주었던 르네는 그가 자신 앞에서 벗은 몸을 보여주지 않고 아이를 낳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음에도 의심치 않고 열렬히 사랑했다. 벗은 몸을 본 적 없지만 아이를 낳았다는 상황을 믿는다.

송릴링이 처음 만났을 때 비꼬는 것처럼 동양인에 대한,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에 빠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여튼 그는 자신이 사랑이라 믿은 감정을 무너뜨리려 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경극의 여성 역할은 항상 남자가 맡는다는 사실도 몰랐고 그의 목소리가 아름답지 않다는 주변의 평가도 듣지 않았다. 송릴링 역을 맡은 배우 존론(John Lone) 역시 완벽한 여자의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음에도 그는 의심하지 않는다.




'M.버터플라이'라는 영화 제목은 그런 의미에서 완벽하다. 푸치니의 오페라에서 미국 남자의 가짜 사랑에 푹 빠져 목숨을 버린 동양 여성 '나비 부인'은 사랑을 조롱받았다. 낯선 미국인과 맹목적인 사랑에 빠져 나비 부인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화에서 버림받고 사랑에 놀림당한 존재는, 진정한 나비 부인은 바로 르네 갈리마드이다. 제레미 아이언스의 나비 부인 분장은 우습다기 보다는 쓸쓸하다.

'Are you my butterfly?'
르네가 송릴링에게 애타게 구애하는 장면은 그저 사랑에 빠진 평범한 연인들처럼 보인다. 르네의 아내가 '나비부인' 왜 그냥 아름다운 노래로 듣지 못하고 의미를 부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하는 것처럼 그들의 사랑은 코미디도 불장난도 아닌 그냥 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버림받은 나비부인(Male Butterfly, Mr. Butterfly)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져 이미 복원이 힘든 상태이지만 말이다.


이미지 출처, 참고기사 :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