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근초고왕

근초고왕, 내실을 기하는 계왕 VS 정복자 근초고왕

Shain 2011. 2. 12.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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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의 가장 큰 재미는 이미 알고 있는 역사를 재해석해서 새로운 관점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입니다. 물론 'KBS 근초고왕' 경우는 사료도 충분치 않은 백제 역사를 창작해 그 시대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는 점이 추가됩니다. 그동안 각종 문화 영역에서 한번도 구현되지 않은 백제의 복식과 문화, 언어 등을 추측해 보는 것도 또다른 매력이라 할 수 있겠지요.

궁궐의 풍습이나 문화 등은 조선 시대를 연상하게 했지만 완벽한 시대 고증은 오히려 시청자에게 불편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고구려 고분과 그림에서 디자인된 완벽한 고구려 갑옷을 이상하다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고 왕의 의복 역시 고분의 그림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지만 우스꽝스럽단 평을 받았습니다. 중국 사서까지 뒤져 디자인된 백제 복식은 일본식이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것 뿐 아니라 '근초고왕' 첫 방영 시기에 '사료'에 의한 자료가 아닌 임의로 설정된 자료(완월당, 소숙당, 곰제 별궁, 안평전, 대부인, 초성리성, 사오리성)로 시청자들의 헷갈리게 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밝지, 어라하, 욱리하 등 이제는 드라마나 책에서 사라져버린 옛말을 다시 볼 수 있어 반가웠습니다. 주인공들이 사용하는 '아바님'이나 '어마님'이란 단어는 어쩐지 어색하지만 남당, 돌무덤 등으로 연출된 백제 문화와 나름 어울리기도 했지요.

그러나 무엇 보다 이런 '사극'의 재미는 나라를 운영하는 가치관, 정치관, 정책의 대립을 볼 수 있다는데 있습니다. 자신의 핏줄로 왕위를 잇고 싶어 비류왕(윤승원)을 암살한 계왕 부여준(한진희)은 백제를 효율적으로 통합하지 못하고 왕을 살해하는 악한 일을 했을 지언정 자신만의 철학이 뚜렷한 인물입니다. 고흥(안석환)을 총군사로 둔 요서군공 부여구(감우성) 역시 정복자로서의 주관이 선명한 인물이죠.



양웅불구립의 운명을 이어받는 부여구

양웅불구립(兩雄不俱立)이란 말은 말 그대로 두 영웅은 함께 설 수 없다는 뜻입니다. 두 개의 세력은 양립하지 않고 한쪽이 패하게 된다는 뜻도 됩니다. 고이왕계 후손 계왕과 비류왕의 아들 부여구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서로를 누르지 않고서는 백제 땅에 함께 살 수 없는 사이입니다. 계왕은 비류왕에게 빼앗긴 왕위 때문에 40년의 한을 곱씹었고 부여구는 아버지를 암살한 계왕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이들의 대립은 원한의 문제일 뿐 아니라 정치관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비류왕과 부여구는 고구려를 쳐 북방 정복을 원하는 정복형 가치관을 왕이었지만 계왕은 대방땅을 얻는 것보다 군사를 잃는 것이 더 안타까운 내실을 원하는 왕이었습니다. 정복을 위해 군사가 죽어갔다 지적하는 계왕 앞에 부여구는 대방땅을 얻어 비옥한 국토로 백제를 다시 일으키면 된다고 대답합니다.

물론 40년 간 왕위를 빼았긴 계왕의 사적인 원한, 분서왕과 책계왕이 한사군과 대립하다 비류왕에게 왕위를 빼앗겼던 과거를 의식해 계왕 부여준이 더욱 그런 생각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겠지만(그런 설정이겠지만) 계왕의 양자처럼 자란 재상 해건의 가치관도 북방, 해상 정복을 원하는 근초고왕과는 매우 다른 것으로 묘사할 예정이라 합니다.


초고왕통은 모두 전쟁을 원하는 인물들로 밭을 갈아야하는 장정이 전쟁에 동원되어 국가가 유지될 수 없었노라 비판하는 계왕의 말은 맞습니다. 반면 뒤웅박만한 백제를 끌어안고 왕노릇하면 백제가 강해지냐 댓구하는 부여구의 반박도 틀리지 않습니다. 백제는 수성만 해서는 고구려의 침략을 피할 수 없습니다. 북방으로 더이상 나아갈 수 없는 고구려, 비옥한 백제를 탐내는 사유(이종원)의 욕심은 필연적이기 대문입니다.

이러한 대립은 명분을 중요시하는 유학자 고흥과 실리를 중요시하는 아지카이(이인), 위비랑(정웅인)의 대립과도 맞물리는 양상입니다. 이들이 눈앞의 이익을 지향하는 자세는 부여구의 위대함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입니다. 회명에 온 비류왕을 죽여서라도 대방땅을 차지하려 하고 부여화를 인질로 내세워서 부여구를 이기고자 하는 사유와 부여준, 해소술을 살려 보내는 부여구의 대비는  드라마의 방향을 결정짓는 행동이죠.

해씨와 진씨의 장자인 해건(이지훈)과 진승(안재모)가 부모대의 대립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처럼 부여구 역시 위례궁과 같은 대립 양상을 보일 듯도 하지만 부여구의 운명은 비류왕의 운명을 한가지 더 그대로 물려받게 됩니다. 바로 제 1왕후와 제 2왕후를 두게 된다는 점이죠. 비류왕이 연인 진사하(김도연)을 두고도 해소술(최명길)을 제 1왕후, 백제의 태대부인으로 둬야했듯 근초고왕 역시 명망있는 백제 세력가 여식을 아내로 들여야할 것입니다.



제작진의 갈등 소식, 원만한 제작을 부탁

우리 나라 드라마 제작환경이 열악한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특수 분장과 소품이 필요한 사극 경우 더욱 그 부담이 가중된다고 합니다. 'MBC 짝패'를 제작하며 처음 사극을 접해본 배우 천정명과 이상윤이 수염 분장 때문에 우는 소리를 했다는 건 그만큼 힘든 환경을 증명하는 말이겠죠. 현대극에서 자주 활약하던 배우가 다수 사극에 투입되어 '근초고왕'의 첫방영시 걱정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촬영 일정을 하루 빼달라 했던 말에 불화가 생겼다는 최근 소식은 과거 '불멸의 이순신' 때 있었던 '선조역' 조민기 퇴출 사건이 떠오르게 합니다. 사극은 그 특유의 특성 때문에 유달리 경직되고 딱딱한 분위기에서 촬영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나라엔 사극의 대사톤이나 발성, 촬영에 익숙한 '사극 전문 배우'가 있는 것도 같지만 딱히 그 출연층이 두텁지 않은 느낌도 듭니다.


초반에 문제가 되었던 부여화 역의 김지수 퇴출 건, 흑강공 사훌 역의 서인석 퇴출 문제와는 다르게 주연배우의 퇴출 문제는 드라마를 종영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생각 보다 인기가 있어 방영 당일엔 검색자수가 2000명 넘게 증가하는 걸로 기억하는데 제작도 힘든 사극을 구설로 망치는게 아닐까 우려됩니다.

이 문제가 일부 사람들의 주장대로 출연배우나 제작진의 성격 탓인지 그도 아니면 열악한 제작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고질적인 문제인지 따져볼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급작스럽게, 위험하게 쪽대본으로 진행되는 드라마 제작 환경이 원인이라면 한사람 탓으로 돌리는 건 '생사람 잡기' 일 수 있습니다. 갈등이 해결되었다는 소식이 반갑고, 앞으로 좀 더 나은 드라마를 제작할 환경이 조성됐으면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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