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욕망의 불꽃

욕망의 불꽃, 백인기가 윤나영 보다 나은 점

Shain 2011. 2. 1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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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너무나 '드라마틱'해서 혀를 끌끌 차게 되는 주말극, 'MBC 욕망의 불꽃'은 의붓 아들을 재벌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친딸에게 함부로 구는 어머니 윤나영(신은경)의 악착같은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아들 민재(유승호)가 자신이 나영의 친아들이 아니란 걸 알게 된 이후 겉으로나마 평온하던 가정은 산산조각나고 대서양 그룹 가족들 사이에서 윤나영은 갈 곳이 없습니다.

친엄마 양인숙(엄수정)은 병으로 죽어버렸고 오너 김태진(이순재) 입장에서는 뻐꾸기가 아이를 남의 둥지에 맡겨 키우듯 나영에게 손자를 맡겨 성인으로 키웠으니 이제 볼일은 다 보았다는 심정일지 모릅니다. 총애하며 곁에 거두고 그룹을 물려받을 며느리로 대하는 듯 하더니 이제 시어머니 강금화(이효춘)와 한통속처럼 냉담하기만 합니다. 민재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나영은 백인기(서우)라도 떠나게 해야 합니다.


자신의 아버지라는 강준구(조진웅)이 살인자라는 사실에 양어머니 윤정숙(김희정)을 버리고 집을 나간 독한 아이 백인기는 미친듯이 자신을 괴롭히는 친엄마 나영 때문에 매일매일이 눈물 뿐입니다. 법적 동생이지만 피 한방울 안 섞인 민재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엄마처럼 모질게 세상을 상대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내 손을 잘라 반지를 가져가라'는 독설은 어떤 추문에도 끄덕 않는 나영을 꼭 닮았지만 엄마와 다른 인생을 살고 있기도 합니다.

딸의 출생도 외면하고 재벌가로 시집간 엄마 윤나영, 동서 남애리(성현아)의 불륜 장면까지 찍어 시댁에 뿌리려 하는 나영과 스스로 집을 나온 후 고아원을 전전하다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려 험하게 살았던 백인기. 백인기는 소속사에서 시킨 일이라면 누군지도 모르는 재벌 3세와 스캔들을 만들 수도 있고 가족같은 진숙(전세홍)의 뺨을 세게 내려칠 수도 있는 독종입니다. 어쩐지 그런 백인기가 자꾸 안쓰럽단 생각이 드는 건 버림받았기 때문일까요.



험난한 인생 역정, 그러나 윤나영과 다른 백인기

나영에 의해 인터넷에 섹스 비디오가 공개되고 배우 생활에 타격을 입은 백인기는 자신의 거칠었던 어린 시절은 단지 살기 위한 것이었다며 동정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버지가 살인자란 사실을 견딜 수 없어 자존심 때문에 양어머니를 떠났던 그녀인 만큼 '혜진'이란 아명을 버리면서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하지만 자신을 키워준 엄마를 미워하거나 증오하지는 않습니다.

정숙이 자신을 나영에게서 받아 버린 당사자란 걸 알게 된 이후에도 그닥 큰 증오를 보이지 않는 백인기는 나영의 표독스러움을 잘 알기에 미처 정숙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지만 애써 따뜻하게 키워준 양엄마를 원망할 까닭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윤나영이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는 아버지에게 무한한 증오를 보인 것과는 조금 다른 반응입니다(물론 숨겨진 사연이 있다고 주장하지만요).

두 사람은 얼굴이 똑같은 만큼 성격도 비슷합니다. 타인이 자신의 약점을 추궁한다고 해서 기죽거나 고개 숙이지 않고 오히려 더 거세게 고개를 빳빳이 듭니다. 섹스 비디오를 유출당한 후에도 당당히 기자회견을 열어 동정표를 얻어낸 백인기는 '그래 나 결혼 전에 애 낳았다. 증거를 대봐'라고 우기는 윤나영과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두 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누가 뭐래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민재의 존재입니다. 나영의 민재에 대한 사랑은 목적을 위한 것이니 민재 앞에서 '내 팔자' 운운하며 거짓 눈물도 흘릴 수 있지만 백인기는 민재를 위해 그를 떠날 생각을 몇번씩이나 할 만큼 희생적인 부분을 보이고 있습니다. 혈연이 아니니 그냥 둘이서 외국으로 도망치자고 해도 그만이지만 인기는 진심으로 민재를 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나영의 성공은 타인을 짓밟고 괴롭히고 모략해서 얻어진 것으로 양인숙과 영민(조민기)의 형제들이 나영이라면 이를 박박 갈 정도로 싫어합니다. 언니는 평생 결혼하지 않은 채 홀로 살아가는 운명이 되버렸습니다. 뒤늦게 찾아온 사랑 마저 나영의 시아주버니 영준(조성하)이기 때문에 맺어질 것이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부와 지위가 남을 기반으로 얻어진 것이기에 그래서 민재가 없으면 무너져 버립니다.

반면 백인기는 코디로 일하는 고아원 언니의 도움을 받았을 지언정 그녀의 성공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고위직 인물들과 거물들을 접대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기획사 사람들의 협박과 괴롭힘도 모두 견뎌냈습니다. 늘 그녀를 괴롭히는 윤나영만 아니라면 그녀는 스스로 최악의 배우가 될 일이 없는 성실한 여배우입니다. 타인에게 고의로 악행을 저질렀느냐 아니냐는 두 사람의 비슷한 성격이 다른 결과를 가져오리라 예상할 수 있겠죠.



나영 역시 인기처럼 버려질 수 있다

'버린게 아니라 죽은 줄 안 거면 마음이 더 편하냐'고 따지는 백인기는 나영에게 큰 걸 바라는 게 아닌 거 같지만 나영은 절대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인기에게 헐리우드에 진출해 민재와 헤어지라 종용합니다. 박덕성(이세창)과 딸을 낳으면 이름을 '재원'으로 지으려 했다며 종종 엄마의 정을 보이는 나영은 인기의 상처를 보듬어 주거나 헤아려줄 엄마는 아닙니다.

나영이 똑똑하고 주도면밀한 것처럼 김태진 회장 역시 너그러운 듯 하지만 계산이 치밀한 인물입니다. 양인숙의 존재를 미리 알고 영민에게서 떼어낸 것처럼 나영이 어떤식으로 영민의 아내가 되었는지도 모두 알고 있었지만 민재도 거두고 영민도 정신차리게 하려 모른척했던 것입니다. 민재를 잘 키웠다며 칭찬하는 듯 하지만 자식들의 유전자 검사 결과를 병원에 보관해둘 정도로 핏줄에 냉정합니다.


민재를 자신의 집으로 들인 김태진 회장의 속뜻을 두고 대서양 가족들은 나영이 아들을 뺏긴 거라 수근댑니다. 아들을 빼았고 허수아비 엄마가 된 나영을 가족에서 쫓아내기 위한 절차라는 것입니다. 김영대(김병기)는 민재가 인질이라 평가하고 차순자(이보희)는 시아버지는 한번 뺐은 인물은 절대 내놓지 않는다며 겁을 줍니다.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민재의 엄마는 언제 쫓겨나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반드시 피로 맺어져야 구성원이 될 수 있지만 한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처럼 금방 배신하고 다시 친해질 수 있는 이상한 관계, 나영은 그런 정글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버림받은 아이들은 언젠가 행복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바리데기 공주같은 백인기,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딱히 잘못한 것 없는 그녀의 인생이 불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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