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최고의 사랑

최고의사랑, 기자와 연예인의 어긋난 공생관계

Shain 2011. 6. 18.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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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연예란 기사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기사가 '웃자고 만드는데 죽자고 하네요'라는, 한 예능 PD와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였습니다.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예능 프로그램'의 잣대에서 봐달라고 요구한 그 발언을 읽으며 새삼 재미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최근 리얼리티쇼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강조하는 건 대부분 진실된 감정, 진정한 감동 같은 시청자들의 감성을 움직이고자 하는 그런 코드들이 많습니다. 상대방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연출을 해놓고 그 감정을 제작자인 내가 편하도록 조절해달라는 뜻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아예 프로그램 시작전에 '이 프로그램의 상황은 모두 극적인 장면을 위해 연출된 것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넣으면 본인들도 비난에서 자유롭겠지만 워낙 '리얼한 감동'이 시청률의 저력이고 보니 그런 친절한 안내를 넣는 일은 못할 거라 봅니다. 물론 시청자 입장에서도 그런 류 프로그램들이 연출되었음을 간파하고 받아들여야할 일정 부분 책임이 있지만 대중 매체의 특징상 받아들이는 쪽에서 만든 사람의 의중까지 분석해서 시청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TV의 별명이 바보상자라는 건 그래서 생긴 말이지요.

연예인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와 살기 위해 가족을 팔라는 조언을 받는 구애정

신문, 방송의 또다른 이름은 '언론'입니다.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대중의 특징을 의식해야하는 그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표현이기도 한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최근엔 기사나 뉴스 혹은 예능 프로그램이 등장하면 그 이면의 메시지를 읽으려 노력하기도 합니다. 특정 연예인 비난 기사가 나오면 '길들이기' 내지는 '트집잡기'가 아닌지 생각해 보고 어느 분야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현 권력자의 탄압은 아닌지 따져 봅니다. 그러나 '감정'을 자극하는 예능 프로그램까지 그 의중을 따져보기는 쉽지 않은 일이겠죠.

기자가 작성한 기사와 PD가 제작한 프로그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그 기사나 프로그램이 이슈화되면 그 이익을 보는 건 해당 기자와 PD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좋은 반응이나 좋은 이슈를 만들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시청자에게 반응이 과하다 훈계하는 건 무슨 경우인지 모르겠습니다. 드라마 '최고의 사랑(최고사)'은 특정 비호감 연예인을 취재하는 기자의 모습을 연출하며 그들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보여줍니다.

'커플메이킹'에 출연한 일반인에게도 왜곡된 기사가 등장한다

극중 구애정(공효진)은 같은 국보소녀의 동료였던 한미나(배슬기)의 임신과 유산 사실을 숨기고 강세리(유인나)가 한미나에게 장난을 쳐 유산시켰다는 사실도 숨기기 위해 국보소녀를 해체하고 홀로 기획사를 바꿉니다. 한미나의 뒤를 따라다니던 각종 스폰서 스캔들과 삼류 열애설은 모두 구애정의 몫이 되버리고 그녀는 10년 간 비호감 일순위 연예인으로 간신히 TV 출연하며 생계를 꾸려갑니다. 벌어둔 돈으로 아버지와 오빠가 사업을 했지만 망하는 바람에 월세집에 단촐하게 사는 그들의 가족은 구애정만 바라보는 처지입니다.

기자들은 그녀의 가십을 일일이 언론에 보도했고 극중 '커플메이킹'이란 프로그램에서 파트너였던 윤필주(윤계상)과 다른 연예인 때문에 헤어진다는 정보를 듣자 구애정을 비난하는 무차별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아예 죄인처럼 기자회견을 열게 만듭니다. 10년전의 일인 '국보소녀 해체의 내막'까지 파헤치는 그들은 인정사정을 보지 않습니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 독고진이 죽어간다는 걸 모르는 기자들은 그녀에게 무자비한 질문을 해대고 결국 구애정은 '죽으면 되는거냐'며 눈물을 쏟고 맙니다.

사람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과열된 취재 경쟁은 계속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펜대를 칼처럼 휘두르는 기자들의 행태를 보며 연예인과 기자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라며 동정할 것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 가십거리와 추문을 쏟아내주는 연예인 덕분에 기자는 월급을 받고 세세콜콜한 사생활까지 팔아주는 기자들 덕분에 연예인들 역시 자신의 지명도를 높이고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서로를 돕고 돕는 '공생관계'라는 건 분명한데 문제는 대중이 그들의 뜻대로 움직여주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많은 연예인들이 TV 안에서 속어로 '뜨기' 위해 비호감 이미지를 형성할 때 마다 눈쌀을 찌푸립니다. 혹은 사생활을 시시콜콜 거론하며 자신을 알리기에 급급할 땐 저러다 화장실 가는 것까지 카메라에 담을 기세다 싶을 때도 있습니다. 기자들은 연예인들의 의도를 마치 홍보 브로셔를 만들듯 기사화하고 대중은 그에 휘둘려 왈가왈부합니다. 한번 비호감으로 낙인찍힌 연예인은 좀처럼 그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고 사생활을 팔던 연예인은 최악의 순간에도 카메라를 피할 수 없습니다.

한 개인의 연애일 뿐이지만 죄인 추궁하듯 이어진 기자회견

드라마 '최고의 사랑' 작가들은 연예인들이 대중과 기자의 먹이가 되는 현상을 드라마 배경의 일부로 잡았지만 한 인간의 본질을 보아주지 않고 겉으로만 평가하며 괴롭히는 현상을 묘사하고 싶었을 거라 봅니다. 그들에게 칼날을 휘두른 책임에서 대중 역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이미지로 소비되는 연예인들인 만큼 자신에 대한 공정한 비판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무책임하게 내뱉은 욕설까지 받아야할 의무는 없기 때문입니다. 뫼비우스의 띠 위를 돌듯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그런 비극의 연결고리를 누군가는 끊어줘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이 연결고리를 과감히 끊을 수 있는 사람들은 '기자'라고 생각합니다. 구애정에 관한 기사를 쓰던 사람들 중 단 한사람이라도 그녀의 인성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이 있었다면 진정한 국보소녀 해체의 비밀이 궁금했던 '진실'을 추구하는 인물이 있었다면 최악의 비호감 이미지는 아마 벗어날 수 있었겠지만 그들은 같이 놀리며 비난할지언정 사실 관계는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독고진이 죽든 말든 구급차 앞을 떠나지 않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자신들의 의중대로 대중에게 비호감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다면 기자들의 진심에 따라 진실된 연예인의 본모습에 다가갈 수도 있을거라 봅니다. 정확한 기사가 필요했던 순간엔 침묵하고 호의적인 기사가 나와야할 그런 순간엔 악의로 받아치는 그런 모습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울고 있는 사람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모습은 이제 없어질 때도 되었다고 봅니다. 그릇된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를 이제는 바꿀 때도 된 것이 아닐까요. 조금 더 사람사는데 도움이 되는 화제를 추구하는 그런 정직한 기자들을 많이 보고 싶은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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