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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태왕, 4대강 사업 풍자한 고구려 수레길 사업

Shain 2011. 8. 4.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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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사료를 재해석해서 보여주는 정통 사극의 시대가 지나고 창작 사극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게 그렇게까지 비난할 일만은 아닌가 봅니다. 드라마 '짝패'가 조선 후기 악명높았던 포도청과 관리들의 부정부패, 그리고 민란을 연결시켜 현대사회를 조명했다면 '무사 백동수'는 현실과 다소 동떨어지긴 했으나 친청정책으로 왕세자 마저 무시하는 노론과 대결을 벌이는 사도세자, 그리고 정의로운 무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드라마 '계백'은 백제를 위한다는 미명 하에 자신들의 이익과 기득권을 사수하려는 백제 귀족들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죠.

정통 사극은 그렇지 않았지만 퓨전 사극은 현대극 보다 상황 설정에 자유로운 편이라 현대 사회의 대립 구도를 조금 더 편리하게 배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KBS 드라마 '광개토태왕' 역시 나라를 위해 뛰어다니는 왕자 담덕(이태곤)과 그런 왕자를 못마땅해 하는 국상 개연수(최동준)가 대립하며 몇몇 부분에서 현대 사회의 정치적 문제점을 되짚어볼 수 있는 에피소드를 선보이곤 합니다(물론 실제 역사완 전혀 상관없는 등장인물과 내용입니다).


후연과의 대립 중 담덕을 죽게할 뻔 했던 개연수는 담덕을 어떻게든 제거하거나 나라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도록 해야합니다. 그런 속사정을 알지 못하는 담덕의 아버지 고국양왕(송용태)은 국상과 신료들의 말, 그리고 둘째 왕자인 담덕을 골고루 들어본 후 증거가 확실하고 타당한 주장에 손을 들어주기 때문에 담덕이 아무리 억울해도 아버지의 도움을 바랄 수 없는 처지입니다. 국상은 나라의 많은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입장이기에 많은 면에서 담덕 보다 유리합니다.

담덕은 죽을 뻔한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 동료들의 도움으로 살아난 적이 있는데 신분이 미천한 그들이지만 함께 했던 그 나날을 잊지 않고 친구라 칭하며 '천군'으로 만듭니다. 천군은 담덕이 공을 세우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고 담덕은 그들과 함께 왕궁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천군의 수장인 황회(김명수)는 과거 이춘성에서 횡령 혐의를 뒤집어쓰고 도망친 인물이었고 개연수는 그 부분을 놓치지 않고 지적해 담덕을 공격합니다. 황회는 고구려의 '국책' 사업이 진행되는 도중 죄를 짓고 도망친 인물이라 합니다.



국책 사업을 통해 재산을 늘리는 관리

개연수가 지칭하는 국책 사업의 명칭은 '수레길 사업'입니다. 이 수레길을 통해 고구려는 전국 어디든 빠르게 다닐 수 있게 되고 아래로는 백제와 신라 위로는 후연과 말갈, 거란, 중국까지 교역을 할 수 있게 되어 경제적으로도 큰 이익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계필(선동혁)의 지적대로 이 사업을 위해 나날이 국고 소비가 늘어가고 고구려의 재정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백성대로 지쳐가고 있기 때문에 문제거리입니다.

개연수는 모자란 국고는 후연이 약속한 전쟁 배상금을 받아 채우겠다고 주장하지만 후연은 왕자 모용보(임호)의 계략으로 그 돈을 갚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한마디로 사업은 시작했으니 어떻게든 완성은 해야하는데 아무리 쥐어짜도 돈나올 구석이 없고 다른 사업에 이용할 돈까지 빼서 써야할 지경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3년전에는 수레길 때문에 생계의 터전을 떠나야했던 백성들, 즉 요즘 말로 하면 철거민들이 한푼의 이주비도 지원받지 못하고 쫓겨날 뻔 했습니다.

수레길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계필과 장점을 강조하는 개연수


이춘성의 성주 가렴(김하균)은 수레길 사업을 위해 지원된 돈을 몰래 빼돌리고 있었습니다. 사업 때문에 이주해야하는 백성들을 위한 돈도, 공사장에서 일하는 백성들의 임금도 지금하지 않고 악착같이 사업을 진행한 가렴은 백성들을 때리기까지 하는 악마같은 관리지만 국상 개연수에게는 자신의 사업을 충실히 실행하고 세금도 잘 내는 착살한 인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개연수는 큰 사업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자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가렴은 조정 대신인 가라지(오욱철)의 동생이기도 합니다.

이춘성 성주의 이름이 가렴이라는 건 참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한자성어 중에 '가렴주구(苛斂誅求)'란 표현은 세금을 가혹하게 거둬들이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는다는 뜻입니다. 그 표현 그대로 성주 가렴은 국책 사업을 핑계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큰 공사가 진행되면 그 떡고물을 뺏어먹는 중간 관리자가 생기는 법인데 가렴이란 등장인물이 바로 그런 인물입니다.

백성을 공사현장으로 내몰고 학대하는 가렴


극중 황회는 그런 가렴에게 반발하여 이주할 백성들에게 지급되었어야 할 재물을 모두 가져와 나눠주었고 그 때문에 횡령죄를 뒤집어 쓴 것입니다. 가렴은 그것으로도 모자라 황회의 무죄를 증명해줄 수 있는 백성들을 학살하기도 합니다. 수레길 사업의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도 모자라 잘못을 지적하는 백성들의 입 마저 막아버리려 무력을 이용한 것입니다. 백성들의 힘으로는 내부고발자 황회 한사람의 목숨도 지켜줄 수 없었습니다.

이 '수레길 사업'은 현대의 4대강 사업, 즉 대운하를 연상시킵니다. 국고를 무리하게 편성한 사업은 문제가 많을 수 밖에 없는데 정부는 그 부분을 쉬쉬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다른 명목으로 예산을 늘인다고 하더군요. 또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내부고발자(초기의 연구원) 들이 힘든 일을 겪었던 적도 있었지요. 최근 4대강 공사업체로부터 국토해양부 직원이 향응을 받았다는 기사도 이미 언론보도된 상태입니다. 큰 규모의 사업을 빨리 진행하려다 보니 무리수가 생길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 많은 부분 유사합니다.



문제를 해결한 건 결국 백성들의 힘

극중 담덕 왕자는 황회의 구명을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이춘성 가렴의 비리를 캐보려 합니다. 그렇게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담덕이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두려웠던 가라지 등은 어떻게든 빨리 황회를 처벌하여 위기를 모면해보려 합니다. 그때 나타난 것이 황회 덕분에 재물을 받아 멀리 이주한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세세히 설명하고 자신들을 살려준 황회를 살려달라 간청합니다. 죽을까 두려워 멀리 도망쳤던 그들이 다시 돌아온 덕분에 황회는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목숨을 건졌습니다.

황회를 살리려 나선 백성들과 왕자 담덕


이 드라마를 간간이 보고는 있습니다만 지나치게 남성적인 묘사를 강조하는 내용이라 집중하기는 힘든 편입니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배우들이 강약이 있는 대사를 하기 보다 톤이 일정한 강렬한 대사를 계속하는 까닭에 질리는 면도 있구요. 그런데 이렇게 극중에 현대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이 들어가니 제법 흥미롭기도 하고 정통사극이 사라진 시대에 사극이 이런 역할 마저 하지 않는다면 무슨 재미겠냐 싶기도 합니다.

큰 줄거리는 사서를 따르고 있긴 하지만 드라마 '광개토태왕'의 이야기는 대부분 창작된 내용입니다. 다음주에는 가상의 왕자, 담덕의 형으로 등장하는 담망(정태우)과 담덕이 갈등하는 내용이 그려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애국심이 남달랐던 고구려의 재상이 왕자를 죽이기 위해 편협한 마음을 드러내다니 황당하긴 합니다만 사서 속 역사와 현실의 아슬아슬한 경계, 어떻게 끄집어낼 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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