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공주의남자

공주의남자, 세조의 쿠데타 정말 가족을 위한 것일까

Shain 2011. 9. 1.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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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공주의 남자'에서는 극중 여리(민지)가 온녕군(윤승원)을 '온녕대군'이라 지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극중 세령(문채원)은 수양대군(김영철)의 숙부뻘이자 태종의 셋째아들인 온녕군을 '대군'이라 부름에도 정정해주지 않고 오로지 김종서의 며느리와 손녀딸이 무사한지만 신경씁니다. 처음은 잘못 들은 건줄 알았는데 두번에 걸쳐 '대군'이라 부르는 걸 보니 작가의 착오가 아닌가 싶습니다. 태종 이방원에게 '대군'이라 불릴 수 있는 아들, 즉 적자는 양녕, 효령, 충녕 셋 뿐이고 그중 충녕은 수양대군의 아버지인 세종입니다.

왕의 적자로 태어난다고 해서 모두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장자 상속으로 국가의 기반을 굳건히 하려 했기에 둘째 이상의 왕자들은 왕이 되길 바라기 보다는 오히려 장자인 형에게 목숨이 위험해지지 않을까 숨죽이고 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조선 초기 세조 시기까지는 왕족들이 정치에 관여하고 발언권을 가지는 등 왕족들이 눈치 보지 않고 권력을 누리며 살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태종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수양대군 세조가 안평, 금성대군같은 동생들과 알력 싸움을 하는 등 왕족끼리의 다툼이 그래서 가능했던 것이죠.

어쩌다 보니 온녕군이 수양대군 또래처럼 보이는군요. 수양대군, 온녕군, 금성대군, 의경세자.

조선 초기의 왕족들은 자식을 정말 많이도 낳았습니다. 태조 이성계의 자녀가 8남 5녀, 정종은 15남 8녀, 태종은 12남 17녀, 세종은 18남 4녀 등으로 누가 삼촌이고 누가 사촌이고 누가 조카인지 구분도 안갈 정도로 많이 낳았습니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자신의 두 동생을 차례로 죽여갈 때도 남은 형제들이 수양대군편, 아닌 편으로 갈라싸웠다고 할 정도니(임영대군같은 인물은 수양의 편을 들고 혜빈 양씨의 아들들은 단종편) 정말 종친의 숫자가 엄청났던 것같습니다.

그러나 왕족의 숫자는 세조를 기점으로 점점 줄어들어 이후엔 대부분의 왕들이 적자를 많이 낳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성종(이분은 정말 많이 낳았죠), 연산군, 중종, 인종, 명종까지는 그래도 어렵사리 적자로 왕위를 이어갔는데 명종 이후엔 그나마 대가 끊겨버립니다. 명종과는 조금 핏줄상 거리가 있는,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의 후손인 선조가 왕위에 오르게 되니 장자 상속, 적자 상속은 꿈같은 일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조선 초중기엔 후궁의 자손이라도 많았는데 후기에는 그마저 줄어들어버립니다.



수양대군의 쿠데타는 가족들을 보호했을까

한 나라가 세워지고 나면 개국 공신들이 권력의 한 끝자락을 쥐게 마련입니다. 갖은 고생을 하며 왕과 함께 수고를 했으니 그 정도 은혜는 입어도 될 것 같은데 현명한 왕이라면 왕권 강화를 위해 장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한편 은근슬쩍 힘을 나눠가지기 시작한 공신들을 하나 둘 처단하기 시작합니다. 하늘 아래 권력을 가진 자는 하나 밖에 없어야 왕으로서도 나라를 다스리기가 편한 법이죠. 나라가 세워지면 신권과 왕권의 경쟁 구도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둘중 어느 하나가 지나치게 부흥하면 그 균형이 깨져 나라가 멸망해버리기도 합니다

백제, 고구려, 신라, 고려, 조선 등 한국땅에 세워졌던 많은 나라들은 후반기에 모두 귀족들 혹은 양반층의 힘이 지나치게 강성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왕권이 무너져 신하들의 힘이 지나치게 커져버렸고 아무도 그 힘을 견제할 수가 없어진 것입니다. 백성들로서는 절대 왕권의 독재도 별로겠지만 신하들의 입김이 너무 쎄서 왕을 쥐락펴락하는 것도 반가워할 일이 아닙니다. 피지배층 입장에서는 두 세력이 서로를 견제해 백성들의 눈치를 봐야 진정한 태평성대라고 할 수 있겠죠.


조선 후기에도 숙종, 영조, 정조를 비롯한 강력한 왕권을 휘두른 왕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숙종이 인현왕후와 장희빈을 이용해 남인과 서인을 조종했던 일이나 영조가 노론의 항의로 인해 아들까지 죽여야 했던 상황, 정조가 독살설에 휘말리는 최후를 맞은 일 등으로 볼 때 '절대 왕권' 때문이라기 보다는 뛰어난 능력으로 신하들을 잘 지휘했다고 보는 편이 맞는 듯합니다. 사실, 수양대군이 조카를 왕위에서 밀어내고 스스로 왕위를 차지했을 때 이미 왕족의 권위 따윈 무너졌다고 보는게 옳치 않을까요.

극중 수양대군은 '지금 옳치 않은 일이 이후에도 옳은 일이 될 수 있겠느냐'는 딸 세령(문채원)의 질문에 마음이 아프다고 답을 합니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두고 갖가지 명분을 내세웁니다. 김종서가 수양대군을 위협했느니 단종의 왕권이 약해 왕족이 위험했느니 여러 핑계를 대지만 결과적으로 '권력'을 위해서는 왕을 몰아내는 쿠데타도 할 수 있다는 전례를 남긴 것에 불과합니다. 수양대군이 세조로 등극한 후 곧 공신들이 조정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예종, 성종을 이어 연산군 대에는 신하들이 왕을 쫓아내는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수양대군을 왕위에 올린 신숙주 등의 공신들은 갖가지 특혜를 얻었다고 합니다. 관직을 매매하거나 죄를 지어도 처벌받지 않는 면죄 특권, 대대로 세습할 수 있는 공신전이나 세금을 대신 납부하게 할 수 있는 권리 등 갖가지 이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세조 후기에는 왕권 보다 한명회 등의 권력이 더욱 강력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수양대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해양대군, 예종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당연히 이들의 권한을 손대지 않고서는 제대로 정사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가족을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수양대군, 그의 둘째 아들 예종은 단호하게 세조의 공신들과 맞서고 그들을 제거하기 위해 애썼지만 즉위 13개월 만에 19살의 젊은 나이로 죽고 맙니다. 죽고 나서 시신에 변색이 있었다는 이유로 예종이 독살되었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결국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한 수양대군은 현덕왕후의 저주로 큰 아들 의경세자(덕종으로 추존된 인물, 성종의 아버지)를 잃었다고 했지만 저주 때문이 아니라도 자신의 업보 때문에 천벌을 자초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족을 위해 계유정난을 일으켰다는 말은 어리석은 말이었던 셈이지요.



안타까운 금성대군과 정종의 음모

극중 경혜공주(홍수현)는 남편 정종(이민우)을 설득하여 수양대군을 암살하려 합니다. 또다른 수양의 형제인 금성대군(홍일권)이 총통위의 군사들을 동원해 음모를 주도하는 것으로 등장합니다. 단종(노태엽)의 곁을 지켜주던 또다른 왕족이 목숨을 잃을 순간이 다가온 것이지요. 교활하고 용의주도한 수양대군과 한명회(이희도)는 신숙주(이효정)의 아들 신면(송종호)과 세령의 결혼식날 암살이 있을 것이라는데도 그리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미 권력에 눈멀어 인간으로서의 도리는 저버리고 만 것입니다.


세령은 아버지에게 깊은 원한을 품은 김승유(박시후)를 보며 살아 있어 다행이라며 반가워합니다. 경혜공주는 아직까지 정종의 사랑을 다 깨닫지도 못했는데 금성대군의 사건에 연루되어 두 사람은 곧 이별을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커플 모두가 죽느냐 사느냐의 위기를 겪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어서 빨리 경혜공주가 사랑하는 마음을 깨닫길 바라게 될 뿐입니다. '금계필담'에 해피엔딩이 적힌 세희 공주 이야기와 달리 경혜공주의 이야기는 비극 뿐이라 더욱 안타까운 것이겠지요.

경혜공주와 정종의 긴 이별이 다가온 이 때, 김승유와 세령은 원수로서 다시 만났습니다. 세령을 납치해 수양대군의 목숨을 노리려는 승유의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겠지만 최소한 신면과 세령의 혼인은 막을 수 있게 되었네요. 두 사람이 다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기회도 되었단 뜻인데 주변의 상황이 워낙 껄끄러운 까닭인지 어쩐지 둘의 비극적인 만남이 반갑지만은 않기도 합니다. 계유정난의 피바람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곧 사육신들의 죽음이 등장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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