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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습니다. 그 내용에 따라서 로맨스, 액션, 의학 등의 주제물도 있고 배경에 따라서는 SF, 사극 등으로 분류될 수 있는 드라마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식으로 드라마 장르가 세본화되고 다양한 것 같아도 따지고 보면 드라마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TV 속으로 옮긴 것에 불과합니다.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고 갈등하고 어울려 살아가는 과정을 기록한 이야기, 역사 보다 파란만장한 드라마는 세상에 다시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시청자들이 그 어떤 장르 보다도 사극이란 장르에 환호하고 반가워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요즘 '사극'은 실제 역사를 반영하고 재해석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현대사의 다양한 장면을 과거라는 배경 속에 녹아들게 하기도 합니다. 어떤 드라마들은 뉴스의 한장면을 드라마로 옮긴 듯 신기하게 현대사회를 풍자한 것처럼 느껴져 시청자의 흥미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고대사에 빗대어 권력이나 정치의 속성을 사실감있게 묘사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시청했던 '선덕여왕'이나 '로열패밀리'에서 갈등하는 우리 나라의 정치권을 연상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방영되는 드라마 '계백'의 주인공들은 복수를 꿈꾸는 세 젊은이들입니다. 어머니 선화황후가 신라의 공주였다는 이유로 자결하자 의자왕자(조재현)은 백제의 황제가 되어 사택씨들을 몰아내겠다고 다짐합니다. 귀족들이 그를 '반쪽이 왕자'라 부르며 조롱하지만 의자는 어떤 수모라도 참아내고 다음 왕이 될 것입니다. 은고(송지효)는 백제에 충성을 바친 아버지가 옳은 말을 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자 사택황후(오연수)의 최측근이 되어 언젠가 그들을 몰아내리라 마음먹고 있습니다. 은고 역시 복수를 위해서라면 원수 사택적덕(김병기)에게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며 모든 걸 참고 견딥니다.
반면 아버지 무진(차인표)이 의자왕자의 손에 죽고 노예로 살아야했던 계백(이서진)은 두 사람의 지루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복수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원수란 아버지를 죽게 한 사택황후 뿐입니다. 그 원수 한사람을 죽이면 그만이지 시간이 걸려 권력을 차지하고 사택씨들까지 밀어내려는 은고와 의자왕자가 못마땅합니다. 원수들의 뿌리까지 갈아엎고자 하는 은고와 의자의 말도 맞지만, 단 한사람을 응징하면 된다는 계백의 말도 틀린 건 아닙니다. 다만 사람은 한치 앞도 예상하지 못하는, 완전무결하지 못하고 흠많은 존재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무진의 복수를 위해 사택황후의 궁으로 잠입한 계백은 단순한 것 같지만 확고한 복수관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바로 그 사람을 죽이면 복수가 끝난다는 그 앞에 은고는 그것이 복수의 전부가 아니며 사택황후를 죽여도 또다른 사택황후는 태어나게 되어 있다고 설득합니다. 왕의 존재를 무시하고 백제의 모든 권력과 이익을 장악한 대성팔족의 성격상 황후는 궁극적인 복수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일부이기도 하단 뜻입니다. 정치적인 갈등 속에서 은고의 가문이 몰락하고 의자의 어머니가 죽어가야 했으니 그 말은 분명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복수는 왕족으로 태어난 의자와 타고나게 야망이 컸던 은고의 개인적 야망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 복수이기도 합니다. 부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택씨들을 무너지게 하거나 복종하게 하는 복수를 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야망을 성취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더우기 의자왕자는 타고나기를 선화황후와 무왕(최종환)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그들을 이기지 않고서는 왕이 될 방법이 없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도 왕이 되는 복수를 택할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옛속담에 이르기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라'고 했던가. 두 사람은 철저히 사택황후의 사람들처럼 살아갑니다. 남들이 아무리 손가락질해도 바보처럼 호색한 노릇을 하는 의자왕자는 사택황후의 예리한 눈길을 피해 아우와 계모에게 효성을 다하는 사람처럼 굴욕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은고는 사택황후의 최측근으로 또 가장 믿을 수 있는 존재로 신임을 얻고 결국 사택씨 집안의 양녀가 됩니다. 황후의 여동생이자 사택적덕의 딸로 살아가고자 맘먹는 은고는 싫은 내색을 온전히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스스로를 다스리고 다스립니다.
사택황후와 의자왕자, 은고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처럼 보이고 서로를 경계하는 적이지만 세 사람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순수한 백제 왕족의 혈통을 위해 또 외세를 백프로 배척하기 위해 신라혈통의 의자왕자를 제거하겠다는 사택황후와 위제단은 살인도 서슴치 않는 무서운 사람들이지만 자신들의 목적 즉 '백제를 위한다'는 명분이 그들을 정당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는 극우주의자들입니다.
비록 '복수'와 '백제'라는 다소 정당한 영분을 갖고 있긴 하지만 의자왕자와 은고 역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점에서는 사택황후와 마찬가지 선택을 한 셈입니다. 아무 여자의 잠자리에 뛰어들 수 있고 친어머니의 위패 마저 불태울 수 있다는 의자와 원수를 언니라 부르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은고의 선택은 그들의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수 밖에 없습니다. 즉 권력을 가진 후의 그들은 자신이 꿈꾸던 복수가 모두 끝난 그날, 상처뿐인 자신들 이외에 적과 꼭 닮은 모습을 가진 자신들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사택황후가 무진과의 사랑이 어긋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살인 마저 망설이지 않는 무서운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무진을 말에서 떨어지게 한 말관리자를 단칼에 베어버린 그녀는 결국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사택황후가 '위제단'을 거느리며 백제를 호령한 것과 마찬가지로 은고 역시 아직은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백제의 비밀 집단 '여명단'을 거느리는 통수자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 등장한 인물인 신녀(이태경)과 은고를 키워준 영묘(최란)가 여명단을 꾸린 이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사랑과 정치적 운명은 사택황후의 현재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 보입니다.
쌀에 모래를 섞어 배급했다가 군인들의 반란을 샀다는 내용, 실제 역사에 기록된 '임오군란'은 중전 민씨와 그 일파들의 횡포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습니다. 명성황후는 그 일로 인해 궁궐을 벗어나 도망가는 일까지 겪게 됩니다. 나라를 위해 일한 사람들의 임금까지 착복할 정도로 조정이 썩었다니 또 그를 항의하는 사람들을 군사적으로 협박해 무마하려 하다니 세상이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이지요. 조선 후기의 지도층은 망하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로 썩어 있었고 드라마에서는 그 부분을 유사하게 처리한 것 같습니다.
자신들과 고통을 함께 한 생구들의 죽음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계백과 성충(전노민)은 그들과 합류하게 됩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사택황후와 귀족들로 인해 신음하는 백성들의 눈물도 함께 보게될 것입니다. 나라가 썩어 있으면 지도층이 미쳐 있으면 백성은 피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처음 사택황후와 맞서려 했던 것은 복수 때문이었지만 그가 그들을 무너트리겠다 마음 먹는 계기는 이 사건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은고나 의자왕자와는 '복수'의 근원이나 출발점, 방법이 다르다고 볼 수도 있겠죠.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망해가는 나라, 또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진 나라 백제이니 왜 저 영웅이 그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희생해야 하는지 안타깝기도 합니다. 무모해 보이고 대가없어 보이는 그런 일에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라지만 그런 영웅이 탄생하는 과정은 못내 안쓰러울 것 같거든요. 또 은고와 의자가 복수에 성공하고 난 후 계백의 '적', 또다른 의미의 대립 구도를 형성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물론 일단은 생구들의 반란에서 살아나야 가능한 이야기겠지만요. 다음주를 기대해 봅니다.
* 이 글은 드라마 '계백' 홈페이지에 동시게재됩니다.
요즘 '사극'은 실제 역사를 반영하고 재해석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현대사의 다양한 장면을 과거라는 배경 속에 녹아들게 하기도 합니다. 어떤 드라마들은 뉴스의 한장면을 드라마로 옮긴 듯 신기하게 현대사회를 풍자한 것처럼 느껴져 시청자의 흥미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고대사에 빗대어 권력이나 정치의 속성을 사실감있게 묘사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시청했던 '선덕여왕'이나 '로열패밀리'에서 갈등하는 우리 나라의 정치권을 연상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방영되는 드라마 '계백'의 주인공들은 복수를 꿈꾸는 세 젊은이들입니다. 어머니 선화황후가 신라의 공주였다는 이유로 자결하자 의자왕자(조재현)은 백제의 황제가 되어 사택씨들을 몰아내겠다고 다짐합니다. 귀족들이 그를 '반쪽이 왕자'라 부르며 조롱하지만 의자는 어떤 수모라도 참아내고 다음 왕이 될 것입니다. 은고(송지효)는 백제에 충성을 바친 아버지가 옳은 말을 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자 사택황후(오연수)의 최측근이 되어 언젠가 그들을 몰아내리라 마음먹고 있습니다. 은고 역시 복수를 위해서라면 원수 사택적덕(김병기)에게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며 모든 걸 참고 견딥니다.
반면 아버지 무진(차인표)이 의자왕자의 손에 죽고 노예로 살아야했던 계백(이서진)은 두 사람의 지루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복수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원수란 아버지를 죽게 한 사택황후 뿐입니다. 그 원수 한사람을 죽이면 그만이지 시간이 걸려 권력을 차지하고 사택씨들까지 밀어내려는 은고와 의자왕자가 못마땅합니다. 원수들의 뿌리까지 갈아엎고자 하는 은고와 의자의 말도 맞지만, 단 한사람을 응징하면 된다는 계백의 말도 틀린 건 아닙니다. 다만 사람은 한치 앞도 예상하지 못하는, 완전무결하지 못하고 흠많은 존재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요.
의자왕과 은고의 미래는 예정되어 있다
무진의 복수를 위해 사택황후의 궁으로 잠입한 계백은 단순한 것 같지만 확고한 복수관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바로 그 사람을 죽이면 복수가 끝난다는 그 앞에 은고는 그것이 복수의 전부가 아니며 사택황후를 죽여도 또다른 사택황후는 태어나게 되어 있다고 설득합니다. 왕의 존재를 무시하고 백제의 모든 권력과 이익을 장악한 대성팔족의 성격상 황후는 궁극적인 복수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일부이기도 하단 뜻입니다. 정치적인 갈등 속에서 은고의 가문이 몰락하고 의자의 어머니가 죽어가야 했으니 그 말은 분명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복수는 왕족으로 태어난 의자와 타고나게 야망이 컸던 은고의 개인적 야망을 모두 내포하고 있는 복수이기도 합니다. 부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사택씨들을 무너지게 하거나 복종하게 하는 복수를 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야망을 성취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더우기 의자왕자는 타고나기를 선화황후와 무왕(최종환)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그들을 이기지 않고서는 왕이 될 방법이 없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도 왕이 되는 복수를 택할 수 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사택황후를 죽이려는 계백에게 냉정해지라 말하는 은고
사택황후와 의자왕자, 은고는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들처럼 보이고 서로를 경계하는 적이지만 세 사람에겐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순수한 백제 왕족의 혈통을 위해 또 외세를 백프로 배척하기 위해 신라혈통의 의자왕자를 제거하겠다는 사택황후와 위제단은 살인도 서슴치 않는 무서운 사람들이지만 자신들의 목적 즉 '백제를 위한다'는 명분이 그들을 정당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는 극우주의자들입니다.
사택황후는 그들의 적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미래이기도 하다
사택황후가 무진과의 사랑이 어긋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살인 마저 망설이지 않는 무서운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무진을 말에서 떨어지게 한 말관리자를 단칼에 베어버린 그녀는 결국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사택황후가 '위제단'을 거느리며 백제를 호령한 것과 마찬가지로 은고 역시 아직은 정체가 드러나지 않은 백제의 비밀 집단 '여명단'을 거느리는 통수자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새로 등장한 인물인 신녀(이태경)과 은고를 키워준 영묘(최란)가 여명단을 꾸린 이유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녀의 사랑과 정치적 운명은 사택황후의 현재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 보입니다.
임오군란을 연상하게 하는 생구들의 반란
쌀에 모래를 섞어 배급했다가 군인들의 반란을 샀다는 내용, 실제 역사에 기록된 '임오군란'은 중전 민씨와 그 일파들의 횡포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었습니다. 명성황후는 그 일로 인해 궁궐을 벗어나 도망가는 일까지 겪게 됩니다. 나라를 위해 일한 사람들의 임금까지 착복할 정도로 조정이 썩었다니 또 그를 항의하는 사람들을 군사적으로 협박해 무마하려 하다니 세상이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이지요. 조선 후기의 지도층은 망하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로 썩어 있었고 드라마에서는 그 부분을 유사하게 처리한 것 같습니다.
자신들과 고통을 함께 한 생구들의 죽음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계백과 성충(전노민)은 그들과 합류하게 됩니다. 그는 이 사건으로 사택황후와 귀족들로 인해 신음하는 백성들의 눈물도 함께 보게될 것입니다. 나라가 썩어 있으면 지도층이 미쳐 있으면 백성은 피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처음 사택황후와 맞서려 했던 것은 복수 때문이었지만 그가 그들을 무너트리겠다 마음 먹는 계기는 이 사건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은고나 의자왕자와는 '복수'의 근원이나 출발점, 방법이 다르다고 볼 수도 있겠죠.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망해가는 나라, 또 역사의 뒷편으로 사라진 나라 백제이니 왜 저 영웅이 그런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희생해야 하는지 안타깝기도 합니다. 무모해 보이고 대가없어 보이는 그런 일에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라지만 그런 영웅이 탄생하는 과정은 못내 안쓰러울 것 같거든요. 또 은고와 의자가 복수에 성공하고 난 후 계백의 '적', 또다른 의미의 대립 구도를 형성하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물론 일단은 생구들의 반란에서 살아나야 가능한 이야기겠지만요. 다음주를 기대해 봅니다.
* 이 글은 드라마 '계백' 홈페이지에 동시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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