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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작교형제들, 개집 옆에서 머슴살이하는 백자은과 마음없는 태범의 결혼

Shain 2011. 9. 1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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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부터 '범죄 드라마' 내지는 '밉상 드라마'란 평을 들었던 드라마 '오작교 형제들', 아버지 마저 실종된 백자은(유이)의 농장 땅을 뺏기 위해 백자은 아버지 백인호(이영하)의 실종을 축하하는가 하면 10년 뒤에 땅을 돌려준다는 내용이 담긴 각서까지 훔쳐내는 오작교 박복자(김자옥)와 파렴치한 네 아들들. 인정많고 착한 듯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범죄를 저지르는 그들 가족에게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백자은이 아무리 고생 모르고 자라 철이 없고 '싸가지'가 없을지언정 그들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요.

특히 사회에서 가장 공정해야할 할 방송인 황태범(류수영)이 특종을 위해 백자은의 부정입학 혐의를 뉴스에 터트린 것이나 정의로운 경찰 황태희(주원)가 동생 황태필(연우진)이 자신의 명함으로 경찰을 사칭하고 다녀도 처벌하지 않는 점 등 전반적으로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비도덕적이란 점은 매주 도마에 올랐을 정도로 비난받는 문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주 시청률이 26.8%였고 비슷한 시간대 그 어느 드라마 보다 시청률이 높다고 하더군요.

오작교 농원에서 키우는 다섯마리 미운오리 새끼들

시청률을 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우리가 부당하다 비난하는 그 문제들이 실제 사회에서는 누구나 조금씩 저지르는 범죄들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남의 땅에 집짓고 살았지만 뺏기기 싫어서 어린 여자아이의 각서를 훔치고 지성인이란 대학생들이 진위여부도 따져보지 않은 채 패거리 문화에 휩쓸려 한 여자애를 이지메하고 손가락질하고, 남들 보기에 사람좋은 척 올바른 척 하면서도 쩖은 여자라면 가리지 않고 추근대는 첫째 아들 황태식(정웅인)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그런 심리 하나쯤은 숨겨져 있어서 그럴 지도 모르죠.

요즘 백자은은 간신히 복자의 허락을 얻어 농장의 '머슴살이'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백자은이 텐트치고 잠을 자고 밥을 먹을 때 마다 신경쓰이는 건 집앞에 있는 '개집'입니다. 시골집에 흔히 있는 덩치큰 개들은 집지키는 역할도 하고 기르는 사람이 먹던 남은 밥도 처리해주는 존재들입니다. 오작교 농원에도 꽤 큰 개가 집 앞에서 '거주'를 하고 있더군요. 시골에 살며 그런 큰 개를 키워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아무리 깨끗하게 쓸고 치우고 좋은 사료를 줘도 개집 주변은 냄새가 나기 마련입니다. 백자은은 그런 멍멍이와 이웃해서 살고 있는 셈입니다.



아이가지면 무조건 결혼해야 하나 그것도 문제

60년대 영화 '하녀'를 보신 분들은 지금과는 꽤 다른 그때의 생활 모습을 느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영화 속 설정 때문에 나름 극중 인물들의 생활상과 살림살이가 현대적이긴 했습니다만 식구들의 밥그릇 만은 현대인 공기밥의 세 배 분량이 될 정도로 큰 크기입니다. 쌀을 주식으로 하던 우리 나라에서 당시에는 엄청나게 많은 밥을 먹는게 일상적이었던 것입니다. 옛날 표현 중에 '머슴밥'이라는 게 있는데 힘든 밭일과 집안일을 시키는 머슴들에게 주듯 밥을 꽉꽉 눌러담아 많이 퍼준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최소한 자기 집일을 해주는 사람에겐 먹을 것 만이라도 풍족하게 대접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시키는 사람이 지켜야할 기본적인 양심이기도 하구요. 시골은 요즘에도 놉을 얻을 때(일할 일꾼을 구한단 뜻입니다) 밥과 새참 만은 충분히 주도록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박복자는 자기집 멍멍이와 이웃하며 농장일을 거드는 자은에게 먹을 것은 절대 주지 않습니다. 새벽 4시 30분에 깨워 하루종일 일시키는 것치고는 박한 정도가 아니라 비인간적인 처사라 할 수 있죠.

마당에서 개와 이웃하며 사는 자은과 자은을 도둑으로 몰았던 복자

물론 각서를 자기가 훔쳤기 때문에 자은과 정붙이고 살면 마음 약해질까봐 두려워 그러는 것도 있겠고 따박따박 대들며 농장을 달라 떼를 쓰는 자은이 미워서 그런것이기는 하겠지만 어린 여학생에게 살을 태우는 고된 밭일(그러고 보니 왜 밭에서 긴옷을 안입는 걸까요 시골 햇볕은 거의 살인무기 수준이라 대부분 긴옷을 입고 일하는데 말입니다)을 시키고도 밥한그릇을 안준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죠. 더우기 설거지를 해준 자은이 전 몇개 가져간다고 도둑으로 몰아부친 '전과'가 있고 보면 양심불량이라 해도 할말이 없습니다.

방송국 기자 황태범은 차수영(최정윤)이 아이 때문에 계속 결혼하자고 조르자 어떻게든 회피하고 싶어했습니다. 사정을 듣고 보니 과거 사랑에 크게 데인 상처도 있고 결혼해서 아이와 아내를 책임질 자신이 없어 그러는 것 같은데 수영은 난소 수술을 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에 간신히 임신된 아이를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 아이를 지운다면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자면 최소한 나중에 이혼하는 한이 있더라도 결혼해서 낳는게 아이에게 낫다는 가치관을 가진게 수영입니다.

아이 때문에 마음에 없는 결혼 허락하긴 했는데

아이 때문이 아니라면 수영이 태범에게 매달릴 성격은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 싫다는 남자에게 결혼하자고 매달리는 것 만큼 치사하고 더러운 일도 없습니다. 수영이 아이 때문에 결혼하자고 마음 먹은 것도 또 아이를 절대 지우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도 약간은 보수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지만 아이 어머니로서 존중할 수는 있는 부분입니다. 대신 같이 책임을 져야할 태범으로서는 마음에 없는 결혼을 허락하는 문제이니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겠죠. 아버지 황창식(백일섭)이 아무리 쥐어박아도 그 문제 만은 양보할 수 없는 태범이었습니다.

안 그래도 막장드라마 평을 받는 이 드라마는 최근 둘째 아들이 혼전임신으로 결혼한다는 설정이 다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원치 않은 결혼이었기에 이기적인 태범이 아내를 어떻게 대할 지 안봐도 훤하게 예상할 수 있는 문제이고 현대적인 여성인 수영과 다소 구시대적인 가치관을 가진 창식 가족이 부딪힐 것도 확실하단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생겼다고 책임지고 결혼하는 것, 과연 어떤게 옳은 걸까요. 명쾌하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만 가족 드라마의 특성상 태범과 수영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적응하고 살게 되겠지요.



첫째 아들은 아이딸린 미혼부가 될 듯

흥미로운 건 첫째 아들 태식에게도 아이가 생길 것같단 점입니다. 필리핀에서 사업하는 동안 안젤리카라는 여성을 만났던 태식은 이런 저런 사업자금을 다 말아먹고 안젤리카에게도 차였던 과거가 있는데 그 안젤리카가 최근 태식에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미모의 아가씨와 연애중인 태식이 그 결혼을 그만둘 수 밖에 없는 건 안젤리카가 한국으로 아이를 데려오기 때문은 아닐까요. 자기 앞가림도 못한다는 컴플렉스를 가진 태식이 아이 때문에 결혼도 못하고 꼼짝없이 발목이 잡히게 생겼습니다.

진짜 아이딸린 사람은 미숙이 아니라 태식이라고?

자기 집에 세들어 사는 태식의 초등학교 동창 김미숙(전미선)은 남들에게 과부 내지는 애엄마로 알려져 있지만 키우고 있는 아이는 딸이 아닌 조카인 것 같습니다. 황태식은 지금까지 은근히 미숙을 무시하며 미숙의 애정을 모르는체 했었지만 조카 키우는 미혼의 미숙 보다 아이 딸린 자신이 더 결혼하기 힘든 처지가 되버렸다는 점도 재미있는 설정이네요. 항상 젊은 여자, 예쁜 여자를 훑는 듯한 태식이었는데 남들이 자신을 애딸린 남자라며 상처가 될만한 말을 마구하면 어떤 심정이 될까요. 미혼의 몸으로 조카를 키워낸 미숙이 정말 대단해 보일 겁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드라마 '오작교 형제들', 자기 가족들끼리는 따뜻하고 인정많고 책임감있는 형제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인 양심도 없는 범죄자 가족으로 변신한다는 게 가끔 오싹하게 느껴집니다. 실질적인 농장주인인 어린 자은을 멍멍이 옆집에 살게 하고도 밥한그릇 안주고 아이가진 여자를 마음고생시키며 외면하는 아들, 과부라고 초등학교 동창을 무시하다가 자신도 모르던 아이가 생겨 신세 역전이 되는 아들까지. 우리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게 어디 마음처럼 쉽게 되는 일인가요. 그런 면면은 참 흥미로운 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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