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계백

계백, 실패한 영웅 계백 결코 헛된 희생은 없다

Shain 2011. 11. 22. 15:41
728x90
반응형
아무리 애를 써도 고칠 수 없는 것이 이미 지나간 역사 속 사실입니다. 삼국통일의 주역이 백제나 고구려가 아닌 신라의 김춘추와 김유신이란 것도 고구려와 백제는 역사 속의 기록으로 사라져버렸다는 점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구 보다 공격적이고 의지가 강한 왕이었다는 의자왕이 패망한 나라의 군주라는 점도 변하지 않습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에 적힌 이야기가 과장되고 날조된 이야기라 쳐도 이 드라마 '계백'의 주인공들이 기쁨의 주인공들이 아닌 슬픔의 주인공이란 점은 뒤집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찬란한 백제는 무엇 때문에 멸망하였는가. 백제를 지배한 권력자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 보다 모자라고 어리석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시대가 백제를 돕지 않았기 때문인가. 여전히 저는 사료 속에서도 창작된 이야기 속에서도 그 해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다만 드라마 속 주인공 계백(이서진), 의자왕(조재현), 은고(송지효), 성충(전노민), 흥수(김유석)가 커다란 꿈을 꾸었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애쓰며 그 꿈을 이루려 했지만 실패했다는 이야기의 마무리를 보게 되었을 뿐입니다.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꿈꾸던 백제는 정말 아름답고 풍요로웠지요.

드라마 '계백'의 최종회가 방영되는 날이 오늘입니다. 어떤 드라마든 긴 여정을 마치고 최종회를 할 때는 아쉬움이 반 부족한 느낌이 반이지만 이 드라마 '계백'은 어쩐지 100부작 길이의 드라마를 36부로 축소한 느낌이라 아직도 많은 이야기가 남아있는 듯한 생각이 듭니다. '계백' 홈페이지 출연진 목록 중에는 출연예정으로 있다가 사라진 배역도 몇몇 있어서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이것이 끝이 아닐 거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그리고 충분히 적지 못한 그 이야기가 '실패한 영웅'을 역사 속에서 꺼낸 이유였을 것이라 봅니다.

역사는 결연한 백제 장수 계백의 이야기를 짧게 전합니다. 당나라 13만 대군과 신라의 5만이 넘는 대군이 백제를 치기 위해 출전했고 결전의 그날이 오자 계백은 단 오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황산벌에 김유신을 맞서러 나갑니다. 배수진을 치는 심정으로 아내와 자식들까지 모두 죽인 채 전장에 나선 계백은 장렬한 최후를 마치고 전사합니다. 백제는 그의 마지막 전투를 기점으로 백제는 멸망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 슬픈 역사의 한 장면을 보게 되는 것이 오늘인 것입니다.



꿈을 이루기 위한 희생은 억울하지 않다

최근 제작되는 사극은 '정통사극'을 표방하고 있어도 그 내용은 대부분 현대인들이 공감할 법한 이야기로 꾸며집니다. 드라마 '계백'도 역사극이라기 보다 새로운 나라를 꿈꾸던 젊은이들의 이상이 부서지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왕보다 더욱 강력한 권력으로 백제를 농단하던 사택씨들의 위협을 이겨낸 왕자 의자와 아버지 무진(차인표)과 어머니가 모두 의자 때문에 죽어버렸다는 개인적 원망을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마음으로 이겨낸 무사 계백, 또 사람들을 위한 이상적인 나라를 꿈꾸며 의자에게 동조한 충신 성충과 흥수는 과거 속의 인물이 아니라 현대인에 가깝습니다.

계백과 의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은 은고 역시 함께 꿈을 꾸던 여인이지만 정치로 인해 일가족이 억울하게 몰살당하고 사택황후(오연수) 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쟁취한 그녀는 이상 보다는 생존이 가장 큰 삶의 목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비운의 여인으로 그려집니다. 궁궐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머니의 위패까지 태웠던 의자는 은고가 어떤 여자이든 포기할 수 없는, 백제의 왕이 아닌 비겁한 한 남자가 되어버립니다. 은고와 의자는 자신들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의자와 은고

의자왕은 신라공주였던 어머니 선화황후(신은정)와 아버지 무왕(최종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냉혹한 궁의 질서를 어릴 때부터 몸소 익히며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자랍니다. 그에겐 왕제로서의 이상이나 자신이 다스려야할 백제에 대한 꿈 보다 살아남는게 우선이었습니다. 어머니를 죽게 만든 계모 사택황후 앞에서 비위좋게 웃으며 머리를 조아리는 의자왕은 자신에게 닥친 첫번째 시험을 훌륭히 이겨냈습니다. 왕좌를 차지하기는 했으나 복수를 위해 권력을 이용하지도 않았고 자신을 위해 희생한 계백을 내치지도 않았습니다.

계백 역시 아버지를 직접 죽인 당사자인 의자를 용서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자신과 의자를 살리기 위해 아버지 무진이 원한 일이었다고는 하지만 왕가의 비열한 싸움에 죽어간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흥수가 남몰래 꾸리고 있던 까막재의 사람들을 보고 또 전장에서 함께 싸우는 동료들의 고통, 힘겹게 살아나가는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새로운 백제'라는 이상을 갖게 됩니다. 그가 의자를 주군으로 인정하고 과거를 잊기로 한 것은 개인적인 한을 초월한 새 나라를 꿈꾸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은고와 의자에게는 자신들의 권력은 이겨내기 힘든 유혹이었습니다. 꿈을 함께할 동지로서 의형제가 된 흥수와 성충은 까막재처럼 모두 배곯지 않고 사는 백제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했지만 최고 권력자의 위치를 지키고 싶은 의자와 은고의 욕망은 이상 보다 강했습니다. 은고는 황후의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 김춘추(이동규)와 내통했고 의자는 자신을 거스르는 성충과 흥수를 내쳤으며 백제 백성들이 그 누구 보다 우러르는 계백을 질투했습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욕망, 사랑과 권력은 꿈을 이루기 위한 최고의 장애물이었던 셈입니다.

그들의 꿈도 사랑도 모두 사라져 간다.

어쩌면 그들이 이상을 꿈꾸다 실패하고 불꽃이 사그라들듯 죽어가는 모습, 왜 좀 더 치열하게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 못했던가 후회하며 목숨을 거는 그 모습은 현대인들에게 그리 호응을 받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요즘은 이상 보다는 현실이 현실 보다는 생존이 중요한 시대이며 또 이상에 실패하는 모습보다도 당당히 복수하는 판타지를 원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백성 모두가 배곯지 않고 평등하게 잘 사는 새 나라를 꿈꾼다는 정치적인 꿈 따위는 과거의 유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드라마 속 계백 역시 실패하고 죽게 될 터이니 말입니다.

극중 김유신(박성웅)과 신라의 왕 김춘추는 역사가 공인하는 성공한 영웅입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자질이 뛰어난 왕이었다고 한들 의자왕과 계백이 '실패한 영웅'이라는 점은 바뀌지 않습니다. 실패한 영웅의 노력과 희생은 헛된 것일까. 오천명의 군사로 나당연합군을 맞선 계백의 전투, '질 것을 아는 전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요즘에도 많습니다. 어렵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람은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꿈꾸어야 하는 것일까. 역사 속에서 사라진 한 영웅이 그런 질문을 할 것만 같습니다. 36회의 긴 여정 동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