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실존 인물이 아닌 김봉식의 정체
방금 한 달 동안 써온 글을 날렸는데 복구 방법이 없네요. 대부분 이럴 땐 자동 저장 기능이 있어서 구세주처럼 상황을 복구해주기 마련인데 자동 저장은 그렇게도 불가능해요. 한번 날리면 그대로 날리는 거죠. 아무튼 오늘은 어제부터 이가 박박 갈리는 김봉식이 문제입니다. 방금 전 글을 한참 쓰는 중에 날아갔는데 복구가 안 되는 지점이라 그대로 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더라고요. 짜증 나는 김봉식을 볼 때처럼 끓어오르는 중입니다. 자동복구로 글이 날아간 사고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거든요. 물론 김봉식은 실존인물이지만 그 사람에게 무언가 따지고 들기엔 그 사람이 살았던 시기도 상황도 다르긴 하죠. 자동 저장 기능이 디지털 식이라면 김봉식의 시기는 구형 아날로그 시기쯤 됩니다(약간의 과장도 있겠지만).
아니 김봉식의 방식에는 사람들을 속 터지게 하는 부분이 하나 더 있죠. 윤태구(김소진)를 탐탁지 않게 여기며 여자라고 얕보고 함부로 대했고 일을 시키면 제자리에서 일을 하는 법이 없으면서 일했다는 증거로 글자 맞추기 놀이나 하고 있습니다. '수성'이라는 글자가 'ㅅ'의 앞글자를 딴 거란 주장은 그 정도로 범인이 단순하게 본거죠. 그런 글자 맞추기 놀이나 할 정도로 범인은 우스운 놈이 아니었습니다. 툭하면 사우나, 당구장, 게임방을 들락거리며 시간 때우기나 하고 있고 불성실한 주제에 거들먹거리는 건 빠지는 곳이 없죠. 그중에서 가장 가관인 건 꼴에 정보를 빼내겠다며 그 정보를 물어다 준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름을 대라면 콕 집어 어느 부서의 누구라고 지적할 만한 사람은 있을 것입니다. 'XXX 기수대 1계장'같은 식으로 거론할 이름은 있지만 아무리 가상인물이라도 그 사람을 지적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솔직히 어떤 사건은 범인을 쫓아가서 잡은 사람은 XX, 범인을 잡았다 놓친 사람은 XX, 범인을 만나고도 못 알아본 인물은 XX, 범인이 아닌 인물을 폭행당해서 물의를 빚은 인물은 XX - 이런 식의 리스트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실존인물인 유영철에게 가명이 아니라 구영춘(한준우) 같은 이름을 줘서 다른 상관없는 범인을 만드는 거죠. 범인을 놓친 사람들에게 득 보다 실이 많은 일이라 그렇게 하지 않을 것 같긴 합니다. 사실 더 탕수육이나 받아먹으면서 집적거린 그 인물이 더 궁금합니다.
김봉식 같은 캐릭터는 찾아보면 종종 찾을 수 있죠. 과학 수사로 사진 찍고 현장감식을 한다고 힘들어 하는데도 굳이 그곳에서 현장을 발로 밟고 돌아다니는 무식한 사람들이 분명 그 세상엔 있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게 그 당시의 수준이고 이것은 '내려치기'나 '깍아내리기' 같은 게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로 '밥그릇'이란 명분이죠. 들어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동료 경찰에게 '남의 밥그릇 기웃대지 말고 꺼져'라고 외칠 수 있는 게 당시의 한계였던 거죠. 그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뒷돈 받고 사건 정보를 알려주고 아무 생각 없이 수사 정보를 넘겨줄 수 있는 거죠.
정말 얄밉지만 그게 당시의 수준이다
딱히 특정 인물을 그렸다기보다는 그게 당시의 수준이라는 게 맞는 말입니다. 당시 부정할 수 없이 실존했던 경찰들이 그랬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잡혀간 화성 연쇄살인범의 누명을 썼을 때도 당시 경찰은 장애가 있는 그 몸으로 높은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을 무시했습니다. 비리 형사의 집합체가 당시의 인물들이었고 그게 하루아침에 바뀔 것은 꿈에도 기대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삭삭 빌어서 없던 일로 해댈라 조르는 다른 경찰의 청탁을 들어줄 생각이나 했겠죠. 당시 촬영된 여러 장면 중에서 소위 사람들을 '발암' 수준까지 분노하게 한 장면은 악다구니를 쓰는 경찰에게 걷어차는 한 인물의 존재였죠. 당시 모든 것은 그 일은 모두 생중계되었습니다.
당시 유영철이 자백했을 때 경찰은 놓쳤다가 잡은 때문에 발칵 뒤집어진 상태였다고 합니다. 한번 놓쳤다 다시 잡은 범인을 호송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것은 두말할 것 없고요. 다행히 유영철은 다시 환락가에서 잡혀 경찰로 호송됩니다. 그때 그 폭행 사전이 터진 것입니다. 피해자의 어머니였던 분이 경찰에 항의하다 밀려났습니다. 사실 직업이 원래 가짜 경찰이었던 유영철은 위조한 신분증으로 경찰을 사칭하다 들켰습니다. 그때 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 후 다른 일로 다시 잡혀 경찰에게 끌려간 것입니다. 유영철은 그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훼손했습니다. 두 번째는 간질환자 행세를 해서 도망쳤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경찰이 걷어 차인 것입니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사람을 때릴 수 있느냐 경찰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이 일은 절대 웃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경찰의 추적을 두 번 이상 벗어난 범인
천체적으로 경찰은 무능했고 무책임했습니다. 보도방 업주는 같은 전화번호에서 건 전화로 세 명이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한 명 정도는 그럴 수 있다 싶지만 3명이 연락이 안 된다는 건 꽤 섬뜩한 일이었죠. 연락이 안 된다는 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니 굉장한 제보를 받은 것입니다. 본인들은 몰랐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중간에 신고를 받은 경찰은 상대가 유영철 인지도 모르고 상대를 제압했다고 합니다. 보도방 업주와 경찰의 도움을 받아 경찰을 제압하고 그 뒤에 잡힌 것입니다. 무시무시한 살인마가 두 번이나 빠져나갔는데 그 상황을 자수할 때까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만약 잡히지 않고 무사히 도망갔다면 여전히 경찰은 희롱당하고 있겠죠.
어쨌든 덕분에 유영철을 잡긴 했으나 들을수록 뒷맛이 씁니다. 과연 그걸 잡았다고 할 수 있는 일인가요. 김봉식이 저는 일들은 대부분 정확한 관찰이 아닌 직관에 의한 판단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김봉식이 생각하는 단서나 증거라는 것은 남들을 족쳐서 얻어낸 것 혹은 협잡에 의해 얻어낸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유영철은 머리 꼭대기에 앉아서 그들이 말하는 증거를 찾아냈습니다. 사람을 빠르게 죽이기 위해 16등분을 한다는 것도 파악했고 어떻게 하면 시신에서 피가 빨리 빠지는 줄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계획적인 인물이 알파벳에 맞춰 살인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죠.
여담이지만 같은 브랜드 같은 사이즈 등산화를 가진 인물들을 '조질' 때 당시 실제로 조사한 신발의 사이즈는 260mm의 버팔로 신발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검사한 신발, 그리고 실제 발 크기는 275mm였다고 합니다. 원래 신발 사이즈는 잠시 딛고 선 발의 크기보다 조금 더 작게 찍히거나 그런 이유로 약간 왔다 갔다 하죠. 뭐 신발 사이즈는 어떻게든 정확했을 텐데 어떤 신발 사이즈를 쟨 건지는 궁금한 부분이죠.
원래 프로파일링이란 확실한 결과 보다는 예측을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 것이다'라는 추정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허술하고 혈액형 분류처럼 비과학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일선에서 일하는 경찰들이 프로파일링을 신뢰하지 않는 주된 이유도 대부분 그런 이유죠. 조언이나 직관적인 경고는 가능해도 정확한 윤곽은 그려내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뭐 극 중에서 등장한 김봉식 같은 인물은 '말 같지도 않은 의견'이라며 그들의 분석을 무시하겠지만 프로파일러라는 존재들은 그리 무시할만한 인물들이 아닙니다. 경찰의 추적을 두 번이나 따돌린 범인들처럼 그들은 언젠가 사람들이 모르는 새 우리를 지켜볼 시도 모르죠. 아무렇게나 정보를 퍼트리는 김봉식은 그냥 정보 도둑에 가깝죠. 그나저나 김중희(남기태)는 또 어떻게 잡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