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 이방원, 경신공주와 경선공주는 대체 어떻게 죽은 걸까
(경신 공주와 경순 공주를 같이 쓰고 있지만 동일인물로 일단 간주합니다) 예전 역사서에 기록되었으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공주들이 많았죠. 그중 한 명이 수양대군의 딸로 짐작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가칭 '세희 공주'가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는 역사가들도 긍정할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정사 속에서 묘지에 이름이 지워진 공주가 한 명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하죠. 이 세희 공주의 이야기는 당시 전후 사정을 딱하게 여겨 누군가 꾸며낸 여겨집니다. 실제로 '금계필담'에 전하는 이야기와 시기적으로 맞지 않기도 하구요. 공주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근거도 사실도 희박한 경우가 많죠. 아마 어디서 같은 이름으로 경신 공주의 이야기를 만든다면 '공주의 남자'처럼 가상의 판타지가 탄생할 확률이 놉답니다. 판타지도 좋지만 여기까지 와서 판타지를 찾는 건 좀 재미없는 일이겠죠.
일단 가계도에서 궁주와 옹주같은 명칭들이 섞여있어 헷갈리겠지만 일단 조선 왕실 기 준으로 딸들은 모두 공주, 옹주로 나뉩니다. 중간에 워낙 섞여서 알 수 없는 신분의 인물들도 많죠. 일단 딸들은 무조건 공주라고 합시다(왕녀의 신분이 공, 현주, 군주 등으로 분류된 것은 세종 22년 이후입니다). 먼저 공주가 많은 집안인 경신 공주 집안부터 살펴보자면 경신 공주의 자녀들은 딸 둘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딸이 하나 더 있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출연 인물에 갑자기 안 보이는 공주가 하나 있죠. 바로 경신공주입니다. 놀랍게도 경신 공주는 1446년대까지 살아있었다고 합니다. '진향(進香)'이란 말은 쉽게 약간 지위가 높은 사람을 대상으로 제사를 올렸다 뭐 그런 이야기인데 경신 공주의 집안은 고려 왕실과 가까웠습니다.
진향했다는 말이 있는 걸로 보아 경신공주는 조용히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숨겨진 공주 집안까지 단속할 여력이 없었는지도 모르죠. 경신 공주는 그렇게 흔적도 없이 오래 살았습니다. 고려 왕실과 가까이 지낸 여러 왕실 사람들(이화 같은 인물)과 죽은 사람이 뒤섞여 탄생을 알 수 없었을 가능성이 있죠. 이때 공주들의 탄생 순서가 오락가락한 것은(경신 공주가 첫째 딸인 것은 확실한데) 첩이나 다른 가족의 탄생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큰딸인 경신 공주는 실질적으로 이제(장태훈)나 이화(이원발) 같은 사람들은 실질적인 가족으로 한 집안이 몰살될 때 다른 쪽도 몰살되는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화는 당시 이가문 저가 문과 결혼하긴 했지만 어떤 쪽은 이방원을 지지하고 어떤 쪽은 이제를 지지하는 등 혼란한 상황이었죠. 그래도 고려왕 살과 가장 큰 인맥을 쌓았습니다. 이화가 이성계를 배신했을 때 이성계는 대로했지만 사실 그들의 갈등을 '집안싸움'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정안군 이방원을 얼른 찾아냈습니다. 둘째인 이방과(김명수)를 찾아 왕위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었죠. 어쨌든 왕위는 방과에게 가고 수락합니다. 그리고 방석은 눈물로 하직인사를 올립니다. 직감적으로 그것이 마지막이란 걸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이방석도 동생과 이별을 합니다.
경신 공주와 경선 공주는 '이거이'라는 인물들의 딸이었는 흥안군 이제(장태훈)은 그 유명한 이인임과 정략결혼을 한 사이였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이제(장태훈), 이방석(김진성)을 죽이면서까지 이방번(오승준)도 덩달아 같이 죽였는데 결과적으로 어딜 가나 통곡하는 처지가 되었죠. 이 가문이 살았으면 저 가문이 죽었을 테니까요.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켰을 때 대부분의 왕가 사람들은 이성계 주변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죽는 가족을 지켜보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남편 이제를 살리기 위해 경신 공주(최다혜)를 설득했지만 그는 끝까지 남편과 함께 합니다.
정도전, 이방석, 이방번을 차례가 됩니다. 그들이 차례로 죽게 되자 이성계는 다급히 경신공주를 출가 킵니다. 왕가에서 승려를 출가시키는 일은 흔치 않았지만 목숨이 위험해지자 빨리 처분을 내린 것입니다. 왕가의 여성들은 출가하게 되었을 때 같이 함께 출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식을 삭발시키며 이성계가 통곡했다는 일화는 유명하죠. 스님들의 일을 맡아보는 절은 보통 청룡사였는데 대대로 청룡사에는 돈이 끊기지 않도록 했다고 합니다. 공민왕의 후비인 혜비, 심효생의 딸이자 이방석의 딸인 현빈 심 씨도 함께 출가한 인물들 중 하나죠. 한 번의 패배로 영원히 무릎을 꿇어야 했던 이성계의 역사입니다. 그 뒤 이성계는 상왕으로 물러납니다.
단 한번의 패배로 영원히 무릎 꿇은 이성계
이성계는 왕자의 난 당시 매우 위독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혹시 이러다 죽을까 싶어 정도전(이광기) 주변에서 머물며 술이나 한잔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 오늘내일하는 이성계라도 난이 일어난 상황에서는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겠죠. 어린 자식들 데리고 남는 시간이나 보낼까 했던 이성계는 아무리 봐도 안쓰러운 세자 이방석을 보며 차마 죽이지 못합니다. 지금은 이성계 자신도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 순간인데 울먹이는 세자를 다독거릴 여유가 없습니다. 평생 이기고 진적이 없었던 이성계의 단 한 번의 패배였습니다. 치욕스럽고 패배감에 가득 찼지만 어쨌든 이방석도 이성계의 아들입니다.
경선 공주가 죽을 때 흔적이 거의 없어 전쟁통에 살해당한 게 아닌가 했지만 그는 전쟁통에 용케 살아있었습니다. 아마 몰래 숨어서 흔적을 피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공신 집안이었으니 쥐 죽은 듯이 살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니까요. 경신 공주는 큰 딸이라 여러 화를 피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승려가 되어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왕녀의 이름이 경신 공주냐 경선 공주냐 아니면 '경순 공주'냐 두고 말들이 있었는데 결국 경순과 경선은 동일인물인 듯합니다. 이 사실은 이성계의 조상인 이자춘 춘도비에 적혀 있다고 하는군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성계의 역사 삶과 죽음은 이렇게 힘든 일이군요. 씁쓸합니다. 이방원의 부엉이는 이방원이 광장히 싫어했다고 하던데 오늘도 편히 잠들진 못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