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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사극 이야기(2), 80년대 사극이 외압 논란에 시달렸던 이유

Shain 2022. 9. 27.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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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작고하신 배우 박용식씨는 외압의 대명사로 유명합니다. 전직 대통령을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가에서 퇴출되었던 박용식씨는 한동안 생계곤란으로 다른 직업을 갖기도 했고 여러 드라마에 단 한장면  등장하는 단역으로 배우 생활을 이어왔습니다. 1967년 TBC 공채탤런트로 데뷰했던 원로배우가 자신의 천직인 배우 생활을 꾸준히 할 수 없었던 이유가 참 안타깝게 다가오더군요. 요즘 방영중인 드라마 '스캔들'에서도 자신과 닮았다는 그 전직대통령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던 걸 보면 평생 동안 그의 가능성은 막혀 있었던 셈입니다. 당사자가 사과를 했다는 기사를 읽은 것도 같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잃어버린 배우의 삶이 보상되는 것은 아니죠.

 

편년체 사극 '조선왕조오백년'의 첫 시리즈였던 '추동궁마마(1983)'. 태조부터 태종의 이야기

 

이봉원 감독의 '랏슈(1989)'라는 영화는 박용식씨가 비중있는 역할로 출연했던 특별한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촬영을 하는척하며 현금수송 차량을 습격하고 훔친 돈을 숨기고 출국했다가 공소시효가 끝나면 돈을 되찾겠다는, 기막힌 시나리오를 실행에 옮겼던 주인공들이 자신들은 꼭두각시였음을 알게 된다는 내용의 이 영화는 상당히 흥미진진한 오락영화였죠. 송승환이 주연이었고 박용식씨는 주연의 사기 행각을 남몰래 사주하는 배후로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광고 포스터에서 주인공 박용식씨에게 썬글라스가 씌워지고 얼굴이 잘리는 굴욕 (링크는 이봉원 감독의 글입니다)을 당해야했습니다. 당시 여러 신문이 영화 '랏슈'에 대한 외압을 비판했고 영화인들도 헌법소원을 냈으나 기각되고 말았습니다(당사자가 아니란 이유로). 당시는 부동산 투기를 꼬집은 드라마 MBC '땅(1991, 김기팔 극본 고석만 연출)'도 외압으로 조기종영되고 '제 3공화국'같은 드라마도 단축방송되는 등 '외압'이란 단어를 심심찮게 볼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외압'의 산증인이었던 故 박용식씨. TV 드라마 출연을 비롯해 영화 출연에도 제약이 많았다.

 

최근에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 개봉을 두고 외압 논란이 불거지는 걸 보고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외압이 반복되는 것이 아니냐며 분노하는 걸 보았습니다. 과거에 많은 영화, 드라마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방송 중단되고 삭제, 검열받았던 것처럼 '천안함 프로젝트' 역시 정치권의 입김에 개봉중단을 결정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측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입니다. 미디어의 영향력에 민감한 특정집단에서 이 영화의 개봉을 바라지 않으니 누군가가 전화로 압력을 가했을 것 아니냐는 뜻입니다.

 

영화도 영화지만 드라마, 그중에서도 '사극'도 본래 외압논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선덕여왕(2009)'이 방송되기 전에 이 민감한 시기에 왜 하필 여왕을 드라마 주인공으로 삼느냐는 말이 나왔던 것처럼 역사의 한장면에 빗대 현대사회를 생각해 보는 사극의 특성상 사극은 늘 '정치'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때로는 제작자가 사회풍자나 시국 묘사를 의도한 것이 아니라 사서에 적힌 상황을 그대로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외압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사극이 바로 MBC의 '조선왕조오백년(1983)'입니다.

 

신봉승 작가의 최고 인기 드라마 중 하나인 '설중매(1984)' 고두심의 인수대비는 여전히 전설이다.

 

'조선왕조오백년'은 거의 유일한 우리 나라의 편년체 사극이자 가체를 비롯한 왕실 예법을 TV 드라마에 도입한 이병훈 PD의 대표작 입니다. 80년대 당시 완역되지 않은 조선왕조실록, 연려실기술을 직접 읽어가며 대본을 썼다는 신봉승 작가는 이병훈 PD 그리고 故 김재형 PD와 더불어 우리 나라 사극의 기틀을 다집니다. 임충 작가와 함께 우리 나라 사극의 2대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신봉승 작가가 발굴한 소재로 요즘도 많은 퓨전사극을 만들곤 하지요. 갖바치를 비롯한 많은 드라마 캐릭터들이 그때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 나라 드라마 작가들이 외압논란에 시달린 건 하루이틀이 아닙니다. '잘 돼갑니다(1968)'의 한운사를 비롯한 작가들이 외압을 털어놓기도 했으며 70, 80년대 달동네를 묘사한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데도 조기 종영되고 '서울의 달(1994)', '짝패(2011)' 같은 서민드라마의 최고봉 김운경 작가는 몇몇 드라마를 제작하던 중 수위를 조절하란 외압이 있었노라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생생한 서민의 삶을 묘사하면 왜 TV에서 부정적인 장면을 연출하느냐며 방송국에서 알아서 검열하기도 하고 윗분들이 시정하라고 입김을 넣었다 이거죠.

 

조선 중종에서 명종 시기를 다룬 '풍란'. 조광조와 정난정, 문정왕후의 이야기는 짧게 마무리됐다.

 

그런데 신봉승 작가가 '조선왕조오백년'을 연출하던 80년대는 이 문제가 더욱 노골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광주민주화 항쟁을 진압하고 권력을 쥔 신군부정권은 자신들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를 고민하며 미디어를 감시했습니다. 장장 8년 9개월 동안 방영된 '조선왕조오백년'의 첫시리즈는 '추동궁마마'였습니다. 이 드라마는 KBS '용의 눈물(1996)'로 잘 알려진 내용인데 이성계가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개국하고 외척을 단속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갈등과 피비린내 나는 숙청과정을 묘사한 내용입니다.

신봉승씨는 '외척이 성하면 나라가 망한다 내 몸소 이를 경계하리라'라는 대사를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그대로 드라마에 옮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성계가 아내 원경왕후의 남동생들과 세종의 장인 심온 등을 죽인 것도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당시 대통령의 처남들이 부정부패를 저지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던 때라 드라마와 관련되어 단속을 했던 것입니다(작가인 나로서는 정사사실(正史史實)을 바탕으로 드라마를 쓰고  있지만, 이른바 기관에서는 "무슨 연유로 역사를 빙자하여 청와대를 비방하느냐"고 따지고 들었다  - 문화일보 2009. 7. 25).

 

 

 

 

 

 

요즘은 인수대비하면 채시라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지만 '조선왕조오백년' 시리즈의 한편이었던 '설중매(1984)'의 인수대비(고두심)는 '왕과 비(1998)'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화제였습니다. 시청률만 해도 70%로 추산되는데다 방송이 시작되면 거리에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배우 정진의 한명회와 변희봉의 유자광은 어린아이들까지 따라할 정도로 인기 캐릭터 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시리즈가 정난정과 문정왕후, 조광조의 이야기를 묘사한 '풍란(1985)'이 '당파싸움' 때문에 압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회천문'은 선조와 광해군의 왕권 승계과정이 당시 정치권을 비꼰다는 말이 있어 일찍 중단되었다고 한다.

 

중종과 학자 조광조의 이야기는 현대인의 눈으로 보아도 놀라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중종에게 읍소하며 백성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라 청하는 조광조가 당시 언론상황을 꼬집는다는 생각에 '풍란' 이후 사전, 사후 검열이 강화되고 결국 눈총을 받게 됩니다. '전하, 백성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서는 선정이랄 수가 없사옵니다. 원컨대 언로(言路)를 여시고 민초들의 원성을 귀담아 들어주소서!' 이런 대사에도 불구하고 당시 언론에는 신봉승 작가가 '재충전'을 위해 작품을 중단했다는 말도 안되는 기사가 실리기도 했습니다(경향신문 기사 참조, 1996. 8. 25).

이외에도 '회천문(1086)'과 87년 6월 항쟁 시기에 '남한산성(1986)'이 방영중단되어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강경한 왕이었다는 효종과 '마의(2012)'로 유명한 현종 시기는 연대기에서 빠지게 되었습니다. '조선왕조오백년'은 왕실 중심의 사극이라거나 제작비나 연구 부족으로 인해 완벽하지 못한 고증 그리고 세조나 이성계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 등 몇가지 단점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에서 보기 드문, 사서를 기반으로 비교적 잘 고증된 사극 입니다. 그러나 정치 사회적인 배경 때문에 완벽하게 제작될 수가 없었고 '외압'이라는 불행한 흔적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남한산성(1986)'을 마지막으로 '조선왕조오백년'은 외압으로 일년 동안 방송이 중단된다.

 

위에서 거론한 '땅'이나 '잘 돼갑니다'같은 드라마는 동시대에 있던 현대의 실존인물을 묘사하고 풍자하는 까닭에 '외압'임이 쉽게 드러나지만 사극까지 누군가에게 거슬려 방송 중단이 되었다는 건 그 시대의 경직성을 반영하는 중요한 단면입니다. '사극'은 특히 왕실 사극과 정치 사극은 외척과 권력 남용같은, 그 시대에 당연히 있어서는 안되는 일을 비판합니다. 얼마나 시대가 폐쇄적이었으면 그 두루뭉술한 사극의 교훈을 두려워했을까 요. 결국 '조선왕조오백년'은 통속극의 대명사인 장희빈 카드를 꺼내듭니다. '인현왕후(1988)'는 '조선왕조오백년'의 부활을 알린 인기 사극으로 사랑받게 됩니다.

'사극'은 역사를 묘사하는 장르의 특성상 현대사를 떠올릴 수 밖에 없습니다. 기록된 역사 중 후세에게 교훈을 남기지 않는 역사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정통사극'이나 '민중사극'이 늘 외압논란에 시달렸던 것은 정직한 메시지를 두려워하던 사람들 때문이었겠죠. 사극에 담긴 역사의 힘이란 이런 것입니다. 최근 창작된 인물들 간의 멜로와 역사 조작 논란으로 구설에 오르는 사극들은 이런 '외압'과는 전혀 먼, 위정자들이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사극이 아닌가 싶습니다. 덕분에 외압 논란은 줄었지만 더욱 맥없고 심심한 사극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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