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군의태양, 윤미래의 스포일러가 이렇게 들어맞을 줄이야
가끔 드라마를 보면 OST 가사가 드라마의 스포일러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드라마의 제왕(2012)'이었는데요. 드라마 엔딩 부분에 자주 흘러나오던 예성의 노래 가사가 드라마 내용과 딱 들어맞았습니다. '두 눈이 멀어서 그대만 봐요. 가슴이 얼어서 그댈 안아요'라는 가사가 사랑에 눈이 먼다는 뜻인줄 알았더니 정말 주인공 앤서니킴(김명민)이 앞을 못보게 될 줄이야. OST가 좀 궁상맞다(?) 싶으면 어떤 드라마든 감당 안되는 비극으로 변질되기 마련인지라 약간 격한 OST가 흘러나오는 드라마는 '혹시 이 드라마도?' 싶더라구요. '주군의 태양' OST 가사도 지금 생각해보면 아슬아슬했습니다.
시청률 1위 드라마답게 '주군의 태양' OST 싱글이 벌써 다섯장이나 발매된 상태인데요. 그중 한곡인 윤미래의 'Touch Love'는 가장 자주 들을 수 있었던 OST 중 하나입니다. 호소력있는 목소리에 주중원(소지섭)을 좋아하면서도 붙어다닐 수 없는 태공실(공효진)의 심정을 잘 나타낸 노래라 귀에 쏙 들어오더군요. 하지만 '만질 수가 없어도 돼. 안을 수도 없어도 돼'라는 가사가 혹시나 목숨이 위험해져서 죽는다는 뜻 아닐까 싶었던거죠. 아무리 귀신 드라마라도 명색이 '로코물'인데 설마 죽는 장면까지 연출하겠어 하는 심정으로 봤더랍니다.
그렇지만. '최고의 사랑(2011)' 독고진(차승원)이 인공심장 수술 받으러 걸 보면서도 독고진이 죽을 거라 믿었던 시청자가 없었듯 태공실 앞에 나타나 사랑 고백을 하고 사라진 주중원이 죽으리라 믿는 사람도 없을 것같습니다. 주중원은 지금 죽어버리기엔 할 일이 너무 많거든요. 솔직히 주중원은 혼수 상태로 있는 동안에도 15년전에 죽은 차희주(한보름) 유령을 만나고 차희주와 한나(황선희) 사이의 비밀을 알아내는 등 바쁘게 움직일 거 같습니다. 이번 기회 아니면 어떻게 주군이 차희주를 직접 보겠어요.
게다가 이미 호텔 수영장에서 물귀신으로 오해받았던 윤길자(김희정)를 통해 살아있는 사람의 혼이 빠져나와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도 이미 극중에서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유체이탈인 셈인데요. '주군의 태양'은 귀신보는 태양을 중심으로 여러 귀신들의 사연을 연출하지만 많은 경우 주군, 태양과 관련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혼이 돌아다닌다는 건 주중원이 아직까지 죽지 않았다는 복선일 수도 있고 또 심장이 잠시 멎었다고 해도 죽은 사람이 다시 깨어나는 경우가 드물게 있으니까요.
어제 밝혀진 차희주의 쌍둥이 한나와 차희주에게 쌍둥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김귀도(최정우) 실장의 반전 그리고 주군의 난독증을 알고 있는 한나와 김귀도의 관계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지만 갑자기 주군이 칼에 찔려 위독해지는 바람에 그 모든 미스터리를 다 덮었습니다. 차희주의 쌍둥이가 '황선희'라는 배우에게 맡겨졌다는 사실도 모른채(납치 장면이 연출되었던 '주군의 태양' 4회 특별출연, 출연자 명단에는 황선희가 없습니다) 등장인물들 중에서 공범을 추리하던 시청자들에게는 놀랍다면 놀라운 반전이었는데도 주군의 위험 앞에 싹 잊혀지고 말았죠.
아가사 크리스티의 팬으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소설의 워그레이브 판사를 닉네임으로 썼다는 한나는 어딘가 모르게 비정상적인 사이코패스의 느낌을 풍깁니다. 자신의 쌍둥이가 납치사건으로 도주하다 차량 폭발사고로 죽어버렸음에도 눈물 한번 흘리지 않았고 영국을 비롯한 유럽을 누비며 꽤 행복해보였습니다. 거기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성형수술을 하고 차희주의 무덤을 찾아온 자신의 피해자 주중원 곁을 맴도는게 영 수상해 보입니다. 역시나 목걸이는 팔지 못하고 가지고 있더군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워그레이브는 인디언섬으로 9명의 피해자를 불러들인 당사자이자 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죄인들을 직접 죽여 처벌하겠다고 나선 범인으로 스스로를 죽은 것으로 위장해 용의선상에서 벗어난, 용의주도한 주인공이었습니다. 한나가 팔지도 못하는 비싼 보석 목걸이를 주군의 아버지(김용건)에게 요구하고 주군을 협박하며 소설을 읽게 만든 이유는 모종의 '복수' 혹은 '처벌'과 관계 있으리란 짐작이 가능합니다. 한나의 계획이 어딘가 모르게 삐뚤어진 욕망이고 잘못된 선택이기에 차희주가 죽어서도 걱정하고 있는거겠죠.
워낙 오래전에 읽은 소설이나 그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도망칠 수 없는 섬에 갇힌 10명의 남녀가 과거에 저지른 죄 때문에 모두 죽고 섬에는 살아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내용의 추리 소설입니다. 10명의 사람들은 각각 음주운전으로 어린 남매를 죽이거나 부인과 바람난 부하를 죽이고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주인을 죽이는 등 죄값을 치러야하는 사람들이었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차희주의 쌍둥이가 모두를 죽이려 한다고 해도 이상한 상황이 아닙니다.
갑작스런 주군의 퇴장은 결국 차희주와 만나 지금까지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숨겨진 과거를 회상하고, 한나에 대한 대책을 세움과 동시에 태공실과 주중원의 사랑을 시험하는 일종의 '위기'같은 거라 봅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는 주중원의 영혼이 계속 해서 태공실 앞에 나타날지 안나타날지 알 수 없으나 독고진이 심장 수술을 받으러 미국에 간 동안 기다렸던 구애정(공효진)처럼 두 사람의 사랑이 더욱 단단해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지요. 태양은 주군없이도 '폭풍우 치는 밤에' 귀신을 보고 귀신 차희주에 대한 질투를 견뎌야할지도 모릅니다.
점점 더 달달해지는 주군과 태양의 로맨스는 안 그래도 많은 부분 불안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갑작스레 나타난 차희주의 쌍둥이 한나가 주군에게 점점 더 가까워지고 주군의 고모 주성란(김미경)은 태양을 경계하는 한편 같은 곳에 사는 한나를 마음에 들어하고 있습니다. 한나가 아는 척한 '난독증'을 주군이 털어놓았단 말에 비밀을 너무 함부로 알린다며 걱정했지만 차희주의 쌍둥이가 누군지 모르는 주군이나 강우(서인국)가 한나의 정체를 추측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겠지요. 주군이 쓰러졌다고 멈춰있을 때가 아니란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시청자들을 시쳇말로 '멘붕'에 빠지게 사건과는 달리 다음주에 생각 보다 여유로운 분위기로 13회가 시작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고의 사랑'에서도 그랬고 안 그래도 무서운 귀신들이 자주 등장하는 '주군의 태양'에 우울한 분위기가 오래 가는 건 결코 좋지 않거든요. 더군다나 늑대와 양처럼 서로를 위해 죽어줄 수 있다고 닭살 돋는 마음까지 보여준 두 사람이 떨어져 있는 분위기로 오래 가면 태공실이 어쩌다가 어떤 사고를 당했는지는 어느 세월에 듣는단 말입니까. 작가님들이 어서 빨리 주중원을 태양 옆으로 돌려놓길 희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