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약간 빗나간 시대 고증 댄스가수 '유채영' 때문일까

Shain 2011. 12. 1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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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를 누려보지 않은 세대에게 '이 문화는 70년대'고 '저 문화는 80년대'라 구분해 설명한다 한들 똑같은 옛날 이야기라는 점에선 큰 차이가 없을 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복고'는 적당히 오래된 분위기를 풍기면 그만이지 시대를 꼼꼼히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죠. 복고 드라마 '빛과 그림자'는 초반엔 '미워도 다시 한번 3' 극장 간판으로 보아 그 시대를 1970년으로 유추할 수 있었지만 최근 등장한 몇가지 소품이나 문화는 70년대 초반의 것이 아닌 70년대 후반 또는 80년대의 것입니다.

극중 플랭카드도 70년인데 지난 차수혁(이필모)과 장철환(전광렬)의 대화에 벌써 신민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90만표 차이로 대통령 선거에서 졌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71년). 그렇다면 벌써 박정희 대통령이 삼선에 성공했고 유신헌법을 통과시키려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인데 선거 프랭카드가 걸려 있고 장철환이 선거를 준비하다니 그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이미 유신헌법이 통과해 72년 다시 대통령이 되는 박정희의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일까요? 극중 사건으로 대충 짐작만 하다 보니 정확한 시기가 궁금해질 때가 있습니다.

댄스가수 유채영은 어느 시대 사람일까.

딱 부러지게 구분하기 힘든 시대니 한꺼번에 '70년대'로 뭉뚱그린 것같기도 하고 그도 아니면 이 드라마가 70년대 초반에서 시작해 80년대까지 이어질 내용이라서 두루 두루 시대를 묘사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극중 강기태로 등장하는 안재욱이 영화 '그리스(Grease, 1978)'의 존 트라볼타와 유사한 가죽 재킷을 입고 80년대 '나이트클럽'같은 고고장에서 춤추는 모습은 그냥저냥 그럴듯 했지만 확실히 유채영(손담비)이 79년에 발표된 디스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시대가 다르다'는 느낌이 확 오더군요.

전세계적으로 '디스코'라는 특정 장르가 유행한 것은 77년 경이 그 시작이라 합니다.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 1977)'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디스코텍과 '디스코풍'의 음악, 그리고 춤이 인기를 끌게 됩니다. 극중 유채영은 종종 '나는 열일곱살이에요'같은 옛날 노래도 부르곤 하지만 팝을 부르며 춤추는 모습은 기존에 보던 70년대 초 여자가수들과는 매우 다릅니다. 2회에서 첫등장하며 불렀던 노래 'Mony Mony'도 1968년 당시의 원곡은 그런 느낌이 아니었지요. 극중 등장한 '김추자'와 '유채영'은 확실히 다른 시기의 가수같습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극중 '인기 남자 배우'로 등장하는 최성원(이세창)의 모델은 60-70년대 최고 인기스타인 최무룡, 신성일, 남궁원 이 세 사람이 가장 유사하다고 적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만큼 극중 '최성원'이란 캐릭터는 한눈에도 당시 영화배우들이 떠오를 정도인데 여자가수 '유채영'의 모델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처음엔 70년대 초반에는 미8군 무대에서 주로 활약했다는 '해피돌즈'의 멤버 '나미'를 연상했지만(실제 당시 나미가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보면 유사하기도 합니다) 나미는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후반까지 대활약한 가수입니다.

70년대 초반 가장 격한 춤을 보여줬다는 남진과 김추자(?)

드라마에 등장한 '남진'의 '님과 함께'는 상당히 파격적인 율동을 보여줍니다. 반면 여자 가수 '김추자'의 몸짓이 격하기는 해도 남진에는 못 미친다는 걸 보셨을 것입니다. 극중 어린 이정혜(남상미)가 고아들 앞에서 불렀던 노래 제목이 '검은 상처의 블루스'인데 그 곡의 원가수가 '한명숙'입니다. 한명숙은 '노란 샤쓰의 사나이'란 경쾌한 곡을 1961년 발표했고 그 노래가 국내 최초로 무대에서 '몸을 흔드는' 장면을 연출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죠. 1961년에 춤도 아닌 '율동'이 화제가 되었는데 불과 10년 뒤인 1970년의 댄스가 디스코풍이기는 힘들겠죠.

'우리 나라 최초의 댄스 여가수'는 이금희라는 분이랍니다. 2007년에 지병으로 타계한 이 분은 미8군 무대 등에서 대활약했다고 하는군요. 1967년 신문 기사를 찾아보면 연예인 최고 납세자 명단이 등장하는데 영화배우에서 1위를 차지한 사람이 '신성일'이고 가수 부문의 1위가 '이금희'입니다. 월남에 파병한 군인위문공연을 갔을 때도 최고의 인기를 누려 연일 탑기사로 보도되던 가수이니 그 인기를 짐작하실만 할 겁니다. 이금희의 대표곡이 바로 '키다리 미스터 김'이고 우리 나라 최초의 팬클럽을 가진 연예인으로도 유명합니다(1966년). 동영상만 봐도 요즘 생각하는 댄스하고는 좀 다르지요.

그러나 '이금희'가 춘 춤의 스타일은 '고고'나 '디스코'가 아닌 '트위스트'였습니다. 당시 최고의 섹시 댄스가수였다는 김추자 역시 디스코와는 확실히 다른 스타일이었구요. 고고(go go)가 아무리 디스코(Disco)와 유사해서 차이를 구분하기 힘든 스타일이라지만  그렇지만 '빛과 그림자' 속의 유채영은 누가 봐도 디스코풍의 춤과 노래를 부르는 가수입니다. 재즈나 로큰롤, 밴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70년대 초반의 '고고춤'과 약간은 전자음이 강조된 유채영의 춤은 묘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나이어린 10대의 식모와 군인 출신 국회의원, 이 모습은 70년대 초반이 맞는데.

한마디로 장철환 국회의원이나 영화나 쇼단의 문화는 70년대 초반에 머무르고 있어도 유채영의 춤과 음악이나 '풍전 나이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70년대 후반의 대표곡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이트에서 흘러나오던 'Earth Wind and Fire'의 'Boogie wonderland'는 1979년 발표된 곡이고 '김훈'의 '바람'은 아예 80년에 발표된 노래입니다. 극중 유채영이 부른 '도나 서머'의 'Hot Stuff' 만큼이나 확실히 디스코풍의 노래들인 것이죠. 고고냐 디스코냐를 확실히 구분하지는 못해도 흥미로운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극중 안재욱이나 이세창이 당대 배우들 만큼 노래를 잘 부르는 건 사실이지만 배우들이 가수 역을 맡으면 아무리 훌륭하게 노래를 불러도 화려한 무대 감각은 흉내내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이정혜 역의 남상미가 감정표현을 잘 해도 무대에 올라 노래 부르는 모습은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수 출신 손담비의 등용은 그런 면에서 이해가 가고 또 70년대 최고 스타 김추자 보다는 70년대 후반 디스코 풍의 노래가 손담비의 캐릭터에는 훨씬 더 잘 맞는 거 같습니다. 이런 시기적인 오류는 아무래도 손담비가 극중 '유채영'으로 자리잡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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