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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 귀천이 없는 시대라고 하지만 불과 몇십년전만 해도 연예인은 천한 직업이라 했습니다. 조선 시대 기생이 천하다 해도 그네들의 춤과 음악, 시화의 가치는 높이 평가해 주었고 일반 백성들도 남사당패들이 보여주는 흥겨운 춤과 노래를 좋아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들은 천한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신분 사회라 그들을 낮춰 말하고 깎아내릴 필요가 있었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배고프던 시절 마을을 떠돌던 놀이패들의 악습이 나쁜 인상을 남긴 까닭인지 몰라도 일제 강점기 이후 그런 분위기는 더욱 심해진 듯합니다.

이 드라마 '빛과 그림자'의 유채영(손담비)도 쇼단 무용수가 되고 가족과 절연했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그 시절엔 배우가 되거나 가수가 되겠다고 나서는 딸을 머리 깎아 집에 가두고 강제로 시집보내는 풍경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의식으로는 여자가 뭇 남정네들 앞에서 짧은 옷을 입고 몸흔드는 것도 용납이 안되거니와 남들이 함부로 대하고 수작걸기 좋아하는 연예인이 된다는게 부모님들은 못내 걱정스러웠던 것입니다. 조선 후기 남사당패에서 한층 발전한 유랑극단, 또 60년대 '쇼단'은 공연 내용이나 성격은 조금씩 달라도 전국을 떠돌며 공연을 펼친다는 점은 같았습니다.

신정구는 어떻게든 공연을 해보려하지만 권력을 등에 엎은 노상택의 방해로 무산된다.

사람들은 쇼단이 펼치는 멋진 공연을 보며 박수를 치고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무대 위에서 밝게 웃고 사람들을 향해 손짓하는 그들은 늘 멋진 배우이자 가수들이지만 그 뒤의 숨은 사연을 무대 위에서 말하는 법이 없습니다. 마치 잘 만들어진 SF 영화가 어떤 과정으로 특수촬영을 했는지 상상 조차 하기 힘든 것처럼 한번의 공연을 펼치기 위해 사기를 치고 싹싹 빌고 때로는 깡패들에게 돈까지 상납하는 쇼단 단장 신정구(성지루)의 애환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속으로 울어도 겉으로 웃어야 하는 피에로의 비극처럼 그들의 화려함 뒤에는 늘 그림자가 있었죠.

연예인들이 '딴따라'라며 천시받는 이유는 여러 요인이 합쳐져 있으니 쉽게 단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적인 내력도 이유 중 하나이겠지만 무엇 보다 그들을 약자로 만드는 건 그들이 술취한 관객이 소주병을 던져도 다른 유명 가수가 나오라며 소리를 질러도 공연하는 여성들의 손을 잡으로 앞으로 뛰어올라오거나 추행을 해도 '무대' 위에서 만은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권력과 연예계의 악연은 이때부터

'빛과 그림자'의 강기태는 장철환(전광렬)의 용공 조작 때문에 아버지 강만식(전국환)을 잃고 전재산도 조명국(이종원)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시대의 아픔을 한몸에 느끼고 있는 그의 고난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유채영와 가까이 지냈다는 이유로 노상택(안길강)에게 린치를 당하게 됩니다. 돈과 지위를 이용해 유채영을 나이크 클럽으로 불러낸 재벌 2세는 노상택이 잡아온 강기태를 무자비하게 걷어차며 폭행합니다. 주먹으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기태라도 깡패들이 휘두르는 폭력에는 속수무책입니다.

2003년 SBS에서 드라마 '야인시대'가 방영될 때 탤렌트 최민수는 극중 최무룡과 임화수의 관계가 사실과 다르다며 소송을 제기한 적 있습니다. 극중 임화수(최준용)는 이승만 정권의 선전을 위해 연예인들을 불러모으고 이에 반대하는 연예인들을 협박, 폭행하는데 그 과정에서 최민수의 아버지인 '최무룡'이 구타당하는 장면이 연출되었습니다. 최민수는 이 장면이 허구이며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소송한 것입니다. 임화수는 김희갑이란 유명 연예인의 갈비뼈를 부러트린 당사자로 그 장면은 그 '사실'을 모티브로 연출된 장면일 것입니다.

조명국의 비밀을 알려주려 한 양태성, 노상택에게 끌려가 얻어맞는 강기태.

'임화수'의 실제 성격이 어땠느냐 혹은 사형을 당할 만큼 악질적인 깡패였느냐는 이론의 여지가 있는 모양이지만 임화수는 정권을 등에 업고 영화판과 연예계의 실력자로 행세하며 배우들을 접대부처럼 술자리에 내보낸 사람입니다. 요즘도 고질적인 병폐로 평가받는 여배우들의 성상납 시스템을 만들어낸 인물이기도 합니다. 일부 여자 배우들 중엔 결혼했다는 이유로 그의 부름을 거부하다 연예계에서 퇴출당할 뻔했다고도 합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김희갑은 자신이 출연을 거부했던 행사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홍보하자 항의하다 두들겨 맞았다고 합니다.

'빛과 그림자'에서도 장철환이 영화 사업에 관심이 있다는 양태성(김희원)을 불러놓고 '새마을 운동'같은 걸 홍보하는 영화를 만들면 대종상을 주겠다고 호언합니다. 그런 정치권의 압력은 실제 있었던 일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장면으로 김희갑도 후에 반공예술인단 단장이었던 임화수가 이승만에 대한 홍보 영화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에 김희갑을 출연하라 압력을 넣었다고 증언하기도 합니다. 김희갑은 당시 최무룡을 비롯한 많은 연예인들이 임화수에게 맞았노라 했으니 '야인시대'에서 연출된 그 장면은 아예 허구라고만 할 수는 없겠죠.

여자연예인들의 마담뚜 미세스윤. 차라리 아무 생각없는 최성원이면 편할텐데.

극중 '노상택'은 현대의 연예기획사 사장같은 역할을 하며 가수와 배우들을 훈련시킵니다. 동시에 중정 미림팀의 장철환을 등에 업고 깡패들을 동원해 동네 건달 보다 막강한 힘을 과시합니다.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이 즐거운 가수 유채영이 연예계에서 살아남자면 노상택을 거부할 수도 없고 재벌 2세의 추파를 피할 수도 없습니다. 차라리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연예인 최성원(이세창)처럼 겁많고 아무 생각없이 사고나 치고 다니는 타입이면 스트레스라도 받지 않을텐데 싫은 자리에 나가야하는 여자 연예인의 고통은 누구와 나눌 수도 없습니다.

노상택에게 대드는 채영, '단장님의 노리개도 아니고 앵무새도 아니라'는 유채영의 선택은 극중 이정혜(남상미)의 선택과 대조적입니다. 순회공연이 무산되고 서울로 돌아온 정혜는 차수혁(이필모)가 오지 말라고 했던 중정으로 따라나갑니다. 당시 인기있던 여배우였던 남정임, 문희 만큼이나 차분하고 단아한 정혜의 외모는 '그분'이 참 좋아할 타입이라 미세스윤(엄수정)과 피에르유(김광규)는 환영합니다. 뗄래야 뗄 수 없었던 권력층과 연예계의 악연, 두 여자 연예인은 그 압력을 헤쳐나가는 다른 선택을 한 셈입니다.

나는 노리개가 아니라는 유채영, 장철환의 부름에 따라나선 이정혜.

연예인들의 성상납이나 접대가 문제가 된 건 하루 이틀이 아니죠. 소위 '딴따라'들의 슬픔은 현대사의 굴곡과 함께한 아픔이기도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춤과 노래를 선보이고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싶어한 그들의 소망을 이루기는 쉽지 않은 시대였던 것같습니다. 아무리 강기태가 호기롭고 강단있는 남자라도 권력 앞에서 객기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월남에서 갑부가 되어 돌아온 어리버리 양태성이 강기태와 신정구의 구원 타자가 될 수 있을지 미지수이지만 어서 빨리 강기태가 성공해야 유채영을 구해줄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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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2.28 11:18 신고

    못봤는데... 리뷰가 줄줄 올라오네요.
    재미있었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