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아무도 못 말리는 마도로스박과 맨발의 청춘 기태

Shain 2012. 1. 2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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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 무대 하나를 꾸미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지 직접 무대를 꾸미는 사람들이 아닌 쇼를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 수고를 상상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쇼무대에 오르는 사람들의 재능 발굴을 위한 노력에 더해 무대를 둘러싼 환경, 즉 연예계에 가해진 각종 폭력에 대해서도 묘사하고 있습니다. 술에 취한 관객은 무대로 술병을 던지고 넘치는 권력을 가진 한 정치인은 연예인들을 마치 자신의 오락거리인양 취급하고 날고 긴다는 깡패들이 연예인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행위를 예사로 벌이는 그런 시대.

맨몸으로 연예사업에 뛰어든 돈키호테 강기태(안재욱)는 빛나라 쇼단 단장이 되어 서울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빅토리아 나이트의 무대를 책임졌지만 어떻게든 자신을 쓰러트리려는 장철환(전광렬)과 늘 맞부딪혀야 합니다. 영화사 사장 조명국(이종원)과 장철환의 수하 차수혁(이필모)은 빅토리아 나이트 영업정지를 위해 경찰에 압력을 넣고 있고 세븐스타 쇼단 단장 노상택(안길강)은 기태를 좋아하는 유채영(손담비)을 이용해 모종의 음모를 꾸미는 듯합니다. 그들과 함께 하는 전국구 깡패 조태수(김뢰하)는 늘 빅토리아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죠.

장철환이 이정혜를 협박하는 자리에 나타난 강기태.

연예인이 되기 위해 가족과도 연을 끊은 유채영(손담비)가 기태에게 해준 말처럼 '쇼처럼 즐거운 인생은 없다'는 말은 분명 사실입니다. 못생겼다는 타박을 받고 빛나라 쇼단의 각종 잡일을 하면서도 가수로서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홍수봉(손진영)이나 넘치는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무대에만 올라가면 사람을 홀리는 최성원(이세창)은 무대에 목숨을 걸고 자신의 최선을 다 합니다. 어디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헐렁하던 최성원이 무대 위에서 공연하는 모습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신기하기만 합니다.


이제는 기태도 예전처럼 기댈 곳없는 애송이는 아닙니다. 그에게는 올바른 연예산업에 대한 조언을 해줄 선배들이 생겼습니다. 유랑극단 시절부터 쇼단을 끌어오며 갖은 고생을 다 했던 전직 빛나라 쇼단 단장 신정구(성지루)와 영화 배급업으로 연예계의 큰손이 된 빅토리아 나이트 사장 손미진(이휘향), 비록 기태와 직접 손을 잡지 않았지만 장철환과 대립하며 은근히 기태의 손을 들어주는 중정 김부장(김병기)는 기태를 그냥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가 반도 호텔에서 이정혜(남상미)의 손을 끌고 나오는 장면은 어쩐지 '맨발의 청춘'을 연상시키더군요.



열혈 배우 마도로스 박을 누르지 못한 조태수의 굴욕

장철환이 이정혜를 만나던 곳이 반도 호텔이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 최초의 패션쇼가 열렸던 곳이기도 한데 자유당 시절에는 정치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곳으로 유명했다는군요. 1974년 헐리고 그 자리에 지금의 롯데호텔이 들어섰습니다. 홍수봉이 부르던 신중현의 '미인' 만큼이나 시대를 되돌아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입니다. 당시에 인기를 끌던 영화와 배우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하고 있을까 싶어지기도 합니다. 박노식이란 배우는 이제 더 이상 전성기 때의 모습을 영화에서 볼 수 없지만 아들 박준규가 그때의 이미지를 '마도로스박'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네요.

'맨발의 청춘(1964)'은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히트 영화로 깡패 출신의 보잘것없는 남자 주인공이 신분이 다른 집안의 딸을 사랑하게 되는 내용입니다. 강기태가 이정혜의 손을 잡아끌며 뛰어가는 장면에서 연상된 건 '빽'도 없고 돈도 없는 강기태가 당시 최고 실세라는 장철환에게 맞서는 모습이 정말 낭만적이고 멋있다 싶으면서도 '맨발의 청춘' 만큼이나 무모하고 아슬아슬하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얼핏 리어카에 실려가던 남자의 맨발이 떠오른 것도 같네요. 물론 둘의 분장이 워낙 복고풍이라 영화 속 한장면이 연상된 것도 사실이구요.

아버지의 인기를 그대로 재현한 박준규의 무대.

두발 단속을 하겠다면 어쩐지 머리가 더 길러보고 싶고 양담배 단속하겠다니 한번 피워보고 싶고 모든 걸 힘으로 조율하고 단속하던 그 시대에 영화는 왜 그리 재미있기만 한지 박노식은 그런 시대를 풍미한 흥미로운 배우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실제 당시 최고의 주먹을 두들겨 팼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속 이미지처럼 실제로도 폭력 문제로 종종 경찰서를 들락거렸고 한때는 폭력연예인으로 긴급조치에 단속되어 영화계에서 물러나 1980년이 되어서야 귀국하기도 했습니다. 감독으로 활약하기도 했고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그로서는 상당히 아쉬운 기간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드라마 속에서 마도로스박과 최성원이 찍고 있는 영화 내용처럼 한 여자를 사랑해 건전하게 살고 싶었지면 주변 상황 때문에 감옥살이를 했던 한 남자가 돌아와서 갈등하는 내용의 영화가 옛날엔 상당히 많았다고 합니다. 박노식은 그런 류 깡패와 아가씨가 주연을 맡던 영화에서 때로는 악당역을 하고 때로는 강인한 한국 남자를 연기하며 인기를 끌었습니다. 대표작은 '5인의 해병', '카인의 후예', '마도로스박'같은 것들이 있고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집행유예' 등은 직접 감독하기도 했습니다.

천하의 조태수를 두들겨패다니 강기태도 깜짝 놀랄 일.

하여튼 영화계 주변에서 거들먹거리며 돈이나 뜯고 압력을 넣던 건달이 배우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다 얻어맞는 모습은 코믹하다 못해 속이 시원하더군요. 극중 조태수는 당시 꽤 유명하던 조양은이나 김태촌을 합쳐놓은 인물같은데 말이 좋아 정의로운 주먹이지 당시에는 정치깡패나 연예산업의 뒷돈을 먹는 존재들로 군림했던 것 같습니다. 최성원처럼 얻어맞고 늘 뜯기기만 하던 영화배우들의 반전이라니 기태의 무모한 행동 만큼이나 흥미로운 연출인 듯합니다. 물론 '폭력'은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지만 말입니다.

'패키지쇼'라는 말은 요즘은 듣기 힘들어진 걸로 아는데 마도로스박이 영화속 액션 장면과 노래, 춤을 섞어 연출한 것처럼 여러 가수들이나 배우들이 함께 공연하는 버라이어티 쇼를 의미합니다. 예전에는 코미디언이나 배우, 가수들을 가리지 않고 극장에서 쇼무대를 연출하는 게 유행이었고 TV나 영화가 대중화되지 않은 그런 시대에 그만한 볼거리는 흔치 않았다고 하더군요. 빅토리아 나이트의 규모가 크기는 큰 모양입니다.

순양댁과 박원자를 설레게 한 색소폰 연주자의 정체는?

영화 '맨발의 청춘' 속 건달은 연인의 손을 잡고 함께 했지만 목숨을 끊어야했고 결국 맨발에 거적때기에 싸인 차디찬 시신이 됩니다. 한때 '마도로스박'으로 멋지게 주먹을 쓰던 한남자는 평범한 '용팔이'가 됩니다. 차수혁같은 계산이 빠른 사람들은 그런 결말이 싫어 장철환의 권력을 가까이 하겠지만 조태수도 장철환도 두렵지 않은, 무대에 모든 걸 거는 이 남자들은 그런 건 무섭지 않나 봅니다. 그 시대의 우울함을 이겨낸 힘도 그런 용기일테구요.

한편 순양댁(김미경)과 함께 식당을 차린 기태 엄마(박원숙) 앞에 수상한 색소폰 사나이(김용건)가 나타났습니다. 멋지게 색소폰 연주를 하는 그 남자 때문에 순양댁과 기태엄마는 때아닌 화장을 한다고 난리입니다. 색소폰 연주를 하며 문간방에 세들어 사는 그 남자는 구두만 열켤레가 넘는 희한한 멋쟁이입니다. 색소폰을 부는 당시 유명인 중에는 가수 현미의 남편으로 유명했던 이봉조가 있습니다. 작곡가로도 유명한 이 사람은 '밤안개'같은 히트곡을 다수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과연 어떤 역할로 강기태와 연결이 될지 궁금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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