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점점 더 궁금해지는 강기태의 실존 모델

Shain 2012. 3. 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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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표장사로 출발해 연예계의 대부가 된 인물. 미군부대 쇼를 제작하고 쇼단까지 운영하던 쇼비즈니스 업자. 재능있는 사람은 누구든 성공시키고야 마는 탑스타 제조기에 연예계 구석구석 안 닿는 인맥이 없고 조폭들에겐 형님이라 불리던 밤의 황제. 전에도 몇번 언급했듯 드라마 '빛과 그림자'의 강기태(안재욱)의 캐릭터는 최봉호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습니다. 극중에서 '강기태'를 연예인들 보다 유명한 연예기획사 사장이라고 표현했듯 최씨 역시 연예계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조용필, 이주일같은 시대를 주름잡던 스타들이 어려운 시절을 함께한 그와 '의리'를 지켰습니다.

극중 순애(조미령)이 이혜빈(나르샤)의 면접을 보며 언급한 쇼단이 있습니다. 이혜빈의 본명이 이정자임을 알고 있는 순애는 10년전에도 21살인데 여전히 21살이냐며 혜빈의 정체를 폭로합니다. 순애와 정자는 10년전에 같은 쇼단에 있었다고 했는데 그 쇼단 이름이 '쓰리세븐'이었답니다. 사실 60년대 말 최봉호가 운영하던 쇼단의 이름이 '쓰리세븐'이었습니다. 60년대 후반에 '쓰리세븐쇼'라는 화려한 쇼를 기획하며 최고의 인기를 과시하곤 하던 사람이었으니 인맥이 안 넓을래야 안 넓을 수가 없습니다. 댄서들과 악단이 동원된 60년대 쇼의 품질과 수위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1967년 1월 27일 매일경제 기사.쓰리세븐 쇼단 창립기념쇼.


드라마 첫회에 빛나라 쇼단 신정구(성지루) 단장이 강기태와 양동철(류담)을 시민회관 공연에 초대해 하춘화, 김추자, 남진 등의 합동공연을 보여준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72년 시민회관이 화재로 불타버리기 전까지 서커스, 코미디를 비롯한 많은 쇼가 공연되었는데 쓰리세븐 쇼단은 '7스7리7SHOW쎄븐'라는 독특한 제목의 광고가 눈길을 끌더군요. 같은 해 '777 쇼단'이라는 쇼단도 만들어진 것을 보면 럭키 '세븐'은 쇼단에게 상당히 인기있던 숫자였나 봅니다. 노상택(안길강)의 '세븐스타' 쇼단은 근거없는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잘 살펴 보면 드라마에 등장한 대부분의 에피소드와 명칭들이 실존인물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지평(문태원)의 한양구락부는 최씨가 경영하던 '서울구락부'라 볼 수 있습니다. 최씨는 그 업소의 실세로 당시 엄청난 재산을 모았습니다. 또 '빛나라 쇼단'이 '빛나라 기획'으로 변신했듯 70년대 초반엔 '삼호기획(혹은 삼호 프로덕션)'을 설립해 매니지먼트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강기태가 레코드 공장을 설립했다는 묘사처럼 81년엔 레코드 제작에 직접 뛰어들었습니다. 이정혜(남상미)가 강기태와의 열애를 부인했듯 그의 아내인 나미도 부부라는 사실을 숨긴채 살아왔던 점도 유사합니다.



팬들을 사로잡은 강기태의 진실은?

어제 방영된 '빛과 그림자'의 엔딩장면은 수의를 입은 강기태가 감옥에 수감되는 장면입니다. 운나쁘면 사형까지 구형받을 수 있다는 그의 혐의는 조직폭력배의 수괴란 것입니다. 사형은 면해도 꼼짝없이 감옥에 잡혀 있어야 합니다. 장철환(전광렬)이나 조명국(이종원)에게 복수하기는 커녕 차수혁(이필모)의 음모에 묶여 아무것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어보니 배우 안재욱이 직접 부른 OST인 것 같더군요. 이혜빈, 홍수봉(손진영), 유채영(손담비)이 부른 극중 노래와 함께 새로이 OST로 발매될 곡이 아닌가 싶습니다. 연기자 안재욱은 본래 노래도 꽤 잘하는 배우였지요.

안재욱이 연기하는 강기태는 멋진 남자입니다. 70년대를 활약하는 인물이라 마초스럽다거나 촌스럽다는 건 어쩔 수 없어도 자신의 연인에게 순정을 바치는 모습이나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성공을 꿈꾸는 모습, 또 쇼에 미쳐 인생을 바치는 그의 모습은 말로 표현이 안될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그러나 연기자 안재욱의 연기로 다시 태어난 '강기태'와 실존인물 최봉호가 얼마나 유사한가라는 질문엔 쉽게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드라마와 유사한 일을 겪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조폭의 윗선이었느냐 혹은 자금을 지원했느냐라던가 폭행을 청부했으냐 하는 문제는 드라마와는 별개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차수혁의 음모로 감옥에 갇힌 강기태의 위기.


드라마 속에선 70년대 장철환과 김재욱(김병기)의 권력다툼에 강기태가 끼어든 것이고 또 개인적인 원한 때문에 무고한 강기태를 복역하게 만든 것으로 설정했지만 실제 모델이 된 그 사람이 91년 구속된 것은 나이트 클럽 운영 중 폭행을 사주했기 때문입니다. '밤의 황제'라는 엄청난 타이틀과 함께 잡혀간 그의 혐의는 살인교사였습니다. 실제 연예산업에 얼마나 많은 조폭들이 개입되었느냐 또는 정치계 인사들과 얼마나 많은 껄끄러운 사연이 있었는가 하는 문제는 드라마에서 표현할 수 있는 수위를 벗어납니다. 실존인물과 달리 '강기태'가 폼나고 깨끗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입니다.

이정혜와 유채영, 최성원(이세창)이 함께 작업하는 영화에서 드러난 여배우들의 갈등도 그렇습니다. 70년대 초반 문희, 남정임, 윤정희 이 세 사람이 영화 출연을 두고 갈등한 이야긴 유명합니다. 의상 경쟁 뿐 아니라 캐스팅 과정에서도 치열하게 경쟁해 시나리오를 조정하는 등 말썽이 일었다고 합니다. 또 김지미와 윤정희도 영화 주연 자리를 놓고 법정 소송까지 벌인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야 사랑하는 연인 때문에 신경전을 벌이는 것쯤으로 처리할 수 있지만 실제 사건을 표현했다면 아직 생존중인 배우들에게 부담스러운 장면이 될 수 밖에 없겠죠. 마찬가지로 경찰에 끌려가 '어르신'을 언급했다는 연예인들에 대한 묘사도 그렇습니다.

'내가 누군줄 알고' 묘사하기 껄끄러운 궁정동 에피소드의 한계.


극중 유채영은 70년대에서 80년대까지 활약하던 '나미'와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보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화려한 댄스실력에 무대 공연으로 다져진 기본실력 등 유채영은 80년대 '빙글빙글'로 최고 인기를 누리던 나미를 떠올기게 합니다. 가수 나미와 최봉호의 관계가 소문난 것은 80년대 중반이지만(그때 이미 전국적으로 아이엄마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습니다) 언론에서 대서특필한 것은 91년 최봉호가 구속된 이후입니다. 그들의 자녀들이 아직까지 연예계에서 활약중인 마당에 궁정동까지 다녀온 유채영의 모델이 나미라고 하면 오해를 낳기 쉽습니다.

결국 실존인물은 실존인물대로 판단하고 드라마 속 캐릭터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습니다. 드라마 시청자들 중에서는 초반 방영 때는 강기태를 백퍼센트 가상의 인물로 생각했다가 실존인물이 있는 거 같다는 생각에 검색해보시는 분들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60년대부터 탁월한 재능으로 굵직굵직한 쇼를 기획하고 프로덕션을 만드는가 하면 매니지먼트 사업의 표본이 되고 여러 호텔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며 일천억원 대의 재산을 긁어 모은 큰손 중의 큰손. 유명 탑스타들도 형님이라 부르며 어려워하던 '대부'라면 드라마의 모델이 되고도 남음이 있는 인물입니다.

강기태를 위해 장철환과 차수혁을 만나는 채영과 정혜.


아직까지 쓰러트릴 적들이 많은 강기태가 수감생활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자면 같이 수감된 조태수(김뢰하)나 노상택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야겠군요. 밖에서는 이정혜가 차수혁을 만나고 유채영이 장철환을 만나고 있습니다. 각자 무엇을 거래 조건으로 삼아 기태를 구해내려 할지 궁금합니다. 유채영은 청와대의 보호를 받고 있지만 그 권력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어르신에게 마지막 힘을 발휘해 장철환의 입지를 세워주는 조건으로 기태를 꺼내오려할 것이고 차수혁은 기태와 이별을 요구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빅토리아의 영업이 정지되고 빛나라 쇼단의 많은 단원들이 체포되고 출연금지 대상이 된 지금. 위기가 닥쳐오면 더욱 강해지는 강기태답게 이번에도 분명히 반전의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조태수가 탈옥을 시도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장면이 있어 더욱 궁금해지는 오늘 밤. 유채영이나 이정혜의 도움이 먹힌다면 강기태가 잃어야할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게 무엇이 될 지가 앞으로 강기태의 인생을 결정할 수도 있겠죠.

노상택과 조태수는 강기태의 조력자가 될까.


* 이정혜와 유채영이 가페에서 듣던 노래는 문정선의 '나의 노래(1971)'로 신우철 작사, 김강섭 작곡입니다. 문정선은 유명 톱가수 문주란의 동생으로 1970년 데뷔했습니다. '파초의 꿈', '보리밭'같은 히트곡을 남겼지만 결혼과 함께 은퇴했습니다. 작곡자 김강섭은 KBS 관현악단 지휘자로 활약하기도 했던 작곡자로 많은 히트곡이 유명합니다. 이 노래 '나의 노래'는 서정적인 가사로 당시 많은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군요(샛노란 은행잎이 가엾이 진다 해도 / 정말로 당신께선 철 없이 울긴가요 /샛빨간 단풍잎이 강물에 흐른다고 / 정말로 못견디게 서러워 하긴가요 / 이 세상에 태어나 당신을 사랑하고 / 후회 없이 돌아 가는 이 몸은 낙엽이라 / 떠나는 이 몸보다 슬프지 않으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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