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씁쓸한 80년대의 키워드 'K-공작'과 연예인 파티

Shain 2012. 3. 28. 12:49
728x90
반응형
정치를 드라마에서 표현하자면 많은 제약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과거 MBC에서 방영되던 드라마 '제5공화국(2005)'은 제작 초기부터 논란을 피하기 위해 법정 자료와 수사 기록같은 증빙할 수 있는 자료를 중심으로 대본을 썼고 PD를 비롯한 제작진들은 대사 하나 바꾸는데도 꼼꼼히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제작진들은 방영 초기 10.26이 발생한 장소를 자료사진과 똑같이 재현하고 사건 발생시 현장에 있었던 가수 심수봉을 초청해 고증받는 등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럼에도 당시 생존중이던 5공 핵심인사들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70년대 정치권에 휘둘리는 연예계를 묘사하던 드라마 '빛과 그림자'는 10.26을 묘사하지 않고 단숨에 시간적 배경을 80년대로 이동시켰습니다. 강기태(안재욱)가 무리하게 탈옥을 하고 밀항까지 해야했던 속사정은 '다큐' 드라마도 아닌데 정치 사건을 묘사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외압까진 아니더라도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특정 후보에게 부담이 간다는 지적도 많이 받았을테구요. 어제 송미진(이휘향)' 사장의 말대로 '정치가 단순하고 쉬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생기는 부작용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깡패가 이렇게 반갑긴 처음이야. 조태수와 함게 돌아온 강기태.


정치와 영 거리가 멀어 보이는 연예계에도 궁정동이라는 暗黑史(암흑사)가 존재하듯 '정치'는 아무리 현실과 떼어놓으려 해도 떼어질 수가 없는 것인가 봅니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지금의 불경기가 80년대 정치권의 부동산 거품 때문이었다고 하면 과거에 관심을 가지게 될까요. '딴따라'는 부르는 곳에 가서 춤추고 노래하면 그만이라는 연예인들은 자신들을 무시하는 현상과 사람잡는 지독한 루머가 정치권을 접대했을 때부터 생긴 현상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것일까요. 강기태와 함께 80년대의 수레바퀴는 또다시 구르기 시작했습니다.

35회 첫장면에서 유채영(손담비)과 최성원(이세창)이 기자회견을 한다고 묘사된 반도호텔은 사실 74년 이미 철거되었고 롯데호텔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강기태와 조태수(김뢰하)의 밀항과 함께 시대는 급변합니다. 1980년 봄, 차수혁(이필모)이 5공화국의 핵심세력으로 급부상하고 한빛회의 군인들은 호텔에서 K-공작을 브리핑받습니다. 과연 정권을 차지하기 위해 기획되었다는 'K-공작 계획'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차수혁의 얼굴에서는 '5공화국의 핵심브레인'이었다는 '3허' 중 하나인 허화평의 모습이, 안도성(공정환)에게는 '6공화국 황태자' 박철언의 모습이 엿보입니다.



언론을 활용하고 회유하라 언론 통폐합의 전조

80년대가 되면서 등장인물들의 역할이 대거 조정되었습니다. 강기태와 노상택(안길강), 신정구(성지루)는 여전히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이지만 70년대의 차지철을 연상시키던 장철환(정광렬)은 과거의 영향력을 기반으로 정치자금을 벌어들이는 브로커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업회장에게 불법적인 폭행도 서슴치 않습니다. 최근까지도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구설에 오른 정치인, 고문과 폭력의 상징인 정모씨가 떠오르는 묘사입니다. 앞으로도 5공화국의 빠찡코 사업과 대기업 통폐합으로 장철환은 '대활약'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반면 중정 김부장(김병기)은 일본 빠찡코 업체의 일을 돕는 중간책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대에 알맞은 '포지션'이 정해지니 문득 유채영의 역할이 궁금합니다. 35회에 잠깐 등장한 채영은 기태가 귀국해도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순애(조미령)가 피에르(김광규)에게 채영의 위치를 횡설수설 얼버무리는 모양이 수상합니다. 아무래도 70, 80년대에 도피성 출국을 했던 많은 여배우들처럼 피신을 한 것같습니다. 80년대에도 궁정동의 '그때 그 여자들'처럼 일부 여자 연예인과 정치인의 루머는 전국을 떠돌았습니다. 일설에는 홍준표가 조사한 박철언 자료에 그녀들의 실명이 있다는데 아직까지 공개된 것은 없나 봅니다. 유채영이 린다김같은 로비스트가 될지 또다른 권력자의 여자가 될 지 궁금한 부분입니다.

5공화국 세력의 핵심 브레인이 된 차수혁. 그가 내놓은 K-공작


신정구와 노상택이 'K-공작 계획'를 브리핑한 그 자리에 대기하고 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나요? 신군부의 집권 시나리오인 'K-공작'은 전두환 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인 'King 프로젝트'의 일환이기도 하고 언론계를 회유 활용하여 민심을 신군부에 돌리는 기획이기도 했습니다. 80년대 이전 출생자들이라면 누구나 1994년에서 1996년 사이 5공화국의 청문회가 전국적으로 생방송된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최고 권력자였던 전두환에게 쿠데타에 대한 책임과 관련 문건의 진위 여부를 추궁하는 장면은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그 후 'K-공작 계획' 문서 사본이 전국민에게 공개되고 신군부가 치밀하게 언론을 회유했음이 밝혀집니다. 신군부는 80년대초부터 집권을 위해 언론을 활용할 계획을 구상했는데 1980년 2월, 보안사령부가 보안사에 정보처를 신설하고 그 안에 언론 관계 업무를 담당하는 '언론반'을 가동시킵니다. 3월에는 극중 차수혁이 호텔에서 보여준 'K-공작계획'이 완성되고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사인하자 별도의 언론대책반이 구성됩니다. 그들은 각 언론사 핵심인력들의 지지 성향까지 분석해 마련된 자료들을 토대로 언론인들을 회유하거나 검열하는 일을 맡습니다.

공안검사, 6공화국 황태자, 고문기술자, 브로커, 불법정치자금 - 그들의 키워드.


언론인들의 반응을 수집하거나 언론인 간담회를 개최해 언론사주, 간부의 반응을 살피거나 신군부에 협조하도록 요청하는 일도 그들의 몫이었고 그들이 작성한 자료는 후에 1980년 11월, 언론사 사주들을 소환해 언론사 통폐합을 강행하는데 이용되게 됩니다. 사주들에게 통폐합 조치를 통보하고 그 내용에 이의가 없다는 각서를 강제로 받아냈습니다. 장철환이 '김회장'에게 폭행으로 각서를 받아낸 장면이 떠오르는 순간이죠. 그때의 결과로 몇개 신문이 폐간되고 '연합통신'이 유일한 통신사가 됩니다. 또 KBS가 동아방송, 동양방송, 전일방송, 서해방송, 한국FM을 강제 합병하고 문화방송의 주식 65%도 강제 인수해 MBC는 공영방송이 됩니다.

그렇다면 '연예인'들은 드라마에서처럼 파티에 불려갔을까요. 위에 언급한 박철언이 국회의원 시절 술자리에 연예인들을 자주 불렀단 이야기는 모 신문기자가 기사화시킨 내용이기도 합니다. 당시 과격한 술자리를 즐겼다는 정치인들 이야긴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고 그중에서도 '12.12 자축파티'는 비디오 촬영된 기록이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12.12사태' 이후 샴페인을 터트리며 파티를 열었고 그 자리에 몇몇 여자가수들이 참여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전두환이 직접 연예인들을 격려하며 기념품과 돈까지 쥐어주었다니 흥미로운 기록입니다.

강기태와 함께 돌아온 김부장. 과연 재일교포 김풍길이 누구길래.


그리고 드라마 안에서는 궁정동에서 일하던 윤마담(엄수정)이 새롭게 살롱을 연 것으로 처리했습니다. 실제 동아일보에서 2003년 기사화한 그 'J살롱'은 정권 실세들이 자주 이용하던 최고급 룸살롱입니다. 그 자리에서 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청탁을 받아 수사에 거론되기도 했고 정권 후계자들이 언급되어 일명 '황태자 룸살롱'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3층짜리 단독주택으로 가정집으로 오인하기 쉬운 이 건물은 카페, 한정식집, 룸살롱으로 구성되어 있고 '회원제'로 운영되어 사전예약없이는 갈 수가 없습니다. 기본 술값이 비싸 5명이 술을 마시면 5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합니다(관련기사 참조).

차수혁이 '3S 정책'으로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돌려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도 느낄 수 있듯 시대는 변했습니다. 80년대에는 강제로 연예인을 술자리로 부르는 경우는 줄었지만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유흥에 뛰어드는 연예인이 늘어납니다. 젊은이들을 기죽게 하고 우울하게 하던 정치 대신 국민들은 스포츠와 야한 영화를 즐기기 시작합니다. 선거판에 등장하는 얼굴 마담 연예인들도 늘어납니다. 연예인들은 그 시대의 적극적인 가담자로 묘사될까요 그것도 아니면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사람들로 묘사될까요. 송미진 사장의 말처럼 이게 다 '정치가 단순하고 쉽지' 않아서 생긴 일인가 봅니다.

우울해진 강기태와 독해진 이정혜. 80년대를 어떻게 헤쳐나가려고.


(36회) * 신정구와 순애가 만나던 장면에서 흐른 팝은 'Reflections Of My Life'입니다. 4명의 스코틀랜드 출신 그리고 1명의 영국인으로 구성된 그룹 'The Marmalade'가 1969년 발표한 곡입니다. 리드 보컬 딘 포드의 목소리와 리드 기타 주니어 캠벨의 조화가 아름다운 이 그룹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서는 가장 성공한 밴드 중 하나입니다.

* 송미진 사장과 김재욱 부장이 만날 때 흐른 곡은 Bill Withers의 Ain't No Sunshine(1971)입니다. 'Just as I Am'란 앨범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여러 영화음악에 OST로 쓰이기도 했고, 국내에서 몇몇 CF 배경으로 이용되어 익숙한 곡이기도 합니다. 'Bill Withers'의 깊은 울림이 있는 보컬은 시대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충분합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