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무신(武神)

무신(武神), 최송이 남매는 월아의 죽음으로 어떤 영향을 받나

Shain 2012. 4. 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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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가 쓰는 표현 중 '노예 근성'이란 말이 있습니다. 남의 눈치만 보고 남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성질을 뜻한다고 하는데 폭넓게는 권력자를 향한 삐뚤어진 충성이나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멸시하는 태도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드라마 '짝패(2011)'의 한장면, 하인들이 거지 출신 천둥이 성공하자 뒤에서 흉보며 모시기 싫어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자수성가한 천둥을 추켜세워도 모자랄 판에 양반들 보다 천하다며 깎아내리기 바쁜 이 태도는 의외로 현대 사회에서도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학력이 낮거나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은 집 출신의 정치인들은 사소한 것 하나도 문제삼는 경우가 많죠.

결국 스스로를 노예로 만드는 것은 본인이 가진 태도의 차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신(武神)'의 김준(김주혁)이 어렵게 움켜쥔 행복을 빼앗긴 것은 같은 노예 출신인 견가(백원길), 춘심(김하은)의 질시 때문이었습니다. 춘심은 사랑에 미쳐 최양백(박상민)이 좋아하던 월아를 괴롭히기로 작정한 것이고 견가는 자신의 형님인 양백 보다 김준이 출세한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양백 본인은 김준의 성공을 칭찬해주고 격려해주는 반면 같은 노예들인 다른 사람들은 악한 심정으로 그의 행복을 질시했던 것입니다.

싸늘하게 시신이 된 월아. 그녀의 죽음으로 정방이 흔들린다.

노예 김준이 격구장에서 다른 노예들과 달랐던 이유, 끝까지 살아남아 최우(정보석)의 인정을 받고 중군장으로 승진할 수 있었던 저력은 결국 나는 비천한 노예가 아닌 살아 있는 사람이란 자각이고 주군으로부터 사람 대접을 받고 싶단 각오이지 않나 싶습니다. 삶의 목표가 단지 생존이었다면 살아남았어도 지금처럼 살 수 없었겠죠. 이 점은 최우의 딸 송이(김민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춘심처럼 사랑에 미쳐 자신의 앞길까지 망치고 마는 여인이 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고려 최고 권력자를 아내로 둔 왕비 못지 않은 존재가 될 것이냐 하는 문제 말입니다.

최충헌(주현)이 죽고 최우가 권력을 쥐자 정방이 설치됩니다. 드라마에서 묘사한대로 정방은 최우 집권기 최고 권력기관으로 본래 인사를 담당하던 곳입니다. 그새 시기는 1219년에서 1225년으로 훌쩍 건너 뛰어버린 모양입니다. 실제 김약선(극중 이주현)이 교정도감의 최고 지위인 교정별감에 제수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우가 사위 김약선을 후계자로 삼았고 부부의 살림살이가 왕 못지않게 화려했다고 하니 권력자들의 감찰, 세정 업무를 맡아보던 교정별감을 김약선에게 맡겼다고 해도 무리는 없지 않나 싶습니다. 만전(백도빈)과 만종(김혁) 형제는 덕분에 멀리 남쪽으로 쫓겨나는 운명이 됩니다.



최씨 가문 최고 권력자들과 월아의 죽음

만전은 묘지명(墓誌銘, 묘지에 죽은 이의 덕이나 공로 따위를 새겨넣은 글)에 의하면 1209년생이라 합니다. 최충헌이 죽던 1219년에는 불과 10세의 어린아이였다는 말입니다. 추측해보면 만전, 만종 형제는 송이 보다 나이가 어렸을 수도 있습니다. 최우의 장녀로 알려진 최씨는 정숙첨(극중 정욱)의 딸 정씨(극중 김서라)의 딸로 고려 원종의 장모이자 김약선의 아내입니다. 원종은 1219년생으로 1235년 고종(극중 이승효)의 태자가 되었고 그때 최씨의 딸과 정식 혼례도 올립니다. 최씨의 딸이 1236년 충렬왕을 낳고 죽었다는 것으로 보아 그 때의 나이가 15세에서 16세 이상이었을 것입니다. 후에 순경태후로 추존됩니다.

말하자면 순경태후의 어머니인 송이(극중 이름) 역시 1219년에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연령이었단 뜻이고 만전, 만종 형제 보다는 나이가 많았다는 뜻이 됩니다. 만전이 형인 만종과 나이차이가 얼마나 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천기 소생이었던 두 형제 보다는 송이의 외가 쪽 지지세력이 훨씬 강했고 만전 형제는 아주 어릴 때 출가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무리 고려 시대가 남녀에게 똑같은 권리를 인정했다고는 하나 사위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최우의 딸 최씨는 두 남동생을 밀쳐내고 남편과 함께 아버지의 후계자 자리를 거머쥔 것입니다.

두 망나니 형제는 최우의 딸과 김약선 때문에 쫓겨난 셈이다.

최충헌도 생존시 강종의 서녀와 결혼하는 등 혼맥을 쌓곤 했습니다. 최우의 장인 정숙첨은 추밀원지주사를 지낸 인물이고 후에 최우와 혼인하게 되는 아내도 대장군 대집성(극중 노영국)의 딸입니다. 최우의 손녀 사위 역시 원종이니 제법 신경을 써 혼맥을 관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외가를 둔 만전, 만종 형제는 애초에 아들이랍시고 후계 다툼에 끼어들려 해도 너무 어렸고 뒷배도 든든하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시기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최우는 권력을 잡고 승승장구하는 김약선에게 방해가 될까 두 형제를 각각 전라도 쌍봉사와 경상도 단속사의 주지승으로 보내 버립니다.

극중에서는 이 부분을 가상인물 월아(홍아름)의 죽음 때문이라 처리할 모양입니다. 김준의 아내가 될 여인이자 최우의 아내 정씨가 친구의 딸이라며 돌봐주던 아이. 사대부가의 여식이었으나 노예가 되어 비참한 운명을 맞게된 그녀는 만종의 악행 때문에 목숨을 끊고 맙니다. 최우는 불같이 화를 내며 두 형제와 관련자들을 문초합니다.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영존(令尊) 어른 즉 남의 아버지처럼 호칭했던 두 형제는 이대로 승려가 되어 쫓겨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월아의 죽음은 극중 최우에게 두 아들을 멀리 보낼 수 있는 적절한 이유를 준 셈입니다.

만종 형제가 살아남는데 이 두사람은 어떻게 될까.

또한 월아의 죽음은 후에 무신권력의 정점에 오르는 김준이 최씨 집안이나 송이에게 원한을 갖는 이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만전, 만종 형제는 이후에도 주지승으로서 남에게 지탄받을 행동을 했던 것으로 적혀 있습니다. 승려가 된 후에도 탐욕스럽고 부도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약선이 죽고 후계가 불확실해진 최우가 만전을 최항이란 이름으로 개명시켜 불러들일 때도 만종은 제외됩니다. 혹자는 두 형제가 남쪽 지방의 승려가 된 것은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보내 정치적 힘을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함일 수도 있지만 두 지방이 최우의 식읍이라 그 곳을 관리하라는 뜻으로 보냈다고 해석합니다.

최우는 김준의 주군으로 어떤 경우에도 충성을 바칠 대상이나 월아를 그리 죽게 만든 만전, 만종 형제가 다시 최우의 후계자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은 김준이 반역을 꾀하게 될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최항은 집권 시에도 성격이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기심이 많고 사치스러웠다는 그에 대한 평가를 읽어볼 때 망나니 만종 보다는 사리분별이 나은 인물로 묘사되는 만전이 코믹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술마시고 기생집에서 보쌈이나 하는 두 형제 모두 개차반이지만 만전이 그나마 나은 점은 해서는 안되는 일과 해도 되는 일을 구분할 줄 안다는 점이죠. 드라마 속에서 그 부분이 차후 권력의 행방을 갈랐다니 재미있습니다.

혼사를 앞두고 죽은 가여운 월아. 환생할 수 있을까.

고려사에 여러 글들이 적혔으나 만전, 만종 형제의 실제 성품을 짐작하기엔 무리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최우의 딸로 후계자가 된 최씨가 초반에는 압도적인 지지로 감히 두 형제가 넘볼 수 없는 권력을 누렸으나 이후엔 만전이 최고 권력자 자리에 올랐습니다. 극중에서는 최우, 송이, 김약선, 만종, 만전, 김준 사이에 '월아'라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생긴 셈입니다. 이후 김준이 송이에게 남다른 감정을 가지게 될 지라도 송이가 김약선을 두고 김준에게 집착하더라도 월아의 죽음이 있는 이상 두 사람은 더이상 가까워질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많은 시청자들을 울렸던 월아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연출이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윤회를 추구하는 불교 사상에 기대어 언젠가는 월아와 꼭 닮은 여성이 재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김준은 최우의 첩 안심 때문에 유배생활을 하기도 했고 최우가 자신의 첩을 김준에게 내린다고도 합니다. 가상인물이었던 월아가 그런식으로 실존인물로 재탄생하지는 않을지 생각해 봅니다. 김준이 목숨처럼 모시는 주군의 첩을 취할 정도였다면 월아 정도의 인물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최우 역시 그 점을 알기에 순순히 김준을 추후 다시 받아들이고 첩을 내어줬으리란 생각도 드네요. 아무튼 무신정권에 대한 평가와는 전혀 상관없이 흥미로운 연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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