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80년 데뷰한 배우 전광렬 그 시대의 그림자를 연기하다

Shain 2012. 5. 8.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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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포스팅은 70, 80년대 연예기획사 탄생을 중심으로 작성할까 했었는데 드라마 속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군요. 국내 최초의 연예기획사가 생긴 것은 80년대라도 코스닥 상장이 가능한 기업형 연예기획사가 탄생한 건 90년대 후반쯤의 일입니다. 80년대는 주먹구구식 사업에서 벗어나 전문 분야로 자리잡기 시작한 매니지먼트 사업과 칼라 TV 보급으로 활기를 띤 연예계 이야기거리가 많지요. 가요계에 비해서 배우들 중심의 연예기획사 설립이 늦었던 이유나 당시 유행하던 노래와 춤 등. 현대인의 관점으로 보자면 흥미로운 소재들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기태 어머니 박경자(박원숙)는 집안 살림을 거드는 순덕(유연미)과 함께 돈을 다립니다. 무슨 만원짜리가 그렇게 크냐 싶어도 73년  바뀌어 유통되던 만원짜리는 요즘 것 보다 사이즈가 컸습니다. 79년, 83년, 94년 계속 바뀔 때마다 크기가 줄어들었고 최근 발행되는 돈은 기태어머니가 다리던 돈에 비하면 아주 작습니다. 굳이 그런 장면을 왜 넣었을까 생각해보니 83년 화폐개혁이나 비자금 사건을 위한 복선은 아니가 싶기도 하더군요. 돈을 모으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마다하지 않는 장철환(전광렬)과 정치자금을 모으기 위해 기업을 협박하는 차수혁(이필모), 그 시대는 돈에 목말라하던 사람들이 늘어가던 때였습니다.

돈이라는 미끼를 덥썩 물어버린 장철환. 차수혁과 대립한다.

권력자 주변엔 장철환같이 커미션을 떼먹는 브로커가 있는가 하면 대통령 친인척으로 어음사기를 친 장영자같은 인물도 있었습니다. 장영자는 2000년엔 5공화국 비자금을 구권으로 보관하고 있다고 사기를 치기도 합니다. 강기태(안재욱)라면 피를 말려죽일 듯 이를 갈던 장철환이 은행까지 설립하는 재일교포 김풍길(백일섭)이 나타나니 냉큼 기태의 손을 잡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던 송미진(이휘향) 사장에게 아름답다며 빈말을 던지기도 하고 전직 중정부장 김재욱(김병기)에게 형님이라고 합니다. 뚜껑이 열릴 때 자연스럽게 고개가 돌아가는 장철환, 실룩거리며 감정표현을 하는 그에게 돈 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연예사업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강기태가 빛이라면 돈과 권력에 모든 걸 내던지는 차수혁과 장철환은 시대의 그림자같은 존재들입니다. 장철환은 차수혁과 손잡는 거 보다 강기태와 한편이 되는게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기태의 작전대로 조명국(이종원)에게 땅을 빼앗겠다며 벼르고 있습니다. 궁정동 안가에 드나들던 유채영(손담비)에게는 정장군의 시중을 들라 은근히 압력을 넣기도 합니다. 시대극의 재미는 과거를 회상하는 맛인데 배우 전광렬이 당시 연예계에 있던 인물이다 보니 더욱 흥미롭습니다. 실존인물 차지철과 박종규를 쏙 빼닮은 장철환, 그를 연기하는 배우 전광렬은 1980년에 무얼 하고 있었을까요.



1980년 TBC 특채 탤렌트로 데뷰한 전광렬

지금 '빛과 그림자'에서 묘사하는 1980년은 전광렬의 배우 데뷰시기 입니다. 극중에서는 차수혁이 'K-공작' 계획을 비롯한 언론사 회유, 통합 계획을 주도한 것으로 묘사됩니다. 80년초엔 MBC, KBS 외에도 TBC라는 방송국이 있었습니다. '아씨', '형사', '마부' 같은 인기 드라마를 방영하는 방송국이었지만 80년 11월 KBS에 강제 흡수 통합되어 KBS2 라는 채널로 변경되고 맙니다. 80년 6월, 특채 형식으로 TBC 탤렌트에 선발된 전광렬은 갑자기 TBC 소속 배우에서 KBS 소속 배우가 된 셈입니다. 그해 6월 전광렬과 함께 선발된 탤렌트 중 하나는 77년 미스코리아 진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김성희'였습니다.

우리 나라의 과거 드라마 자료나 배우들의 출연 경력이 꼼꼼하게 관리되는 편은 아니기에 전광렬의 80년 이후 행적은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만 그 뒤로 전광렬은 몇몇 드라마에서 단역이나 조연급으로 출연하거나 극단에서 연극공연을 하는 등 무명의 배우 생활을 하게 됩니다. 지금 찾아지는 사진자료는 1986년 출연했던 드라마 '뜨거운 강'의 출연 장면이 유일하더군요. 1990년 드라마 '여명의 그날'에서 젊은 김일성 역할을 맡을 때까지 그의 무명 시절은 계속됩니다. 전광렬이 주연급으로 활약한 최초의 드라마이자 사극, 시대극 연기의 발판이 될만한 드라마였단 생각이 듭니다.

'여명의 그날(1990)' - 김일성 역의 전광렬, 박정희 역의 백준기.

그러나, '여명의 그날'은 정체성이 애매한 시대극이었습니다. 잘 생기고 이미지 좋은 배우 전광렬의 연기는 뛰어났습니다. 문제는 그가 맡은 역이 당시 국민들이 '혹나고 뿔달린 괴물' 쯤으로 생각하던 김일성이었단 점입니다. 젠틀하고 부드럽고 카리스마있는 배우 전광렬이 빛난건 다행인데 하필 역할이 김일성이라 많은 시청자들이 북한을 미화시킨다며 반발합니다. 박정희 역할을 맡았던 배우 백준기도 잘 생기긴 마찬가지였지만 박정희가 만주군 소좌로 복무하며 광복군에 합류하려고 한다는 내용은 듣기만 해도 황당한 설정이라 드라마가 대체 무얼 말하고자 하는 것인지 헷갈리기까지 합니다.

'빛과 그림자'에서 표현된 박정희는 장철환 골라온 젊은 여성들을 안가에 불러들여 연회를 벌이는 막강한 권력자입니다. 장철환과 김부장은 권력 1순위가 되기 위해 충성경쟁을 벌이고 연예인들은 자발적으로 연회에 참석하기도 합니다. 군부출신 권력자답게 그의 주변에 가득한 장성 출신 권력자들이 알게 모르게 차기 권력을 두고 경쟁하는 그 모습에 주인공 강기태와 이정혜(남상미)가 휘말리기도 합니다. 그런 박정희가 만주군 소좌였다는 증거는 있어도 그가 광복운동에 투신했다는 증거는 없으니 시대극 출연치고는 상당히 특별한 경험을 한 셈입니다.

뜨거운 강(1986), 종합병원(1994), 애드버킷(1998), 거인의 손(1994)

연극 무대에서 다져진 전광렬의 연기는 확실히 남달랐고 많은 사람들이 나름 '중고 신인'인 그의 연기를 지켜보았지만 드라마는 대하사극임에도 불구하고 3개월 만에 종영됩니다. 간만에 TV에서 얼굴을 알린 전광렬로서는 아쉬운 기회였을 것입니다. 그 뒤 다시 '신인'으로서 기회를 얻은 전광렬은 '폭풍의 계절(1993)', '미망(1996)' 등에서 주연급으로 발돋움하며 점차 인기를 얻어갑니다. 1994년엔 주말드라마 '종합병원'에서 일반외과 전공의 백현일 역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1999년엔 '청춘의 덫'으로 심은하의 과거를 모두 감싸주는 따뜻한 남자 역을 맡아 큰 인기를 끌게 됩니다.

1999년엔 MBC에서 방영된 '허준'으로 최고의 배우로 거듭난 전광렬. 그러고 보니 전광렬이 '허준'의 이병훈 감독을 처음 만난 건 1994년 12월 MBC 창사특집극 '거인의 손'인 듯합니다. 현대의학을 배우던 한 젊은이가 위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나 침술로 기사회생하고 침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수행하는 과정을 담은 이 특집극은 마치 드라마 '허준'의 축소판을 보는 듯한 특별한 드라마였습니다. 사극과 시대극을 넘나드는 전광렬의 연기인생을 바꾼 만남이 바로 그 드라마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열정과 광기, 순수와 퇴폐가 공존하는 그의 연기는 남다른 경력에서 나오는 것이겠지요.

청춘의 덫(1999), 미망(1996), 허준(1999), 장희빈(2002). 최고의 여배우들과 함께.

추계예술대학 출신인 전광렬은 본래 '음악학과' 출신입니다. 바순이라는 악기를 다루던 그는 졸업 이후 연기자가 되고자 했으나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고 비싼 악기 바순을 불태워버리기 여러 차례 결국 연기를 해도 된다는 허락은 받았어도 집에서 쫓겨나야 했다고 합니다. 악기는 그뒤로도 만진 적이 없다는 그가 바순 연주자로서 살아가는 모습은 전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TV에 출연하지 않던 그 시절, 집을 나온 그가 80년초반 활동하던 극단은 '여인극단'입니다. 연기로 성공하고 나서야 아버지가 자신을 다시 받아주었다고 합니다. 덧붙여 가족들이 살이 잘 찌는 체질이라며 체중 감량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는군요.

주연이든 조연이든 가리지 않고 주어진 캐릭터대로 완벽하게 변신하는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그의 예전 인터뷰는 지금 봐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80년에 데뷰한 연기자로서 80년대의 어두움을 연기하는 감회가 어떨까요. 연기자로 활약하면서 자신이 겪어본 시대를 묘사하는 건 특별한 느낌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느 인터뷰에서 읽으니 그 시절에 입고 다니던 옷을 그대로 꺼내 입고 나온다는데 완벽한 장철환으로 변신하는 그의 연기와 경험이 합쳐져 더욱 생생한 묘사가 가능한 건 아닐까요. 전광렬이야 말로 드라마 '빛과 그림자'를 살리는 일등공신 임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 퍼플시스터즈가 강기태, 노상택, 양동철 앞에서 춤출 때 흘러나온 팝은 Blondie의 'Call me'(1980)로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 앨범에 실린 곡입니다. 허가윤이 직접 부른 노래는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1972)인데 80년대 후반 이선희가 부르던 창법으로 부르는군요. 80년대는 70년대나 90년대에 비해 걸그룹 결성이 좀 뜸했다는 기억 때문에 퍼플시스터즈가 '들고양이들'이나 '희자매' 대신 등장한 것인지 좀 헷갈리기도 합니다.

* 양태성, 차수혁, 안도성이 함께 만났을 때 흘러나온 곡은 'More Than I Can Say'로 1980년 Leo Sayer가 발표한 곡입니다. 원곡은 1959년 작곡, 녹음되었으나 Leo Sayer가 발표하면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인기를 끌게된 곡입니다. 영국 출신 가수인 레오 세이어는 'The Show Must Go On' 등으로 영국에서 인기를 끌었고 1975년에는 미국에 진출해 'You Make Me Feel Like Dance'같은 히트곡을 발표합니다. 차분하고, 서정적이고 부드러운 멜로디의 곡들도 많지만 라이브 무대 장면을 보면 상당히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가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Leo Sayer와 Scorpions

* 강기태와 이정혜가 카페에서 만날 때 흐른 곡은 'Holiday'(1979)입니다. 스콜피언스(Scorpions)가 발표한 곡입니다. 1965년 결성된 독일 출신의 하드락 밴드 스콜피언스는 2010년 공식 해체선언을 하고 마지막 월드 투어를 갖기도 했습니다. '스콜피언스'는 늘 그들과 함께하는 표식처럼 '전갈'을 뜻하는 말입니다. 'Still loving you'같은 발라드 풍의 노래도 늘 처절하고 격하게 표현하는 그들 음악의 매력은 마음을 휘젓는 감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두 곡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락 발라드이기도 하죠. 'Holiday'는 특히 'Let me take you far away'란 잔잔한 가사로 시작해 끝내 격한 리듬과 연주로 듣는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매력적인 곡입니다.

* 카페에서 양태성과 차수혁이 만날 때 흐른 배경음악은 'Poor man's moody blues'(1977)로 Barclay James Harvest가 'Gone to Earth'란 앨범에서 발표한 곡입니다. 애절한 사랑을 노래하는 서정적인 가사 때문에 80년대 라디오 디제이들이 자주 틀어주던 팝 중 하나입니다. 1966년 영국에서 결성된 '버클리 제임스 하비스트'는 이 곡은 'Moody Blues'의 'Nights in White Satin'(1968)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곡으로 마치 읖조리는 듯한 노래가 매력적인 곡입니다. '버클리 제임스 하비스트'는 자신들 보다 2년 먼저 결성된 '무디 블루스'와 비교되고 아류로 평가되자 '무디 블루스'의 곡을 기본 코드만 남기고 고쳐 만들어 버립니다. 결국 웬수같은 '무디 블루스'의 이름을 넣은 노래가 자신들의 대표곡이 되어버렸죠. 집착과도 같은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심정을 노래하는 가사가 차수혁과 상당히 잘 어울리는 것도 같습니다.

Barclay James Harvest와 정미조

* 클럽 마고에서 안도성, 차수혁이 대화를 나눌 때 가수가 부르던 곡은 '개여울'(1972)입니다. 가장 잘 알려진 버전은 정미조가 부른 곡입니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란 가사는 시인 김소월이 1922년 '개벽'에 발표한 시입니다. 이희목이 곡을 작곡해 1966년 김정희라는 가수가 불렀지만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1972년 이화여대 출신 정미조가 리메이크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잘 쓰지 않는 단어인 '개여울'은 개울의 '여울목'을 뜻합니다. 개울의 폭이 좁아 물이 빠르게 흐르는 곳을 지칭하는 말이죠. 곡조는 옛스럽지만 아름다운 시를 노래로 되살린 감각이 감성적입니다.

* 조태수와 이혜빈이 바에서 듣던 음악은 Crystal Gayle의 'Don't It Make My Brown Eyes Blue'(1977)입니다. '내 갈색눈을 슬프게 만들지 마세요'라는 가사는 의역하면 울리지 말라 즉 바람피우지 말라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혜빈과 조태수의 상황에 아주 잘 어울리는 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탈 게일'은 컨츄리의 여왕 로레타 린의 동생으로 자신 역시 가수로 데뷰했으나 자꾸만 언니와 비교되어 성공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언니와 다르게 긴 생머리를 기르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강조하며 노래를 불렀다는군요. 최근에도 바닥까지 닿는, 즉 150센티가 넘는 긴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My Brown이라고 표현은 했습니다만 크리스탈 게일은 사실 푸른 눈의 여성입니다.

Crystal Gayle과 Skylark

* 카페에서 이정혜와 유채영이 만날 때 흐른 곡은 'When a child is born'(1976)으로 Johnny Mathis가 부른 버전이네요. 본래 이곡은 이태리의 치로 담미꼬(Ciro Dammicco)가 작곡하고 'Daniel Santecruz Ensemble'이 연주한 'Soleado'가 원곡입니다. 'Soleado'는 스페인어로 햇빛이 잘 드는 이란 뜻이라는군요. 'When a child is born'이란 영어 가사는 나중에 붙여졌고 그 이후특별한 아이가 태어난다는 가사 내용 때문에 크리스마스 노래처럼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속에 배경음악으로 나온 'Jonny Mathis' 버전이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하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르헨티나 영화 '나자리노(Nazareno Cruz y el lobo, The Love Of The Wolf, 1974)'의 테마로 알려져 Boney M의 캐롤송 또는 Michael Holm이란 가수의 곡이 훨씬 유명합니다. 직접 OST를 부른 것도 아닌데 그렇게 된 이유는 '나자리노'의 OST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아닐까 싶습니다.

* 김부장과 그의 중정 부하가 바에서 듣던 곡은 Skylark의 'Wildflowers'(1972)입니다. 캐나타 출신 7인조 Skylark은 1971년에서 73년까지 단 3장의 앨범을 내며 짧게 활동한 밴드이고 휘트니 휘스턴, 마돈나 등과 함께 일한, 유명 팝 프로듀서 David Foster가 이 밴드의 멤버였다고 하는군요. 상대적으로 우리 나라에 덜 알려진 편이지만 이 노래 'Wildflowers'는 리메이크되어 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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