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빛과 그림자

빛과그림자, 장철환처럼 한방에 부활하던 나일론 정치인 박종규

Shain 2012. 6. 21.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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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론(nylon)이 개발된 건 1937년으로 우리 나라에 대량 유입되기 시작한 건 50년 전후라고 합니다. 실크처럼 부드럽지만 더 가볍고 질기던 나일론은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았습니다. 더군다나 당시 경제 사정도 좋지 않고 방직 기술이 열악하던 우리 나라에서 실크나 면처럼 잘 헤어지지 않고 평생 쓸 수 있는 나일론 섬유는 기적같은 발명품이었습니다. 비단 이불 대신 나일론 이불, 면양말 대신 나일론 양말까지 만들며 나일론의 수입을 대환영했지요. 그러나 나일론의 최고 단점은 습기 흡수에 약하다는 것과 피부 트러블을 일으킨다는 점이었습니다.

이후 나일론은 특정 분야에만 쓰이는 특수 섬유가 되어갑니다. 간혹 의류나 생활용품에 쓰이더라도 혼방해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크 보다 탄력있고 가볍고 질긴 장점을 인정해 환영했던 나일론은 결국 진짜 섬유인 실크 보다 못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진짜가 아닌 가짜인 것, 좋은 것으로 알았지만 나중에 보니 싸구려인 것을 '나일론'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나일론'이란 외래어가 아닌 일본어에서 유래한 '나이롱'이란 표현을 써서 나이롱 환자, 나이롱 신자같은 표현을 쓰곤 했죠.

불사신같은 장철환 배신의 아이콘 차수혁 이런 정치인 정말 있었을까.


그 외에도 끊어지지 않고 탄력있다는 특성 때문에 고무줄처럼 '오락가락'하는 것을 표현할 때도 '나이롱 고무줄'이나 '나이롱 당구'같은 표현을 씁니다. 1950년 중반만 해도 비싸고 가치있는 섬유로 여겨졌던 나일론(오죽 하면 사치품이나 고가 수입품으로 분류되기도 했을까요)이 어쩌다가 나쁜 의미를 가진 말이 되어버렸을까요. 데이터를 찾아보니 80년대 초반에도 유명 정치인들이 '나이롱 환자' 흉내를 내며 병보석으로 풀려나기도 하고 감옥에서도 편하게 생활하는 나이롱 죄수라 비난받았던 모양입니다. 한마디로 정치인들도 '나이롱'이었던 것이죠.

뿐만 아니라 뒷돈과 뇌물과 부정한 권력형 비리 정치인들은 잊을만하면 '나이롱'의 주인공들이 됩니다. '빛과 그림자'에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을 모델로 한 디자이너 피에르(김광규)가 등장하는데 앙드레 김은 1999년 옷로비 사건 때 고위층 부인에게 제공된 고가의 옷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섰다 '김봉남'이란 실명을 공개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성실 납세자이자 국내파였던 앙드레김의 편을 들어줬습니다. '빛과 그림자' 제작지원을 하고 여러 영부인들의 옷을 디자인한 '이광희 부티끄' 역시 옷로비 사건의 무대란 오해로 꽤 오래 고생했던 걸 기억하고 있는대요.

고가의 옷을 판 독특한 디자이너들이 정치인들 보다 주목받기도 했다.


어음사기로 수감된 장철환(전광렬)이 풀려난단 이야기를 듣고 극중 인물들은 '그게 말이 돼?'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샵에서 옷을 팔았다는 이유 만으로 사치의 대명사가 되고 오랫동안 비난받는데 정치인들은 국가 경제가 휘청거릴 만큼 큰 범죄를 저질러도 너무나 쉽게 풀려나고 사면이 됩니다. 아니 오히려 다시 정치권의 또다른 실세로 거듭나기도 합니다. 실존 인물을 모델로 만들어진 '빛과 그림자'의 여러 캐릭터 중에도 요즘까지 활약하는 정치인들이 있습니다. 최근 박근혜 의원의 원로 멘토 그룹으로 거론된 강창희, 정호용 등은 전두환 신군부 정권 전후에 활동하던 사람입니다.

사람들을 학살하는 행위를 '작은 희생' 쯤으로 치부하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개인의 인권을 아무렇지 않게 짓밟곤 했던 그 시절의 정치판.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희한한 논리로 '88 올림픽'을 치르고 경제 성장을 이뤄낸 대통령이라 학살같은 과오는 용서해줄 수 있다고 말하는 정치인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더욱 '업적'을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불사신같은 장철환의 행적은 실존인물 박종규와 상당 부분 많이 유사합니다. 정치인이라기 보다는 '브로커'였던 박종규는 제대로 죄값도 받지 않고 85년 간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연예인의 혼전 임신은 기억해도 박종규는 모른다?

아랫사람의 수없이 걷어찰 만큼 안하무인이지만 권력자 앞에서 비굴한 장철환의 캐릭터는 실존인물 차지철과 박종규를 합쳐놓은 것입니다. 차지철이나 박종규는 모두 박정희의 경호실장이었고 극중 김재욱 부장(김병기) 역의 실존 모델인 김형욱, 김재규와 권력을 두고 겨루던 사이입니다. 사람들은 차지철이나 김재규는 잘 알아도 박종규의 이름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피스톨박'이라 불리던 이 정치인은 육영수 여사 사망(1974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문세광이 대통령을 저격할 때 박종규가 실수로 쏜 탄환이 육영수에게 발사되었다는 추측성 주장도 있었습니다.

육영수 여사 생존시 박종규는 박정희의 채홍사 노릇을 하다 육영수와 대립한 적도 있다고 하는데 신문기사 내용이라 정확한 진위 관계는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장철환이 총을 들고 설치는 것처럼 총으로 상대방을 위협하기도 하고 국제사격협회 부회장을 맡기도 하는 등 총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영어에 능숙했고 국제 무대에도 자주 나섰으며 서울대학교 출신인데도 '피스톨박'이란 '무식해 보이는' 별명이 있던 건 그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단순하고 무식했다는 차지철 보다 훨씬 더 위험한 수준의 범죄자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후배 앞에서 무릎까지 꿇으며 아부하는 장철환. 권력을 등에 엎고 각종 비리를 저지르다.


박종규는 장철환이 극중 '클럽 마고'란 화려한 고급 사교클럽을 두고 정치인들을 접대하던 것처럼 '아시아사파리클럽'이란 사교클럽을 운영하며 전두환을 비롯한 5공 세력을 접대하기도 했습니다. 또 호텔에서 카지노 사업을 하며 큰 돈을 벌어들이기도 했지요. 카지노 업계 대부라던 전락원의 후원자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드라마 속 장철환의 무한 능력은 한마디로 거짓이 아닌 셈입니다. 6공 로비 사건으로 유명한 린다김(극중 손담비 캐릭터)과도 꽤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었습니다. 박정희 경호실장 10년에 하나회 사건이던 '윤필용 사건'(이전 포스트를 참고)으로 전두환의 은인이 된 박종규는 무서울 것없는 '밤의 대통령'이었죠.

79년 국회의원, 대한체육회장을 겸임하며 세계사격협회 부회장으로 1978년 세계사격선수권 대회도 개최했던 박종규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장도 맡았습니다. 그러나 10. 26이 일어나고 1980년 5월 김종필 등과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로 몰려 박종규는 한때 큰 정치적 위기를 맞습니다. 당시 발표된 액수가 77억원이었으니 요즘 가치로는 7700억원 대의 거금입니다. 그로 인해 박종규가 몰락하나 했지만 그 이후 전두환은 박종규에게 꽤 많은 명예를 안겨둡니다. 박정희 정권이 올림픽같은 세계대회를 유치하려 한 것은 사실로 박종규는 그 공적을 이어받고 싶던 전두환에게 있어 최고의 적임자였던 것입니다.

사교클럽을 운영하며 인맥을 다지던 정치인. 몰락하더라도 다시 부활한다.


88올림픽 하면 김운용 의원장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만 김운용 이전의 IOC 위원은 박종규였습니다. 85년에는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올림픽 유치에 실질적인 공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종규의 권력형 비리인 '노드롭 사건' 즉 무기 로비 사건은 그가 IOC 위원으로 있던 때에 일어난 일로 F-20을 한국에 팔고 싶었던 노드롭사는 비밀리에 이런 박종규를 로비스트로 고용합니다. 공식적인 직함이 있는데다 암암리에 사파리클럽에서 술과 여자로 정치인들을 접대하던 그였으니 무기상에게도 최적의 인물이었습니다.

박정희 시절 권력 2인자라는 평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문세광 사건으로 사퇴하고 각종 국제 스포츠 대회를 명분으로 재기하나 했더니 부정축재자로 몰려 정계 은퇴하고 다시 올림픽 유치를 기회로 성공을 거머쥐었지만 간암으로 사망하고 만 박종규. 그가 죽은 후에 밝혀진 노드롭 브로커 사건의 규모는 어마어마 했습니다. 로비를 명목으로 오고간 돈의 액수 중 밝혀진 것만 625만 달러가 넘습니다. 거래가 성사되었을 경우 받기로 한 금액은 5천 5백만 달러였구요. 85년에는 외국에서 전두환과 노드롭사 존스 회장과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합니다.

장철환같은 인물이 실제로 있으니 이들의 고통이 실감나는 것.


이렇듯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그의 필사적인 '브로커 활동'은 성공하는 듯했으나 F-20 추락사고로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결함있는 전투기를 사고자하는 바보는 없을테니 말입니다. 각종 권력형 비리에 뇌물 수수가 전매 특허였던 그를 감히 '로비스트'라 부를 수 있을까요. 이후 박종규는 두고 두고 한국 무기 거래의 부정적 관행을 만든 인물로 평가됩니다. 아무리 로비스트와 '브로커'가 한끝 차이라지만 이 정도면 노골적인 브로커라고 할 수 있겠죠. 간암으로 죽지 않았으면 극중 장철환처럼 몰락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을텐데 그가 다룬 돈의 규모에 비하면 조용하게 사망한 셈입니다.

흥미롭게도 조폭 조태수(김뢰하)와 이혜빈(나르샤)의 혼전 임신이 연출됩니다. 빛나라 기획 식구들은 그 사건을 덮어주려 전전긍긍합니다. 여자 연예인에게 혼전임신과 결혼은 엄청난 스캔들이니 그럴만 합니다. 강기태의 실존 모델인 최봉호씨와 그의 아내 나미도 84년경 아이를 낳았습니다. 나미는 출산 후 85년 '빙글빙글'을 발표하며 최고의 인기를 거머쥐게 됩니다. 고생고생하며 연예계 생활을 했던 나미에게 무대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목표였다고 합니다.

나이롱 정치인 장철환같은 인물 보다는 이혜빈의 혼전임신을 먼저 기억할 사람들.


조태수와 혜빈의 사연처럼 사람들 앞에 출산을 공개할 수 없었던 여자 연예인의 사연도 듣고 보면 이해할만 한데 사람들은 나이롱 정치인들의 못된 짓은 금방 잊으면서도 연예인의 사생활은 용서 못한다고들 하지요. 정치인은 명예로 먹고 살아야하고 연예인은 춤과 노래로 먹고 살아야하는데 대중은 왜 정치인은 잊어주면서 연예인에게는 가혹한 것일까요. 말도 안되는 장철환의 출소와 스캔들은 덮히는 모습은 그 부조리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듯해 입맛이 씁쓸하지요. 이혜빈같은 연예인은 기억해도 박종규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같습니다.


* 이혜빈과 조태수가 카페에서 대화할 때 흐른 곡은 ABBA의 'Super Trouper'(1980)입니다. 설명이 필요없는 70년대 최고 혼성그룹 아바는 스웨덴 출신으로 1972년 데뷰했습니다. 데뷰 후에는 각각의 남녀가 사귀는 사이로 발전해 두 쌍의 커플 그룹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지요. 결국 1982년에는 두 커플 모두가 이혼해 노래에 침울함이 배이기 시작하더니 그룹 마저 해산하고 맙니다. 이 곡의 제목 수퍼 트루퍼는 조명기구의 이름입니다. 환한 빛을 의미하지요. 영화 '맘마미아'에 이용된 노래들처럼 아바의 노래들은 따라부르거나 기억하기 쉽고 경쾌하고 상쾌한 곡들이 많습니다.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아바'의 유명세에 비하면 '빛과 그림자'에 꽤 늦게 등장한 편입니다.

* 강명희와 양동철이 카페에서 대화를 나눌 때 흐른 곡은 Air Supply의 'Here I Am'(1981)입니다. 1985년 데뷰한 호주 출신 에어서플라이는 서정적인 목소리와 듣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고운 선율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됩니다. 초창기 멤버는 다섯명이었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리드 보컬 러셀 히치콕과 기타와 보컬을 맡은 그레이엄 러셀입니다. 'Making Love out of nothing at all'이나 'Lost in Love' 등의 히트곡으로 한국인들의 오랜 사랑을 받는 듀오이기도 합니다.

* 빅토리아 룸에서 이혜빈에게 조태수가 결혼하자고 했을 때 흐르던 곡은 Ai No Corrida(1980)으로 퀸시 존스(Quincy Jones)의 노래입니다. 퀸시 존스는 마이클 잭슨의 앨범을 빅히트시킨 프로듀서로도 유명하지만 본인 역시 유명 가수였습니다. 'Ai No Corrida'는 흑인들의 은어로 '도망칠 곳이 없다'를 뜻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더 이상은 피할 수 없다며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의 노래입니다. 그러나 이 노래는 작곡자로도 유명한 퀸시 존스의 곡이 아니라 리메이크라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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