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골든타임

골든타임, 강재인 응급실을 떠나 의사 가운을 벗은 이유

Shain 2012. 9. 11.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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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둥글게 사는게 모나게 사는 것 보단 편하다고들 하죠. 아무래도 이 사람 저 사람하고 잘 어울리는 사람이 융통성있게 이런 저런 일을 막힘없이 잘 처리하고 능력도 인정받는 법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쇠고집을 부려야하는 원칙도 있고 그런 분야도 있기 마련이지만 행정적 능력이나 사람들을 지휘할 땐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그런 성격이 유리합니다. 그리고 이런 '융통성'의 문제는 때로 상황에 대처하는 '방어능력'과도 연결됩니다. 자기 일만 잘한다고 해서 남에게 해를 입지 말란 법도 없고 때로는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 해도 타격을 받습니다.

'골든타임'의 세중대병원 이사장 강대제(장용)는 아들 내외 없이 손녀딸 강재인(황정음)을 건사하느냐 늘 그녀의 후계가 걱정되었던 모양입니다. 자신의 여동생(반혜라)을 비롯한 가족들이 강재인의 후계권을 공격할까 염려되어 유언장에 후견인 박금녀(선우용여)를 지정하고 재인의 대리 이사장 권한까지 위임해 두었습니다. 의료법인 운영자가 유사시를 대비해 마련한 일종의 '경영권 방어'인 셈입니다. 강재인이 한 사람의 당당한 사회인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할아버지 부부의 이런 '방어'는 큰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박금녀는 강대제의 유언장을 공개하고 강재인의 경영권을 방어한다.

의료 행위를 할 때도 이런 '방어 의료'는 때때로 필요하다고 합니다. 응급실에 온 환자를 살펴보고 외과, 내과, 산부인과를 비롯한 각각의 담당자를 호출할 때 레지던트를 비롯한 펠로우들은 될 수 있으면 응급환자를 책임지고 싶어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어디까지는 내 책임이고 어디까지는 다른 전공의의 책임이라는 부분을 명백히 한 뒤 의료행위를 합니다. 이런 식의 매뉴얼을 정해두지 않으면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고 부득이하게 발생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원칙을 지켜 방어하지 않으면 때로 의료 소송을 감당해야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고 싶어 의사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일지라도 한번쯤 고민할 것입니다. 최인혁(이성민) 교수처럼 예산을 줄이라는 심평원의 압력이나 각종 제도적 제약을 의식하지 않고, 사표를 제출한 의사일지라도 메스를 잡을 것이냐 아니면 김민준(엄효섭) 외과과장처럼 매뉴얼과 권위 그리고 자격에 충실한 '방어의료'형 의사가 될 것인지 말입니다. 응급실에 김도형(김기방) 레지던트도 최인혁이나 김민준도 없는 그 상황에서 5분 안에 산모의 배를 개복하지 않으면 환자도 아이도 죽는다는 그 상황. 의사는 어떤 선택을 해야 맞는걸까요.

아무리 응급상황이라도 인턴이 메스를 들면 책임 문제가 불거진다.

생명을 살리겠다는 마음 하나 만으로 인턴이 메스를 드는 그런 상황은 원칙적으로 있어서는 안됩니다. 만약 환자에게 무슨 일이 발생할 경우 그 윗선의 의사들이 책임을 지고 가운을 벗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드라마이기에 또 생명을 살리겠다는 한 인턴의 마음이 최대한 반영되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상황이 풀린 것이지 대부분의 인턴은 개복 경험은 커녕 CPR도 해본 경험이 없어 팔을 덜덜 떠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하죠.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응급 상황에서 한 의사가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면 제도적으로 그 상황을 감싸줄 융통성도 분명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모양처가 꿈이라 평범한 의사로 살길 원하던 강재인은 할아버지가 의식불명이 되자 또 한번의 선택을 합니다. 재인과 민우가 서로에게 느끼고 있는 감정. 동료애인지 사랑인지 아직도 두 사람은 그 감정의 정체를 모르는 듯하지만 강재인은 최소한 한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이사장 권한대행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자신 뿐이고 세중대 병원 중증외상센터를 지원해주고 최인혁이나 이민우같은 용기있는 의사들을 지원해주려면 그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자신이 나서야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원래 의술이란 칼을 잡은 의사들만 중요한게 아니라 효율적인 시스템이 병행되어야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을 살리려면 시스템과 의술이 함께 가야

'골든타임'과 같은 시간대에 방영되는 드라마 '신의'는 타임슬립을 한 성형외과 의사가 주인공입니다. 그 드라마에서 모티브로 삼고 있는 의사는 고대의 '화타'이고 화타는 신기에 가까운 능력으로 사람들을 살려냅니다. '신(神)'이라는 한자를 붙였다는 자체에서 이미 인간의 능력을 넘어섰다는 뜻입니다. 우리 나라의 명의 '허준'도 그렇고 과거 우리가 의사에 대해 가졌던 고정관념 중 하나는 최고의 의사는 전지전능한 치료 능력을 가졌다는 일종의 환상입니다. 그러나 애초에 사람은 완벽할 수도 없고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신이 아닙니다.

응급의학실은 환자의 생명이 오가는, 병원중에서도 상황이 급변하는 최악의 장소입니다. 응급실에 가도 수술할 의사가 없어 다른 병원에 이송되기도 하고 혈액 공급이 충분치 않아 위기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몇명의 전문의가 달라붙어도 수술하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다친 환자가 의사를 놀라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어딜 다쳤는지 알 수 없을 만큼 피투성이가 된 환자가 들어와 일단 환자를 닦아내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인혁은 그 상황에 가장 적절한 조치를 내리는, 중증외상 최고의 의사이지만 시술 범위를 넘어섰다며 심평원이나 다른 의사의 지적을 받기도 합니다.

'니들이 백정이냐' 김민준 과장의 지적과 훈계도 틀린 말이 아니다.

특히 드라마 초반에 묘사된대로 무조건 김민준을 비롯한 외과의가 먼저 시술해야한다는 공문 조치를 어겨 징계를 받는 상황처럼 행정적인 절차를 어기는 그는 최고의 실력에도 불구하고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의사입니다. 사람을 살리려 한다는 그의 가상한 뜻이나 중증 외상 처치 능력을 생각하면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하는데 말처럼 그게 쉽지 않은 것입니다. 응급실 코디네이터 신은아(송선미)는 그런 최인혁을 행정실에 사정하는 등 곁에서 최대한 도움을 주면서도 주변에 미움받는 최인혁 때문에 속이 터지려고 합니다.

외골수 최인혁이 중증외상센터같은 곳에 꼭 필요한 인물임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의사 출신이지만 영리적인 측면에서 병원을 관리하는 강대제 조차 그의 능력을 인정해 중증외상센터 건립에 공을 들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렇지만 최인혁이 그렇게 원하는 헬리콥터와 비행장이 설치된 병원을 만드는 건 최인혁의 능력 밖의 문제입니다. 어디가서 해달라고 애원하고 하소연한다고 해도 융통성없는 그 성격에 로비 한번 제대로 못하고 물러날 것입니다. 강대제가 병석에 눕는 바람에 이제는 최소한의 지원 마저도 힘들어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이사장 대행이 된 강재인 최인혁의 구원투수가 될 것인가.

인턴 강재인은 응급실에서 고군분투하는 최인혁을 보고 위급한 상황에서 메스를 드는 이민우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낀 동시에 그들을 위한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을 절절히 이해한 캐릭터입니다. 중증외상센터가 필요한 건 알면서도 어떻게 하지 못하는 최교수나 아무리 위급한 상황이라도 인턴이 메스를 들었다는, 자격과 절차상의 문제로 야단을 맞는 이민우는 '당연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그 가상한 뜻을 몰라봐준다는 점에서 안쓰럽습니다. 사람을 살리고자 의사가 되었는데 어째서 주변에서 도움을 주지 못하는지 갑갑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물론 28살의 젊은 나이에 이사장 대행을 한다는 게 현실성없을 수 있고 또 의료재벌의 상속이라는 점에서 굳이 환영할만한 일은 아닌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는 의사와 그런 의사들을 믿고 최고의 지원을 아끼지 않는 시스템 즉 의술과 시스템의 결합이야말로 환자를 살리기 위한 최적의 조건임은 분명한 듯합니다. 잠시 동안 가운을 벗은 강재인의 선택은 메스를 잡은 이민우 못지 않는 용기였습니다. 전체 20회에서 23회로 연장되었다는 드라마 '골든타임'. 시즌제를 바라는 시청자로서는 이 연장이 반갑지만은 않습니다만 시스템을 상대로 벌이는 강재인의 전쟁은 이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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