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마의

마의, 공공의료를 부흥시킨 치종의 임언국과 백광현

Shain 2012. 12. 1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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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서양에서는 이발사가 외과의사를 겸하곤 했습니다. 이발사나 의사나 똑같이 흰 가운을 입는 이유는 다름아닌 그 때문이었습니다. 내과를 담당하던 의사는 따로 있었지만 의학이 전문화되거나 세분화되지 않아 남의 몸에 칼을 대고 시술하는 외과의는 천대받던 직종이었습니다. 영어로도 외과의를 뜻하는 'surgeon'과 의사를 뜻하는 'physician'을 종종 구분합니다. 이렇게 외과가 천시된 이유는 해부를 금하고 피다루는 일을 혐오스럽게 여겼던 종교 문화 탓이 큽니다. 서양에서 이발사와 외과의가 구분되기 시작한 건 대략 18세기경이라 합니다.

우리 나라 한의학에서 상대적으로 외과가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유학을 본질로 의학을 대하던 태도 탓이 가장 큽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동의보감'을 비롯한 여러 의서에는 외과 시술 방법이 적혀 있고 내의원의 침의도 가느다란 침 말고도 외과 시술을 위한 여러 도구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침의'는 침을 놓는 의원일 뿐 아니라 외과전문의였습니다. 사람을 치료하다 보면 외과, 내과 가리지 않고 질병이 발생하기 마련인데 외과를 완전히 등한시했다고 보기는 힘든 일이겠죠. 어제 '마의'에서 의생들이 절개술을 수련할 때 쓰던 피침도 본래 한방의들이 쓰던 것들입니다.

'피침'은 본래 한방외과의들이 사용하던 시술도구이다.

이번주 방영된 '마의'에서 드디어 백광현(조승우)의 진짜 신분이 밝혀지고 또 숙휘공주(김소은)와 강지녕(이요원)의 삼각관계가 부각되었습니다. 숙휘공주는 축제를 핑계삼아 백광현에게 고백을 하려다 무산되고 백광현도 혼란한 틈을 타 지녕에게 고백하려 했으나 이성하(이상우)의 등장으로 중단하고 맙니다. 장인주(유선)는 강지녕과 백광현을 보며 출생의 비밀을 폭로해야하는 것인지 망설이고 또 망설입니다. 그러는 사이 또다시 백광현이 정성조(김창완)와 이명환(손창민)의 음모에 휘말려 강상죄로 처벌을 받을 위기에 놓였습니다.

실존인물 숙휘공주는 정제현이란 인물과 결혼해 스물 한살의 나이로 과부가 됩니다. 극중에서는 백광현을 사랑하는 깜찍한 여성으로 변신했고 과부의 설움은 정성조의 며느리 서은서(조보아)의 몫입니다. 이야기의 흐름상 백광현이 좋아하는 사람도 또 짝이 될 사람도 강지녕이 될 것같은데 진짜 백광현과 결혼한 사람은 한씨 성을 가진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드라마와 기록의 차이를 따져보는 것이 재밌고 여복 많은 백광현의 사랑도 꽤 흥미진진하긴 한데 개인적으로 솔깃한 건 '임언국'이란 이름이었습니다.

치종청에서 종기를 외과시술로 치료해 백성들을 살린 임언국

미약하기는 하나 조선에도 공식적인 공공의료를 담당하던 기관이 있었습니다. 바로 극중에 등장하는 '혜민서'와 '활인서'입니다. 빈민 구제 차원에서 운영된 이 의료기관은 전국적으로 의원을 파견하는 등 꽤 많은 의료 행위를 했었고 드라마 속에서는 고주만(이순재)이 수의로 일하며 혜민서에 공을 들이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활인서(活人署)와 혜민서(惠民署)는 가난한 백성들을 무료로 치료하고 공짜로 약을 나누어주었고 그중에서 혜민서는 엄격하게 의생을 훈육하고 관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드라마 속 창작의 일부이지만 '마의'의 주인공인 백광현과 강지녕을 비롯해 '대장금(2003)'과 '허준(1999)'의 주인공들이 혜민서에서 의원일을 시작하는 건 큰 의미가 있습니다. 즉 의술의 기본 이념이 사람의 천하고 귀함을 가리지 않고 베풀어져야 한다는 뜻인 동시에 공공의료 제도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인 셈입니다. 제작자가 단순히 한 의료인의 의학적 성장과 멜로를 그리고자 했다면 굳이 혜민서 이야기를 꺼내올 이유가 없습니다. 수의 고주만이 백광현에게 가르치는 것은 의술 뿐만 아니라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마음가짐인 것입니다.

그들을 혜민서나 활인서에서 근무시키는 건 다 이유가 있다.

그러나 활인서나 혜민서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내의원의 의관이 활인서에 근무하게 되는 건 좌천이라 공공연히 말할 정도입니다. '닥터진(2012)'에서 주인공이 일하던 곳도 활인서이고 '해를 품은 달(2012)'에서 주인공 연우(한가인)가 노비로 있던 곳도 활인서입니다. 공짜로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니 늘 환자로 미어터지는데다 무의탁 환자들을 수용하다 보니 살아 나가는 사람 보다 죽어 나가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할 정도로 상황이 열악했습니다. 왕실을 위한 내의원이 존재했던 반면 백성을 위한 무료의료기관은 하나이니 의술은 귀천을 가려 적용되었던 것입니다.

고주만이 언급한 치종청(治腫廳)은 언제 생겼는지 또 언제 폐지되었는지는 정확히 기록이 없으나 조선 명종 때의 의원 임언국은 이 치종청에서 백성들의 종기를 치료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방 외과가 복잡한 외과수술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째서 외과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전쟁이나 심각한 질병이 흔치 않던 과거에 종기는 무척이나 무서운 질병 중 하나였습니다. 시술법 역시 증상과 상황에 따라 다양해 종기를 찢고 치료하다 과다 출혈로 죽은 효종 임금도 있습니다. 상처를 절개하고 봉합하는 문제가 당연히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비싼 약을 쓸 수 없는 백성들을 위해 침술로 종기를 치료해야 한다.

임언국은 전라도 정읍에 살던 양반 출신으로 어머니의 질병을 고치고자 직접 시술법을 배워 어머니를 치료했고 나중에는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기적으로 이름을 얻어 왕실에 불려가게 됩니다. 그후 나라에서 녹봉을 받고 일하는 의관이 되어 치종청에서 백성들을 치료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저술한 책이 바로 드라마에 등장한 '치종지남'으로 고주만이 의생들에게 가르쳐준 절개술 중 몇가지는 그 책에 기술된 내용입니다. 고주만은 임진왜란 때 그 책이 불타버렸다고 말했지만 왜군이 강탈해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보관중이라고 합니다.

'치종지남'에는 각종 종기의 절개법, 치료법 등을 그림과 함께 적혀 있는데 당시의 수준으로서는 상당히 뛰어난 외과 수술법이었다고 합니다. 무엇 보다 대단한 건 그런 치료법을 왕실을 위해서만 쓰지 않고 수천 수만명의 환자를 치료하며 펼친 임언국의 의지입니다. 우리는 허준이나 백광현처럼 어의가 된 사람들의 이름만 알고 있지만 조선시대에 백성을 다룬 수많은 민중의들이 있었고 실질적으로 그들이 공공의료를 담당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의'나 '허준'같은 드라마를 통해 그들 민중의들의 활약을 엿보고 있는 셈입니다.

명의가 될 백광현의 사랑이야기는.. 덤입니다.

의학이 발달해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요즘에도 돈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시대에 굳이 혜민서와 활인서의 이야기를 꺼내고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것은 이런 공공의료가 의료제도가 추구해야할 최종적인 형태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수준의 의료 혜택을 받아야하고 귀천에 상관없이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다른 천재의사들과 다른 점 즉 똑같은 마의 출신의 이명환이 백광현과 다른점은 바로 의술에 대한 이런 마음가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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