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직장의 신

'직장의 신' 리메이크가 아니라 베낀 드라마라고?

Shain 2013. 4. 9.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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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부터 방송되기 시작한 KBS의 '직장의 신'이 월화드라마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동시간대에 방송된 '구가의 서'나 '장옥정, 사랑에 살다'도 화제가 풍성했고 흥미로웠지만 일본 드라마 '파견의 품격(2007)'을 리메이크했다는 이 드라마는 계약직과 정규직으로 구분되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는 드라마로 직장인들의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드라마 초반에는 일본 원작을 너무 그대로 따라한 것 아닌가 싶었지만 한국 드라마의 특징답게 적당히 멜로코드를 강조하는 등 나름 현지화에 성공한 것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눈여겨 본 것은 '직장의 신'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입니다. '파견의 품격'은 2008년 SBS 드라마넷에서 '만능사원 오오마에'란 제목으로 방송된 적이 있고 일드 원작을 보지 않았어도 이 드라마가 리메이크란 점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티즌 댓글 중에는 '베꼈네' 라던가 '파견의 품격과 너무 똑같다' 내지는 '도둑질해왔네'같은 반응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방송 내용이 일드와 내용이 비슷하면 당연히 로열티를 지불하고 제작했을 거라 생각하는게 아니라 표절일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수퍼갑 계약직 미스김과 정규직만 대접해주는 장규직. 시청률 1위를 차지한 '직장의 신'(이미지출처: KBS)


일본 드라마를 리메이크할 때는 로열티를 지불하는게 정석입니다. 일본 소설 '인간의 조건'을 각색해 재벌들의 재산싸움으로 변형시킨, 그래서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는 '로열패밀리(2011)' 역시 리메이크 형식으로 제작된 드라마입니다. 그러나 일본 문화가 개방이 되지 않았던 80, 90년대까지는 일본 컨텐츠의 내용을 그대로 베끼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습니다. 60, 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드라마 뿐만이 아니라 만화, 가요, 소설까지 그대로 베껴 해적판으로 유통시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때로는 일본의 인기 만화를 일본 보다 먼저 한국에서 '실사판'으로 만드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곤 했습니다.

스즈에 미우치의 '유리가면(1976)'과 미즈키 쿄코/이가라시 유미코의 '캔디 캔디(1975)'는 일본에서 크게 히트한 만화로 '유리가면'은 아직까지도 연재중인 최장기 연재 만화로 유명하며 저작권 분쟁으로 방송에서 사라진 '캔디 캔디'는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잘 알려진 인기 만화입니다. 두 만화 모두 7, 80년대부터 해적판이 돌았기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도 꽤 잘 알려진 작품들입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론 두 만화 모두 일본 보다 먼저 한국에서 실사판으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해적판 일본만화로 제작된 영화가 의외로 제법 있다고 하더군요).

일본만화 '유리가면'과 '캔디 캔디'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드라마와 영화(이미지출처:imbc, 네이버)


'유리가면'은 그 유명세에 비해 드라마로 제작된 것이 꽤 늦어 일본에서는 1997년에 처음으로 드라마로 제작되었습니다. '캔디 캔디'는 원작 소설가와 원화 만화가 사이의 저작권 분쟁 탓인지 일본에서 실사판으로 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각각 '스타탄생(1989)'이란 제목의 드라마와 '캔디 캔디(1981)'이란 제목의 영화로 제작된 적이 있습니다. '스타탄생'에서 '츠키가케' 선생님 역은 담임교사 강남길이, 천재적인 연기력을 타고난 주인공 마야는 이잎새가 맡았습니다. '유리가면'을 학교 현장으로 옮겼다는 게 특이한 드라마였죠.

'유리가면'을 어린이용 실사판 드라마로 만든 '스타탄생'의 작가는 '로비스트(2007)'와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1990)'으로 유명한 주찬옥 작가입니다. 당시 색깔있는 드라마로 큰 인기를 끌었던 주찬옥 작가에 의해 한국판으로 다시 태어난 드라마 '스타탄생'은 방송 타이틀에 원작이 일본의 '유리가면'임을 표시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 '호랑이선생님(1981)'으로 인기를 끌던 아역스타 엄효정을 양갈래 머리로 분장시켜 촬영한 '캔디 캔디'와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한 문호가 개방되어있지 않던 그 시대에 로열티를 지급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와타나베 미사코의 '유리의 성'을 '사랑과 진실(1984)'의 원작으로 알고 있는 시청자도 많다.(이미지출처:구글)


이런 드라마들이야 확실하게 '베꼈다'는 걸 알 수 있고 둘 중 하나는  원작이 누구인지 밝혔으니 낫지만 '표절'인 것 같다는 의혹에 시달리다 넘어간 드라마가 많긴 합니다. 대표적인게 김수현의 인기작 중 하나인 '사랑과 진실(1984)'입니다. 일부 시청자들 중에는 이 드라마의 원작을 와타나베 마사코의 '유리의 성(ガラスの城)'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당시 '유리의 성'은 해적판으로 한국 내에 널리 유통되던 중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 만화와 김수현의 드라마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이라면 베끼지 않았어도 표절 판결을 받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런 '표절' 드라마에 확실하게 정점을 찍은 드라마가 바로 '느낌(1994)'입니다. 당시 최고 청춘스타였던 손지창, 김민종, 이정재, 한재석, 이본, 이지은, 류시원, 그리고 신인스타였던 우희진이 총출동한 이 드라마는 당시 유행하던 트렌디 드라마로 폭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세 형제 앞에 나타난 엄마 친구의 딸 김유리(우희진), 삼형제 모두가 유리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셋 중 하나가 유리의 친오빠라는 사실에 놀랍니다. 삼형제와 함께 살게 된 유리는 둘째 오빠 한현(김민종)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셋 중 누가 자신의 오빠일까 불안해합니다.

일본만화 '오빠는 누구'와 완전히 동일한 내용으로 방송된 드라마 '느낌(1994)'(이미지출처:구글)


삼형제로 등장한 세 배우 모두 인기스타였고 세 사람이 부른 OST도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인기가 폭발적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이 드라마의 감각적인 느낌을 기억하는 팬들이 많습니다만 이 드라마는 유명 일본 만화가인 쇼지 요코(庄司陽子)의 '오빠는 누구(にいさまどなた, 1977)'라는 만화와 내용이 아예 똑같습니다. 80년대 초반 일부 한국 출판사에서 이 만화를 해적판으로 배포한 적이 있기 때문에(김숙, 유나래의 '물빛 커튼을 열며') 일부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경향신문에서 그 점을 지적하기도 했으나 두루뭉술 넘어가 지금은 90년대 대표 청춘드라마로 인식되고 있죠.

말하자면 과거에 드라마 제작자들이 원작을 마구 도용했던 이런 '전과'가 있기 때문에 내용이 비슷하다 싶으면 무조건 베꼈다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전에 비해 '표절'에 대한 경각심이 생기면서 로열티를 지불하는 절차를 밟고 원작을 표시하는 추세지만 요즘도 어디서 본 것같은 시놉시스나 캐릭터는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타임슬립을 소재로 만든 두 드라마 '닥터진'과 '신의'가 똑같지는 않지만 어쩐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과연 우리 나라 드라마들이 '베끼기'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졌는지는 두고볼 일입니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신문기사 검색


요즘은 어느 나라든 드라마 소재 빈곤에 시달리지 않는 나라가 없고 그렇다 보니 외국 드라마나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미국 드라마 역시 영국, 이스라엘, 멕시코 같은 나라의 드라마를 미국 상황에 맞춰 다시 제작하곤 합니다. 이왕 리메이크를 선택했다면 원작을 그대로 가져올 것이 아니라 한국 상황에 맞춰 각색하는 노력도 필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직장의 신' 역시 부하직원에게 90도 각도로 허리굽혀 인사하는 무정한(이희준)의 캐릭터가 한국 실정에 맞는지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이제는 베끼지 않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같은 소재를 더욱 새롭게 만드는 것 아닐까요.

* 한동안 다음에서 제 블로그가 검색되지 않았습니다. 블로그 마다 검색결과가 다른 걸로 봐서 제 블로그만 이런 것 같진 않습니다. 이걸 어디에다 소문내야 다들 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조만간 포스팅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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