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side/오락가락

조선 숙종의 장옥정과 영국 헨리8세의 앤불린

Shain 2013. 4. 1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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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영국의 헨리8세와 조선의 숙종은 참 많이 닮은 꼴입니다. 왕이라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권력에 대한 욕망과 왕을 향해 불나방처럼 날아드는 야심가들과 나라를 들었다 놓을 만큼 정열적인 사랑까지. 급한 성격에 다혈질이라는 점까지 비슷했다는 두 왕은 스케일과 정도만 달랐을 뿐  세계적인 치정극의 주인공들입니다. 왕의 뜨거운 사랑을 받던 장옥정과 앤불린은 한 나라의 왕비를 쫓아내고 권력과 종교를 바꾸고 희대의 요녀로 지탄받으며 불꽃처럼 살았으나 자신이 사랑하던 왕에게 사형당한 비극적인 여인들입니다.

조선의 숙종은 꽤 많은 정비와 후궁에도 불구하고 당파싸움을 쥐락펴락한 그 정치 능력을 인정받아 상대적으로 장옥정을 악녀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정 당파 중심으로 기록된 사서와 사약을 받을 때 조차 독하게 굴었다는 장희빈에 대한 부정적인 야사가 전하기 때문에 그녀를 권력과 당파싸움의 희생양으로 보는 시선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영국의 앤불린은 그녀로 인해 종교 갈등이 유발되어 많은 사람이 죽었고 착실한 종교인이었던 캐서린왕비가 억울하게 쫓겨났다는 이유로 살아있는 동안에는 마녀라 손가락질당했지만 죽고 나서는 오히려 동정적인 시선이 늘었다고 합니다.

드라마 '장희빈(2002)'의 숙종과 'The Tudors(2007)'의 헨리8세. 권력과 여인을 사랑한 다혈질의 남성들.

그도 그럴 것이 헨리8세는 앤불린을 참수한 후에도 여러 여인들과 어울려 제인 세이모어는 아이를 낳자마자 죽고 캐서린 하워드는 바람을 피우다 헨리8세에게 참수당하고 클레이브의 앤과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이혼하니 왕의 여인들이 불쌍한 거 아니냐 싶었던 거죠. 헨리8세는 자신에게 절대 충성한 토마스 모어, 토마스 크롬웰같은 권력자들을 가차없이 처단하고 앤볼린의 배후인 노포크 공작가를 절단낼 정도로 잔인했던 왕이라 지금도 영국에서는 헨리의 여섯 아내에 대한 노래가 전해오고 런던을 비롯한 곳곳에서 가련한 앤불린의 유령을 봤다는 괴담이 전해지곤 합니다.

여자가 많았다는 점에서 비교 대상이 되는 두 남자 숙종과 헨리8세. 오늘은 두 사람의 여인들은 얼마 만큼 비슷했는지 비교해볼까 합니다. 참고 이미지는 모두 KBS '장희빈(2002)'과 SHOWTIME에서 방송된 'The Tudor(2007)', 그리고 '동이(2010)'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최근 '장옥정 사랑에 살다'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송중이긴 합니다만 사극이라기 보단 인간 장희빈과 남자 이순의 이미지에 초점을 맞춘 판타지에 가깝고 실존인물이 살던 시대를 잘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통사극 쪽이 나을 것같네요. 참고로 숙종이 죽인 후궁은 장옥정 뿐이라 헨리8세의 캐서린 하워드와 비슷한 여인은 없더군요.


장옥정 VS 앤불린, 나라를 뒤엎은 여인들

한미한 역관 집안의 딸로 대왕대비 장렬왕후 궁의 궁녀가 된 장옥정은 왕의 사랑을 받았으나 어린 숙종을 다소 과잉보호하고 서인의 편인데다 남인 세력을 경계하는 명성왕후 때문에 궁 밖으로 쫓겨납니다. 인현왕후가 중전이 되고서야 궁에 다시 돌아온 옥정은 아들을 낳고 승승장구했으며 그녀의 뒤에는 조사석을 비롯한 남인들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유명 귀족가가 아닌 불린가의 딸이자 왕비의 시녀였던 앤불린은 외가인 하워드 가문 즉 노포크 공작 집안의 후원으로 언니 메리 불린의 뒤를 이어 헨리8세를 만납니다.

장희빈과 앤불린. 특정 권력을 등에 업은 그녀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역사가 바뀌었다.

두 여인의 뒤에는 왕의 권력을 탐내는 권력자들이 있었다는 점과 두 사람을 왕비로 만들기 위해 숙종과 헨리8세가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히 헨리8세의 경우 숙종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죽였는데 앤불린과 결혼하기 위해 영국국교회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순교자들이 발생했습니다. 숙종과 헨리8세의 두 여인에 대한 사랑이 식고 그녀들과 결탁한 정치세력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자 죽임을 당합니다. 경종과 엘리자베스 1세, 자녀들이 모두 왕이되었다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인현왕후 VS 아라곤의 캐서린, 억울하게 쫓겨나다

왕의 정비인 두 여성은 왕과 정략적으로 결혼한 아내였다는 점에서 비슷합니다. 다른 여자에게 푹 빠진 남편 때문에 잘못없이 억울하게 쫓겨났다는 점에서 두 사람에 대한 시선은 동정적으로 후세대들에게 정숙하고 품위있는 왕비로 묘사되곤 합니다. 인현왕후는 서인세력에서 추천한 가문의 딸로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왕후가 상당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혼인할 당시 나이가 너무 어려 숙종과 어려운 사이였고 성인이 된 후에도 왕자를 낳지 못해 중전으로서의 입지를 다지지 못합니다. 서인 세력을 견제하고 싶었던 숙종에게 쫓겨난 것 역시 다소 정략적인 선택으로 보입니다.

인현왕후와 아라곤의 캐서린. 왕의 정식 부인이었으나 다른 여성으로 인해 쫓겨났다.

아라곤의 캐서린은 본디 헨리8세의 형수가 될 사이였으나 헨리의 형이 죽는 바람에 헨리8세와 결혼합니다. 영국은 스페인의 공주로 스페인왕 카를5세를 조카로 둔 캐서린을 동맹관계 때문에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인현왕후가 너무 어린게 문제였다면 캐서린은 헨리에 비해 너무 나이가 많은게 문제라면 문제였습니다. 딸 메리를 하나 낳고 많은 유산을 했으며 헨리8세는 아들을 얻지 못해 고민하게 됩니다. 형수와 결혼할 수 없다는 헨리8세의 억지 때문에 이혼했고 인현왕후처럼 병들어 죽었지만 끝까지 자신과 헨리8세의 이혼을 인정하지 않고 왕비라 주장했습니다.


귀인 김씨 VS 클레이브의 앤, 사랑받지 못한 여자

귀인 김씨(영빈 김씨)는 장옥정이 궁안으로 복귀할 때 인현왕후의 청으로 들인 후궁입니다. 인현왕후와 마찬가지로 서인 집안이었던 그녀는 후사를 잇는다는 명분으로 숙종의 정략적인 후궁이 되어 귀인까지 올랐지만 숙종은 그녀를 거의 찾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숙종이 인현왕후를 쫓아낼 때 덤으로 같이 쫓겨나는 불운을 겪기도 하지요. 숙종의 여러 후궁들 중에 거의 아내 대접을 받지 못한 여성이라고 보면 됩니다. 인현왕후가 입궁할 때 같이 돌아와 영빈이 되고 장희빈이 죽고 나서도 궁에 머물며 연잉군(영조) 등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귀인 김씨와 클레이브의 앤. 왕과 정치적으로 결합했던 그녀들은 사랑을 받지 못했다.

클레이브의 앤은 귀인 김씨와 달리 헨리8세와 정식 결혼을 하긴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앤의 초상화에 반했고 정치적인 목적도 있었던 헨리8세는 결혼식에서 만난 그녀가 못생기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부부 생활을 거절했습니다. 이후 앤은 이혼을 받아들이고 왕궁 근처에 살며 공주를 비롯한 헨리8세의 가족들과 친하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혼했어도 아내 대접을 받긴 했으나 왕의 무관심 때문에 사랑받지 못한 여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 다 오랜 세월 친구같은 타입이랄까요. 두 남자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매몰찬 구석이 있나 봅니다.


인경왕후 VS 제인 세이모어, 연인이 아닌 아내

인경왕후는 숙종의 첫번째 아내로 어린 나이에 숙종에게 시집와서 딸을 셋이나 낳았지만 딸들도 모두 일찍 죽고 자신 역시 두창에 걸려 젊은 나이에 사망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많은 여인들을 거느렸던 숙종에게 진짜 첫사랑일 수도 있고 유일한 아내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서인 세력이지만 워낙 어릴 때 맺어진 사이라 그런지 숙종 역시 인경왕후를 그닥 싫어한 거 같진 않습니다. 병에 걸려 일찍 죽었다는 면에서는 정치와 관계없이 평생 잊혀지지 않을 첫번째 아내, 진짜 아내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인경왕후와 제인 세이무어. 일찍 죽는 바람에 어떤 비극에도 휘말리지 않았다.

헨리8세의 왕비 중에서(헨리8세에게 불륜으로 낳은 사생아 아들은 몇 있습니다) 유일하게 아들을 낳은 제인 세이무어는 앤불린의 시녀 출신으로 원래 몸이 많이 약했다고 합니다. 아들을 낳고 얼마 있지 않아 산후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결혼생활도 길지 않고 앤불린처럼 폭풍같은 사랑을 받던 여인도 아니었으나 아들을 낳았다는 점에서 헨리8세에게 가장 인정받는 왕비로 알려져 있습니다. 헨리8세는 왕위계승으로 인한 분란을 원치 않았고 권력의 완성을 위한 조건을 후계로 보았기 때문에 제인 세이모어가 더욱 인정을 받은 것 같습니다.


숙빈 최씨 VS 메리 불린, 아들은 낳았지만

숙빈 최씨는 아들을 낳아 숙종의 후사를 이었습니다만 장희빈이 죽고 나서 궁 밖에 나가 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을 싫어했던 장희빈과의 관계나 여러 상황 때문에 정치적으로 인현왕후와 같은 편이었던 숙빈 최씨는 한때는 숙종의 총애를 받아 아들을 셋이나 낳았습니다(그 중 둘은 일찍 사망). 갑자기 숙종의 사랑을 잃은 이유는 잘 밝혀져 있지 않으나 장희빈의 전례를 보았던 숙종의 정치적인 판단일 수도 있고 판단이 빨랐던 숙빈 스스로 물러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확실한 건 숙종의 옆자리를 지킬 수 없던 후궁이라는 점입니다.

숙빈 최씨와 메리 불린. 왕의 아들을 낳았지만 왕의 곁을 지키지 못한다.

메리 불린은 헨리8세의 아들을 낳았습니다만 당시 영국은 정비에게 낳은 아들만 인정하고 나머지 왕의 자식들은 사생아로 취급했습니다. 헨리8세의 또다른 정부인 블런트 부인의 아들 헨리 피츠로이는 공작 작위만 받았지요. 메리 불린 역시 앤불린처럼 노포크 집안의 후원으로 헨리8세를 만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치적인 세력이 있는 후궁(?)이란 점에서는 숙빈과 매우 유사합니다. 다만 숙빈 최씨가 영원히 헨리8세의 후궁으로 살다 죽은 것과 달리 메리 불린은 다른 남자와 결혼해 살았습니다. 아들을 낳았는데도 아내 대접을 받지 못한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인원왕후 VS 캐서린 파, 나는 살아남았다

인원왕후는 장희빈이 죽고 후궁은 중전이 될 수 없다는 법을 공표한 숙종이 새로 맞아들인 어린 아내입니다. 정치적으론 서인 세력 출신으로 숙종이 죽은 후에도 왕실 최고 어른으로 궁에서 계속 살았습니다. 다음 왕이 된 경종 보다는 영조와 더욱 친해 아들처럼 여기고 나중에는 양자로 들여 경종의 후계자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당시 상황으로 보아 경종 보다는 연잉군 쪽에 애정이 있었다는 점이 충분히 이해가지요. 숙종의 왕비나 후궁들이 죽거나 궁을 나간 것에 비해 연잉군과 잘 협력하며 숙종의 마지막 왕후로 자리를 지켰습니다.

인원왕후와 캐서린파. 숙종과 헨리8세의 죽음을 지켜본 아내들. 정치적으로도 탁월했다.

캐서린 파는 헨리8세의 마지막 아내로 헨리의 죽음을 지켜본 아내입니다. 가장 지적이고 똑똑한 여성이었고 헨리의 두 공주인 메리와 엘리자베스, 제인 세이모어의 아들인 에드워드를 모두 잘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헨리8세가 죽은 후에는 에드워드의 외삼촌인 토마스 시무어와 재혼해 의붓아들의 왕권을 안정적으로 지켜주었습니다. 인원왕후처럼 정치적 지지기반인 아들이 없다는 점에선 마찬가지였고 남편이 죽은 후에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노련한 선택을 했습니다. 그러나 장수했던 인원왕후와는 달리 산욕열 때문에 일찍 사망했습니다.

헨리8세와 숙종 모두 많은 여인들을 거느리고 살았다는 점에서 화제가 됩니다. 숙종은 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명빈을 비롯한 여러 후궁이 있었고 헨리8세에게는 엄청난 치욕을 안겨준 캐서린 하워드가 있습니다. 왕의 아내라는 여자가 다른 남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걸렸다니 치욕도 그런 치욕이 없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정치적으로 결합하고 때로는 정치적으로 헤어지기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기도 했습니다. 그런 파란만자장하고 드라마틱한 과정 때문에 그들 이야기는 인기가 식지 않는 것 같네요.

여담입니다만 장희빈과 앤불린은 이렇게 많은 여인과 놀아난 남자, 정치적 야심과 관계없이 숙종과 헨리8세를 진심으로 사랑했을까요? 숙명적으로 권력을 가지고 놀 수 밖에 없는 왕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목숨을 잃는 그녀들의 불행이 시작된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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