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side/오락가락

드라마를 보다 떠오른 노무현 대통령의 '호화요트'

Shain 2013. 5. 2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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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바빠서 잊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나서 보니 오늘이 벌써 4주기가 되는 날이더군요. 안 그래도 '조세피난처'라던가 '페이퍼 컴퍼니'같은 쟁쟁한 키워드가 넘쳐나는 요즘 이미 세상을 뜬 전직 대통령을 다시 떠올릴 국민이 몇명이나 있을까요. 특히 국제적인 성추문으로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은 윤창중이나 성인용 동영상에 직접 출연한 김학의 전차관의 문제로 정치판을 외면한 국민들이 점점 늘어나는 이 시대에 말입니다. 4년전 그날도 날씨가 이상하게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 장례행렬이 지나가던 그날도 햇볕이 쨍쨍하게 내리쬐고 있었지요.

저는 요즘 '내 연애의 모든 것'이란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다. 시청률 4.1퍼센트, 웬만한 히트작도 못되는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눈길이 가는 것은 국회의원 김수영 역의 배우 신하균이 워낙 매력적이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이 드라마에 관심이 가는 것은 각종 '스캔들'을 일으키는 국회의원들이 어떤식으로 자신의 스캔들을 덮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는 정치권에서 뭔가 하나씩 펑펑 터질 때마다 각종 연예인 스캔들이 터져나오는 이유를 제법 코믹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극중 녹색당 국회의원 노민영(이민정)은 연적과 정적들에게 계속 언론 공격을 당합니다. 평소 사립 국제중학교를 반대하던 노민영은 언니 부부가 죽자 조카 송보리(전민서)를 이모(김혜옥)와 함께 키우는 걸로 설정되었는데 이모는 영어공부를 좋아하는 보리를 위해 영어학원에 보냅니다. 마침 그 영어학원은 유명 사립학교 입시대비반이 있었고 기자 안희선(한채아)은 노민영 국회의원이 겉으로는 사립학교에 반대하면서 조카는 입시대비학원에 보낸다며 폭로해 버립니다.

노민영에 대한 억울한 공격은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노민영의 사돈 즉 보리의 삼촌인 변호사 송준하(박희순)는 노민영의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송준하는 원래부터 노민영과 정치적 색채가 같았고 노민영의 언니 부부 역시 같은 정치색을 지닌 사람들로 함께 일해왔는데 이를 두고 친인척 보좌관을 등용했다고 공격합니다. 그런가하면 어린 조카 이름으로 언니 부부의 사망보험금을 예치해 두었는데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조카 이름으로 수억원대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폭로합니다.

극중 노민영은 권력과는 거리가 먼 생활형 국회의원으로 평소에도 유권자들과 함께 재래시장에서 장을 봅니다. 소위 '진보'로 표현되는 노민영은 사치와는 거리가 먼 소박한 사람이지만 연일 폭로되는 각종 언론 보도로 알고 보면 부유한데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국회의원으로 평가되고 맙니다.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정당 소속 국회의원인 김수영과의 스캔들은 노민영의 정치적 입지를 아예 추락시키고 말겠죠. 연적 안희선이든 아니면 검은 목적을 가진 누구든 고의적으로 노민영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드라마는 특정 정치인을 모델로 만들어졌다기 보다 극중 캐릭터를 '진보'와 '보수'로 나누고 그들 사이의 로맨스를 묘사하는 내용으로 정치권에 대한 풍자는 어디까지나 양념에 불과합니다. 진보 정치인이라고 족발에 순대만 먹어야하나며 투털대는 노민영 캐릭터가 이 드라마를 대변하는 이미지죠. 그런데 노민영이 언론에게 무차별 폭격을 당하는 모습은 분명히 낯이 익습니다. 네 분명히 우리는 이 모습을 어디선가 봤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호화요트' 사건같은 것이 그것이죠.

요즘도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호화요트'라고 치면 '노무현의 호화요트'가 검색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이던 80년대 초반 취미로 즐기던 2인용 딩기를 '호화요트'라고 각색해서 낸 기사는 여전히 반대파들에게 회자되며 '서민 흉내'의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서민 대통령은 떡볶이, 오뎅 먹는 사진만 찍어야 한다고 우기는 것도 아니고 이 문제는 꽤 오래 노무현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외에도 언론은 대통령 퇴임 후에도 사저를 '아방궁'이라고 또 노건평씨가 아동용 장난감 골프채를 가지고 놀던 저수지를 '호화골프장'으로 기사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노무현 대통령하면 '20촌' 사건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불법 도박게임으로 문제가 된 행정관이 대통령 영부인 권양숙 여사의 먼친척이라고 해서 살펴보니 촌수가 20촌이더라는 내용의 기사는 일명 '노무현 폄하' 보도의 전형으로 평가될만합니다. '20촌' 사건을 실은 그 언론사는 또다른 전직 대통령의 처사촌 비리에 대해서는 평소 교분이 없던 사람이라고 강조해 독자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습니다. 남이나 다름없는 20촌은 친인척이고 사촌은 상관없다니 희한한 계산법이죠.

부모가 죽고 받은 사망보험금을 조카 이름으로 예치해둔 것은 어찌 보면 슬픈 가족사입니다. 어린 조카 이름으로 수억의 재산이 있는게 '팩트'라고 해서 그 보험금을 은닉한 재산으로 보도하는 모습. 언론에게 무자비하게 공격당하는 극중 캐릭터를 보니 아 다시 5월이 왔구나 싶어지더군요. 우리도 저런 식으로 언론에게 난도질당한 대통령이 한 사람 있었다는 사실이 한번 더 기억났습니다. 언론의 장난은 일개 국회의원 뿐만 아니라 대통령 한 사람도 바보로 만들 수 있을 만큼 무섭지요.

노무현 대통령같은 사람은 역사에 두번 다시 없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다시 그런 사람이 나타난다 해도 바른 언론이 없으면 48%가 아닌 80%라고 해도 지켜낼 수 없을 것입니다. 남양유업같은 기업이 횡포를 부리고 조세피난처에 많은 돈을 퍼부어도 진실의 편에 서는 언론이 없으면 바뀔 것이 없는지도 모릅니다. 다시 보고 싶은 대통령이 떠오르는 아침, 그는 가고 없어도 국민들은 여전히 할 일이 많은 것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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