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Inside/오락가락

유세윤 충동자수를 보며 떠올린 15년전 김국진

Shain 2013. 6. 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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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부터 거의 15년 전쯤의 일입니다. 밤늦은 시간에 밥을 먹으러 24시간 관광특구였던 대전 유성을 갔는데 그곳에서 운좋게 코미디언 김국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요즘이야 대전에도 연예인들이 자주 공연을 오곤 합니다만 당시에는 연예인들의 지방공연도 흔치 않았고 길거리에서 만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김국진은 인기 프로그램 '테마게임'을 촬영하기 위해 대전에 왔고 유성에 있던 한 식당에서 마지막 장면을 촬영중이었습니다.

와 제 일행들은 촬영을 마치는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며 굉장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쉽게 보기 힘든 드라마 촬영 장면을 직접 봤다는 것도 신났고 김국진을 평소에 몹시 좋아했기에 기쁜 마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변에는 저처럼 김국진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이 서 있었죠.

아무도 촬영이 끝난 김국진을 향해 달려가거나 싸인해달라고 조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멀리서 손을 흔들고 '여보세요'라던가 '밤새지 마란 말야' 같은 유행어들을 유쾌하게 떠들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촬영을 마치고 식당을 나오는 김국진의 표정은 어둡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될 만큼 무거웠습니다. 그렇게 많은 팬들 앞에서 한번 싱긋 웃어줄 만도 한데 웃기는 커녕 걸어갈 기운도 없다는 듯이 매니저에게 질질 끌려 버스로 갔습니다. 한손을 잡고 끌고 가는 사람이 없으면 쓰러질 거 같더군요.

식당 부근에는 촬영을 위해 대기중인 버스가 있었고 식당 안에서 버스까지의 거리는 6-7미터 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팬들은 웃으면서 그에게 유행어를 건내고 소리를 질렀지만 김국진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고개 한번 돌리지 않았습니다.

평소에 볼 수 없는 사람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는 반가운 마음에 지켜보기는 했습니다만 그 시간이 밤 10시쯤이었으니까 하루종일 촬영하다 지쳤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 한번 흔들어주지 않는게 서운하다기 보단 좀 안쓰럽더군요. 그렇게 바쁘고 인기있는 코미디언이 이렇게 멀리 와서 촬영을 하자면 얼마나 피곤할까 싶었고 얼굴표정이 그렇게 무거운걸 보니 인기 연예인이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랑 같이 있던 일행이 '저 사람 곧 방송 그만둘 거 같다'라는 말을 하더군요.


사람이 지쳐보인다고 생각은 했지만 김국진을 잘 모르는 팬이 어떻게 '우울증'을 읽어낸다는 것인지 의아하기도 했고 또 김국진이 그냥 팬들한테 친절하게 굴 상태가 아니었을 수도 있는데 그걸로 너무 무리한 추리를 한 거 아닌가 싶었는데 그 분 말씀이 제3자가 보기에도 그냥 피곤한 정도가 아니라 힘들다는게 얼굴에 드러날 정도면 그런 얼굴을 한 본인은 훨씬 안 좋은거라고 하더군요. 조만간에 뭔가 기사가 나올거라고 그러는데 그때는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얼마뒤 정말로 김국진은 골퍼가 되겠다며 방송활동을 전격 중단했습니다. 완전히 은퇴한게 아니라 간간이 몇개 프로그램의 MC도 보고 드라마 출연을 하긴 했지만 한참 99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방송활동량을 줄였죠. 제 일행은 매니저에게 힘없이 질질 끌려가던 그에게서 일종의 우울증 증세를 봤다고 했습니다.

누가 봐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힘든 사람이니  쉬는게 본인을 위해서도 좋을 거 같다고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리고 최근에야 밝혀진 것이지만 그때 김국진의 몸상태는 정말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테마게임'을 찍고 있던 그 무렵은 김국진의 최전성기였습니다. 김국진의 이름을 붙인 빵이 판매되고 CF에 프로그램에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던 그가 방송에서는 누구 보다도 환하게 웃으며 사람들을 즐겁게 하던 그가 하얗게 뜬 화장 속에서 지쳐가고 있었단 사실을 팬들은 몰랐습니다.

'개그맨'이란 말보다 코미디언이란 표현이 훨씬 좋다던, 연기와 코미디에 대한 철학이 있던 김국진은 시름시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배우들은 출연이 없는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유독 코미디언들은 쉴 시간을 따로 갖기가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김국진의 예전 연기는 미국 배우 짐 캐리를 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유쾌했습니다. 나이차이가 좀 있지만 MC로 활약하며 시트콤에도 출연하던 유세윤도 비슷한 역할을 했었죠. 때로는 UV와 함께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구요. 시청자들을 늘 기분나쁘게 하는 막장 드라마 보다 혹은 뻔뻔한 얼굴로 거짓말을 하는 정치인들 보다 건강한 웃음을 주는 코미디언들이 훨씬 고맙고 감사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그런 그들이 속으로는 많이 힘들고 지쳐있었다는 사실이 안됐고 그렇더라구요. 50년대 유명 미국 코미디언 중에는 사회 저항과 풍자의 상징이었으면서도 불운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을 유쾌하게 사는 것 같은 그들은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던 것일까요.

코미디언들이 늘 유쾌하다는 것도 편견이고 그들이 늘 상대를 웃겨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구요. 스케줄이 꽤 많아서 그랬는지 오랜 연예계 생활로 지쳤는지는 몰라도 휴식이 필요한 때인 것만은 사실인가 보군요. 지금은 많이 편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김국진을 보며 유세윤도 언젠가는 그렇게 편해진 얼굴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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