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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유산, 해피엔딩 기다리는 시청자 속터지게 한 답답한 전개

Shain 2013. 6. 10.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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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낳지 못해 어린아기를 유괴했다는 산모의 충동 범죄는 과거에 실제로 있었던 사건입니다. 70년대에는 5대 독자가 유괴되었다고 해서 범인을 잡고 보니 6대 독자 집안의 며느리더라는 슬픈 사건도 있었습니다.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출생의 비밀'도 실제 종종 일어나던 사건입니다. '백년의 유산'에서 고아원 동생 양춘희(전인화)의 아들 세윤(이정진)을 자신의 죽은 아들과 바꿔치기한 백설주(차화연)같은 케이스는 현실에서 모티브를 얻은 소재라는 이야기입니다. 4번의 유산으로 불임이 된 설주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세윤과 민채원(유진)의 결혼이 의붓남매 간의 결혼이라며 반대하는 일도 상당히 현실적인 반응입니다. 특히 30년간 친아들로 믿고 키워온 5대독자 세윤이 자신의 핏줄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된 세윤아빠 이동규(남명렬)의 반발은 그 정도면 상당히 점잖은 편이죠. 이동규는 설주에게 거칠게 분노하거나 폭발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혼자 감정을 삭이다 결혼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말한게 전부입니다. 민효동(정보석)이나 이동규 세대에겐 아이 바꿔치기와 의붓남매의 결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다시 찾아온 민채원의 고난. 양춘희는 가출했고 세윤은 냉정하게 반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세윤과 채원이 결국엔 결혼에 골인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극중 캐릭터들도 상황이 저 정도로 극단적이니 굳이 반대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첫회부터 양춘희의 아들이 세윤이라고 정확히 맞춘 것처럼 '백년의 유산'도 우리 나라 드라마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초반에는 언제쯤 비밀이 밝혀질까 지켜보기도 하고 극중 인물들의 절절한 감정에 '저럴 수 있다'며 공감해도 똑같은 패턴의 신파극이 반복되면 질리게 마련입니다.


양춘희가 집을 나간 심정이 아주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닙니다. 극중 엄팽달(신구)의 집안은 엄기옥(선우선)과 강진(박영규)의 도둑 결혼으로 이미 발칵 뒤집어진 상태입니다. 거기다 설주가 자살을 시도하고 채원과 세윤이 결혼을 포기하니 말로만 가족이지 피한방울 안 섞인 양춘희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탓인양 마음이 무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민효동은 춘희 때문에 채원의 결혼을 반대한다는 걸 잘 압니다. 거기다 중병을 앓고 있는 엄팽달의 비밀까지 알고 있어 더욱 복잡한 심경입니다.

방영자 집안은 알아서 망하는 분위기. 채원은 대체 무얼 했는가.

가장 아쉬운 것은 드라마의 분위기가 이렇게 무거워지지 않고도 가족들의 반응을 현실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란 점입니다. 사실 김철규(최원영)의 철없는 행동과 방영자(박원숙)의 사악한 잔꾀, 김주리(윤아정)의 못되먹은 심보를 처음부터 봤던 사람들이라면 민채원이 성공해서 방영자의 금룡푸드를 이기는 시나리오를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비록 국수사업이 좀 많이 엉성하긴 했으나 진짜 복수다운 복수는 채원의 사업 성공이 제격입니다.

그러나 방영자는 아들 김철규가 마홍주(심이영)와 이혼하면서 재산을 말아먹고 딸 김주리가 세윤을 이기겠다며 무리하게 국수사업을 시도하다 사채까지 끌어쓰고 망해버렸습니다. 제풀에 망해버린 것입니다. 민채원의 성공은 경연대회 우승 덕분이지만 실질적으론 이세윤의 식품회사에서 기본적인 자본을 얻었습니다. 낡고 자그마한 국수공장이 엄팽달 가족 모두를 먹여살릴 정도로 크게 발전한 기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국수 생산 방법을 제공해주고 로열티를 얻는게 큰 성공은 아니니까요.

무리하게 도주했으면 결혼을 할 일이지. 다시 도망친 답답한 민채원.

그렇게 민채원의 성공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둘의 결혼이 꼬이고 설주의 자살 때문에 결혼식 중에 민채원이 도망가고(이 장면에서 속터진다는 분들이 제법 많더군요) 양춘희도 집을 나가 버리니 어차피 결혼할 거 왜 이렇게 질질 끄냐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꼭 결혼하리라 굳게 마음먹고 채원을 데려갔던 세윤은 채원을 냉대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다시 화해하고 사라진 양춘희의 마음을 민효동이 설득하고 이동규의 허락을 받는 과정이 또 한참 걸릴거니까 마지막회 전에 결혼이나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은 이중적인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드라마 속 상황이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비현실적이다 말도 안된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판타지이기 때문에 드라마 속 커플이 모든 난관을 헤치고 결합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습니다. 현실은 답답하지만 드라마라도 속시원하게 이뤄졌으면 하는 대리만족 심리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통속극 속성상 어차피 해피엔딩이라는 것도 압니다.'백년의 유산'은 여러모로 잔재미를 잘 살린 드라마입니다만 마지막회까지 민채원 캐릭터가 가장 답답하다는 반응은 면치 못할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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