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천명

천명, 경원대군에게서 세자 이호의 모습이 보인다

Shain 2013. 6. 1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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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 최원(이동욱)이 드디어 자신의 누명을 벗었습니다. 친구이자 세자 이호(임슬옹)의 담당 의원이던 민도생(최필립)을 죽였단 누명을 쓰고 도망치던 최원은 홍다인(송지효), 의금부 이정환(송종호)과 거칠(이원종) 일당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중종(최일화)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증명했습니다. 의붓아들 이호를 죽이려했던 문정왕후(박지영)의 음모는 만천하에 드러났고 모든 일을 주도한 김치용(전국환), 윤원형(김정균)도 처벌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었죠.

반면 형과 어머니의 안전을 동시에 지키고자 했던 경원대군(서동현)은 어머니 때문에 슬픈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일국의 국본인 이복형을 살리겠다며 납치까지 자처한 경원대군인데 형을 살리는데 도움을 주고 보니 어머니가 위험에 처했습니다. 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형과 어머니가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건만 누가 먼저 시작한 싸움인지 알 수 없는 이 다툼은 하나가 죽어야만 끝이 납니다. 최원을 원망스레 보는 경원대군의 얼굴이 인상적이더군요. 명종은 어머니 때문에 평생을 눈물짓던 왕으로 유명합니다.

어머니가 위험에 처한 것이 못내 안타까운 경원대군. 어머니 때문에 고민하는 또다른 아들.

그동안 중종은 드러내놓고 세자 이호를 비호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이호가 아들이라도 자신이 가장 경계했던 조광조의 심곡지사 즉 반역 세력과 결탁했다는 의혹이 있는 세자를 무조건 봐줄 수 없는데다 소윤을 필두로 한 문정왕후의 권력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왕이라도 권력자를 잘못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연산군을 통해 똑똑히 보았던 중종입니다. 최원이 자신의 누명을 벗으며 문정왕후의 유죄를 증명한 덕분에 보다 수월하게 조정에서 소윤파를 내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중종이 자식들에게 정이 많은 왕이었음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인종과 명종(경원대군)도 그 부분은 아버지를 빼닮았는데 인종은 1515년생이고 명종은 1534년생으로 결혼을 일찍 하던 당시 풍습에 따르면 형이라도 거의 아버지뻘이었습니다. 인종은 동생 경원대군을 너무나 예뻐하여 왕위를 동생에게 물려주기 위해 자식을 갖지 않았다는 야사까지 전할 정도입니다. 야사는 무조건 인종을 착하게 묘사하고 문정왕후를 악하게 묘사하는 경향이 있으나 그 정도로 어진 성격이었단 뜻이겠죠.

중종은 인정이 넘치는 성격이라도 일단은 문정왕후의 지아비요 왕이니 별 문제가 없습니다. 반면 의붓아들 인종은 심술궂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이 안되는 문정왕후로 인해 스트레스를 자주 받았습니다. 혹자는 독살되지 않았더라도 화병으로 죽었을 거라 합니다. 드라마 초반부에서도 어머니 문정왕후로 인해 마음고생하는 세자 이호의 모습이 묘사되었듯 태어나자마자 처음 어머니라 불렀던 문정왕후를 쉽게 마음에서 버릴 수 없을 것입니다.

명종(경원대군)의 경우는 그 보다 심각합니다. 인종이 죽은 후에도 문정왕후는 20년을 더 살다가 죽었습니다. 12살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른 명종은 수렴청정하는 사나운 어머니 때문에 재위 기간 내내 눈물 흘렸다는 말이 전합니다. 명색이 왕이니 백성과 신하들을 외면해서는 안되는데 종사를 농단하는 어머니와 외삼촌을 보면서도 감히 어머니이기 때문에 함부로 대들지 못하는 심정이 오죽했겠느냐는 말이죠. 그 스트레스로 인해 명종은 일종의 조울증 증세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문정왕후 나름대로는 경원대군을 살리기 위해서였겠지만. 명종도 인종처럼 스트레스를 받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조선 왕들에 대한 몇가지 이야기들 중 명종이 환관을 불러 노래부르게 하고 자신은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곤 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실제로도 명종은 아침에 파직한 관리를 저녁에 복직시켜주는 등 변덕이 죽끓듯하면서도 억눌린 마음을 환관들과 함께 달래곤 했다고 합니다. 흉년이 들고 나라가 엉망이 되어가는 동안에도 명종의 이런 기행과 소윤파의 농단은 멈추지 않았고 전국에는 도적이 들끓게 됩니다. 문정왕후에 대한 정치적인 분석과는 별개로 나라는 엉망이었단 뜻입니다.

경원대군이 거칠의 산채로 놀러가 랑이(김유빈), 소백(윤진)과 함께 풀뿌리죽을 나눠먹는 장면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습니다. 극중 임꺽정(권현상)은 조선의 3대 의적 중 하나로 명종 시기에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소백과 경원대군의 운명을 생각해서도 흥미로운 장면이지만 명종이 아주 자질없는 왕재는 아님을 보여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인종이 뛰어난 인재였듯 명종도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이는 아니었습니다. 명종은 나라꼴이 엉망인 걸 알면서도 눈뜨고 보고 있었던 셈입니다.

드라마 속 인종은 그래도 계모니까 저항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경원대군은 어머니를 거역할 수 없었다.

극중 세자 이호가 그나마 문정왕후에 대한 잔정을 끊고 그녀를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죽이려하는 '계모'였기 때문입니다. 반면 명종은 피를 나눈 어머니인데다 자신을 굳히 해하려고 하지 않는 어머니를 내칠 수가 없었습니다. 왕으로서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그 스트레스를 안은채 평생을 살다 간 것입니다. 명종은 어머니가 죽자 곧바로 윤원형 일파를 처벌했고 그 2년 뒤에는 인종이 30세에 죽었듯 명종도 34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두 왕이 스트레스로 후사없이 죽는 덕분에 왕위가 선조에게 넘어가게 되었다는 건 잘 알려진 이야기죠.

극적인 대반전으로 문정왕후가 밀려났으나 아시다시피 문정왕후는 죽지 않습니다. 동생의 눈물을 보다 못한 세자 이호와 이호와 똑같은 성격을 가진 중종이 경원대군을 위해 살려둘 가능성이 높습니다. 역사와 전혀 상관없는 김치용 대감이 죽겠지요. 살아남은 문정왕후가 세자 이호와 명종의 목을 죄어올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자식을 위해 목숨을 거는 아버지들의 이야기 '천명'. 수많은 아버지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지독한 어머니 문정왕후를 끌끝내 이기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버지 최원의 난관은 끝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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