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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방송에서 형사 법정을 참관하러 온 고등학생들에게 김공숙(김광규) 판사가  이야기한 것처럼 법률용어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려운 편입니다. 폐지줍는 할아버지가 공짜신문 가져가는게 왜 위법이냐 묻고 변호사의 어려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법정용어 중에는 쉽게 와닿지 않는 것들이 참 많죠. 그중 하나가 '자력구제(自力救濟)'란 단어입니다. 사전적으로는 법률 절차를 빌리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강제로 실력을 행사하는 것을 뜻하지만 쉽게 말해 직접 범죄자를 처벌한다는 말입니다.

국선변호사 차관우는 법을 지켜 변론했지만 여자친구 장혜성의 법감정은 지키지 못했다.


원칙적으로 우리 나라 법은 '자력구제'를 금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 방어를 위한 폭력행사가 아닌 범죄자를 현장에서 잡기 위한 폭행도 문제가 됩니다. 가해자를 제압하고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폭행이었다는 걸 정상참작해도 과잉폭행으로 처벌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제 아무리 원통하고 억울한 경우를 당했어도 범죄자에게 직접 복수하는 행위는 범죄로 간주됩니다. 장혜성(이보영)이 맡았던 쌍둥이 살인 사건처럼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편의점 주인을 살해한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행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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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사고란의 뉴스를 읽다 보면 감정적으로는 더 중한 처벌을 내려야할 것같은데 경미한 처벌을 받는 범죄자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상습 성폭행 범죄자가 짧은 형량을 받고 도무지 무죄일 것 같지 않은 피의자가 무죄 방면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법감정'에 어긋난 판결이라 항의합니다. 잔인하고 흉악한 범죄가 발생했을 땐 때려죽여도 시원찮은 놈이라며 사형제도를 부활하자고 주장합니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 박수하(이종석)가 민준국(정웅인)에게 느끼는 법감정도 바로 이 억울함입니다.

차관우(윤상현)는 자신이 직접 장혜성과 박수하가 당해야했던 10년전 재판을 본 적이 없고 어린 장혜성(김수현)을 위협하며 길길이 날뛰던 민준국을 본 적이 없기에 민준국의 거짓말을 믿었습니다. 자신이 보고 들은 것과 확실한 증거 만으로 범죄자를 상대해야하는 국선전담변호인으로서는 최선의 판단이지만 자신의 여자친구 장혜성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박수하의 초능력이 아니더라도 장혜성은 본능으로 민준국이 엄마 어춘심(김해숙)을 살해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법의 허점을 이용해 무죄 판결받은 민준국.


법감정으로 살펴본 법정엔 억울한 사람들 뿐입니다. '무죄추정이나 합리적인 원칙 다 개소리고 변호사는 개자식'이라는 장혜성의 말이 그런 억울한 사람들의 감정을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장혜성이 그동안 살펴본 사람들은 모두 천차만별의 사연을 갖고 있었습니다. 법적인 피해자가 무조건 선이고 법적 가해자가 무조건 악이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았으나 억울한 피해자가 되었을 때 법이 흡족할 정도로 가해자를 처벌해주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살인사건의 증인 장혜성은 생명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차관우나 신상덕(윤주상)을 나무랄 수도 없습니다. 일부 시청자들에게 '인권팔이'라 비난받는 그들 변호사는 주어진 법적 조건에서 최대한 가해자를 이해하고 가해자에게 이로운 판결을 유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양쪽의 말을 모두 듣기 위해 만들어진 법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공평한 변론 기회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되어있고 영악한 민준국이 그 법의 빈틈을 악용한 것 뿐입니다. 국선전담 변호사가 억울한 고성빈(김가은)을 구해낸 것도 그 제도를 잘 활용한 덕분입니다.

민준국의 범죄를 알고 있는 박수하는 자력구제를 마음 먹고 장혜성과 이별한다.


장혜성과 같은 사건을 목격했기에 민준국이 범인이 맞다는 확신을 가진 서도연(이다희)은 민준국 사건을 판결한 아버지 서대석(정동환)의 조언으로 민준국의 감방동기인 황달중(김병옥)의 증언을 증거로 이용하지만 그 역시 무리수였습니다. 급조된 엉성한 증거는 뒤집을 수 있는, 그런 논리를 이용가능한 것이 바로 법입니다. 민준국은 자신이 살인자라는 명백한 증거만 없다면 착한 변호사 차관우가 열심히 변호해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허술하면서도 논리적인 것이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책임에 성실했던 차관우는 변호사로서 훌륭했고 법을 잘 이용하긴 했으나 박수하와 장혜성이 알고 있는 진실을 알아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법감정도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최소한 법은 범죄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억울하게 해서는 안되는 것인데 민준국이 풀려나면 장혜성은 더욱 공포에 질려 살아야합니다. 어춘심이 걱정했던 복수심 이전에 생명을 먼저 걱정해야하는 것입니다. 박수하가 장혜성에게 이별을 고하고 자력구제를 마음 먹은 것도 그 아이가 어릴 때부터 보아왔던 법이 완벽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유죄인 걸 알면서 풀어줘야하는 법. 장혜성인 깨닫게 된 '법'은 완벽하지 않다.


이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어떤 내용으로 마무리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서도연의 부모가 숨긴 '출생의 비밀'이나 민준국이 어떤 마음으로 박수하의 아버지를 죽였는지도 모릅니다. 다만 한가지 지금까지의 언급된 법정 사건을 볼 때 민준국은 쌍둥이들처럼 '복수'를 위해 수하의 아버지를 죽였고 쌍둥이들처럼 법의 약점을 이용해 과실치사로 빠져나오려다 장혜성의 증언 때문에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복수를 마음 먹은 이유는 고성빈의 경우처럼 수하아버지가 억측이 담긴 증언으로 민준국이나 그의 가족에게 부당한 증언을 했기 때문이겠죠.

자신이 죽인 사람의 아들인 수하 보다 증언자인 장혜성에게 더욱 큰 원한을 품은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말하자면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그 사건만 보고 나를 죄인으로 만드냐' 뭐 이런 뜻인게죠. 장혜성이 국선담당변호사로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하지만 그녀가 더욱 더 배워야하는 것은 법은 아무리 완벽해도 사람의 마음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진실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의 법감정을 만족시키는 법도 억울한 사람이 없게 만드는 법도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법조인이 있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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