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 이야기

불의여신정이, '어마마마' 한고은은 한복만 입어도 화려합니다

Shain 2013. 7. 25. 12:37
728x90
반응형
평소에 사극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사극을 보는 나름대로의 기준같은게 생기더군요. 시대상 고증은 얼마나 잘 됐는지 실존인물 캐릭터가 사서 속 기록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해석했는지 극중 인물들이 사용하는 대사가 상황이나 예법에 맞는지 등 나름대로 관심을 두고 유심히 보는 부분이 있습니다. 물론 최근에 방송된 '사극'들 대부분은 판타지라 기준에 맞는 작품은 전멸하다시피했고 '불의 여신 정이'는 그중에서도 꽤 상태가 안 좋은 쪽에 속합니다. 임해군(이광수)이나 광해군(이상윤) 캐릭터는 상당히 잘 만들었고 연기자도 잘 맞춘 듯한데 그 외 부분은 거슬리는게 상당히 많더군요.

왜 광해군과 임해군은 후궁인 인빈 김씨에게 '어마마마'라 부르는가.


특히 극중 인빈 김씨(한고은)에게 임해군과 광해군이 번갈아가며 '어마마마'라고 할 때는 황당해서 웃음이 터져나왔는데 조선 왕실 법도 중 하나는 후궁 소생의 왕자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어마마마'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공식적으로 중전이 후궁 소생 왕자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희빈 마마, 공빈 마마 같은 식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호칭하는게 맞습니다. 하물며 중전도 아닌 인빈에게 '어마마마'라니요. 이건 인빈이 봉황 장식 비녀를 한 것 만큼이나 황당한 일입니다. 인빈이 마치 중전처럼 행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조에게는 꽤 많은 후궁이 있었습니다. 의인왕후 박씨가 공식적인 중전이었지만 선조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명목상의 부부였기 때문에 후사도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인빈 김씨는 선조가 왕위 계승자가 된 시절부터 함께 한 실질적인 조강지처였습니다. 의인왕후 보다 먼저 만난데다 죽을 때까지 총애를 받고 인빈으로 궁에 함께 살았으니 선조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을 거 같긴 합니다. 인빈 김씨는 사촌언니가 명종의 후궁인 경빈 이씨라 입궁했고 명종의 아내인 인순왕후의 눈에 띄어 선조의 후궁이 되었습니다.

조금만 카메라 각도를 비틀어도 이상해 보이는 땋은 첩지 머리와 쓸데없이 화려한 치장.




공감하신다면 추천해주세요


인빈의 외할아버지는 전주 이씨로 왕실 후손입니다. 인빈도 인조의 할머니니 왕실 조상이 되지만 인빈의 가문 자체가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는 집안이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아이일 때 입궁해서 선조의 4남 5녀를 낳았으니 그 위세가 대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후에 인빈의 조카딸은 광해군의 후궁이 되기도 합니다. 잠시 잠깐 광해, 임해의 어머니인 공빈에게 잠깐 자리를 위협받긴 했으나 의인왕후 보다 정치적이었고 훨씬 입김이 쎈 상황이었습니다. 선조의 적자도 없으니 당연히 아들의 왕위 계승을 노려볼만한 위치였던게죠.

전에도 한번 적었지만 인빈은 아들 신성군이 죽은 후에는 광해군과 꽤 잘 지냈습니다. 공빈이 살아 있을 시절엔 총애를 두고 질투도 했고 신성군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무리한 행동도 많이 했지만 이후엔 광해군이 인빈을 어머니로 여길 정도로 두둔해 주었다고 합니다. 선조와 또래인 인빈이 새파랗게 어린 인목대비를 상전으로 모셔야하니 자연스레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광해군을 격려한 것인지는 몰라도 삼십여년을 궁에서 부대끼며 살았으니 아들처럼 정이 들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도 광해군이나 임해군이 인빈을 '어마마마'라 부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인빈이 꾸준히 장식하고 나오는 거대한 봉황잠도 아무나 착용할 수 없던 것이다.


사실 극중 선조(정보석)가 역사 속에서 보여준 실망스런 행동에도 불구하고 처세에 밝은 임금처럼 묘사되는 점, 사서에는 유순하고 총명하며 용모가 단아하고 행실이 바른 사람으로 묘사된 인빈이 과장스럽게 사치하고 음흉한 성격으로 등장하는 건 주인공 유정(문근영)과 광해군의 극적인 상황을 위해서일 것입니다. 선조와 인빈의 캐릭터가 그렇게 어긋난건 마뜩치는 않지만 그런가보다 하며 눈감아보려 했는데 인빈의 화장과 장식이 지나치게 화려한 건 볼 때 인상이 찌푸려집니다. 캐릭터를 과장하다 못해 아주 만화로 만들어놨더군요.

한고은씨는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거나 금색찬란한 장식을 하지 않고 반짝반짝한 당의를 입지 않아도 화려해보이는 사람입니다. 공빈에 비해 사치스럽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였는지 땋은 머리로 첩지를 올렸는데 이게 앞에서 보면 가체처럼 보입니다만 비켜 보면 어쩌면 저렇게 머리를 바보같이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우스꽝스럽습니다. 옆모습이나 앞모습은 그럭저럭 볼만한데 살짝 각도를 비틀면 대칭이 전혀 맞지 않는 이상한 머리가 되고 말더군요. 그냥 둬도 예쁜 사람에게 덕지덕지 붙여 놓으니 화려하다기 보다 조잡한 느낌이 드는 꾸밈이 되버렸습니다.

한고은은 장식물로 치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화려한 얼굴이다(왼쪽은 '명가' 출연 당시의 모습)


굳이 선조의 다른 비빈들을 출연시키지 않고 인빈 만 등장시킨 것도 그 인빈의 배역을 연륜이 오래된 배우가 아닌 화려한 외모의 한고은씨를 고른 것도 인빈의 캐릭터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였을테지만 장신구, 한복, 립스틱을 너무 눈에 띄게 하다 보니 진지해 보이기 보단 코믹해보이기 시작합니다. 과도한 분장으로 한고은씨 고유의 매력을 살리지 못하려면 굳이 왜 캐스팅을 했는지도 의문이네요. 극중에서 왕족이 아닌 상단에서 일하는 심화령(서현진) 정도만 분장해도 충분히 화려한 사람인데 안타깝습니다.

전부터 사극에 등장하는 화려한 봉황잠이나 용잠이 극중 인물의 신분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습니다. 거기다 금색 장식에 치장한 보석은 왕족이 쓰던 귀한 물건이 아니라 '다이소'에서 만든 싸구려처럼 보인다는 지적도 자주 받았죠. 온통 금색 투성이인 인빈의 머리 장식은 전혀 귀해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인빈의 캐릭터가 주인공 광해군을 빛나게 하기 위한 악역이라지만 인빈의 취향이나 장식이나 너무 저렴하게 표현한 것 같네요. 제발 저 이상한, 닭벼슬같은 장식이 달린, 가체닮은 첩지부터 떼주면 안될까요.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