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히는 슈발리에에 등장하는 실존인물들은 연대가 조금씩 맞지 않는다.
퐁파두르와 마리 레슈친스카와 루이 15세 그리고 어린 루이 오귀스트와
그리고 섭정으로 유명한 오를레앙공이 공존하기가 어려운 나이대라는..
특히 알다시피 로베스피에르는 루이 16세가 왕위를 이을 무렵(그러니까 루이 16세가 20세 전후일 때) 아카데미에서 대표로 연설을 했던 아주 어린 나이의 학생이었다. 그 로베스피에르의 선조라도 되던지 다른 사람이던지, 아님 시간을 거슬러 올라왔단 뜻인데.. (결론은 나중에, 혹시 나중에 환생이라도 하나 )

* Maria Leszczynska - 마리 레슈친스카
* 슈발리에 속에서 마리 레슈친스카가 묘사되는 모습은 점잖고, 국가의 미래에 관심이 아주 많은 왕비의 모습이다. 정부를 두는 루이 15세의 행동에 대해 그리 심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퐁파두르 후작부인에게도 어느 정도 인자한 모습을 보이며(실제 역사에선 퐁파두르 쪽이 잘 보이려고 노력한 모습이 많다고 한다) 프랑스의 NQM의 활동을 위한 슈발리에 주인공들의 몇가지 행동을 지원하기도 한다. 실제 역사에서 마리 왕비는 약소국 출신이라 자주 감시를 당했고, 아이를 열명 나은 이후엔 왕과 말 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거의 은폐된 듯이 조용히 살았다고 한다. 대신 퐁파두르 부인이 모든 권력을 휘둘렀다는 역사와는 달리 슈발리에에서의 마리 왕비는 아무래도 왕실의 숨겨진 권력자이다.
NQM이 머리에 씌인 정체불명의 말하는 해골을 가지고 있고, 종교적인 신앙심이 깊다. 또 여장을 자주 하게 되는 데몽드 보몽의 여자옷을 직접 마련해주기도 하는 등 프랑스 기밀국의 일을 주도하는 편인데다 기밀국의 기사들과도 교류가 깊다. 역사적으로 거의 목소리가 없었던, 약소국의 조용한, 폴란드 공주 마리 레슈친스카는 어떤 이유로 프랑스의 국정의 비밀을 이렇게 깊이 알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교회의 아래에서 리아 드 보몽의 썩지않은 시체를 돌보며 찾고자 하는 '왕가의 시'는 무엇일까?
슈발리에 중에서  프랑스의 왕비, 마리 레슈친스카는 마치 암살당하는 것처럼 묘사가 되고 실제로도 루이 15세보다 6년여 앞서 세상을 뜬다. 루이 15세의 시기가 프랑스 혁명을 도발하는 실질적인 시대인 만큼 마리의 죽음을 루이 15세에게 어떤 의미로 처리할 지가 사뭇 궁금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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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의 마리 레슈친스카

마리 레슈친스카(폴란드어: Maria Karolina Zofia Felicja Leszczyńska, 1703년 6월 23일 - 1768년 6월 24일)는 프랑스의 루이 15세의 왕비(1715년 - 1768년)이다. 폴란드 공주 출신으로, 스타니슬라우스 레슈친스키와 카타르지나 오팔린스카의 딸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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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9년 폴란드가 스위스군의 침략을 받아 부왕인 스타니슬라우스가 권좌에서 쫓겨나 그의 일가족은 졸지에 망명자 신세가 되었다. 스웨덴, 오스만 제국 등 이곳저곳을 유랑하다가 프랑스의 온정으로 알자스의 작은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다.

1725년 9월 21살의 나이에 당시 16살이던 루이 15세와 결혼을 하였다. 당시 섭정 오를레앙 공이 죽은 후 실권자가 된 부르봉 공은 상속자를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나이 든 왕녀를 물색하다가 마리를 최종적으로 선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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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그녀를 선택한 이유는, 폴란드 왕실의 다산력 때문만이 아니라 그녀의 극빈함 때문이기도 하였다. 즉 딱한 처지에 있던 마리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왕의 배우자가 될 수 있게 해준 자신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매우 순응적이고 협조적일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실제로 마리는 훗날 부르봉 공의 실각을 저지하려고 딱 한번 정치적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어쨌든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왕과 유럽에서 가장 빈곤한 공주의 혼인은 당시 세인들의 빈축을 샀다. 궁중에 들어온 후부터 마리는 종종 폴란드인이라는 수근거림과 비아냥을 견뎌내야 했다.  결혼한지 처음 9년 동안은 부부간의 금실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마리는 조용하고 상냥하였으며, 독실한 로마 가톨릭교도였다. 그녀는 폴란드 왕실의 다산력을 인정받았듯이 매년 1명꼴로 아이를 낳아 총 9번의 출산을 하여 상속자를 생산해야 하는 왕비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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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너무나 헌신적이고 얌전한 아내에게 점차 싫증을 느끼게 된 루이 15세는 아내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려 정부를 여러 명 두게 되었다. 마지막 아이를 낳고 나서 그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나누는 형식적인 말 몇 마디 외에는 일생동안 아내에게 단 한 마디의 말도 건네지 않았고, 사실상 두 사람은 별거 상태에 들어갔다.

 궁정의 일상적인 행사에서 제외된 마리는 자신의 처량한 신세에 별 불평없이 매일 시녀들을 거느리고 미사에 참례했고 자기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자수를 놓기도 하며, 악기를 연주하며 시간을 보냈다. 또 몇몇 친한 친구들을 불러 모아 같이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인생의 낙이었다. 마리는 궁정의 음모에 연루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다가 65살에 루이 15세보다 6년 앞서 서거하였다.


* 내용 출처 :
http://ko.wikipedia.org/
http://en.wikipedia.org/

* 이미지 출처 :
http://www.answers.com/topic/maria-leszczy-ska-1
http://arekski.webpark.pl/historia.html
http://ru.pandapedia.com/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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