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초반에 비중이 적다고 생각했던 실존인물들의 역할이 차츰 커져가고 있기 때문에,
다 보고 난 다음에 이런 포스트를 작성했어야 하는 건 아니었는지 처음으로 후회했다.
상징적 존재인 줄로만 알았던 루이 부부나 퐁파두르가 이렇게나 애니 속에서 중요한 역할이었다니
나중에 더 첨가하면 너무 길어질까?

* Madame de Pompadour - 마담 드 퐁파두르
* 엄밀히 이야기 해서 슈발리에의 본의 아닌 악의 축 역할을 하는 실존인물이다. '후세에서 나를 권력 만을 탐한 나쁜 여자로 기억하더라도' 차기 왕이 될 루이 16세에게 엄한 교육을 시켜야한다는 대사를 떠드는 한편, 프랑스의 미래를 위해서 국가를 자기 뜻대로 운영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
말하자면 극중에서 그녀가 하는 악역은 그녀가 원한 것이라기 보단, 좋은 뜻으로 대립했으나 결과적으로 나쁜 짓이다 뭐 이런 해석일까나? 아니면 입장이 다르다는 걸까나? 그건 아직 결말이 나지 않은 상태
실제의 퐁파두르는 루이 15세를 만날 때 마다 단 한번도 같은 옷을 입은 적이 없다고 하나, 슈발리에 속에서의 그녀는 항상 같은 옷에 같은 머리 모양이다(다만 그 유명한 리본이 아주 많은 퐁파두르 스타일의 옷이다). 사람들을 모아서 연회를 즐기고 또 예술과 문화를 꽃피운 달인으로서, 로코코의 여왕으로서의 그녀의 역사와는 다르게 항상 프랑스 걱정 뿐인 여자로 묘사된다. 실제 역사와 비슷하게, 외무 대신이나 권력자들을 휘두르는 모습은 여전하다. 다만 애니 중에서는 '프랑스의 개혁'을 위해서 권력을 휘두르고 사람들을 모으는 것이 다르다.
참고로 그녀의 이미지와 실존 초상화는 당연히 마리 레슈친스카의 그것 보다 화려하고 갯수도 다양한데, 현재의 문화에서도 마담 드 퐁파두르란 이름은 화려함의 상징 같은 것이라, 자주 응용이 되는 이름이다. 그녀가 발달시킨 문화 만큼 그녀의 사치도 엄청났다고 할 수 있다는 말씀. 개혁이나 프랑스를 위해서라는 말이 사실은 매우 안 어울린다.
루이 15세는 그녀의 행동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기밀국을 조정하는 왕비와 퐁파두르의 대립도 간섭하지 않고, 국가의 대소사를 모두 결정하는 그녀를 탓하는 법도 없다. 항상 예쁜 자세와 말투, 그리고 공손한 자세를 유지하는 그녀. 슈발리에의 결말 속에서는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 궁금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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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의 마담 드 퐁파두르
별칭은 Madame de Pompadour. Jeanne-Antoinette Le Normant d'Etioles이라고도 함(1741~45).
1721. 12. 29 파리~1764. 4. 15 베르사유.
프랑스 왕 루이 15세의 정부.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문학과 예술의 후원자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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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년 시절

그녀의 부모는 중산층으로 금융가의 투기꾼이었다. 당시 일부 투기꾼은 엄청난 재산을 모았지만 대부분은 감옥신세 아니면 빈털터리가 되었다. 아버지 프랑수아 푸아송이 암시장사건에 연루되어 1725년 국외로 도망한 후 그의 아름다운 아내와 두 자녀는 그들보다 더 부자인 친구 르 노르망 드 투르넴이 보살폈다. 두 자녀는 총명했고 그중 딸은 더욱 뛰어났다. 그녀는 부자의 아내가 되는 교육을 받았다. 당시 부자들은 하층민 출신이더라도 예술과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아내들도 이같은 관심을 공유하기를 기대했다. 결혼할 나이에 접어들었을 때 그녀는 어떤 상류사회에서든 자신의 존재를 내세울 수 있게 되었으며 볼테르와 같은 유명인사와도 교분을 나누었다. 르 노르망 드 투르넴은 그녀를 자신의 친조카이며 유망한 젊은이인 샤를 기욤 르 노르망 데투알과 짝을 맺어주었다. 그들은 딸 알렉산드리네를 두었다. 그녀는 파리 사교계에서 빛나는 별이 되었고 국왕 루이 15세의 찬사를 받았다. 1744년 루이 15세의 젊은 정부인 샤토루 공작부인이 갑자기 죽자 그녀는 곧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고 그녀는 남편과 법적인 이혼절차를 밟은 뒤 퐁파두르 후작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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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사가들은 퐁파두르가 루이 15세를 압도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들 혁명 후의 사가들은 당시 부르봉 왕가를 열악한 인물들로 그렸다. 지금은 일반적으로 루이 15세가 사가들이 묘사한 것보다 능력있는 인물인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부끄럼 많고 내성적인 루이 15세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퐁파두르는 그의 개인 비서 역할을 하면서 명령을 내리기도 했으나 결정은 국왕이 했다. 그녀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조심스럽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왕궁의 다락방 몇 개를 사용하던 그녀는 우선 마리 왕비(마리아 레슈친스카)를 비롯한 왕궁의 중요 인물들의 마음에 들도록 행동하기 시작했다. 왕비는 멋있고 예술적이며 세련되고 쾌락을 추구하는 국왕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아내였다. 그녀는 국왕보다 8살 연상으로 아버지(폴란드의 망명국왕)의 안녕과 자식양육, 신앙에만 몰두했다. 왕세자를 비롯한 8~9명의 자녀를 낳은 뒤 국왕에게 성적인 접촉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퐁파두르는 5년쯤 지나 아래층의 정식 왕실로 거처를 정했다. 루이 15세는 이후 여러 명의 정부를 두었으나 퐁파두르의 지위는 전보다 확고해졌다. 국왕의 허락, 승진, 특권의 행사가 그녀의 집무실을 통해 이루어졌다.


* 루이 15세와의 예술적·정치적인 협력

퐁파두르는 국왕과 정치·예술 양면에서 공동으로 협력했다. 예술 분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녀의 제의로 그녀의 오빠는 왕궁 감독관에 임명되고 마리니 후작 칭호도 얻었다. 국왕, 퐁파두르, 마리니 후작은 완전한 3박자 조화를 이루어 파리의 에콜 미리테르와 루이 15세 궁전(지금의 콩코르 궁전), 베르사유의 콤피앙 궁전과 페티트 트리아농 궁전의 대부분, 퐁텐블로 궁전의 날개, 아름다운 샤토 드 벨류브, 많은 간이건물과 여름 휴양소 등을 설계·건축했다. 루이 15세와 퐁파두르는 화가, 조각가, 가구제조업자, 왕실 세공업자 등 모든 종류의 장식미술가들을 후원했다. 유명한 도자기 공장이 세브레에 건립되기도 했다. 퐁파두르의 20년 전성기는 프랑스 양식의 최고 정점을 이루었다. 작가와 백과사전 편집자의 후원자인 그녀는 미술분야와 같이 문학도 후원하려 했으나 국왕은 문학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알고 있는 지식인들을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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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분야는 예술분야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당시 프랑스 정치인들과 장군들의 자질이 그다지 훌륭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유능한 관료 수아죌 공작이 퐁파두르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그는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공국들에 대항해 프랑스와 옛 적국 오스트리아가 연합하는 유명한 반동맹(Reversal of Alliances)을 추진했다. 이 전략은 정치가다운 발상이었으나 여론의 지지를 받지도 못하고 프랑스에 재앙을 안겨준 7년전쟁을 유발했다. 이 전쟁에서 프리드리히 대왕은 규모는 대단하지만 지휘통솔능력이 결여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군대를 물리쳤다. 그 사이 영국은 캐나다로부터 프랑스를 몰아냈다. 이러한 패배의 결과는 퐁파두르에게 몰아닥쳤으며 그녀는 우울증에 빠져 전쟁이 끝나자마자 베르사유 궁전에서 죽었다. 사인은 폐암으로 추정되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대대적인 재판 오심(誤審) 사건인 칼라 사건의 번복에 대해 루이 15세의 승인을 얻어냈다. 볼테르는 퐁파두르 부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추모했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녀를 추모한다…… 천성이 진실한 그녀는 국왕을 사랑했다. 그녀는 올바른 영혼과 정의로운 가슴의 소유자였다. 이 모든 것은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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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키피디아 저술
1721년 당시 파리의 부유한 금융업자였던 샤를 프랑수아 폴 르 노르망 드 투르넴(프랑스어: Charles François Paul Le Normant de Tournehem)의 딸로 태어났다. 잔느 푸아송은 평민이란 신분에 속했었지만, 부르주아 계층이었던 어머니 애인의 호의 덕분에 귀족의 자녀 이상급의 교육을 받고 자라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성적이 매우 우수했으며, 예술을 애호하게 되었다. 그녀는 모든 연극의 대사를 암송할 수 있었고 클라비코드를 수준급으로 연주할 수 있었으며, 열정적인 정원사이자 식물학자였다. 또한 그림을 자주 그렸고 보석 디자인을 하기도 했으며, 훌륭한 유머 감각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1741년에 그녀는 아버지의 조카, 즉 자신의 사촌인 샤를 기욤 르 노르망 데티올과 결혼하여 잔느 앙트와네트 데티올로 이름을 바꾸고 딸 알렉상드린을 낳았다. 1744년에는 가끔 수렵을 하러오던 루이 15세에게 우연히 그 미모가 눈에 띄어 내연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곧 후작 부인의 칭호가 주어져 귀족으로 신분이 격상되었으며, 남편과 이혼하여 1745년 9월 14일 정식으로 왕의 정부(情婦)로서 인정되어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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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국왕의 공식 애첩이 된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죽을 때까지 20년 동안 루이 15세를 매혹시키고 그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녀는 돈을 물 쓰듯이 사용하고, 여기저기에 저택과 성곽 등을 건설하였으며(프랑스 대통령의 관저인 엘리제 궁전은 그녀의 저택 중의 하나다), 이윽고 정치에도 참견하게 되어 약 15년간 권세를 누리게 된다.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추천을 받아 1758년 외무 대신이 된 쇼아죌은 전쟁 대신 등의 직위도 겸하여, 대략 10년에 걸쳐 사실상 재상이 되었다. 프랑스의 중농학파 프랑수아 케네는 그녀의 주치의였다. 한마디로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침대에서 프랑스의 정치를 좌지우지한 그림자의 실력자라고 할 수 있다. 이때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나의 시대가 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1756년에는,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와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여제와 교류하여 반(反)프로이센 포위망을 결성했다(7년 전쟁).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매우 지성적이었고, 예술 전반에 걸쳐 높은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학예 보호에 힘쓴 그녀의 샬롱에는 볼테르와 몽테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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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 등의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그녀의 다양한 예술적 취미는 프랑스의 문예를 진흥시키는 데 큰 힘이 되었으니, 극장이나 소극장의 건립은 물론 당대의 예술가들도 모두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후원을 받았다. 그녀는 가구나 도자기, 그릇, 의상, 보석, 그림, 책 등 많은 수집품을 모았는데, 그녀가 갑작스레 죽은 뒤 그녀의 유품을 정리하는 데에만 1년이나 걸렸을 정도였다고 한다. ‘우아한 부인은 당대의 모든 미술에 영향을 미쳤다’고 묘사한 당시 기록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녀의 이러한 수집열은 각종 미술품의 생산을 촉구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입김이 여러 곳에 미치자 자연스레 그녀의 취향은 당시 유행의 기준으로 통용되었다.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시대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우아한 로코코 양식이 발달했던 시대가 되었다.

30살을 넘었을 무렵부터 루이 15세와 한 침실에서 같이 자는 일은 없어졌지만, 루이 15세는 퐁파두르 후작 부인이 43살의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을 때까지 계속 총애했다고 한다.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베르사유 궁전 안에 녹원을 조성하고는 그곳에 전국 각지에서 데려온 미녀들을 모아놓고 루이 15세에게 고르게 하여 매일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대령했다고 한다. 그래서 7년간은 뚜쟁이였다는 악평을 듣게 된다.


* 내용 출처 :
http://ko.wikipedia.org/
http://en.wikipedia.org/
http://100.empas.com/dicsearch/pentry.html?i=203004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6&dir_id=61501&eid=/dm+sXb/AkmCaudaydRXaeEZNzlg9f/c&qb=xv7GxLXOuKM=


* 이미지 출처 :
http://www.axonais.com/saintquentin/musee_lecuyer/pompadour.html
http://www.warcaby.beep.pl/jpg/
http://www.lacemaking.it/beitempi.html
http://www.wga.hu/html/d/drouais/francois/mme_pomp.html
http://www.wga.hu/html/b/boucher/2/index.html
http://www.histoire-en-ligne.com/spip.php?article263
http://cgfa.sunsite.dk/boucher/p-bouche11.htm
http://www.elysee.fr/elysee/elysee.fr/francais_archives/l_elysee_et_les_residences/l_histoire_du_palais_de_l_elysee/illustrations/le_palais_de_l_elysee-illustration_4.21138.html
http://museumnetworkuk.org/portraits/artworks/waddesdon/img4_lg.html
http://www.planet-wissen.de/pw/showdocument,,,,,,,,,,,,,,,,,,,0E8F8566521D5AC6E0440003BA5E08D7,,,.html
http://www.bc.edu/bc_org/avp/cas/his/CoreArt/art/anc_bou_pomp2.html
http://olharfeliz.typepad.com/pastels/2004/09/index.html
http://membres.lycos.fr/macewindu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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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브마
    2007.06.07 11:37

    마담 드 퐁파두르... 어떤 드라마에서 본 거 같다..하고 있었는데
    닥터후에 나왔었던.. 흠.

    • Favicon of https://shain.tistory.com BlogIcon Shain
      2007.06.07 13:32 신고
      댓글 주소 수정 및 삭제

      아.. 직간접적으로 이 여자가 안 나오는 곳이 드물지 싶어요..
      아주 화려한 장식의 식기나 찻잔에 조차 붙은 이름이라
      로코코의 여왕이라는 별명답게.
      화려한 것에는 빠지지 않습니다 ^^

      닥터후에는 왜 나왔을라나..